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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EP.49

     

   우웅- 우웅-

     

   천장 곳곳에 배치된 샹들리에의 불빛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고급스러운 벽에 반사되며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문으로부터 길게 늘어진 레드카펫과 좌우로 펼쳐진 거대한 테이블.

   테이블 위에는 금인지 은인지 모를 번들거리는 유럽풍의 촛대가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손님을 기다리듯, 깨끗한 빈 접시와 함께 수저가 준비되어 있었다.

     

   유럽의 전통과 격식을 갖춘 최고급 호텔 카페테리아를 연상케 하는 장소.

     

   하지만 그런 고급스러운 장소에 아쉽게도 사람은 없었다.

   물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지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속닥속닥-

     

   조명을 피해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잡담을 하던 짐승 무리들.

   무릇 짐승이라면 옷 대신 털을 입고 사족보행을 해야 했지만, 그들은 모순적이게도 하나같이 턱시도를 입은 채,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 늦는군.

     

   그리고 그중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검은 소.

   육중한 덩치를 가진 그가 불만이 쌓이는지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 그러게 말입니다.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말이죠.

     

   그의 옆에서 뱀 머리를 가진 도우미가 맞장구를 치며 말을 이었다.

     

   – 뭐 저희가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도우미들은 저나 당신처럼 유능하진 않으니까요.

   – 교만하구나 에키온. 네놈과 내가 유능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나?

     

   뱀 머리의 말에 검은 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에키온. 현 랭킹 3위인 놈은 탑의 도우미 중에서도 악 성향이 유난히도 강한 도우미였다.

     

   –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 도우미들을 보십시오. 저와 타우론 당신. 그리고 다른 장소에 자리를 잡은 도우미들만 봐도 상위 랭킹에 위치한 엘리트들이지 않습니까?

     

   놈의 말에 검은 소, 타우론이 고개를 돌려 로비 전체를 짧게 훑었다.

   쥐의 머리를 한 괴물, 돼지, 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상위 랭킹에 올라있는 짐승들이라는 것.

   하지만 다른 공통점이라면 마법이나 무공 따위가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는 이세계 좌표를 담당한 도우미라는 사실이었다.

     

   에키온도 분명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본디 교활하고 남을 깔보기 좋아하는 기분 나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 후후, 지금 저 도우미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잊으셨습니까? 담당한 좌표의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2층을 통과한 상태기 때문이지요. 그 말이 곧 저의 재량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 ……

     

   타우론은 이제 ‘저희’라는 말도 아닌 ‘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뱀 대가리를 보며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도우미 사이에서 타우론의 랭킹은 현재 2위.

   그저 생각이었지만 자신이 에키온보다 낮은 랭킹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역겨운 놈이 자신을 무시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니 그랬으면 근처에 오지 않았을 테니 오히려 좋았을지도.’

     

   이런 놈은 옆에 둬봐야 좋을 것이 하등 없다.

   앞에서는 굽신거리지만 뒤로 돌아서는 순간 숨겨뒀던 칼을 꺼내 등을 찌를 것이 분명한 놈이었기에.

     

   ‘플레이어들의 노력이 본인의 재량이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도우미들의 역할은 가능성이 있는 플레이어들을 선별해서 그들이 탑을 오르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도우미라는 이름이 모순적이게도 플레이어들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는데 도우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플레이어들에게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규칙.

   그나마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성좌들을 구슬려 그들의 임무를 변경하고 코인을 뿌리도록 유도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당연한 말이지만 성좌들은 능력이 없는 플레이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화신을 찾는 일인데 무능한 자를 구경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다 보니 당연히 힘이 강하거나 능력이 있는 자들이 탑에 입성하기 수월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대부분이 튜토리얼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 녀석은 정말 유능한 도우미라고 봐도 될 것 같군.’

     

   타우론의 시선이 구석에 짱박혀 뭔가를 중얼거리는 토끼에게로 향했다.

   무능력자 플레이어들을 탑까지 잘 이끌어 오기만 해도 상당히 괜찮은 도우미라는 것.

