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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7

   EP.97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가.

     

   나는 지금 상점의 계산대 앞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 하나를 보며 내 두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네요!”

     

   토끼와 목소리가 똑같은 인간. 외모만 달랐지 그 기운과 하는 행동, 사용하는 말투 또한 녀석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아하! 이 모습은 처음 보겠네요?”

     

   그런 나의 의문을 해소해주듯, 녀석이 미소를 지으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돌며 말했다.

     

   나의 시선이 녀석의 이목구비로 시작해 머리부터 발끝을 차례차례 훑었다.

   겨울 새벽에 조용히 쌓인 눈처럼 차갑고 깔끔한 은발과 핏물처럼 깊고 붉은 눈동자.

     

   매번 거대한 덩치와 조그마한 덩치를 오락가락하는 토끼의 모습을 보였기에 이런 형태의 모습이 더더욱 괴리감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와중에도 가장 어색하게 느껴진 부분이 하나 있었다.

     

   “너…… 여자였냐?”

     

   남성이라고 보기에는 왜소한 체구.

   하지만 아이라고 하기에는 어느 정도 성숙한 신체를 가진 여인.

     

   “어머? 왜요? 맨날 토끼 모습만 보다가 본체를 보니까 갑자기 좀 예뻐 보이고 그래요? 에이, 저는 복슬복슬한 그 모습이 더 좋은데 아쉽다!”

     

   나의 말에 토끼가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뭐가 아쉽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우선 녀석이 왜 이곳에 저런 모습으로 있는지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을 이끌던 도우미. 그런 위치를 가진 존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5층에 등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게 본체라고 했나?’

     

   인간의 형상이 본체라는 것은 그간 보여주었던 토끼의 모습이 가짜라는 의미.

   왜 녀석이 탑에서 늘 보여주던 토끼의 형상이 아닌 사람으로 등장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아. 궁금한 게 너무 많은 표정인데요?”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이 얼굴로 드러난 것인지 여전히 싱글거리던 녀석이 곧바로 운을 띄웠다.

     

   “뭐, 일단 본체로 온 이유는 그래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는 도우미로 5층에 들어올 자격이 없거든요!”

     

   5층에서는 도우미의 자격이 박탈된다는 녀석.

     

   “혹시 그런 의문 가져 본 적 없으세요? 저 도우미 놈들은 정체가 뭘까? 성좌처럼 절대적인 느낌은 아닌데, 그렇다고 까불면 큰일 날 것 같고! 그게 왜 그랬을까요?”

     

   녀석의 말에 나는 곰곰이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튜토리얼을 제외하면 내가 탑을 오를수록 녀석에 대한 반감이나 위압감이 많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 겪어온 시간들과 지식을 바탕으로 결론만 내리자면 나와 도우미가 가진 격의 차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때 새롭게 드는 의문은 나와 녀석의 격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나와 비슷한 격이 되었다라…’

     

   도우미라는 존재는 도움을 받는 상대보다 지식적인 측면이나 정신, 육체적인 측면으로 우월한 면이 있어야 의미를 가진다.

     

   탑의 최종 층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5층의 높이에서 나와 도우미가 비슷한 격을 가진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가능성은 몇 개 없지.’

     

   하나, 애초에 그렇게 설계가 되어 도우미의 필요 가치가 5층에서 끝난다는 것.

   둘, 그게 아니라면 녀석이 탑 5층에 오른 나와 비슷한 수준까지만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을 하나 염두에 두며 녀석에게 물음을 던졌다.

     

   “설마…… 너도 플레이어냐?”

   “오우,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

     

   토끼였던 여인이 나를 보며 감탄의 의미로 짧은 휘파람을 불었다.

     

   수많은 시련을 겪어가며 5층까지 꾸역꾸역 올라오니 상황을 파악하는 눈이 밝아졌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 결과, 녀석이 특별한 이유로 5층까지 올라온 어떠한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굉장히 예리했는데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네요!”

