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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EP.61

     

   동굴의 내부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스산했다.

     

   “확실히… 동굴 안에 뭔가 있는 것 같군요.”

     

   살을 에는 듯한 한기에 남궁천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분명 동굴 외부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더 깊이 들어갈수록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게 피부를 통해 느껴진다.

     

   뒤따라오던 금린이 눈을 깜빡거리는 것을 보니 녀석이 말한 동면 패턴이 이런 것인 모양.

   지금 동맹 관계인 녀석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어인을 상대할 일이 생기면 참고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바로 앞입니다.”

     

   안 그래도 조용하던 동굴에 우리의 발소리만 작게 들렸는데 그 틈을 비집고 박조철의 목소리가 나오니 긴장감이 확 올라온다.

     

   빛이다.

     

   동굴의 깊은 내부에서 나오는 빛은 칠흑 같은 주변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정면에 보이는 이질적인 밝은 공간에는 굉장히 의심스러운 제단이 하나 있었다.

     

   “저게 보물인가 보네.”

   “확실히 그렇게 보입니다만…… 누가 있네요.”

     

   나의 혼잣말에 박조철이 말은 덧붙였다.

     

   제단 앞을 지키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왕좌에 앉아 이곳을 바라보는 초점 없는 눈동자의 여인과 그 곁을 지키는 호위기사 한 명.

     

   여인의 서늘한 기운과 푸른 마력에 대비되는 붉은 갑옷을 입은 기사를 보니 저 보물이 지금까지 봤던 보물들 중에서도 상당히 상위 등급의 물건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제단 위로 영롱한 푸른 구슬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저 두 사람에게 힘을 주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띠링.

     

   [S급 보물 ‘한기의 심장’을 발견하셨습니다.]

     

   [보물을 지키는 ‘가디언(세레나)’을 발견하셨습니다.]

   [보물을 지키는 ‘가디언(랜든)’을 발견하셨습니다.]

     

   ‘랜든?’

     

   시스템의 설명에서 익숙한 이름이 떠오르자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두 사람…… 신성국의 성녀와 적색 기사 아닌가요?”

     

   내 옆에 있던 금린이 중얼거린 순간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내가 언제 처음 만났던 것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3층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소동.

   신성국의 성기사 하나와 금린의 충돌로 3층 로비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의 주인공이 이곳에 둘이나 있었다.

     

   —

   [한기의 마녀(세레나) Lv.4]

   : 한기의 심장의 마력에 중독되어 타락한 마녀. 냉기 마법을 주로 다루고 한기의 심장에 과한 집착을 보인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 아닌 한, 마력 중독을 풀어낼 방법은 없다.

   – 사냥에 성공할 시, 보석이나 반지를 드랍합니다.

   —

     

   무슨 이유에선지 몬스터가 되어 버린 성녀.

   이제 보니 제단에 놓인 보물이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저주를 건 모양이었다.

     

   “근데…… 이거 좀 까다로워졌군요.”

     

   나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Lv.4의 보스는 이곳에 오는 동안에도 우리끼리 힘을 합쳐 몇 마리 잡아낸 이력이 있었다.

   한기의 마녀라는 보스의 공략법을 아는 건 아니지만 무리 없이 공략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것.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기사와의 전투는 아무래도 넌센스였다.

     

   —

   [한기의 기사(랜든) Lv.5]

   : 한기의 마녀에 의해 저주를 받은 기사. 저주를 받기를 선택했다. 저주를 받음으로서 숨겨진 잠재력을 각성했고 저주 이전의 상태보다 강한 마력을 소유하고 있다. 한기의 마녀가 저주를 거두어 주거나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 아닌 한,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 정보가 없습니다.

   —

     

   애초에 강했던 인물이 마력을 주입받아 강해져 버리니 레벨이 5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몬스터들을 사냥해 본 기억으로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놈들은 체감상 5배에서 10배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 말인 즉.

     

   “허허. 저 괴물이 사막 지주왕인가 뭔가 하던 거미보다 최소 5배 이상 강하다는 말이죠?”

     

   남궁천호의 말에 박조철이 긴장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우리를 발견한 듯, 심장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냉기를 뿜어내는 두 괴물.

     

   그 기운이 벅찼던지 금린은 이미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일단 천천히 물러나 봅시다. 상황을 보니까 보물 근처로만 안 가면 공격은 안 할 것 같……”

     

   저벅.

     

   아, 아니네.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두에 있던 랜든이 검을 빼어 들며 우리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중단세.

     

   방어와 공격을 자유자제로 넘나들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는 건, 우리를 경계하며 언제든 이곳으로 뛰어들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옵니다!”

     

   박조철의 외침을 시작으로 랜든이 한기를 풀풀 뿜어내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도약했다.

     

   ***

     

   지금까지 나는 다양한 상대와 검을 맞대고 전투를 펼쳐 보았다.

   검술을 모르던 1층에서 마구잡이식으로 검을 휘둘러 왕국 검사를 상대하기도 했고 무림에서는 무공을 배워 내력을 이용한 무인들을 상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와는 일대일 결투만 경험해봤을 뿐,

   하나를 상대하기에도 까다로운 적을 동시에 상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채애앵!

     

   내력을 끌어올려 강화된 나의 검이 랜든의 검과 부딪치며 굉음을 만들어 냈다.

