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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2

   EP.92

     

   하나, 당신의 과거를 탑에 재현했다.

   둘, 기억 속 저편에 잔류한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

     

   트라우마의 극복이라는 키워드에만 집중하다 보니, 임무의 설명 자체를 놓치고 있었다.

     

   ‘4층은 나의 기억으로만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다.’

     

   4층이 임무의 말마따나 나의 기억으로만 재현되었다면, 내가 여태껏 가보지 않은 장소나 낯선 환경은 구현이 되어 있지 않아야 했다.

     

   “왜 이상하다고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여태껏 단 한 번도 편의점 건너편의 병원에 들어와 본 기억이 없었다.

   병원 바로 앞의 편의점에서 일을 했던 것이지 출퇴근을 한 것이 아니니, 병원의 구조를 알 턱이 없는 것이다.

     

   “흐음…”

     

   하지만 병원은 1층의 로비부터 시작해서 모든 장소가 다 구현되어 있었다.

   바닥과 벽.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과 병원 관계자들까지 모든 것들이 선명했다.

     

   “이제 보니까 확실히 설명이 부족해.”

     

   나는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떠올랐던 알림창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

   ……

   설명 : 잊고 살았던 지나간 시간. 누군가가 탑에 당신의 과거를 재현해냈습니다. 기억 속 저편에 잔류한 당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십시오. 당신의 미래가 역변하게 될 그 순간, 5층으로 가는 문이 열릴 것입니다.

     

   임무 : 트라우마 극복

   ……

   —

     

   임무 자체는 트라우마의 극복이라는 단순한 내용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임무의 설명을 읽으니 아무리 봐도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미래가 역변하게 될 그 순간, 5층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거기에는 트라우마를 극복했을 때, 미래가 변한다 따위의 구체적인 서술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과는 별개로, 미래가 변경된다면 탑의 5층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는 말.

     

   하나의 정답으로 귀결되지 않는 두 가지 설명을 보니 이건 확실한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변경이라…”

     

   4층은 나의 임무였다. 내가 주체였기에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미래는 없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극단적으로 본다면 내가 죽기만 해도 미래는 변한다는 의미.

   하지만 마냥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아주 없진 않지.”

     

   죽지 않고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방법.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탑에 들어온 그 누구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공간으로 간다면 그곳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주변의 환경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로비를 거니는 병원의 손님들, 그들을 마중 나온 몇몇 환자들과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종합병원……”

     

   나는 병원의 안내판을 보며 건물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

   ……

   3층 신경과, 성형외과, 피부……

   2층 응급검사, 내과……

   1층 로비, 안내, 고객지원, 원무……

   ……

   —

     

   이곳의 그 어느 장소로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안내판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일반적으로는 절대 가지 않을 장소가 병원에는 존재했다.

     

   저벅저벅.

     

   나는 안내데스크로 걸어갔다.

   컴퓨터를 보며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니 고개를 들며 미소 짓는 직원.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또박또박 조금 전에 떠오른 장소의 위치를 물었다.

     

   “혹시, 영안실은 어디에 있나요?”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하기 전까지 시신을 임시로 안치해 두는 곳.

   활짝 웃고 있던 직원이 나의 물음에 짧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안실을 찾는 것으로 보아 주변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듯했다.

     

   “영안실은 별관 지하에 있어요. 장례식장 옆인데 본관에서 나가셔서 우측으로 가시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직원의 설명을 들은 나는 지체 없이 건물을 벗어났다.

   곧이어 빠져나온 건물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별관의 지하.

   그나마 밝은 분위기였던 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장소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삭막한 느낌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영안실]

     

   영안실 근처에는 직원이 없었다.

   원래 영안실 앞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탑의 4층에 영안실의 앞을 지키는 누군가를 본 사람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나로서는 다행인 상황.

     

   “후우…”

     

   나는 굳게 닫힌 쇠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영안실을 방문했던 누군가가 당시에 정신이 없었던지 문에는 그 흔한 손잡이도 달려 있지 않았다.

     

   끼익.

     

   차가웠다.

     

   그저 영안실 내부의 온도가 낮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분위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그 어느 장소보다 서늘하게 느껴진다.

     

   ‘저긴가…’

     

   딱 사람 하나가 들어가서 누워 있을 만한 크기의 서랍들이 벽에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살아 있는 자는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을 장소.

   나는 그 기다란 서랍 중, 시신이 없는 한 칸을 찾아 주욱 잡아당겼다. 그리고.

     

   삐빅!

     

   [경고!]

   [성좌로부터 구현되지 않은 공간입니다.]

   [경고!]

   [성좌로부터 구현되지 않은 공간입니다.]

     

   서랍이 완전히 열리자 경고를 알리는 알림과 함께 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행동에 당황합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제대로 된 공략을 따르라 말합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

     

   “그렇단 말이지?”

     

   나의 눈앞에 한눈에 봐도 다급해 보이는 무수한 알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에 토끼가 말했듯, 성좌와 도우미는 코인과 임무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길을 놔줄 뿐, 기존에 마련된 길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개입을 할 수 없었다.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

   『정석 루트』

     

   설명 : 기존의 임무로 돌아가십시오.

