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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EP.95

     

   띠링.

     

   [이곳은 5층 대기실입니다.]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나의 자취방과 흡사하게 생긴 새로운 공간이었다.

     

   -이야, 드디어 오셨네.

   “……”

     

   그리고 나를 맞이한 것은 당연하게도 도우미 토끼.

   익숙한 녀석이 보인 익숙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녀석의 인사에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뭔가… 변했다.’

     

   처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그 위압감이 살짝 되돌아온 느낌이다.

     

   겉모습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를 안내했던 녀석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모를 낯선 기운이 느껴졌고 녀석은 그런 나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김시인 플레이어… 예상은 했는데 진짜 격의 변화를 알아보다니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하여튼 수고하셨습니다.

     

   녀석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반가움, 즐거움, 그리고 수고와 고생에 대한 공치사가 담긴 듯한 액션이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녀석의 몽글몽글한 손을 맞잡으며 이곳에 대해 물었다.

   오류를 이용해 4층을 떠돌아다닌 것이 거의 한 달, 그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나의 생각보다 너무나 다양했다.

     

   망망대해에 표류하며 몇날 며칠을 굶던 어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무너지는 건물의 불구덩이로 뛰어들던 소방관.

   멈추지 않는 자동차에 갇혀 수십 차례 교통사고를 일으키던 운전자까지.

     

   그런 모든 환경을 직접 경험하며 그들을 돕다 보니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도 사실은 트라우마의 일종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쇼. 트라우마는 끝났으니까요. 그리고 좀 재밌는 것들도 없지는 않았잖아요?

     

   토끼의 말에 약 나흘이 남았던 때, 보게 된 남궁천호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스카이 게임즈 개발팀의 만년 대리이자 모태솔로 남궁천호.

   그는 20대 후반 신입사원이었을 당시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고 나는 26일의 지옥 같은 근무 끝에 피폐해진 그의 앞에 검을 들고 나타났다.

     

   「이런 미친, 환청에 이어서 환각까지? 드디어 죽을 날이 왔나 보네.」

     

   그는 토끼가 우려했던 대로 자신을 잃고 있었다.

   나도 경험해 본 갈려 나가는 삶의 반복. 물론 나는 애초에 삶에 큰 감정이 없던 사람이라 버틸 만했지만 한창 창창할 나이인 남궁천호는 그렇지 못했었나보다.

     

   「…어라? 환각이 아닌가?」

     

   「님, 혹시 사신이세요? 그럼 저기 앉아 있는 우리 부장 좀 어떻게 해주실 수 없나요?」

     

   「아, 저기 있는 과장도! 아, 저기 있는 대리랑 또……」

     

   피폐함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 남궁천호의 절규에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인사팀이었던 나와 부서는 달랐지만 그 세 사람은 회사 내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던 트리오.

     

   나중에야 그 셋이 가진 모종의 비리 사실이 밝혀져 해고당하긴 했지만,

   당시에 그 셋의 갈굼을 버텨낸 한 신입사원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져 왔기에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남궁천호 씨.」

   「엥? 말을 하네?」

   「당신에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내가 언제? 너 미쳤어?’라고 말한 최대리가 미우십니까?」

   「……」

     

   남궁천호는 나의 한마디에 뭔가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 3일간 철야를 시키고 하루 무급 휴가를 쓰게 한 뒤, 모든 공을 가로챈 박과장이 미우십니까?」

   「……네!」

     

   언제부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을 앙다문 채, 내 두 눈을 응시하는 남궁천호가 보였다.

   분노, 비애, 억울함의 집합체 자체였던 그의 눈이 자그마한 희망의 씨앗이 심고 있었다.

     

   「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요즘 신입들은 싸가지가 없다’며 꼽을 준 이부장이 미우십니까?!」

     

   나의 말에 그는 반쯤 광신도처럼 눈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그가 이를 갈기 시작한다.

     

   「최대리는 프린터를 고장낸 후, 그게 모두 당신의 잘못이라 누명을 씌웠죠!」

   「네…! 네! 네!」

     

   「박과장은 당신이 짜놓은 코드를 보고 수준이 떨어진다며 욕을 한 뒤, 그걸 그대로 복사해서 쓰고 있었죠!」

   「그걸 어떻게……!」

     

   「이부장은 당신이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가는데 휴지가 없다는 걸 알고도 알려주지 않았죠!!!」

   「으아…! 으아아악! 이런 쳐 죽일!」

     

   나는 그쯤에서 장난을 그만뒀다.

   고구마는 충분히 먹였으니 이제부터는 사이다를 한 트럼통으로 부어 줄 차례.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남궁천호는 스스로가 부조리에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곧장 나와 함께 회사에서 저질렀던 그들의 만행을 고발했고 나는 그 세 명이 해고되기 전에 남궁천호에게 이것이 그의 트라우마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회사를 아주 개박살을 내버렸다.

   사랑하는 회사이자 그의 뼈를 묻을 장소라며 껄껄거리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중에 남궁천호가 알려 준 놀라운 사실.

     

   그는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매일 아침 스카이 게임즈 본사의 건물을 주먹으로 3대씩 치고 출근을 했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별난 사람이었지.’

     

   하지만 그의 트라우마를 함께 깨트리며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았다.

   애초에 나의 삶에도 무심하던 내가 타인의 트라우마를 함께 겪으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했다는 것.

