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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0

   EP.90

     

   박조철이 조직에 들어와 처음으로 받았던 임무는 대출 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아저씨 한 명에게 묵힌 돈을 받아 내는 일이었다.

     

   「얼마라고요?」

   「일억.」

   「아니, 신용불량자를 어떻게 믿고 그런 큰돈을 빌려준 겁니까?」

     

   미성년자 박조철.

   고작해야 수능 공부만 주구장창 했던 고등학생이라지만 그도 1억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사진 속 신용불량자에게 그런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니, 그에게 주어진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너는 궁금해 하지도 말고 알려고 들지도 마. 그냥 내가 너한테 돈을 가져오라 시키면 너는 가서 떼먹힌 돈을 받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대출 기록을 보니 돈을 빌려간 것이 대략 3년 전의 일.

   당시에 그가 빌린 돈이 삼천만 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박조철은 그가 지금 뛰어든 이 일이 얼마나 사람의 고혈을 빨아먹는 개같은 일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기분을 이제 와서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낡아빠진 작은 빌라의 반지하 방.

   당시에 받았던 것과 같은 일을 탑 4층에서 다시 받게 된 박조철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그곳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

     

   문을 너머로 느껴지는 정적.

   하지만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듯 인위적인 침묵이 이어지자 박조철은 가만히 입구의 주변을 살폈다.

     

   ‘전기 계량기는 돌고 있고…’

     

   전기를 사용 중이라는 것은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 증거였다.

   한 여름에 선풍기를 돌리는 건 둘째치더라도, 작은 냉장고 하나쯤은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이곳이 버려진 집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박조철은 다시 밖으로 나와 굳건하게 닫힌 반지하 방의 창문을 슬쩍 살폈다.

   청테이프를 찍찍 붙여둔 불투명한 유리너머로 꾸물거리는 검은 그림자가 얼핏 지나가는 것 같다.

     

   ‘이거 절대 안 열어 줄 거 같은데.’

     

   …끼익

     

   하지만 그때 건물에서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1층이나 그 위층일 가능성도 있지만 조금 전 그림자의 움직임을 생각하니 반지하의 주인이 밖으로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타탓.

     

   소리를 들은 박조철은 재빨리 빌라의 입구로 달렸다.

   여전히 조용한 문 너머.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굳게 잠겨 있던 철문은 예상대로 살며시 열려 있었다.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건가?’

     

   정당한 이유나 주인의 허락 없이 상대의 집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주거 침입에 해당한다.

   문이 열렸다고 함부로 들어가서도 안 되고 그것은 채무자의 집을 방문한 채권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쨍그랑!

   꺄악!

     

   집 안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에 이어 여자아이의 것으로 추측되는 비명 소리까지 들리자 박조철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일부러 다시 한 번 인기척을 냈다.

     

   똑!똑!똑!

     

   집 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음 한편에 불편한 감정이 자리를 잡았다.

     

   그의 노크에 누군가 문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둔탁한 소리. 탑을 오르며 초감각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 걸음이 성인 남성의 발소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었다.

     

   “계십니까? 위층 사는 사람인데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내려왔습니다.”

     

   박조철은 거짓말을 섞어 문 너머에 있을 남자를 방심시켰다.

   조금 전의 비명이 가정폭력이건, 강도가 든 것이건 간에 그가 나타났으니 조금 전 목소리의 주인은 잠깐이나마 안전해진 상황일 터.

     

   잠시 생긴 틈과 성인 남성의 방심을 이용해 그를 밖으로 끌어내기만 하면 위기는 어느 정도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팔을 잡아서……’

     

   제압, 그리고 경찰을 부른다.

     

   그렇게 정리한 작전을 시행하기 위해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이어진 상황에 박조철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철컥.

     

   문이 잠겼다.

     

   문을 열어 위층에서 내려왔다는 손님을 확인할 것이라는 박조철의 예상과 달리, 문에 다가온 남자는 그를 완전히 무시한 채 다시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꺄악! 도와주세요!

     

   집안에서 다시 한 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그냥 비명이 아닌 구조를 바라는 아이의 절규가 박조철의 귀를 강타한다.

     

   박조철은 지난 과거를 떠올렸다.

   두려움이 많았던 학창 시절의 그.

     

   아는 거라고는 친구들과 놀고 공부하고 게임을 하는 것뿐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누군가의 현실은 그의 상상보다 더 차갑고 잔인했다.

     

   하지만 당시의 박조철은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합법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채무자가 경찰에 잡혀간다면 병원에 쓰러져 계신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그 여린 목소리의 주인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몰랐다.

   그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의 애원을 계속 들을 자신이 없었기에 자리를 벗어났던 것이다.

     

   “이런 씨발.”

     

   과거의 기억이 그의 마음을 옥죄어 온다.

   집 안의 아이를 향한 죄책감. 힘이 없었던 자신에 대한 한심함. 그리고 두려움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는 역겨움의 후회까지.

     

   쾅! 쾅! 쾅!

     

   박조철은 건물이 울릴 정도로 강하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어이! 채무자 씨! 집에 계셨네? 문 좀 열어 보쇼!”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지금의 그는 그가 경찰에 잡혀가더라도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기분.

