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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EP.74

     

   나와 한가민이 그룹에서 떨어지고 맞이한 둘째 날 아침.

   하루를 꼬박 지새운 우리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하루가 지났습니다.]

   [단체전 필드가 줄어듭니다.]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숲속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굉음이 들렸다.

     

   [!경고!]

   [다음 필드 붕괴 구역에 있습니다. 24시간 안에 붕괴 구역을 벗어나십시오.]

     

   마치 온라인으로 흔히 하던 배틀로얄 방식의 게임처럼 줄어들어간 경기장.

   다음은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이 무너질 것이라는 소식에 나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작전을 다시 구상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합류해야 한다.’

     

   처음에는 그저 숨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흘려보낼 생각이었다.

   애초에 우리 좌표의 모든 인원이 탈락하게 되더라도 깃발만 빼앗기지 않으면 탈락할 일은 없었으니, 그때가 되면 혹시 모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필드가 줄어들며 그 안일한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필드는 나의 생각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었다.

   일단 우리가 가는 길목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 증거.

     

   물론 아직까지는 필사적으로 숨으면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나 그것도 며칠이 지나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잘해주고 있다는 점인가?’

     

   가끔씩 깃발을 탈취했다는 메시지가 날아오기도 했다.

   오늘 하루 동안 오른 깃발 레벨이 3개. 지금 우리의 능력치가 총 Lv.18이 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선전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지나간 하루…

     

   해가 완전히 떨어진 밤. 나는 우연히 찾은 작은 동굴에 한가민과 나란히 앉아 서서히 피어오르는 불씨를 감상하고 있었다.

     

   “아저씨 불도 피우고… 별걸 다 할 줄 아시네요?”

   “예전에 어디서 본 건데 해보니까 되더라.”

     

   정확한 매체는 기억나지 않는다.

   생존 전문가 비슷한 사람들이 나와서 누가 빨리 불을 붙이나 경기를 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봤던 방식을 엇비슷하게 따라 해 본 것이다.

     

   “아마 가민이 너가 했어도 불은 붙었을 걸?”

     

   내가 선택한 방식은 핸드 드릴.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발화점을 넘길 수 있는 마찰열이 필요했다.

   마찰열을 높이기 위해서는 강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고 강한 마찰은 당연하게도 강한 압력을 주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뭐…… 다시 말해, 초인이 된 이후로 나무만 부러지지 않는다면 그냥 불을 붙일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띠링.

     

   [밤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어제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망자의 밤이 돌아왔다.

   어제 이 알림이 떴을 때 한가민은 무슨 마피아 게임 진행자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었는데 지금 얼굴을 보니 살짝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아저씨 괜찮아요?”

   “응? 뭐가?”

   “그냥. 좀 피곤해 보여서요.”

     

   하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밤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한가민의 물음에 내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아,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조금 피곤하긴 한데, 끄떡없어.”

   “……”

   “진짜야.”

     

   하지만 나를 보는 한가민의 시선에 의심이 차올랐다.

   그녀도 느끼는 부자연스러운 모습. 숨기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갑작스럽게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저씨, 지금 여기 꽤 춥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각성을 한 이후로 아슬아슬하게 죽을 뻔한 적은 있어도 크게 다친 적이 없다 보니 몸이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한 게 화근이었다.

     

   “한 번 봐봐요.”

   “자, 잠시만 뭐 해 지금?”

   “아니, 잠깐만 벗어보라니까요? 몸이 왜 이렇게 축축……”

     

   내 천잠보의를 당기다 말고 얼굴을 굳히는 한가민.

   그리고 그녀의 이어진 말에 나는 새삼 내가 꽤 큰 고통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설마 다 피…아니죠?”

     

   숲이 너무 어두운 탓에 보이지 않았다.

   천잠보의에 방수 기능이 있었던 탓에 알아채지 못했다.

     

   등을 흥건하게 적신 다량의 피.

   결국 천잠보의를 벗기는데 성공한 한가민이 붉게 물든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본다.

     

   절벽에서 추락했을 당시, 한가민을 감싸고 떨어진 나무들의 높이가 생각보다 높았다.

   떨어지며 등을 긁은 나무도 생각보다 날카로웠고 바닥에 떨어진 순간, 나무가 긁은 자잘한 상처들이 터지는데 꽤 튼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이렇게 아팠으면 말을 했어야죠!”

   “나 괜찮다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때 저 감쌌을 때 다친 거예요? 아니, 하루 종일 미련하게 이걸…… 포션이라도 먹었어야지!”

     

   다친 건 난데 왜 내가 혼이 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을 보니 그녀를 다치지 않게 구해 준 내가 다 미안한 기분이 든다.

     

   “그거 이제 먹어도 별 효과 없더라.”

     

   물론 그녀의 말마따나 포션을 먹어보긴 했다.

   하지만 능력치가 올라간 이후로 초보자용 버프 같은 게 빠진 건지 하급 포션은 아무리 먹어도 재생이 눈에 띄게 빨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움직여야 했어. 내가 다쳤다고 느긋하게 움직였다가 네가 붕괴 범위를 못 벗어났으면 그게 제일 최악이야.”

     

   깃발을 가진 사람이 붕괴 범위에 들어서 사망하는 경우 깃발의 행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한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요.”

     

   하지만 그녀는 아니란다.

   한가민이 나를 지그시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진짜 최악은 아저씨가 중간에 컨디션 조절을 못 해서 쓰러지고 제가 아저씨를 업고 가는 거예요. 그렇게 다른 좌표의 사람을 만나서 깃발을 빼앗기는 게 최악이죠.”

   “그건……”

     

   나는 말을 하려다 말고 모닥불이 반사된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만약 내가 중간에 쓰러졌다 하더라도 절대 버리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지.