     

   그리고 앞선 기준으로 봤을 때, 랭킹 100위권으로 시작해 ‘지구’라는 무능력자 집단의 좌표를 배정받은 토끼가 이곳에 있다는 건 녀석의 도우미로서의 재능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앞선 기준으로 봤을 때, 랭킹 100위권인 토끼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녀석이 배정받은 ‘지구’라는 좌표의 무능력자 집단을 밑바닥부터 제대로 성장시켰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쩌면 다음 성좌 후보는 녀석이 될지도 모르겠군.’

     

   물론 이번 기수 한에서는 1위에서 5위까지의 변동은 거의 없을 것으로 사료되었다.

   애초에 타우론이 받은 좌표만 봐도 흑마법을 기본으로 깔고 있어 멸망이 찾아왔을 때, 오히려 좋다며 본인들끼리 싸워 재낀 정신 나간 좌표였으니까.

     

   그런 사나운 괴물들이 모인 좌표를 고작 무능력자 인간들로 이루어진 좌표가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타우론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토끼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 으아아! 가즈아아아!!

     

   어두컴컴한 모서리에 쪼그려 앉아 플레이어들을 구경하던 토끼가 괴성을 지르며 발악했다.

   물론 하위 랭킹 도우미가 저러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기에 다른 도우미들은 금세 신경을 끄고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 후후후후……

     

   토끼가 보고 있던 것은 2층에서 성장 중인 지구 좌표의 ‘인간’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다섯을 챙겨보던 토끼는 김시인의 비무를 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생태계 교란 종으로 그저 밸런스를 파괴하던 플레이어였다.

   이 한 녀석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성장하지 못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던가.

     

   그래서 그냥 김시인 한 녀석을 괴물로 키워서 랭킹전에 참여해볼까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에 랭킹전에서 큰 점수를 주는 종목은 대부분이 단체전이었고 좌표에서 한 놈만 괴물을 키웠다가 랭킹전을 말아먹은 선례도 있었기에 딱히 좋은 방법도 아니었다.

     

   ‘근데 이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도우미의 시선에서 봤을 때, 김시인은 제대로 난놈이었다.

     

   바퀴벌레를 능가하는 생존본능, 하이에나보다 교활하며 여우보다 얍삽한 주제에 하는 짓은 웬만한 소보다 부지런하다.

     

   한 마디로 탑을 오르는 데스게임에 가장 적합한 인재라는 말씀.

   그리고 그런 놈이 2층을 클리어하며 거의 얻지 말라고 만들어둔 무공서를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 놈을 괴물로 키우는 방식이 틀렸다는 건 틀렸다.

   그 선례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그 괴물이 전투에만 미친, 대가리가 비어 있던 진짜 괴물이었기에 실패한 것이었다.

     

   토끼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무공 다단계.

   괴물이 부족하다면 괴물이 괴물을 키우게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 가즈아아아아!!!

     

   초라했던 하위권아 이제는 안녕!

   게 섰거라 에키온 너는 이제 뒤졌어요!

     

   이번 랭킹전은 꽤 해볼 만할지도 몰랐다.

     

   ***

     

   한참을 달려온 비무대회가 무사히 막을 내렸다.

   당휘소와의 비무가 나의 승리로 끝이 나자 나는 비무장 위에서 수많은 관객과 성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전심전력의 부작용을 무시할 수는 없었고,

   나는 당연하게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의약당에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당휘소의 보살핌으로 겨우 눈을 뜨자, 나는 눈앞에 떠오르는 수많은 업적과 코인의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물건은 당황스럽게도 2층에 살던 무인들에게서 얻게 됐다.

     

   “정말로 이걸 제가 받아도 되는 겁니까? 저는 속한 문파가 있습니다만……”

   “그럼! 물론이고말고! 우리 해남파에 관심이 생긴다면 언제든 오도록 하게! 자네 같은 인재라면 언제든 극진히 대접할 테니!”

     

   언제부터 나를 알았다고 문병을 온 구파일방의 무인들.

   그들의 목적이 나를 본인들의 문파에 입문시키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다양한 뇌물들을 꺼내 들었다.

     

   ‘이게 다 뭐시여.’

     

   문파의 기초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무공서와 내력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환약.