   탑이 마련해준 기회로 후회하던 과거를 청산할 시간이 주어졌으니, 그의 손으로 제대로 문제를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었다.

     

   “흐읍!”

     

   콰아아앙!

     

   박조철은 문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손에서 피가 배어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빌라를 뒤흔든 굉음을 들은 사람들 몇몇이 계단 위에서 슬그머니 박조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문 너머에서 술에 취한 듯한 사람의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씨발, 꺼지고 내일 다시 와.

   “어허! 개소리 마시고. 내일 당신이 도망갈지 누가 알아?”

   -도망 안 갈 거니까. 내일 오라고 이 새끼야!

     

   문 너머의 목소리는 화가 났는지 박조철에게 점점 더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그 목소리가 꾸준히 문 앞의 박조철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 집 안의 아이가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능력도 없는 인간이 돈을 빌려갔으면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갚아야지 집에서 술이나 처먹고 놀고 있으면 쓰나?”

     

   박조철은 도발을 이어갔다.

   술이라는 것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는 물건. 감정을 격하게 만들고 사람에 따라 폭력적으로 변하게도 하는 그것은 철저히 이용가치가 있었다.

     

   철컥!

     

   순간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그 틈 사이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가 이마에 피를 흘리며 나타났고 박조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장 그에게 손을 뻗었다.

     

   “이익…! 이 새끼가 뭘 안다고 나불……허억!”

     

   순식간에 멱살을 잡힌 남자.

   그는 순간 시야가 붕 뜨나 싶더니 등으로 몰려오는 어마어마한 통증에 술이 확 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콰아아앙!

     

   박조철이 업어치기와 흡사한 동작으로 그를 들어 반대쪽 벽에 집어던져 버리자, 그대로 고꾸라지며 벽에 처박힌 남자가 바닥에 엎드려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욱! 우웨에엑!”

     

   박조철은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집 안을 바라봤다.

   어린아이의 음성을 들었을 때까지는 그나마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남자의 손에 들린 유리병을 보는 순간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갔기 때문.

     

   하지만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친 아이는 당황스럽게도 박조철이 아는…… 아니, 미래에 알게 되었던 아이의 얼굴이었다.

     

   “……”

   “……”

     

   바닥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한가민을 바라본 박조철과, 모르는 사람의 손에 아버지가 나가떨어진 것을 보게 된 한가민은 서로를 보며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가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공손히 모았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어이가 없네.’

     

   초등학생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냉정함과 대범함.

   아무리 그래도 혈육인 아버지가 모르는 사람의 손에 의해 벽에 처박혔는데 걱정이나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박조철을 당황스럽게 했다.

     

   “으극…! 이, 이런 미친 새끼가…!”

     

   업어치기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깨진 유리병을 놓치지 않은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박조철에게 육두문자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분노로 반쯤 뒤집어진 눈과 벌벌 떨리는 팔다리. 하지만 문제는.

     

   ‘근데 이거 그냥 때리면 안 되지 않나?’

     

   욕을 한 바가지나 먹었다고 하지만 박조철에게 남자를 제압할 명분이 없었다.

   유리병을 들고 있다지만 직접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이 나라의 법이 그러하니 과한 반격을 했다가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기에.

     

   하지만 그때 유리병을 비스듬하게 들어 올리는 남자가 박조철의 시야에 들어왔다.

     

   “거기까지만 하시죠. 일단 나왔으니 그거 내려놓고 대화를 좀 하시죠.”

     

   그것을 본 박조철은 냉정한 척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상황. 물론 탑에 오르며 목숨을 건 혈투를 해 오던 박조철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을 터였다.

     

   “뭐…? 사람을 패놓고 대화?! 이 씨…우욱! 뒤질라고!”

   “어허. 그거 지금 당장 안 내려놓으면 지금부터 제가 당신을 개 패듯이 패버릴 겁니다.”

   “어린놈의 새끼가!”

   “진짠데.”

     

   아무리 인간쓰레기라도 한가민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나니 괜히 존댓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박조철의 배려를 눈앞의 취객은 신경 쓰지 못했나 보다.

     

   여전히 술에 취한 남자는 묘한 웃음기를 띠는 박조철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작해야 이제 고작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애송이.

   저렇게 어린놈이라면 어느 정도 깡은 있을지언정 정말 목숨이 걸렸다고 생각하면 몸이 굳어 버리기 마련이었으니까.

     

   “으아아!”

     

   그렇게 판단한 남자가 박조철을 향해 깨진 병을 내지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겁먹었군!’

     

   남자는 박조철이 겁을 집어먹어 다리가 굳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찾아온 모든 빚쟁이 양아치들이 그러했고 그것은 이 힘만 무식하게 센 애송이도 다르지 않으리라.

     

   하지만.

     

   “어?”

     

   부욱!

     

   박조철의 신형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오히려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게다가 깨진 병이 박조철의 옷자락을 찢으며 허공을 갈랐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건재했다.

     

   ‘이 새끼 도대체 뭐야…?’

     

   남자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

   두려움은커녕 웃음꽃이 만개한 빚쟁이의 주먹이 안면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며 남자는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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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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