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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EP.79

     

   빠르게 진행된 붕괴에 얼마 남지 않은 좌표의 인원들이 호수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마지막 붕괴는 모두의 생각보다 과격하게 진행됐다.

     

   땅이 꺼지고 숲이 불타오른다.

   세상의 종말이 이러할까 싶은 초자연현상을 보게 된 사람들은 무너진 세상의 잔해 너머에서 그들이 밟고 있던 땅이 대륙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섬’임을 알 수 있었다.

     

   ‘장관이군.’

     

   그리고 세상의 중심.

   정확히는 이번 차례에서 무너졌어야 할 세상의 귀퉁이인 호숫가 주변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던 나는 점점 추락하는 땅을 보며 괜한 감상에 잠겼다.

     

   호수를 향해 내달리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보인다.

   땅이 꺼지는 것을 보며 겁에 질린 사람이나 그나마 호수와 가까운 곳에 위치했기에 안도하는 사람들.

   피부색이 붉고 머리가 흰 사람들도 있고 인간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짐승을 닮은 수인들도 보인다.

     

   강제로 성좌들의 놀이판에 들어온 희생자들.

   물론 검은 로브를 입고 학살을 즐기는 그런 플레이어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열에 아홉은 지금 이 싸움을 원치 않을 것이다.

     

   “……”

     

   괜한 생각을 했다는 기분이 든다. 어차피 지금은 이곳의 모두가 경쟁자인 것을…

   지금 일어나는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늘섬이 어딘가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좌표들끼리 마주치게 되면 일단은 싸움이 일어났다.

     

   이런 곳에서 동정이나 연민은 그저 약점일 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쏴아…아……

     

   먹구름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호수로 몰리는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지구 좌표의 동료들 뿐.

   이제 단체전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옳았다.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뚫지?’

     

   붕괴의 속도로 보나, 방향으로 보나 결국 가장 마지막에 남는 장소가 호수로 추정되는 상황.

   한기의 심장으로 호수를 얼리거나 열화의 호흡으로 호수를 증발 시킬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저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위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호수 근처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결국에 싸움터는 호수가 될 터. 전장을 바꿀 수 없다면 되도록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적응을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퐁당.

     

   호수에 살짝 발끝을 담근다. 그러고는.

     

   티딕.

   쩌저적.

     

   한기의 심장 고유 스킬인 칠링 실드를 발끝에만 집중시킨 결과물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의 발이 닿은 부분만 절묘하게 물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오래도록 서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력만 충분하다면 적당히 밟고 뛰어다닐 수는 있을 정도.

     

   “이게 되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성과에 나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떠올랐다.

     

   ***

     

   “가능하면 호수만큼은 아니기를 바랐는데.”

   “괜찮을 겁니다. 성녀님.”

   “저희 이 정도면 꽤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성녀의 말에 기사들이 자랑스럽다는 듯 과장된 포즈를 취하며 웃음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신성국의 기사들이 지금까지 상당한 무리를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열두 명인가……’

     

   단체전을 시작하고 살아남은 신성국의 총원.

   사흘 째 되던 날부터 이상하리만치 몰려온 망자들만 아니었다면 훨씬 많은 인원이 살아남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온다.

     

   하지만 살아남은 만큼 그들은 강해졌다.

   깃발 쟁탈의 양은 얼마 되지 않을지 몰라도 망자를 제압하며 오른 능력치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

   이름 : 세레나

   성좌 : 없음

   능력치 : [근력 Lv.18], [민첩 Lv.21], [체력 Lv.19], [마력 Lv.35]

   스킬 : [리커버리(B)], [헤이스트(C+)], [스트렝스(C+)], [신성 축복(A)], [턴 언데드(B+)], [생츄어리(A)]……

     

   특성 : [최후의 성녀(A+)]

     

   잔여 코인 : 9,700 C

   —

     

   직접 망자를 상대한 것이 아닌 기사들에게 버프를 걸어주는 일이 대부분이었기에 마력만 주구장창 오른 느낌이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성녀의 본질은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치료와 보조. 그녀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여러분 이제 단체전도 마지막 단계입니다. 다들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명 받듭니다.”

     

   성녀 본인과 랜든을 제외하면 열 명밖에 되지 않는 인원.

   그녀는 남은 병력을 이끌고 조심스레 호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전방에 호수가 있습니다.”

     

   전방을 미리 정찰하고 돌아온 척후병의 말에 기사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성녀를 바라봤다.

     

   “신성 축복.”

     

   성녀가 들고 있던 지팡이 끝에서부터 작은 빛이 터져 나왔다.

   신성력이 담긴 빛줄기. 그리고 그 빛이 플레이어들한 한 번씩 훑고 지나갔을 때, 그들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호수를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아, 조철 씨 오셨군요?”