     

   “너무 혼자 다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윗옷을 벗고 돌아보라 말했다.

   포션을 먹는 걸로 회복이 안 된다면 상처에 붓는 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으윽… 똑바로 보지도 못하겠네. 이걸 어떻게 참은 거예요?”

   “보기 힘들면 안 해 줘도 돼.”

   “아니 참나. 가만히 있어 봐요. 금방 끝내드릴 테니까.”

     

   그리고 그녀의 발상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물론 능력치의 상승으로 인해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상처가 간질간질한 것이 치유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일단 상처 다 닦고 포션으로 치료는 해놨거든요?”

   “고마워.”

   “별말씀을. 어디 또 아프면 말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옷을 챙기려 했다.

     

   “설마… 그걸 바로 입으시려고?”

   “왜?”

   “미쳤어요? 병균 득실득실한 그걸 그냥 입겠다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리 줘요. 일단 대충이라도 씻어야지.”

   “물은?”

   “코인 상점에서 사야죠. 이참에 세수도 좀 해요.”

     

   코인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을 이렇게 이용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포션 같은 거에 비해 아주 저렴한 가격이긴 했지만 물이 정말 급할 때가 아니라면 물에 코인을 쓰는 건 사치라고 생각을 했었으니까.

     

   한가민은 물로 내 옷을 간단하게 씻어냈다.

   원래 입던 상의는 물론이고 안쪽에 피가 살짝 굳은 천잠보의까지 깔끔하게 닦아낸 그녀.

   모닥불 근처에 나뭇가지를 세워 놓고 옷을 걸어놓으니 참 손이 야무진 아이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옷이 마른 시점.

   나는 몸을 다시 한 번 포션으로 소독한 이후, 나름 깨끗해진 옷을 챙겨 입었다.

     

   “고마워, 시원하네.”

     

   아직 조금 축축했다. 그래도 모닥불이 있었기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정도.

   세수까지 마치니 ‘이런 게 개운함이었구나’라는 기억이 떠오르며 괜히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내가 가만히 웃으며 말하자 한가민이 한동안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봤다.

     

   “…왜?”

   “아저씨 앞으로 앞머리는 까고 다녀요.”

   “……?”

   “아니, 아니다. 지금은 까고 있다가 나중에 합류할 때는 다시 내려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아이.

   하지만 진지하다 못해 결연하기까지 한 한가민의 표정을 보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쯤.

     

   부스럭.

     

   “쉿.”

     

   순간적으로 들린 풀을 스치는 소리에 나는 곁눈질로 그 소리를 쫓으며 한가민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누군가 왔다.”

     

   이곳은 우리도 운 좋게 발견한 꽤 괜찮은 은신처였다.

   나무와 풀 사이에 입구가 적절히 가려진 동굴이었고 꽤 구석진 곳에 있었던 탓에 밤이 되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어둡게 은폐가 잘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곳도 필드의 안.

   우리가 운이 좋아 동굴을 발견했듯, 운이 나빠서 다른 사람들도 이곳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었다.

     

   저벅. 저벅.

     

   동굴 입구에 서성거리던 발소리가 서서히 안으로 들어왔다.

   인기척을 숨기려는 듯, 조심스러운 움직임. 하지만 들리는 소리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넷… 아니 다섯?’

     

   나는 손가락을 펼쳐서 한가민에게 불청객의 숫자를 가늠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것은 나의 행동의 의미를 다 이해했을 그녀가 내 앞으로 나섰다는 점이었다.

     

   “……?”

   “…부상…제가 앞장…”

     

   나를 향해 속삭이는 한가민.

   능력치도 엇비슷한 다수가 상대였기에 부상이고 자시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스슷.

     

   나는 짧은 제스처와 속삭임으로 간단하게 그녀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적들이 누군지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일단은 숨었다가 기습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

     

   띠링.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네비게이션과 흡사한 메시지의 안내.

   두 번째 날 밤의 망자의 시간은 정말 친절하게도 패자부활의 기회가 생긴 플레이어들에게 그들이 빼앗긴 깃발이 있는 장소를 안내했다.

     

   “동굴? 어두워서 찾기도 힘든데 잘도 이런 곳에 숨어 있었네.”

   “입구는 또 왜 이리 작아?”

     

   검은 로브를 입은 에키온 좌표의 플레이어들.

   운이 좋아 근처에서 부활을 하게 된 그들은 안내 메시지를 따라 서로를 만날 수 있었다.

     

   “죄다 전사밖에 없네. 이거 함정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고작 두 명에서? 그럴 시간도 없었을 걸?”

   “그게 지금 중요한가? 지금 복수의 기회가 왔다는 게 중요하지.”

     

   그들은 이전에 부활의 기회를 받아 필드에서 전투를 치렀던 동료들의 설명을 통해 그들이 언젠가 필드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깃발의 행방에 대해 미리 들어둔 상태였고,

   덕분에 지금 이곳에 깃발의 주인인 그 어린 여자 하나와 김시인이라는 남자 하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추측할 수 있었다.

     

   “들어가자.”

     

   끄덕.

     

   그들은 자연스럽게 동굴 입구로 발을 들였다.

   상대는 방심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닥불도 끄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상태. 이 코너만 돌아서 놈들을 몰아치면 상황은 종료였다.

     

   화악!

     

   그렇게 도착한 장소.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이 없었다.

   남은 거라고는 반쯤 꺼진 채,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모닥불의 잔해 뿐.

     

   “이게 무슨…”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목을 꿰뚫는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천장에서 나타난 적의 칼날. 그렇게 여섯 명이었던 검은 로브의 남자들은 순식간에 네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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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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