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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EP.59

     

   쿠웅-!

   콰아앙-!

     

   어느덧 끝이 보이는 화산지대.

   나의 뒤로 두 동강이 난 채, 육중한 소음을 만들며 쓰러지는 화산 정령을 본 박조철이 기가 질린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시인 씨… 원래부터 특별한 건 알았지만, 도대체 2층에서 뭘 하신 겁니까?”

     

   박조철의 물음에 남궁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매번 청린이라면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 대던 금린도 이번만큼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제가 질문을 정확히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2층에서 한 거라고는 검술 수련 밖에 없습니다만.”

   “수련을 한다고 검으로 바위를 썰 수 있는 겁니까? 아니, 그 전에 2층에서 했는 수련만으로 이렇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쏟아지는 그의 질문에 나는 지난 2층의 시간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봤다.

     

   화영과의 비무, 그녀에게 배운 무공들.

   하지만 그 이전에 당휘소에게 배운 검에 대한 태도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정진을 멈추지 마라. 검을 휘두를 때는 내일 휘두를 검이 오늘의 검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휘둘러라.」

     

   나는 그의 말에 따라 매일같이 검을 단련했다. 2층의 모든 임무를 끝마치고도 시간이 나는 대로 운기를 하고 나의 검을 살폈다.

     

   그것은 3층에 도달한 이후에도 마찬가지.

   이곳에 오는 동안에도 전투가 끝나면 운기부터 했으니 내 마력이 단단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될걸요?”

     

   하지만 나의 대답은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능력치를 극성으로 끌어올려 가능해진 무위인지 나의 기술인지 헷갈렸기 때문. 능력치를 회수 당하고 전투에 임하는 경우가 아니어서야 알 방법은 없었다.

     

   나의 어정쩡한 대답에 박조철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워 보면 알게 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배워요……? 제가?”

     

   배워 보면 안다.

   될지 안 될지 시작도 전에 스스로를 가늠하며 불가능에 한 표를 던지는 것보다는 일단 검을 잡고 휘두른 다음 그것이 자신의 근성으로 가능한 것인지 알아보는 게 더 옳았다.

     

   하지만 나의 말이 그에게는 농담처럼 들렸나 보다.

     

   “에이, 그걸 어떻게 배웁니까? 2층에서처럼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잖아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번에는 나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스킬을 습득한다니? 무공이라는 게 무슨 RPG 게임처럼 스킬 포인트를 분배하는 방식으로 깨달을 수 있는 줄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한 것은 뒤에 있던 남궁천호가 박조철의 말을 뒷받침해준 순간이었다.

     

   “저도 2층에서 스킬을 배운 겁니다. 사막에서 바람을 일으킨 선풍旋風 같은 스킬도 임무를 클리어하고 보상으로 획득한 것이니까요…… 시인 씨는 안 그러셨습니까?”

   “……아닌데요.”

     

   그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스킬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을 시스템적으로 구체화 했을 뿐이다. 내가 월광검법을 배운 순간은 화영의 검무를 보며 그녀를 따라 했을 때였고…

     

   검술의 이해 단계에서 시스템의 도움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절대 아무런 생각도 노력도 없이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호 씨는 그 선풍이란 걸 어디에서 어떻게 배우신 건데요?”

   “저는 그냥 신선들이 시키는 대로 물 긷고 장작패고 굴러다니면서 요괴 한 마리 잡으니까 배웠습니다.”“그러니까 할 수 있게 됐다고요?”

   “네.”

   “……”

     

   궁금해서 물었지만 오히려 복잡해졌다. 정확히는 억울해졌다는 감정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2층에 오르기 전, 토끼가 나를 서포트하며 코인을 후원받고 계속해서 신경 써 준 일이 떠올랐다. 애초에 내가 어떤 곳으로 갈지 정해놨다는 듯이.

     

   ‘내가 무림으로 갔던 게 우연이 아닐지도…’

     

   3층에 올라온 뒤로 나는 탐색전을 겸 해서 사람들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복장도 그렇고 검을 든 자세도 그렇고 무공을 배운 사람은 없던 것 같다.

     

   그 말인 즉,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무림을 가지 않았거나 무림에 간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된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3층에 올랐다는 것.

     

   “조철 씨, 천호 씨.”

     

   나의 물음에 두 사람의 고개가 내 쪽을 향한다.

     

   “운기조식부터 시작하시죠.”

     

   그들에게 어울리는 검을 가르치는 것. 그렇게 지구 좌표의 전력을 늘려 두는 게 나중에 있을 임무들을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 그거야, 그거! 젠장! 김시인 믿고 있었다고!

     

   아직까지 하위에 랭킹되어 있는 탓에 개인의 방이 없던 토끼는 로비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자신이 할당받은 좌표의 플레이어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특별한 인간.

   초반에 성좌들에게 다분한 관심을 받으며 3층까지 무사히 도달한 김시인이 Lv.4의 몬스터들을 썰고 다니자 토끼는 환호가 터져 나오는 것을 속으로 꾹꾹 누르며 씨익 웃었다.

     

   ‘굴리길 정말 잘했다!’

     

   사실 무림으로 그를 보낼 때는 그게 맞는 짓거린가 생각도 했었다.