   속이 텅 빈 얼음을 쇠망치로 두드리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은 날카로운 소리.

     

   한기의 기사가 된 랜든은 Lv.5의 괴물이라 그런지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2층을 클리어하고 얻은 보상으로 근, 민, 체, 마력이 모두 Lv.30을 넘긴 상황이라 기본적인 체급에서 밀릴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한 상황.

     

   채채챙!

   채채채채챙!

     

   스피드도 가히 발군이다.

   랜든이 원래 쾌검을 구사하던 검사였던지 빠르게 제압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힘과 속도. 이제 남은 것은 체력과 마력의 차이.

     

   ‘근데 진짜 문제는…!’

     

   하지만 그때 랜든의 뒤에서 무언가를 캐스팅하고 있는 성녀가 보였다.

   랜든의 능력도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전에서 마녀가 되어 버린 성녀의 주변으로 생성되는 무수한 얼음 창들이 생성되니 신경 쓸 것이 배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협공.

   저 창은 한 방 맞으면 무조건 즉사다.

     

   “시인 씨! 뒤로 피하십시오!”

     

   언제부턴가 바닥에 빛의 꽃을 심어 시야를 밝히고 있던 남궁천호가 흉흉한 얼음 창을 발견했는지 급하게 수인을 맺으며 소리쳤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랜든과 검을 부딪친 이후로 나의 검의 얼어서 그의 검과 붙어 버렸다.

   지금 검을 내려놓고 뒤로 피한다면 공격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무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하아……

     

   랜든의 입에서 나온 서리가 나를 보며 승자의 미소를 짓는 것만 같다.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폐를 치고 들어오는 오한. 하지만.

     

   “누구 마음대로!”

     

   나는 몸의 한편에 잠들어 있던 마력을 힘껏 끌어올렸다.

   나의 스승 당휘소가 나를 가르치며 가장 놀라워했던 한 가지. 그것은 나의 몸에 음한지기와 더불어 열양지기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치이이익! 쩌저적!

     

   나의 검에 집중된 마력이 얼어붙은 랜든의 검을 서서히 떼어 낸다.

   무리를 한 탓인지 기운이 급격하게 빠져나갔지만 짧게 삐걱거린 틈을 타서 나는 곧장 뒤로 몸을 날릴 수 있었다.

     

   – 아이스 스피어!

     

   마녀의 말에 생성된 크고 작은 얼음 창이 우리를 노리며 무수하게 날아든다.

   하지만 그사이에 기술을 준비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염풍炎風!”

     

   남궁천호의 손에서 화염방사기마냥 화려한 불꽃세례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이전에 쐈던 화염포보다 위력은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동굴 내부를 덥히는 데는 그만한 기술이 또 없었다.

     

   마녀의 얼음 창을 화염이 집어삼켰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얼음이라 그런지 모조리 녹아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흉흉하던 위력이 유지되지는 못했다.

     

   채채채챙!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나의 옆으로 달려온 박조철이 약해진 얼음 창을 쳐내며 외쳤다.

   지금의 싸움은 일대일이 아닌 다수의 싸움. 적들이 협공을 해온다면 우리도 협공을 하면 그만이다.

     

   검 대 검.

     

   능력치가 비슷해도 랜든과 나에게는 가장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조철 씨가 마녀를 잡으세요!”

   “네?”

     

   나의 말에 박조철이 순간 당황하며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내가 검을 들어 랜든을 겨누자 그는 더 이상 군말을 하지 않고 마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타앙!

   츠츠츳!

     

   나의 검에 푸른 검기가 흐릿하게 실리기 시작했다.

   내가 무림에서 배운 것은 월광검법만이 아니다.

     

   수많은 무인들에게 전해 받은 다양한 무공서, 2층을 클리어한 이후, 조금의 시간이 남았던 나는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모든 문파들의 무공을 연구했다.

     

   그렇게 얻은 무공 중 하나.

     

   남해삼십육검 南海三十六劍

   제일식 第一式

   격랑수검 激浪水劍

     

   2층에서 나를 귀찮게 했던 해남파의 검술.

     

   내가 검에서 뿜어진 푸른빛으로 거대한 파랑波浪을 만들자 랜든의 뒤에서 박조철을 견제하던 마녀가 곧장 격랑수검을 향해 싸늘한 냉기를 쏘아냈다.

     

   가장 위협적인 나를 우선적으로 얼려 버리려는 속셈. 하지만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였다.

     

   “하압!”

     

   나는 기합과 함께 압축하고 있었던 마력을 활짝 펼쳤다.

   그리고 검을 비틀어 박조철을 막으려 달려드는 랜든을 향해 마력의 파도를 집중시켰다.

     

   쏴아아아악-!

     

   폭포와 같이 쏟아진 푸른빛.

   처음 만들어 냈던 것과는 달리 가벼운 마력이 냉기와 부딪치자 나의 마력이 냉기의 접촉면에서부터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한다.

     

   랜든이 고개를 돌려 격랑수검을 막아 내려 했지만 눈보라와 같이 쏟아지는 마력의 향연을 고작 검 한 자루로 다 막을 수는 없었다.

     

   – 크하…!

     

   그를 뒤덮은 마력이 급격한 속도로 냉각된다.

     

   그렇게 공간 자체를 얼려 버리기 시작하는 얼음 폭포.

   랜든을 그 자리에 고정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마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박조철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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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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