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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EP.80

     

   띠링.

     

   전투가 시작되려는 순간.

   메시지와 함께 각 진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나의 빛줄기가 쏟아졌다.

     

   [마지막 필드 붕괴까지 30분 남았습니다.]

   [깃발의 소유자가 표시됩니다.]

     

   “어어?”

     

   하늘에서 내린 빛은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마냥 한가민을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당황한 한가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다른 진영의 누가 깃발의 소유주인지 빠르게 파악했다.

     

   어차피 깃발의 주인이 우리만 표시된 것은 아니었기에 아쉬울 것은 없었다.

   빛이 쏟아졌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을 받은 사람이 어디의 누구냐는 것.

     

   ‘저건 좀 까다롭군……’

     

   그리고 내 시야에 한 명의 기사가 들어왔다.

     

   적색 풀 플레이트 갑옷을 차려입은 우직한 기사.

   개인전 당시 한기의 심장으로 인해 Lv.6짜리 괴물이 되었다가 이제는 다시 되돌아온 존재.

     

   그를 발견한 타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인상을 구기며 다른 목표물을 찾는다.

   지금은 우리보다 약한 상대를 찾아 깃발을 빼앗아 기회를 엿보는 것이 우선.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싸울 동안 전력을 비축하다가 지친 상대의 깃발을 빼앗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싶었다.

     

   “저, 저 어쩌죠…?”

     

   몸에서 반짝반짝 빛을 뿜기 시작한 한가민이 울상을 지으며 나를 돌아봤다.

   애초에 이것은 섬멸전이 아닌 깃발의 탈취가 최우선 목표. 만약 그녀가 집중 공격을 당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가는 별개로 순식간에 싸그리 탈락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우리도 작전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미 다른 그룹들은 서로 모여 뭔가를 의논하는 중.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팀을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면… 축구에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를 나누는 것처럼…”

   “포지션을 나누자는 말씀이시죠?”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실제 스포츠의 대부분이 포메이션을 나눠 가장 효과적인 전술을 펼치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말에 첨언한 남궁천호마저 동의하는 눈치를 보이자 사람들의 의견은 인원을 배치하는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민이를 지키는 인원을 많이 배치하고 소수 정예로 상대의 깃발을 공격하면…”

   “확실히 안정적인…”

   “그럼 공격은 누가…”

     

   어느 정도 갈피가 잡히자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하는 사람들.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좌표들도 우리와 비슷한 계획을 세우는지 인원을 선별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리고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박조철.

   그가 초감각으로 청력을 키워 무언가를 들었는지, 슬쩍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그럼 공격은 천호 씨와 제가 여기 다섯 분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시인 씨가 가장 강하니 가민이를 지켜 주세요.”

     

   하지만 나는 박조철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한가민의 옆을 지킨다면 확실히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깃발을 빼앗지 못하면 결국에는 패배하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의아함을 느낀 남궁천호가 나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시인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나는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 내 생각을 말해도 되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작전을 시행하기에 중요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가민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돌아봤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말.

     

   “다 같이 공격으로 가죠. 물론 가민이도.”

   “……네?”

     

   설명이 이렇다 보니 지금의 상황이 스포츠 같이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당연하게도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었다.

     

   반칙 따위는 당연히 없고 상대를 죽이는 것까지 허용되는 그저 전쟁.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골키퍼가 골대를 들고 도망 다니면 상대 입장에서 그것만큼 난감한 것이 또 없지 않을까 싶었다.

     

   “선두에는 제가 섭니다. 가민이를 중심으로 움직일 거고 마법이 아닌 육탄전에 자신 있는 분들이 습격조를 맡아 전투 중인 좌표의 깃발을 강탈할 겁니다.”

     

   한마디로 게릴라전을 펼치자는 이야기.

   다른 좌표와 같은 작전으로 맞대응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얼어붙지 않은 호수의 아래를 무심히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이 전투에서 모든 좌표에게 가장 큰 변수는 다른 무엇도 아닌 어인들의 존재.

     

   물론 나에게는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테지만, 나름 준비한 비장의 수를 써먹을 타이밍은 지금이 아닐까 싶었다.

     

   “후우웁!”

     

   나는 내가 마실 수 있는 최대한의 호흡을 들이켜 폐를 부풀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물 안에 머리를 들이밀고는 그대로 소리쳤다.

     

   – 금리이이이이인!!!

     

   부글부글!

     

   나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전달될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호수 밑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시커먼 그림자들을 보니, 내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 인간 놈이 감히!

   -진정하세요.

   -아니, 금린이시여! 왕께서도 저 인간이 저지른 짓을 똑똑히 보지 않으셨습니까?

     

   어인들의 반응에 금린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나도 봤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하세요.

     

   금린의 단호한 반응에 어인들이 얼굴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살아남은 어인들은 김시인이라는 인간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번개가 우연히 떨어진 것인지, 그가 무슨 수를 쓴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 번개로 인해 무수한 어인들이 탈락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죠.