     

   다른 세계와는 달리 직접 무공을 체득하고 경지를 깨달아야 하는 세계.

   스킬을 그저 배우는 것이 아닌 기초부터 탄탄히 쌓아 올려 인간 자체를 강하게 만드는 세계.

     

   무림은 플레이어가 제대로 강해지지 못한다면 성장은커녕 시간만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도우미들도 플레이어를 잘 보내지 않는 까다로운 세계였다.

     

   ‘조금 도박이긴 했지만…!’

     

   만약 김시인이 무림에서 사망하거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이번 기수는 그냥 버려야 하나 생각도 하고 있던 토끼였다.

     

   하지만 웬걸.

   김시인은 충분히 강해졌고 토끼의 기대에 부응하다 못해 훨씬 강한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 뭐가 그렇게 재밌지?

     

   그런데 그때, 토끼의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하필이면 로비에 나와 있던 한 도우미가 토끼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어왔다.

     

   기분 나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최근 들어 토끼에게 꾸준하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는 에키온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 크큭. 아무것도 아니긴. 뭐,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 무능력자들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조금 환기될 수는 있으니까.

     

   에키온의 말에 토끼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인상을 찌푸릴 뻔했다.

   탑의 ‘도우미’라는 신분을 가지고 입에 담을 말이라기에는 상당히 저급하다는 생각이 든 것.

     

   – 에키온 님께서는 담당 좌표 플레이어들 확인 안 하십니까?

     

   그래서 토끼는 그에게 물었다.

   성좌들과의 관계를 떠나서 플레이어들을 보고 관리하는 것은 도우미의 근본적인 역할. 그것을 배제한다면 도우미로서의 자격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토끼의 나름 존중을 담은 질문도 놈에게는 건방진 반항이었나 보다.

     

   – 나를 가르치려고?

   – ……

   – 네놈 따위가? 성좌의 격에 도전은커녕 그 언저리에도 못 미치는 네가?

     

   에키온의 동공에 기다란 세로줄이 생겨난다. 마치 포식자가 피식자를 사냥하기 직전과 같은 매서운 눈빛.

   그리고 그 살기를 지금의 토끼는 감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 에이! 제가 어떻게 감히 하이 랭커 에키온 님 앞에서…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핫!

     

   토끼는 괜히 밝은 척 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녀석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만족스러웠던지 날카롭게 세워졌던 에키온의 동공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 계속 그렇게 숙이고 있어라. 네놈에게는 그게 잘 어울리니까.

     

   그렇게 말을 남긴 에키온이 자리를 벗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짧게 지나간 폭풍우. 랭킹에 따라 격이 달라지는 도우미의 관계에서 지금의 토끼가 에키온을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그를 상대할 유일한 길은 이번 3층 경쟁전에서 제대로 랭킹을 올리는 것.

   물론 한참 하위 랭킹에 위치한 토끼가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가 담당하고 있는 좌표의 플레이어들이 괴물 같은 에키온의 플레이어들을 꺾어 주어야만 했다.

     

   ‘근데 가능한가……?’

     

   토끼가 개인전이 펼쳐지는 필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플레이어 하나.

   2층을 클리어하는 시점에서 성좌와 계약을 마친 괴물 하나가 에키온의 좌표에 속해 있었다.

     

   ***

     

   가시거리에 어두컴컴한 숲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장소.

   숲의 입구에는 대규모의 싸움이 있었던 것인지 바닥이 질척거릴 정도로 피가 고여 우리의 걸음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인간, 어인, 수인 그 외의 다양한 인종들.

     

   사망한 플레이어는 로비로 되돌아간 것 같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플레이어들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끄르륵…”

   “괘, 괜찮으십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는 어인 하나에게 뛰어간 금린이 말까지 더듬어가며 그를 부축한다.

   하지만 그는 폐를 관통당한 듯, 말을 하지 못했고 그를 안타깝게 본 금린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이거……”

     

   아직 사라지지 않은, 시신이 되어가는 플레이어들의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다 같은 공격에 당했다.’

     

   찔리고 베인 상처들. 깊고 얕음은 있었지만 무림에서 다양한 검술을 연마해 본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한 사람이 저지른 짓이라는 것을.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물론 같은 스킬을 가진 다수가 만들어 낸 광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한창 기 싸움을 벌이던 플레이어 틈에 난입한 하나가 학살을 벌였다는 것이 조금 더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런데 그때.

     

   “근데 이거… 한글 아닙니까?”

     

   우리가 시체들을 보는 동안 가만히 주변을 살피던 박조철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마른 나무에 칼로 그어서 그린 듯한 삐뚤빼뚤한 글씨. 분명한 한글이었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다른 세상의 종족들이 경쟁을 하는 장소에 한글이 적혀 있다면 그것은 ‘암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탑에 들어온 뒤로 다른 종족들과 대화는 자연스럽게 통했지만 한글을 사용하는 종족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글씨를 읽는 순간 박조철과 남궁천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청린이라는 어인과 동행 중. 숲에 진입. – 서세영, 한가민]

     

   “청린?”

     

   무심결에 나온 나의 말에 금린의 표정 또한 굳어진다.

     

   이 학살극을 벌인 괴물이 들어간 숲. 그곳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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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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