   “그게 무슨 의미지?”

   “저는 도우미를 겪은 존재. 이제야 탑에 올라온 햇병아리인 당신들과는 달리 더 노련하고 지혜로운 존재라는 말이지요!”

     

   얼굴에 철판도 깔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올려치는 녀석.

   하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확실히 저런 여유는 허세로 나올 만한 어쭙잖은 쇼맨십이 아니었으니까.

     

   “격은 비슷한 거 같은데……”

     

   허나 아무리 말이 번지르르해도 녀석과 나의 격이 얼추 비슷하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나의 말에 녀석이 콧등을 찡그리며 말을 잇는다.

     

   “그건 당신이 이상한 거예요! 아니, 도대체 고작 4층을 올라오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격을 올린 거래요? 보통은 안 그래!”

   “내가 뭘 했는지는 너도 다 봤잖아.”“아? 그렇지?”

     

   다양한 헛소리와 함께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흘리는 녀석.

   하지만 뒤로 이어진 녀석의 설명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농담이고요. 사실 그래서 본체로 찾아온 거긴 해요! 저도 이제 슬슬 5층을 클리어하고 싶어졌거든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뭐?”

   “아까 반쯤은 맞췄다고 했잖아요. 저 플레이어 출신이에요! 지금은 반쪽짜리 성좌가 되긴 했지만!”

   “……”

   “이건 비밀이긴 한데, 5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들에게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져요. 5층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장렬하게 사망할 건지, 아니면 도우미가 되어서 사람들을 탑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을 것인지.”

     

   5층까지 오른 플레이어에게는 도우미가 될 기회가 제공된다.

   목숨을 건 예능 속 주인공이었던 주인공이 수많은 고난과 역경 끝에 그 예능 속 진행자가 되는 것처럼.

     

   “도우미들은 사실 꽤 슬픈 존재들이에요.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았던 버러지 같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심한 선택을 하고 억겁의 굴레에 갇혀서 수십, 수백 년 동안 못할 짓을 많이도 하거든요.”

     

   녀석의 목소리가 조금씩 격양되기 시작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던 무언가가 떠오른 듯한 얼굴. 하지만 이내, 잔뜩 굳어 있던 표정을 풀더니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가능성을 봤어요.”

   “가능성이라니?”

   “당신의 성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게 나잖아요? 당신이라면 도우미로 전락하지 않고 5층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죠!”

     

   녀석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도우미와 성좌가 한편 따위가 아니라는 것.

     

   사실 그쯤 되니 성좌와 성좌의 사이도 같은 편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이 생긴 도우미는 성좌가 된다.

   격이 오른 플레이어는 자격이 생긴 도우미와 비슷한 격을 가진다.

     

   그 말은 곧, 그들 또한 하나의 집단이 아닌 개인이라는 의미였고 그런 경우라면 충분히…

     

   ‘복수가 가능하다.’

     

   그들은 신이 아니었다.

   그 초월적인 존재들은 하나가 아니었고 우리 또한 탑을 계속해서 오른다면 그들과 비슷한 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 녀석도……’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는 은발 머리의 여인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녀석이 모종의 이유로 탑을 오르게 된 플레이어라 가정한다면 녀석이 가진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바가 아니었다.

     

   “후…… 아무튼 이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죠. 저기 개 같은 것들이 상점 내부를 못 보게 하려고 힘을 좀 썼더니 한계가 온 것 같거든요.”

     

   그렇게 끝난 대화. 비슷한 수준이라 느껴졌던 녀석과의 격차가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성좌들이 상점 내부의 대화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무슨 수를 썼던 모양.

     

   하지만 아직 힘이 다 거둬진 것은 아니기에 나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질문 하나를 솔직하게 던졌다.

     

   “근데 너도 플레이어라면 그냥 혼자 도전했으면 됐잖아?”