   -금린!”

     

   김시인이라는 인간과 했던 약속.

   그가 번개를 떨어뜨려 어인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든 결국 그는 개인전내내 금린을 지켜 준 은인이었다.

     

   사사로운 정… 어인들은 금린의 선택이 그런 것이라 여겼다.

     

   -금린이시여.

     

   그리고 그 순간 금린의 옆에 다가선 누군가가 있었으니.

     

   -왕의 검인 청린으로서 여쭙습니다. 그의 동맹을 받아들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금린의 시선이 위를 향한다.

   잔뜩 굳은 채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청린의 모습. 누가 봐도 분노가 가득한 그가 어인들의 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은 죽은 어인들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그런 얄팍한 정 따위로 동맹을 유지하겠다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그는 개인전에서 어인들의 왕을 도왔다. 하지만 단체전에서 어인들을 번개 한 방으로 학살했다.

     

   청린은 그런 인간과 손을 잡는 것이 끝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네?

     

   갑작스러운 금린의 물음에 청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정말 제가 정 따위로 김시인이라는 남자와 손을 잡으려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말입니다.

     

   금린의 말에 청린의 얼굴이 굳어진다.

   하지만 금린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하려는 일은 로비로 돌아간 그들을 위한 일이니.

   -그게 무슨……

   -이곳에서의 사망이 진짜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복수가 아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공이겠지요.

     

   깃발을 지키겠다며 물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던 그들은 사실상 지금 이 필드에서 최약체에 가까운 좌표였다.

     

   간간이 깃발을 탈취하기는 했지만 그곳도 초반에나 먹혔지 피땀을 밤낮으로 흘려가며 최후의 최후까지 남은 저 좌표들에 비하면 그들의 성장은 빙산의 일각, 새 발의 피라는 말이었다.

     

   -저 남자가 우리에게 동맹을 요청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저들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푼 겁니다.

     

   금린은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번개를 조절할 능력이 있는 인간, 개인전에서 Lv.6의 괴물을 단신으로 잡아내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성장한 괴물.

     

   그런 인간이 검을 휘둘러 호수의 표면을 얼렸다.

   그 말인 즉, 호수의 밑바닥까지 꽝꽝 얼려 그들을 완전히 봉인할 수도 있는 것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저에게는 죽지 않고 로비로 돌아간 동료들에 대한 복수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단체전의 성공적인 마무리. 그것에만 집중할 겁니다.

     

   금린의 말에 청린이 당황한 마음을 감춘 채, 그를 돌아봤다.

   어느새 그의 형님과 흡사한 모습을 갖춘 그의 왕.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한 혜안을 가진 왕이 되어가고 있었다.

     

   ***

     

   [붕괴가 가속화됩니다.]

     

   “와아아!”

   “막아! 아니, 죽여!”

     

   뒤쪽의 그나마 남아 있던 땅이 흔들리며 모조리 무너지자 점점 타 좌표와 가까워진 플레이어들이 검을 빼어 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전투,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큰 활약을 펼친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였다.

     

   “저런 미친놈들! 어인은 신경도 안 쓰나?”

   “깃발, 저 꼬맹이가 깃발을 가지고 있다! 뺏어!”

   “어떻게!?”

     

   모든 좌표의 플레이어들은 어인들을 신경 쓰느라 깃발의 소유주가 호수의 최대한 가장자리에서 보호를 받는 형태로 진형을 구축했다.

     

   괜히 깃발을 들고 호수에 들어왔다가 물고기 밥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한 탓에 당연하게 만들어진 진형.

   그리고 당연하게 우리 좌표에도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도 어인에 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어인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뭐 어인들도 생각이 있다면 그럴 거라는 말이죠.”

     

   어인들. 특히 금린과 청린은 나의 무위를 몇 차례는 지켜봤다.

   심지어 조금 전에는 검을 휘둘러 호수 표면을 얼리기까지 했는데 정말 금붕어 대가리가 아닌 이상 내가 속한 좌표를 먼저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 사자를 하이에나가 건드려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심지어 영역을 침범하지도, 먹이를 빼앗지도 않은 사자를 말이다.

     

   ‘물론 마지막에는 싸우겠지만.’

     

   지금은 눈앞의 먹잇감에 집중하는 것이 옳았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깃발을 탈취했습니다.]

   [좌표의 깃발이 강화됩니다.]

     

   나의 검이 붉은 피부를 가진 좌표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남궁천호가 얼음을 박차고 날아올라 깃발을 낚아챘다.

     

   “이, 이건 사기야!!!”

   “이런 미친놈드…ㄹ”

     

   붉은 피부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본다.

   이제는 내 발이 물에 닿는 순간부터 그냥 땅이 생기듯 얼어 버리는 호수.

     

   능력치가 강화될수록 몸에서 뿜어지는 냉기가 디딜 수 있는 얼음의 땅을 넓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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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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