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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EP.93

     

   내가 병원 상층부 창가에서 서세영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

     

   내가 과거에서 트라우마를 찾던 도중 편의점을 찾아왔었던 서세영. 당시의 그녀는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무, 슬픔, 탈진.

     

   편의점에서 만났던 그녀는 그런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나마라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억한 심정을 강제로 누르고 있는 느낌이긴 했으나, 그건 그것대로 과도한 비애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발견한 그녀의 모습은…

     

   “서세영……?”

     

   묘한 미소, 하지만 올라간 입꼬리와는 달리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눈빛.

   그녀의 트라우마에서 내가 발견한 그녀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충돌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기다려요!!!”

     

   창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몸을 돌려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 버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몸속의 마력을 발끝으로 흘려보냈다.

     

   서세영이 올 수 없다면 내가 가면 되는 것.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트라우마에 굴복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타아앙!

     

   감히 인간의 힘이라 상상할 수 없는 도약이 땅에서부터 펼쳐졌다.

   단단하기만 하던 바닥의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겼고 그 주변으로 자잘한 파편을 튕겨 내자 근처에 모여들던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굉음에 비명을 질러댔다.

     

   어느새 병원 부근에는 구경을 나온 시민들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있었다.

   차에서 하나둘 내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고 병원의 벽을 밟아 다시 한 번 도약했다.

     

   타타탓!!!

     

   시민들은 카메라를 꺼내 들었고 경찰들은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나의 행동에 상황을 보고하는 경찰들. 단 두 걸음으로 꽤 높이 올라왔던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는 소방차도 여럿 보였다.

     

   ‘조금만 더 빨리…!’

     

   차근차근 계단을 이용해 서세영을 찾으러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가 왔다는 것을 알고도 고개를 돌렸다는 것은 그녀가 나를 피했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타아앙!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친 이후, 고개를 돌린 이유가 도대체……

     

   타아아앙!!!

     

   허나 생각은 길지 않았다.

   Lv.40의 민첩과 근력은 단 서너 번의 도약으로도 20층에 가까운 높이를 올라오는데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도착한 병원의 어느 공간.

   창문 너머의 세 사람을 보는 순간, 나는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였나?”

     

   서세영과 똑 닮은 두 중년 부부.

   그녀는 그 두 사람을 꼭 안아주고 있었고 서세영의 부모님은 창밖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는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우리 딸, 힘든 일이 많았나 보구나…”

   “걱정하지 말아라. 세영이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서세영이 늘 듣고 싶어 했던 말.

   그녀도 두 분의 지금 말씀이 튜토리얼 이전에 했던 생각인지, 튜토리얼 이후에 떠올린 부모님에 대한 소망인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그들이 그녀의 등을 쓸어 주며 그녀가 듣고 싶었던 한마디를 해주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드르륵.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어 병원 내부로 진입했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두 사람이 경계심이 짙은 얼굴로 딸을 뒤로 숨기려 했지만 서세영은 그런 둘을 만류하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엄마 지난번에 내가 말했던 그 편의점 청년.”

   “어, 어…? 그런데 어떻게 창문으로……?”

   “……이런 말 하기 좀 이상하지만, 혹시 이름이 피터는 아니지?”

     

   아버지의 농담에 서세영이 피식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이제 선택의 시간.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온 그녀는 어떤 하나에 미련이 남을지언정 확실한 미래를 포기할 여자가 아니었다.

     

   “……저 이만 가 볼게요.”

   “저, 세영…… 음.”

     

   서세영의 말에 그녀를 붙잡으려던 어머니의 손이 멈칫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하지 않는 모친.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이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그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에게 떠나지 말라며 애원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사과라도 하나 먹고 가라며 그녀를 막아 세우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하는 딸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임을 알기에.

   그녀의 모친은 그녀가 20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서세영의 기억으로 성좌가 만들어 낸 미래의 어머니는 강한 분이셨다.

     

   “조심히 다녀와라. 지지 말어. 그리고 당신… 아니, 자네.”

     

   그녀의 아버지가 손을 내밀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부족한 딸이네만 잘 좀 부탁함세. 이제 보니까 외모도 훤칠하니, 소싯적 나를 보는 것 같구먼.”

     

   그가 나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성좌가 만들어낸 환상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이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고 이렇게 하고 싶었다.

     

   인사를 마친 그의 고개가 다시금 그의 딸에게로 돌아간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얼굴. 그랬기에 더욱 소중했고 그랬기에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서는 안 됐다.

