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4

   EP.64

     

   두근.

     

   “먼저 가시죠. 저는 남겠습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내가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사람들에게 자리를 벗어나라 말하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인간, 결국 경쟁자인 네가 죽겠다는 걸 말리려는 건 아니지만 이건 무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 도대체 왜지?”

     

   사실상 남과 다를 바가 없는 청린마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을 할 지경.

   그의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저은 뒤,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 입을 열었다.

     

   “청린, 당신 말처럼 우리가 경쟁자인 이상 자세한 건 말해주기 곤란한데.”

   “흠, 그런가?”

     

   순순히 나의 말을 수긍한 그.

   나는 등에 업고 있던 금린을 그에게 넘겼고 고개를 끄덕인 청린이 이제 슬슬 잠에서 깨어나는 금린을 안았다.

     

   “어인들의 왕을 지켜 준 것에 대한 보답은 따로 하도록 하지. 그럼 나는 이만.”

     

   인사를 마친 그가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난다.

   개인전 내내 금린을 지켜 준 것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배려. 해야 할 말이 있으면 듣지 않을 테니 편안하게 하라는 의미였다.

     

   둘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장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임무를 받았습니다.”

   “여기에서요? 저는 아무것도 안 왔습니다만.”

   “개인 임무예요. 튜토리얼 때부터 가끔 받던 건데 최근에 잠잠하더니 난이도가 기가 막히네요.”

     

   나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이 깃든다.

   특히 저 괴물의 힘을 실감해봤던 두 사람은 그 정도가 더 심각했고.

     

   “말이 됩니까? 그건 그냥 죽으라는 말이잖아요!”

   “저도 박조철 씨 말에 동감합니다. 이건 애초에 클리어가 불가능한 임무입니다. Lv.5짜리 괴물 하나만으로도 벅찼는데 더 강해진 괴물에다가 불타는 놈까지 추가해서 싸우라뇨…”

     

   박조철의 말에 남궁천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의견을 더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임무 도중에 사망하게 되어도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는 것.

     

   “괜찮다니까요. 죽어도 페널티가 없으니 딱히 손해 볼 것도 없는 장삽니다. 게다가 사냥에 성공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싸우기만 하면 됩니다.”

     

   분명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두 사람이 유난을 떨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보니 서세영이나 한가민의 표정도 썩 좋지 않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아저씨 정말 괜찮아요?”

     

   한가민의 말에 나는 그녀를 돌아봤다.

   뭔가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표정. 쉽게 말하자면…… 음, 화가 난 것 같았다.

     

   “페널티가 문제가 아니에요. 죽는다니까요.”

     

   그녀의 말에 이제야 그들의 표정이 왜 어두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죽음에 대해 언제부턴가 너무 무신경했던 것.

     

   물론 나도 죽음을 겪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죽을 뻔한 경험을 많이 해 봐서 그런가.’

     

   두근. 두근.

     

   심장이 천천히 떨려왔다.

   하지만 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튜토리얼 더미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좀비를 베어 넘기며 목숨을 걸고 탑의 영역까지 달렸던 기억도 떠올랐다.

   쓸쓸하게 혼자만의 힘으로 1층의 주인과 싸웠고 무림에서 압도적인 강자들을 수두룩하게 만났다.

     

   죽음?

     

   그것은 언제부턴가 나의 등에 매달려 항상 숨을 끊을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나는 늘 목이 조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3층에 와서 처음으로 고삐를 풀고 체력을 안배하지 않고 싸워도 된다는 허락을 성좌로부터 받았다.

     

   쿵.쿵.쿵.쿵.

     

   그래. 이 감정은 두려움 따위가 아니다.

     

   ‘기대감에 가깝나?’

     

   도무지 내가 패배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것은 죽음을 각오한 내가 동귀어진을 펼쳤을 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당신을 재촉합니다.]

     

   “다들 걱정 마세요.”

     

   나의 말에 사람들이 침묵했다.

   누군가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누군가는 성좌에 대한 소소한 분노로.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저 두 괴물을 쓰러뜨릴 궁리를 하는 것.

     

   [임무를 수락합니다.]

     

   “저도 아픈 건 싫어합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

     

   흐음…

     

   – 크아아아!!!

   – 하아아…!

     

   네 사람이 자리를 벗어난 직후, 나는 한참 동안 두 괴물을 전투를 관망했다.

     

   전투가 시작됐을 당시에는 이상하리만치 두 괴물의 힘의 격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라면 레벨이 하나 높은 랜든이 데스라는 화염 기사를 미세하게 이기고 있었다는 정도?

     

   처음에는 몬스터가 된 플레이어의 역량 차이 때문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 급격하게 힘이 줄어드는 데스를 보고는 놈이 초반에 무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뭐, 나였어도 그렇게 싸웠겠지만.’

     

   나보다 강한 상대와의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게다가 랜든은 이곳까지 오면서 우리를 쫓느라 어느 정도 힘을 사용한 상태.

   조금이라도 지친 고수를 상대적 하수가 필살의 마음가짐으로 싸운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Lv.5인 데스의 능력은 지친 Lv.6의 랜든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

     

   ‘아니, 이 정도면 충분했나?’

     

   두 괴물의 싸움에 초토화가 되어 버린 죽음의 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양극의 기운이 충돌하며 생긴 여파와 사방으로 퍼부어진 눈먼 공격들.

