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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EP.86

     

   박조철이 처음 눈을 뜬 장소는 다름 아닌 장례식장이었다.

     

   ‘어?’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였다. 하지만 텅 빈 빈소에는 오직 박조철 한 사람 뿐.

   하지만 어안이 벙벙하던 마침, 그의 눈앞에 트라우마의 극복이라는 임무가 떠올랐고 그는 임무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자 속에서 끓어오르는 육두문자를 참지 못하고 배출해냈다.

     

   “이런 씨발……”

     

   박조철은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불쾌한 감각을 떨쳐 내기 위해 급하게 마른세수를 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역한 감각이 계속해서 속을 뒤틀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제야 보이는 신체 곳곳의 상처가 쓰려왔지만 멎을 것만 같은 심장의 고통을 대변해주지는 못했다.

     

   “쓰읍, 후우… 쓰읍…”

   박조철은 갑작스럽게 늘어난 스트레스를 이겨 내기 위해 심호흡했다.

   그의 시야에 고인의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朴商弼(박상필)]

     

   아버지의 성함이 적힌 명패를 보니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이 문뜩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버스 전복사고.

   운전기사였던 아버지의 사망과 하필이면 그날따라 아버지 얼굴이나 한 번 뵙자고 버스를 탑승한 어머니.

     

   어머니는 중상을 입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계셨고, 당시 고3이었던 박조철은 학교에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

     

   아버지가 낸 사고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명확히 파악은 되지 않았지만, 당시 경찰들과 의사들의 말에 따르자면 아버지께서 심장 쪽에 어떤 문제가 생겨 사고가 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사고의 피해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했고 그것은 아버지의 보험금이나 국가의 여러 지원을 받았음에도 다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수많은 승객이 생을 달리했다.

   재수 없게 휘말린 거리의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었고 그들에게 모든 피해 보상을 해주기에는 박조철의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다.

     

   ‘내가 바로 은행을 찾아갔던가.’

     

   당시에 박조철은 피가 차갑게 식는다는 경험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보려 했다.

   다른 사람들의 병원비나 피해 보상을 떠나 어머니의 병원비라도 어떻게든 구해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그에게 대출을 해 줄 은행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다음으로 그가 알아본 것은 바로 사채였다.

     

   “……이쯤이었나.”

     

   그때쯤, 박조철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그가 슬픔에 잠겨 있던 당시, 장례식장을 찾아온 한 손님의 발소리.

     

   뚜벅뚜벅.

     

   낯선 구두 소리가 장례식장을 고요하게 울린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었지만 그가 악몽을 꿀 때면 이 발소리가 무한정으로 귓가에 맴도는 꿈을 꾸기도 할 정도로 그것은 지독한 소음이었다.

     

   “이름 박조철.”

     

   팔랑.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박조철이 고개를 돌렸다.

   초췌한 얼굴에 여리여리해 보이는 실루엣은 멀끔한 정장을 입은 채, 무심히 그의 뒤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고등학생 3학년, 경찰대 준비생에 학업성적은 최우수… 버스 기사였던 아버지와 작가인 어머니 사이의 외동아들. 최근 어머니의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사채를 쓰려다 실패. 그리고…”

   “……”

   “뭐, 맞나보네.”

     

   무심한 두 눈동자가 박조철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는다.

     

   “너 나랑 같이 좀 가야겠다. 아, 물론 장례식은 끝나고.”

     

   박조철과 국정원의 연결고리가 이어진 것은 이날부터였다.

     

   ***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 이름 모를 국정원의 남자는 박조철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어머니의 치료비와 이번에 생기게 된 빚을 해결해 줄 테니, 사채업자들을 다시 한 번 찾아가라는 내용.

     

   “제가 뭘 해야 하는 건데요?”

     

   박조철은 이미 돌아올 대답을 알고 있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초췌한 남자에게 물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 4층의 임무였기에 처음에는 조용히 거절하려고 했었다.

   국정원과 엮인 그 순간은 단연코 박조철에게 최악의 순간. 그것만 피하면 임무는 자연스럽게 클리어될 게 아닌가 싶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이게 트라우마가 아니었나?’

     

   허나 탑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미 일어났던 사건은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왔다. 결국에는 박조철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뭐, 잠입 미션 같은 거지. 있잖아 미션 임파서블 그런 영화 보면 나오는 요원들. 네가 그게 되는 거야.”

     

   남자의 말에 박조철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응시했다.

   박조철의 임무는 조직에 잠입해 마약과 관련된 정보를 빼내는 것. 이 임무는 그가 약 5년 이상 진행하게 될 첫 임무였다.

     

   하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임무 내용이 그렇다는 것.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하시네요.”

   “……거짓말?”