     

   탑의 5층에 올랐다는 것은 녀석도 충분히 어느 정도의 강함이 입증되었다는 것.

   게다가 플레이어들을 여기까지 끌어올리며 오른 격의 수준을 생각하면 녀석이 지체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녀석이 나의 눈을 응시한다.

   신비로운 느낌을 물씬 풍기는 붉은 눈동자. 하지만 열정이 불타오를 것 같은 색과는 달리 그 눈에는 슬픔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혼자는 싫었거든요.”

     

   녀석이 처음으로 내비친 울적한 모습에 나는 어색함을 느꼈다.

   매번 과장되는 행동과 웃음으로 장난스러운 모습만 보여 준 토끼가 인간의 모습으로 슬픈 표정을 지으니 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뭐…… 나도 같이 오를 사람이 많으면 클리어가 더 수월해지기는 하니까 나쁠 건 없네.”

     

   나는 괜한 것을 물었다는 찝찝한 느낌이 들어 나름 위로랍시고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말을 들은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엥? 같이 올라요? 뭘요?”

     

   앞뒤 말이 하나도 맞지 않은 녀석의 발언.

     

   “저는 구경만 할 건디요?”

     

   버스를 타겠다는 놈의 당당하고 참신한 각오에, 나는 저놈이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

     

   마왕성 부근.

     

   누구보다 빠르게 4층을 통과하고 곧장 5층에 진입한 청린은 새롭게 받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마왕성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희들이 다 같은 성좌를 선택할 줄은 몰랐습니다.”

   “운이 좋았다. 다행히도 다들 생각이 비슷했군.”

     

   금린을 중심으로 모인 수십 명의 어인들.

   그들은 어인들에게 지금껏 꽤 많은 호의를 베푼 [심연의 수행자]와 성좌 계약을 맺은 상태였고 그 덕분에 40명이 조금 넘는 어인들이 함께 5층을 클리어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촤악!

   서걱!

     

   그야말로 종횡무진 파죽지세.

   인원이 많다 보니 마왕의 하수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고 그에 따라 그들은 다 같은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마왕의 하수인을 처치하셨습니다.]

   [마왕이 약화됩니다.]

     

   “금린이시여.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마왕성.

     

   “어떻게 하시겠…”

   “문을 바로 열겠습니다. 신속하게 움직여 주세요.”

     

   금린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마왕성의 문을 열었다.

   이번 임무는 마왕이 힘을 되찾기 전에 그를 처단하는 것. 힘을 되찾는다는 언급이 있었던 만큼, 마왕을 빨리 만나는 것이 임무 클리어의 핵심 요소가 될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쿠구구구…!

     

   육중한 크기의 철문이 굉음을 내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달한 마왕성의 내부.

     

   “굉장히 어둡군요…”

   “시야부터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대한 로비에 도착한 청린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고요한 분위기에 이질감을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알림음 하나.

     

   띠링.

     

   [마왕의 함정이 발동됩니다.]

     

   “이런…!”

   “다들 조심해라! 뭐가 나올지 모른다!”

     

   어두컴컴한 안개 속에서 청린이 그의 창을 뽑아 들며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하지만 잠시 후, 새로운 알림 하나가 청린의 시선을 빼앗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경계가 펼쳐집니다.]

   [로비를 벗어나 마왕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사는 오직 1명입니다.]

     

   주변의 안개가 걷히며 청린의 시야가 서서히 밝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앞에 보인 것은…

     

   “이런 미친…!”

     

   함께 마왕성까지 도달한 어인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

   하지만 그 자리에는 청린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그림자 기사들이 무기를 꺼내 들며 서슬 퍼런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새로운 임무가 주어집니다.]

   [모든 적을 무찌르고 마왕에게 도전하십시오.]

     

   [남은 그림자 기사 42/42]

     

   그렇게 받게 된 임무.

   청린은 그를 향해 달려드는 기사 하나를 보며 망설이지 않고 창을 휘둘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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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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