   “……뭔가 탄내가 나는 것 같은데, 혹시 아까 그 번개가 진짜 여기에 떨어졌던 겁니까?”

     

   반가움 가득한 인사에 사람들이 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한가민이 그들에게 김시인의 작전에 대해 설명했을 때만 해도 도대체 뭘 어쩌려는 건가 싶었다.

     

   플레이어들이 각성을 통해 초인이 되고, 김시인이 그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특출난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최 번개를 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광경을 보니 그냥 생각이라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김시인이 하겠다고 하면 그건 반드시 일어날 일이다. 그가 무슨 발언을 한다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여기 호수에 어인들이 있는 겁니까?”

   “아마도요.”

     

   나의 대답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 있었던 흔적은 있는데 제가 호수에 오고 아직 어인을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아마도 조금 더 신중해졌거나 어떤 이유가 생겨서 호수를 떠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뭐… 호수를 떠났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리 봐도 호수가 마지막 전장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최대한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 호수만큼 완벽한 장소는 없었다.

     

   “저기 사람들이 옵니다.”

     

   누군가가 던진 말에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호수 반대편. 숲을 헤치며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등장에 맞춰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음……’

     

   나는 그들을 돌아봤다.

   언젠가 단체전의 필드에서 한두 번 부딪쳤던 플레이어들도 보이고 어딘가에 숨어서 등수가 오르기를 기다렸던 것인지 완전 초면인 플레이어들도 간간이 보였다.

     

   [‘투지(A)’가 발동됩니다.]

   [당신보다 약한 적들이 전의를 상실합니다.]

     

   스킬의 발동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몸을 바들거리며 떨기 시작했다.

   물론 거리가 상당히 멀었기에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던가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저 모습만으로도 그 몇몇이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띠링.

     

   [대상과의 격차가 크지 않습니다.]

     

   허나 그 와중에도 강자는 존재하는 법.

   깃발의 레벨을 벼로 올리지 못했음에도 망자를 처치하며 능력치를 끌어올린 플레이어들은 나의 ‘투지’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저쪽은 별거 없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맞은편에 나타난 신성국의 인물들과 지금 호수에 숨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어인들일 터였다.

     

   [다수의 성좌가 단체전의 진행을 재촉합니다.]

   [필드의 붕괴가 가속화됩니다.]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고 있자, 상황이 답답했던 성좌들이 단체전의 그나마 잦아들던 붕괴를 촉진시켰다.

     

   “따, 땅이…!”

   “어어?!”

     

   땅이 울렁거린다 싶더니 플레이어들이 걸어온 길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좁아지는 땅. 그리고 땅이 갈라진 탓에 물이 조금 빠졌는지 축축한 땅이 드러나기 시작한 호수.

     

   “다들 호수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 나 수영 못 하는데!”

   “이게 뭐야…!”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자 옆에 있던 박조철이 눈을 부릅뜨며 먼저 호수에 발을 들였다.

     

   “물에 들어오세요. 아직 주변에 어인들이 없습니다! 저쪽도 신중할 테니 당황한 티 내지 마시고요!”

     

   그의 말에 사람들이 얼굴을 굳히며 비명을 지르던 입을 다문다.

   이쪽 플레이어들이 물에서의 전투를 꺼려한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됐다.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어인들이나 다른 좌표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다.

   만약 처음 당하게 될 사람이 한가민이라면 깃발을 빼앗긴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모두가 로비로 직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저벅.

     

   “박조철 씨, 잠시만 물 밖으로 나와 주시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박조철을 부르며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어인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상황이 개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좌표에게 표적이 되어서도 안 됐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네?”

     

   내가 호수에 다가가자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박조철은 신속했다. 그는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곧장 물 밖으로 나왔고 그 모습을 본 남궁천호와 서세영, 한가민도 뒤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카가각…

     

   내 발이 호수에 닿자 그 끝자락부터 물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번개를 떨어뜨릴 때 사용한 한기의 심장의 부작용이 슬슬 올라오려는 것인지 심장이 서늘해졌지만 일단 지금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아아……”

     

   입에서 나오는 깊은 서리.

   나는 검을 들어 현재의 상황에 가장 적합할 것이라 판단된 초식을 펼쳤다.

     

   남해삼십육검 南海三十六劍

   제일식 第一式

   격랑수검 激浪水劍

     

   정확히 가로로 그어진 일검이었다.

   검에서 날아간 기다란 횡의 검기가 짙은 마력을 흩뿌리며 작은 파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지금 나의 마력은 냉기를 한껏 머금은 상태.

   처음에는 물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 싶던 마력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더니 호수의 표면을 얼리기 시작했다.

     

   콰가가각!!!

     

   순식간에 생긴 얇은 빙판.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물론 멀리서 이곳을 지켜본 다른 좌표의 플레이어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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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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