     

   박조철의 말에 남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당시 박조철은 왜 능력도 모르는 고작 고등학생에게 그렇게 중대한 일을 맡기냐고 물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

   하지만 남자는 순순히 박조철에게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었다.

     

   「왜 그게 궁금하나?」

     

   「네?」

     

   「너는 어머니의 치료비가 필요하지. 우리는 과거가 깔끔한 어린 요원이 필요하고.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야. 그냥 들어가서 잡일이나 하면서 우리가 연락을 취하기 전까지 대기하면 돼.」

     

   연락을 기다려라.

   그리고 국정원의 명에 따라 박조철이 조직에 들어간 후, 다시 남자에게 연락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딱 5년 후였다.

     

   「철수하라.」

     

   다른 내용은 없었다.

   왜 그를 깡패 소굴에 처박았는지, 그가 무슨 일을 했어야 했는지, 그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박조철은 깨달을 수 있었다.

     

   ‘도구로 쓸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 떠봤던 거지.’

     

   군말 없이 5년이라는 시간을 국정원에 충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궂은일이라도 ‘명령’이라는 이름 아래에 자비 없이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사채업이라는 일은 알다시피 돈, 그리고 사람 관련이 깊은 일이었다.

   그리고 돈과 직결된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독기를 지니는 경우가 생긴다.

     

   싸움은 기본이요, 감히 인륜을 저버리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그런 세상……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지?”

     

   남자의 반응에 박조철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박조철은 그 세상을 이미 한 번 겪었고 자신을 그 악의 구렁텅이로 쑤셔 넣으려는 이 악마 교관의 심중을 알았기에 더욱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마약은 개뿔. 그냥 건달들 틈에 던져놓고 이리저리 굴릴 생각이잖아요.”

   “……”

   “대충 보니까 무슨 의도인지 알겠네요. 까짓거 제 가치를 증명해 드리죠. 딱 열흘… 열흘만 기다리십쇼.”

   “호오…?”

     

   5년간 사채업을 하는 조폭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더러운 짓을 많이 했다. 사람을 때리고, 찌르고……

     

   안 그래도 후회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5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박조철은 반드시 바꾸고 싶었던 과거가 하나 떠올랐다.

     

   ***

     

   서세영이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것은, 그녀가 다녔던 대학교 캠퍼스의 입구였다.

     

   “여긴?”

     

   서서히 여름이 지나갈 시기.

   그녀 또한 임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이것이 꿈인지, 아니면 그동안 그녀가 지옥 같은 악몽을 꾼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스템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그녀는 이것이 꿈이 아닌 탑의 4층임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다.

     

   “……”

     

   그녀는 트라우마라는 글자를 보며 잠시 침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떤 것이 자신의 트라우마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지금쯤이면 중환자실에 계실까…?”

     

   서세영의 부모님은 그녀의 스무 살 여름. 버스 전복사고에 휘말려 사경을 헤매고 계셨다.

   어느 버스 기사가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도로를 역주행 하게 된 사건.

     

   그 사고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아직은 아니지만 곧 숨을 거둘 두 분이 바로 그녀의 부모님이었던 것이다.

     

   “……진짜 최악이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다시 경험한다는 것.

   탑의 4층이 그녀의 트라우마를 재현할 예정이라면 그녀가 그것을 피할 길이 없었다.

     

   저벅저벅.

     

   그녀는 우선 부모님이 계실 병원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어차피 트라우마의 극복이 임무라면 그것을 피해 봐야 고통만 길어질 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직접 부딪쳐볼 생각이었다.

     

   ‘그 사람이라면 그렇게 했겠지.’

     

   문뜩 그녀의 회사에서 만났던 김시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려움에 맞설 용기와 담대함을 지닌 사람. 위기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만들 줄 아는 놀라운 사람.

     

   주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환상에 불과한 존재들. 게다가 당시의 그녀는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기억으로 만들어졌다는 세상도 조금이지만 흐릿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한국대 병원]

     

   하지만 그 와중에 병원의 간판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저곳에 부모님이 계셨다. 물론 일어나실 수 없는 상태긴 하셨지만 두 분을 다시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진다.

     

   다시 두 분의 끝을 지켜봐야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시 얼굴이라도 뵐 수 있다는 기대감.

     

   우웅.

     

   병원의 입구를 통과한 그녀가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간다.

   고작 몇 개월이었지만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길. 그리고 이윽고 병실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삑. 삑. 삑.

     

   “아, 아아……”

     

   서세영은 그녀 스스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을 줄 알았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그로부터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에 미련 따위도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순간.

     

   “세영이 왔니?”

   “어휴… 우리 딸 많이 놀랐나 보네. 왜 울고 그래 아빠 맘 아프게.”

     

   그녀를 향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병상에 누워 계셨어야 할 두 부모님은 그녀를 향해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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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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