   임무 : 영안실을 떠나 편의점으로 간다.

     

   보상 : 100,000 C

   —

     

   이런 방식.

     

   갑자기 떠오른 임무를 보니 성좌들이 지금 얼마나 똥줄이 타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임무의 난이도나 주제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

     

   ‘실패 페널티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가기만 해도 무려 10만 코인을 받을 수 있는 상황.

   능력치의 격차로 무수한 승리를 만들어 낸 나다. 그리고 그것이 플레이어의 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저 코인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무엇 때문에 이놈들이 영안실을 떠나는 것 하나로 10만 코인을 지급한다는 것일까.

   내가 아는 성좌라는 족속들은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굉장히 치밀한 놈들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오류가 발생한 이곳에 들어가는 것이 10만 코인을 지불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

     

   [‘4층의 설계자’가 진땀을 흘립니다.]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이윽고 몇 번 이름이 언급되었던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이미 시신이 누워야할 서랍에 몸을 뉘이고 있다는 것.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낄낄거립니다.]

   [‘장막 뒤의 감시자’가 어이가 없지만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그렇게 나는 무수한 메시지와 함께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졌다.

     

   ***

     

   [구현되지 않은 공간에 발을 들였습니다.]

     

   [경고!]

   [당신을 ‘트라우마의 잔재’에서 추방합니다.]

     

   그렇게 눈을 떴을 때, 나는 당황스럽게도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뭐가 변한…… 어?”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주변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데 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병원 주차장의 사람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하고 있다. 휴대폰을 들어 몰래 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몇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죠?

     

   당황스러운 점은 그들과의 거리가 꽤 멀었음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다 들렸다는 것.

   나는 고개를 숙여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하?”

     

   땅에 끌리기 직전까지 늘어진 흰색 천잠보의.

   그리고 튜토리얼 때부터 계속해서 들고 다녔던 무명검까지.

     

   “상태창.”

     

   띠링.

     

   —

   이름 : 김시인

   성좌 : 없음

   능력치 : [근력 Lv.40], [민첩 Lv.40], [체력 Lv.40], [마력 Lv.40]

   스킬 : [빠른 납득(C-)], [전심전력(B)], [천월신공(B+)], [투지(A)]

   특성 : [잠재 고유 스킬]

     

   잔여 코인 : 232,000 C

   —

     

   각성 이후의 상태로 되돌아온 능력치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오류로 인해 추방당했다는 말이 과거의 내 몸뚱이를 벗어났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근데 이건……’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임무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

     

   공백.

     

   튜토리얼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임무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그 순간 내가 처음으로 획득했던 스킬이 발동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고, 메시지가 추가적으로 떠올랐다.

     

   [당신은 어떤 플레이어도 겪어 보지 않은 특수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격이 상승합니다.]

     

   “응?”

     

   [‘빠른 납득(C-)’이 성장합니다.]

   [‘빠른 납득(C-)’ -> ‘빠른 납득(B)’]

     

   [‘빠른 납득(B)’이 발동됩니다.]

     

   —

   [빠른 납득]

   랭크 : B

   분류 : 패시브

   설명 : 당신은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이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침착해집니다.

   – 판단이 빨라집니다.

   – 랭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정신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 빠르게 이해합니다.

     

   ※ 해당 스킬은 잠재력이 각성한 스킬입니다. 성장의 여지가 있습니다.

   —

     

   뜬금없이 성장하게 된 스킬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스킬이 발동되니 머리가 맑아지며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정리가 빠르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띠링.

     

   [새로■ 임무가 도착■습니다.]

     

   누가 봐도 급하게 만든 티가 팍팍나는 임무가 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

   『4층 – ■』

     

   주제 : ■

   난이도 : B

     

   설명 : 당신은 오류를 일으켜 다른 플레이어(서세영)의 공간에 난입했습니다. 다음 층으로 이동하십시오.

     

   임무 : 5층으로 가는 문 찾기

   제한 : 23일

     

   보상 : ■

   실패 페널티 : 제한 시간 안에 성공하지 못할 시, 사망합니다.

   —

     

   노이즈가 낀 듯 흐릿하게 떠오른 임무.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은 서세영의 공간, 그리고 내가 탑의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방법은 그녀를 찾아 그녀의 트라우마를 해결해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주차장에 보이는 중형 세단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 차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가만히 손을 올렸다.

     

   끄그극!

     

   쇠가 구겨지는 듯한 소음을 일으키며 서서히 들어 올려지는 차량.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차체의 무게에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더 이상 개의치 않으며 그 차를 다른 차에 내리쳤다.

     

   콰아아앙!

     

   굉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탑을 오르며 들어왔던 마력의 충돌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다.

     

   “흐으읍!”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잠시 폐에 마력을 집중했다.

   지금 내가 찾아야 할 사람은 이 세상의 주인공, 서세영이었다.

     

   “세영 씨 듣고 있어요!?!”

     

   갑작스러운 폭발에 구경꾼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비명 소리. 하지만 나는 곧장 내가 할 말을 이을 뿐이었다.

     

   “데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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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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