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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

   EP.45

     

   [당신은 ‘2층’에 머물기를 선택하셨습니다.]

   [‘3층’으로 강제 이동되기 전, 48시간이 주어집니다.]

     

   비무가 끝난 직후, 나는 상황을 파악하며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나의 선택에 따라 기존의 알림들이 사라지며 새로운 알림이 떠오른다.

     

   남은 임무 시간이 초기화되며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이틀.

   고수들의 인정을 생각보다 빨리 받아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는 시간을 빼앗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뭐… 그래도 이틀이면 부족할 건 없지.’

     

   애초에 내가 2층에 남은 이유를 생각하면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내 목표는 오직 매화검수와 남궁차남이 언급한 ‘고수와의 비무’ 뿐.

     

   물론 정무학관을 탐방하며 내가 놓친 이벤트를 찾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져가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었다.

     

   “비무대회 우승자는 천월문의 김시인이오!”

     

   오오오!

     

   내가 잡념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된 것인지 심판이 다가와 나의 손을 들어 올렸다.

     

   [당신은 비무대회의 우승자입니다.]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비무대회의 우승자에게는 한 가지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을 다들 알고 계실 것이오!”

     

   올 것이 왔다.

   심판의 외침에 비무대회를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이 입을 다물며 그의 말을 경청한다.

     

   “바로 이곳 정무학관에 있는 한 사람에게 비무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 누구든 상관없소! 함께 동문수학한 친우든, 자신을 가르친 스승이든, 아, 물론 이곳에 있는 저도 포함이 되지요!”

     

   그의 농담 섞인 설명에 관객들이 작게 실소를 터트린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기회가 얼마나 천금 같은 기회인지!

     

   물론 무림인이 아닌 일반 구경꾼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냥 일반인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차별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비무의 시간은 내일 정오가 될 것이오! 비무대회 우승자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비무 신청을 해도 좋소. 하지만 결국 선택은 우승자의 것이고 비무는 단 한 차례만 허락됨을 명심하시오!”

     

   명심하라는 심판의 말이 귀에 때려 박힌다. 관객들에게 하는 말인 것 같지만 결국은 나에게 하는 말.

   이 좋은 기회를 어정쩡한 무림인에게 넘기지 말고 현명하게 잘 사용하라는 나름의 조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나를 인정했다던 고수들의 빛나는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2층에 올라온 첫날, 임무를 찾아다니며 만났던 C랭크 급의 교관들.

   까놓고 말해서 저 유화검이니 상승검이니 하는 어정쩡한 별호를 쓰는 듣보잡 문파 교관과 비무를 잡아 기회를 놓칠 생각은 일절 없었다.

     

   “내일 이 자리에서 비무 상대를 발표하겠소. 그럼 오늘 비무대회를 보러 오신 모든 분들. 살펴 돌아가시길 바라오!”

     

   짝짝짝짝!

     

   의외로 우승자의 소감 같은 진부한 일정은 없었다.

   그저 할 말 다하고 알아서 갈 길 가는 무림인들.

     

   유아독존, 개인주의가 아주 여실히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모두가 흩어지는 가운데 나에게 다가오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시인 소협.”

   “아, 화영 소저.”

     

   비무가 끝난 이후부터 심판의 설명을 줄곧 들으며 뻘쭘하게 서 있던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아아, 네, 저도.”

     

   그녀의 미소에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말을 더듬었다.

     

   자신이 가르쳤던 사람이 자신을 앞질렀다는 것.

   심지어 십수년을 갈고 닦은 무예를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따라잡았는데 억울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소저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정말로요.”

     

   그런 경험이 없는 나조차도 이 상황이 얼마나 분할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화영은 나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인 소협 덕분에 천월문의 검이 더욱 빛났습니다.”

   “……”

     

   화영의 말에 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비무 직후라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데도 사람이 가지런해 보이고 정돈이 되어 보인다.

     

   “…대단하시네요. 혹시 아쉽거나 그러진 않으세요?”

     

   그녀의 놀랍도록 차분한 품행에 내가 존경을 표하며 묻자 그녀는 오히려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가르친 제자가 이렇게 놀라운 성취를 이뤘는데 아쉬울 게 뭐가 있겠어요. 오히려 앞으로 시인 소협의 검을 보면서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쁜걸요.”

     

   아.

     

   나는 괜한 죄책감에 그녀의 눈을 슬쩍 피했다.

     

   애초에 나는 2층을 지나가는 객이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2층에 있을 무공과 기술들을 쏙쏙 뽑아먹고 도망을 칠 예정이니 도둑이나 산업스파이가 조금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부시럭.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 싶은 보따리 하나가 화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뭔가 전할 말이 있어 보이는 화영의 표정과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손끝.

   2층의 메인 임무와 동시에 클리어된 화영과의 미션이 떠오르자 내가 미안해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

     

   “흐음…”

     

   이제는 내 전용이 되어 버린 정무학관 의약당의 침대 위.

   나는 손에 들린 낡은 책 한 권을 바라보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거 받으세요.」

     

   들고 있던 보따리를 건네는 화영의 모습에 나는 최대한 모른 척하며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이게 뭐죠?」

     

   나는 이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보따리에 든 것은 ‘스승과 제자 – 화영’ 임무의 최종 보상.

   처음부터 내가 임무를 클리어하면 받게 되었을 ‘천월문의 독문무공’이 적힌 무공서였다.

     

   「천월신공의 무공서예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고요. 또……」

     

   그녀의 설명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의문스러웠던 점은 그 무공서가 굉장히 낡아 있었다는 것.