     

   “진짜 갈 게. 둘 다 잘 있어. 그리고…”

     

   서세영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랑해요…”

     

   그녀의 부모님은 손을 들어 창문을 빠져나가려는 우리를 마중했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의 두 눈을 응시했다.

     

   “시인 씨 이제 그만 가요.”

     

   스물이 되어 있는 그녀의 눈빛은 내가 아는 서세영의 강직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어리광을 부리던 조금 전의 모습은 없었다. 슬픔을 삼킨 채, 미래를 살아가려는 여인이 그곳이 있을 뿐.

     

   그렇게,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 상태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

     

   “저, 저기! 저 사람이에요!”

     

   내가 서세영을 끌어안은 채 아래로 뛰어내렸을 때,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흡사 괴물을 목도한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차를 들어서 내동댕이치는 걸 내가 봤다니까?!”

   “그런 말도 허무맹랑한 말씀을 어떻게 믿습니까……”

   “젠장! 그럼 20층에서 장비도 없이 뛰어내린 건 말이 되고?!”

   “그, 그건…”

     

   어느 용감한 시민의 신고로 달려온 경찰 하나가 그의 말에 짧게 반박을 하며 우물쭈물했다.

   시민들이 본 사실이 어떻든지 간에 경찰도 사람이니,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우며 두려운 것이다.

     

   치직.

     

   하지만 경찰도 어떤 위기감을 느끼긴 했던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무전기를 들어 지원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무장 경찰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경찰.

   하지만 나는 무심히 고개를 돌려 서세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겨 내셨네요.”

   “덕분에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곧 이곳을 벗어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증거로 우리의 앞에는 탑을 클리어할 때만 볼 수 있었던 포탈이 생성되고 있었다.

     

   츠츠츠……

     

   푸른 빛깔을 내뿜는 짙은 마력의 포탈.

   저 포탈을 통과하게 되는 순간 탑의 5층에 들어가는 것이고 한 번 진입하게 된다면 다시 이곳으로 내려올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괜찮으시겠어요?”

     

   나의 물음에 그녀가 싱긋 웃음 짓는다.

     

   “괜찮아요. 잘 이겨 냈잖아요.”

     

   4층의 임무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

   그리고 포탈이 열렸다는 말은 곧, 그녀가 4층에서 주어진 임무를 무사히 클리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나저나 여기에는 어떻게 온 거예요? 그 옷이랑 검은 또 뭐고요. 특전 같은 거예요?”

   “음…… 사실 저도 설명하긴 힘들어서, 그냥 빈틈을 찾았다고 해 두죠. 나중에 자세하게 알려드릴게요.”

   “좋아요.”

     

   나는 그녀를 가볍게 에스코트했다.

   이제 포탈만 넘어가면 4층은 클리어였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세영 씨, 먼저 올라가 계시겠어요?”

   “…네?”

     

   웬만해서는 나도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병원의 건너편, 내가 이십 대 초반을 일했던 편의점에 나타난 한 꼬마아이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갑자기 무슨……”

   “저기 보이세요?”

     

   서세영이 나의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남자아이가 입을 법한 헐렁한 옷을 입은 채, 어디서 났는지 모를 꼬질꼬질한 지폐를 쥐고 있는 아이.

     

   “가민이도 데려갈게요.”

   “……”

   “조철 씨도, 천호 씨도… 그 외에 지금까지 같이 탑을 올라온 사람들을 저는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아요.”

   “그럼…!”

     

   나의 말에 서세영이 잠깐의 고민도 없이 말을 이었다.

     

   “저도 같이 가요! 능력이 돌아오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는 여자.

   탑을 오르며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나란히 서려고 하는 몇 안 되는 사람.

     

   하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마음은 고마웠으나 내가 오류를 일으킨 이후로 성좌들이 또 어떤 제약을 걸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따라 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서세영 또한 마찬가지였고 나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는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꼭 따라 오셔야 해요. 그리고…”

     

   포옥.

     

   갑작스러운 포옹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고마워요.”

     

   서세영이 나의 등과 허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조용히 속삭였다.

     

   따스함.

   탑을 오르며 단 한순간도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이 온몸으로 느껴지자, 나는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목소리가 떨려오는 걸 억지로 잡아야 했다.

     

   “……네, 가세요.”

   “……기다릴게요.”

     

   조심스럽게 손을 놓은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우웅. 우웅.

     

   그렇게 포탈로 들어간 그녀. 나는 사라져가는 포탈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낯선 감각,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기에 머리를 가로젓고는 곧장 별관의 영안실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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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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