   깔끔한 무복과 함께 사천의 무인이라면 쓸 수 있을 것이라며 다양한 침과 암기들을 선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옷은 나쁘지 않네.’

     

   —

   [천잠보의]

   종류 : 의복

   랭크 : B+

   설명 : 영물 천잠天蠶에게서 뽑아낸 백색 실을 이용해 지은 옷. 특수한 영기를 머금어 내구력이 좋고 때가 타지 않는다.

     

   효과

   – 불 속성 저항

   – 방수 기능

   —

     

   아쉽지만 그 문파의 독문무공이나 비전절기를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천잠보의나 구파일방의 기초 무공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확을 얻는 것이기는 했다.

     

   만약 비전절기가 필요하면 천월신공이나 사천현무신공을 배우면 될 터, 굳이 모든 것을 다 소화시키려 했다가는 이도 저도 못한 상태로 배가 터져 죽을 것이다.

     

   “후아……”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

   당휘소도 오늘은 피곤하다며 빠르게 퇴근을 했고 해가 떨어지자 정무학관은 언제 그렇게 조용했냐는 듯, 고즈넉한 장소로 변모했다.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깊은 밤.

   현대의 조명이나 랜턴 따위는 하나도 없는 정무학관은 전체가 잠에 빠진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떠나게 될 2층 무림이었지만 이 시간이 되니 몸이 습관적으로 움직였다.

     

   저벅저벅.

     

   이제는 익숙해진 정무학관의 복도를 걸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람이 없는 교실과 적막.

     

   하지만 공허하지는 않았다.

   그곳에는 야월夜月의 월광月光이 있었고 그 아래를 거니는 내가 있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복도의 끝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매일 같이 수련하던 공터가 나올 때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검무를 뽐내던 나의 스승, 화영이 나타날 때까지.

     

   스스슷-

     

   그녀가 있을 공터에서 파공음이 들려왔다.

   이 시간에 수련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 잠시나마 두 사람이었으나 떠나야할 나는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다.

     

   스르릉-

   쏴아아-

     

   거친 흙으로 이루어진 공터 바닥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 뒤로 이제는 공기를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에 들려온다.

     

   무공의 한 경지에 오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검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띠링.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의 귓가에 들려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펼치는 마지막 초식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뿐.

     

   「월광검법 오의 月光劍法 奧義」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월광을 감상했다.

   굳이 인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박수칠 때, 떠나라고.

     

   [2층에 머무를 시간이 종료됩니다.]

   [플레이어 ‘김시인’을 3층으로 전송합니다.]

   [플레이어 ‘김시인’에게 귀속된 물건을 함께 전송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동.

   찰나의 순간,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2층을 벗어난 상태였다.

     

   ***

     

   – 와! 오셨군요!

   – 플레이어 여러분들 저 기다리다가 목 빠질 뻔했습니다!

     

   3층 로비에 포탈이 열리며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갑옷을 입은 채, 다양한 무구들을 착용한 사람들.

   로브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마법사들도 보이니 이곳이 별천지 세계가 아닌가 싶은 착각도 든다.

     

   그들을 선두로 검은색 로브를 입고 흉흉한 기운을 풍기는 무리도 등장했고 사람과 흡사하지만 귀에 아가미가 달린 어인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모두가 전쟁에서 돌아온 개선장군마냥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 이야! 우리 지구 좌표 여러분들! 고생 많으셨죠오오!

     

   토끼가 담당하고 있던 좌표의 플레이어들.

   그들의 등장을 본 도우미와 타 좌표의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뭐여 저 거렁뱅이 집단은?”

   “쯧쯧. 몰골이 말이 아니군.”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놓고 거지같은 몰골을 한 사람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피를 뒤집어쓴 사람도 있었고 어딘가에 숨어서 2층을 버틴 것인지 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수척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나타난 한 남자.

     

   – 이야! 역시 김시인 플레이어! 아주 뽕을 뽑고 오셨네요!

     

   깔끔한 백색 무복을 입은 그는,

     

   “야, 3층에 단체로 쓸 수 있는 수련관 있냐?”

     

   정체를 알 수 없는 낡은 책을 양손에 바리바리 싸 들고 도우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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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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