     

   「화영 소저…… 혹시 이게 원본입니까?」

   「네. 제가 천월신공을 익힐 때, 읽었던 것이죠.」

   「왜 원본을 저에게……」

     

   그녀의 담백한 답변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 天月神功 】

     

   끝자락에 멋들어지게 쓰인 천월신공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무림인에게 무공이란 생명과도 같은 것. 그리고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화영이 자신이 봤던 무공서를 건넨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무공서를 펼쳐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월광검법 제삼식’을 읽어 내려갔다.

     

   『월광검법 제삼식 – 일섬』

     

   탑의 배려인지 무공서의 내용은 한자가 아닌 한글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낡은 종이에 무공을 펼치는 사람의 그림이 투박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오랫동안 묵어 있었을 누군가의 그림이 아니었다.

     

   —

   ……

    앞서 설명했듯 천월문의 월광검법은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의 신체적 역량이 아닌 심상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무공이다.

    경험과 깨달음. 그리고 나는 후대를 위해 나의 경험을 기록한다.

   ……

   —

     

   일지.

     

   화영이 천월신공을 익히며 경험한 그녀의 이야기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신기하네.”

     

   깨달음이라는 건 꽤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사건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정말 특별해 보이는 사건들도 기록이 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우물에 비친 달을 봤다.’ 라거나 ‘수련을 하다가 하늘을 봤다.’ 따위의 소소한 일상이었다.

     

   나는 책을 조심스럽게 덮었다.

   물론 수련을 하며 읽게 되겠지만 화영의 말마따나 무공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심상을 구현하는 것과 같았다.

     

   나의 이야기를 검으로써 펼치는 것.

   그저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타인의 심상이 아닌 나의 심상을 검에 먼저 담아내고 싶었다.

     

   “후우…”

     

   나는 가부좌를 틀어 운기를 시작했다.

   내일 있을 비무를 위해서든 그 이후에 있을 모든 날에 대한 준비를 위해서든 지금은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비무대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대회장의 관객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대화의 대부분은 단연코 ‘오늘 있을 비무의 주인공이 누구를 지목할 것인가’였다.

     

   “자네는 이번 비무대회 우승자가 누굴 지목할 것 같나?”

   “글쎄…… 그래도 구파일방의 일원을 지목하지 않겠나? 절정 고수들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이 흔한 경험은 아니니까 말이야.”

     

   사람들의 추측과 관심은 구파일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 비무대회 우승자가 정무학관 역사상 고금제일의 후기지수라 하니,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대거 구경을 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김시인에게 관심이 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현남 장로님을 뵙습니다!”

   “아아, 그래, 종악이구나”

     

   해남파의 장로.

   천하백대검수라 불리는 현남이 자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종악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현남은 김시인이라는 아이가 자신의 사손師孫(제자의 제자)의 제자인 종악을 꺾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비록 3대 제자였으나 대제자가 펼친 해남파의 남해삼십육검을 몇 합을 채 나누기도 전에 깨트린 아이.

     

   ‘해남의 검은 복잡하다.’

     

   종악은 어릴 때부터 싹수가 남다른 아이였다.

   게다가 해남의 검은 일반적인 검의 묘리와는 달리 좌수검을 사용하는 검.

     

   하지만 그것은 짧은 순간 파악하고 파훼까지 했다는 말은 김시인이라는 아이 또한 해남파의 검을 배우기에 충분한 재능을 타고 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시인이라는 아이가 나를 지목할 것이라고?”

   “네! 그러합니다!”

   “으음……”

     

   현남은 아이들의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또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남의 검은 아름답다.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좌중을 휘어잡는 것이 해남의 검인데 무인으로 살아가는 자가 그 검의 끝을 확인하고 싶을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참에 비무가 끝나면 해남파에 입문하라고 해야겠군. 아주 기뻐하겠지?’

     

   그렇게 현남이 김칫국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장로님, 이제 시작되나 봅니다.”

     

   종악의 말에 현남의 시선이 비무장에 고정됐다.

   서서히 비무장으로 걸어 나오는 한 명의 사내.

     

   고작 몇 걸음 떼었을 뿐이지만 그 기백이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몸의 균형이 완벽하다. 덩치가 너무 크지 않고 날렵한 몸은 해남의 검을 배우기 너무나도 적합해 보인다.

     

   “김시인 소협, 비무 상대는 정했는가?”

     

   아득히도 먼 거리였지만 이미 초절정에 근접한 현남의 귀에는 심판의 말이 고스란히 들렸다.

   심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우승자. 그리고 그의 반응에 관객들이 들썩이며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와아아!

     

   김시인이 주위를 한 번 쭉 둘러보더니 우연인지 운명인지 해남파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좌석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범의 눈빛이로고…’

     

   저것은 도전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자신이 넘어야 할 산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빛 그 자체.

     

   현남은 자신의 검을 집어 들며 천천히 기운을 갈무리했다.

   고작 새파란 핏덩이와 치를 비무에 대한 기대로 70살이 다 되어서 두근거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김시인이 심판에게 귓속말로 뭐라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심판이 고개를 갸웃하며 재차 그의 상대를 확인했다.

     

   “그럼 지금부터 비무대회 우승자 김시인의 상대를 지목하도록 하겠소!”

     

   심판의 외침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입을 다문다.

   모든 무인들의 관심사였던 비무대회 우승자 김시인의 상대.

     

   그리고 심판의 입이 열렸을 때.

     

   “그…… 정무학관 의약당 당휘소는 앞으로 나와 주시오!”

     

   모든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 썩을 놈이… 내가 싫다고 했거늘……”

     

   사천당가 출신의 무인.

   지금은 의약당에서 단약이나 빚고 있는 할아버지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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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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