     

   그것은 나의 성장에 새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김시인 플레이어 정도면 그냥 플레이어라고 부르기도 좀 그래요.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이랑은 격의 차이가 있거든요.

     

   격의 차이.

   토끼를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처음 만났던 녀석의 기운과 현재 녀석이 가지고 있는 기운의 차이.

   그리고 튜토리얼 초반에 성좌들이 나를 직접적으로 바라봤을 때 느꼈던 그 이질감이 토끼에게 어렴풋이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

     

   토끼의 말에 4층을 클리어하며 받았던 보상이 떠올랐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4층 클리어의 보상으로 성좌와의 계약을 성사시킨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하나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는 것에 그쳤지만 나는 지난 며칠간 다양한 상황에 뛰어들어 그들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했으니까.

     

   다시 말해.

     

   -거의 도우미였지 뭐.

     

   나도 모르게 해냈던 탑의 도우미와 흡사한 역할.

     

   4층에는 원래 도우미의 역할이 없었다.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플레이어들이 자각할 수 있었으니, 도우미가 무대에 서는 것을 성좌들이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놓친 오류를 이용해 도우미의 역할을 자처했다.

   물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행동이긴 했지만 그 결과, 나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잊고 있던 특성이 활성화될 줄이야…’

     

   —

   【업데이트】 – 고유 스킬

   보유 성좌 :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

   경험치 : 활성화 (100%)

     

   설명 : 당신의 성향으로 개화한 고유 스킬입니다. 당신은 타인의 성장을 돕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최악을 고의로 선택하는 도전 정신이 있으며 그 결과는 언제나 기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합당한 고유 능력은 ‘진화’와 ‘발전’입니다.

     

   효과 : 희생을 통해 같은 가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

   – 희생이 가능한 재화 예시 : 능력, 수명, 기억, 신체, 코인 등

   —

     

   과거 탑의 1층에 오르기 전.

   좀비들을 피해 광화문에 도달했을 당시,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라는 이명을 가진 성좌가 나에게 선물한 잠재력이었다.

     

   기존의 내용은 ‘경험의 가치에 따라 개안할 스킬의 가치가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

   그리고 내가 탑을 오르며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발현된 ‘고유 스킬’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코인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껴지네.’

     

   수명이나 신체와 동일시되는 코인.

   지금 붙어 있는 내 오른팔이 몇 코인짜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저 코인을 사용하면 잘려 버린 팔다리도 재생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토끼의 부름에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능력치나 스킬은 개인적인 부분. 직감적으로 서로의 격을 알아볼 수는 있지만 능력이라든지 스킬 같은 것은 상대가 알려주지 않는 한, 알 방법은 없었다.

     

   ‘일단 지켜봐야겠지.’

     

   솔직히 말해서 토끼는 이제 나름 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의 모든 패를 까발려도 좋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말은 아니었다.

     

   녀석은 초반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직접적인 해코지를 한 적도 없었다.

   나름 성좌들로부터 코인 유도를 하며 우리를 성장시켰고 본인이 잘되고 싶어서 한 행동이라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득이라면 득이지 손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는 것이다.

     

   “그냥. 앞으로 뭘 하나 궁금해서 생각 좀 해봤다.”

     

   나의 말에 토끼가 잠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더니 이내 흥하고 콧바람을 내쉬었다.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도움도 많이 받은 처지에 투덜거리진 않겠습니다! 오류를 일으키긴 했지만 까고 말해서 제 격이 오른 데에는 김시인 플레이어 지분이 어마어마하거든요!

     

   토끼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나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은 본인이 담당한 플레이어가 많이 살아남아 격이 올랐다는 말인 듯싶었다.

     

   -그럼 다음 층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토끼가 짜리몽땅한 손가락을 하나 펼쳐 나에게 내민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성좌 계약. 아직은 하실 생각 없으시죠?

   “안 할 거야.”

   -그럴 줄 알았어요.

     

   녀석이 역시나 하는 얼굴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토끼의 반응에 심드렁하게 고개를 저었다.

   토끼는 ‘아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절대’라는 뜻임을 녀석은 모를 테니까.

     

   성좌와 계약을 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 중 누군가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

   나는 나의 삶을 빼앗은 성좌들에게 굴복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럼 5층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성좌 계약을 하지 않은 플레이어는 쉽지 않겠지만, 5층에서 얻게 될 성장으로 더 높은 격의 성좌를 만나게 될 테니까요.

     

   따악!

     

   토끼가 으레 그렇듯 손가락을 튕겨 포탈을 연다.

   꾸물거리며 생성되는 5층의 진입로. 그리고 포탈의 옆에 선 녀석이 두 손을 뻗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것은 감사의 표시.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더 높은 곳에서 뵙겠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토끼가 아직 못다 한 말이 있었던지 다시 운을 뗐다.

     

   -아 참! 나중에 서세영 씨를 만나게 되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세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그분은 계약을 하셨거든요.

     

   뜬금없는 서세영에 대한 여담.

   하지만 토끼가 허튼소리를 하는 녀석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 말을 귀담아 듣기로 했다.

     

   “후우…”

     

   녀석의 손 인사 뒤로 이어진 심호흡.

   그렇게 나는 새로운 시련으로 발을 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유 잠재 스킬은 16화에서 받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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