     

   맞아 보지 않아서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았다면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 분명했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따분해 합니다.]

     

   전투를 구경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임무를 걸어온 성좌가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도 슬슬 이제쯤 전투를 시작할 생각이었으니 불안할 건 없었다.

     

   “자, 그럼…”

     

   나는 내가 가진 보물들을 차근차근 확인하며 마지막으로 내 상태를 체크했다.

     

   —

   이름 : 김시인

   성좌 : 없음

   능력치 : [근력 Lv.33(32)], [민첩 Lv.32(31)], [체력 Lv.32(31)], [마력 Lv.33(31)]

   스킬 : [빠른 납득(C-)], [전심전력(C+)], [천월신공(B+)]

   특성 : [잠재 고유 스킬]

     

   잔여 코인 : 70,000 C

   —

     

   처음에는 2층을 클리어하고 얻은 보상과 3층에서 얻은 갖가지 장신구들로 인해 조금씩 상승한 능력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붉은색 반지를 조심스럽게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체력이 감소합니다.]

   [체력 Lv.32 -> 체력 Lv.31]

     

   3층의 규칙 중 하나.

   장신구는 여러 개를 착용해도 각 부위마다 하나의 효과만 적용된다.

     

   내가 사용하려고 한 것은 박조철이 한기의 마녀를 쓰러뜨렸을 때, 획득한 자그마한 반지였다.

     

   —

   [소환의 반지]

   종류 : 보물

   랭크 : A+

   설명 : 마녀가 가지고 있던 물건이다. 특정한 몬스터를 한정된 시간 동안 소환할 수 있다. 단, 소환물과 관련된 매개체가 필요하다.

   효과

   – 몬스터 소환 가능

   – 몬스터의 파편을 소지해야 함

   —

     

   두 괴물의 싸움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내가 가진 물건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떠올렸다.

   둘 중 하나가 쓰러지고 치쳐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도저히 일대일로는 승부를 낼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내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개인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만난 몬스터에게서 얻었던 보석이었다.

     

   —

   [백수원숭이의 돌]

   종류 : 보물

   랭크 : Lv.4

   설명 : 백수원숭이가 그려진 돌이다.

   효과

   – ■■■

   —

     

   백수원숭이가 두고 간 흑진주와 흡사한 돌.

     

   이 물건의 용도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Lv.4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을 물건 중, 유일하게 쓸모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 물건.

     

   처음에는 그저 보물 개수를 채우는 용도일까 고민했다.

   하지만 효과가 숨겨져 있는 것을 보며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의 파편’을 소지 중입니다.]

   [‘백수원숭이의 돌’이 ‘소환의 반지’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내가 ‘소환의 반지’를 착용하는 순간 나는 나의 추측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백수원숭이의 돌’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반지에서 빠져나간 마력이 땅에 떨어지더니 흑색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Lv.4의 몬스터가 소환되는 과정. 그리고 잠시 후, 빛이 터지는가 싶은 순간 나는 나의 눈앞에 밀림에서 봤던 백수원숭이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그어어…?

     

   긁적긁적.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이오? 라는 표정의 거대한 털북숭이 짐승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놈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더니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우! 우! 우! 우!

     

   당황스러운 감정과 함께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듯한 모습.

   하지만 이어진 메시지에 나는 왜 이놈의 원숭이가 나에게 인상을 쓰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띠링.

     

   [야생의 ‘백수원숭이 Lv.4’가 소환됐습니다.]

   [1시간 동안 소환이 유지됩니다.]

     

   ‘소환의 반지’는 진짜 몬스터를 소환만 해주는 물건이었던 것.

     

   사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탑의 3층에서 나름 지역의 보스들로 취급되던 Lv.4의 몬스터들을 마음껏 부릴 수 있다면 이 반지는 밸런스를 너무 많이 파괴하는 물건이 될 테니까.

     

   ‘젠장 이렇게 되면 이놈도 그냥 싸움을 붙이는 수밖에는 없……’

     

   하지만 그때 나의 머리를 스쳐가는 한 가지 기억이 있었다.

     

   스릉!

     

   – 우오오오!

     

   내가 검을 뽑아 들자 녀석이 광분한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무기라는 것을 인식했고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허나, 나는 놈을 공격할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 이거 봐라!”

     

   나는 놈이 아닌 허공에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월광검법 月光劍法

   제이식 第二式

     

   월광검법의 초식에 맞춰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검.

     

   둠칫. 둠칫.

     

   빛을 멍하니 구경하던 원숭이가 엉덩이를 씰룩거리기 시작한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놈의 특성. 내가 다른 몬스터를 소환했다면 씨알도 안 먹힐 방법이 천만다행으로 이놈한테는 통하는 것이었다.

     

   “후우…!”

     

   나는 검을 서서히 움직이며 월광검법을 쏘아 보낼 길을 눈으로 확인했다.

   체력을 다해 쓰러진 열화의 기사가 한기의 기사의 기운에 밀리며 서서히 그 불꽃을 잃어가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기의 기사 랜든 또한 그 냉기가 처음과 같은 기운을 머금고 있지는 않았다.

     

   “가자 원숭아!”

     

   촤아악!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놈들을 향해 검기를 쏘아냈다.

   그 뒤를 침을 흘리며 따라가는 원숭이가 더 위협적이었다는 건 참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와아앙!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