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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8

   EP.98

     

   “그래서 뭘 팔고 있는데?”

     

   토끼의 등장으로 순간 잊을 뻔했지만 내가 들어온 곳은 마을 내부에 있는 상점.

   모험가들을 위한 장비가 마련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었으니, 나름대로 쓸 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오, 물건 사러 왔었구나! 여기 한 번 구경해 보십쇼!”

   “……진짜 적응 안 되네.”

     

   은발 적안의 여인이 늘상 듣던 토끼의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니 아직도 어색함과 괴리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이 진열장에 전시된 물건을 보여주니 이곳에는 5층답게 튜토리얼 상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진귀한 물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

   [그리핀 도살자]

   종류 : 무기

   랭크 : B

   설명 : 그리핀의 발톱을 가공하여 만든 할버드이다. 때묻은 흔적이 남아 있지만, 여전히 사용감은 좋다. 날을 제외한 손잡이도 강철로 만들어졌기에 웬만하면 잘 부러지지 않는다.

     

   효과

   – [출혈 C+]

   – [절단 B-]

   —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부피가 큰 무기.

   하지만 애초에 검을 기초로 모든 전투를 치르며 여기까지 올라왔기에 검 이외의 무기에는 특별히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이건 좀 괜찮아 보이네.”

     

   —

   [한철검]

   종류 : 무기

   랭크 : B+

   설명 : 오래 묵은 한철로 가공한 검이다. 빛을 받을 때, 검신이 푸른빛을 띤다. 미스릴과 흡사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약간의 신성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 무게가 가벼워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효과

   – [신성 C]

   – [한기 C+]

   – [견고함 B+]

   —

     

   나의 눈에 들어온 푸른빛을 띠는 검 한 자루.

   외형도 내가 현재 사용 중인 무명검과 흡사해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았고 신성이라는 효과 때문인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얼마야?”

   “한철검이라…! 으음! 이건 얼마냐면!”

     

   토끼가 검을 들어 검신과 손잡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진중한 눈빛. 지금까지 보였던 가벼운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었기에 새삼 녀석도 탑을 오르던 플레이어라는 사실이 실감이 됐다.

     

   “에…그러니까…”

     

   하지만 물건을 감정하던 녀석은 곧바로 가격을 측정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 모르겠다. 주인장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응?”

     

   검을 보며 한껏 인상을 쓰고 있던 토끼가 종종걸음으로 카운터를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멀리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우락부락한 남성에게 다가갔고 그때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오오, 한철검을 사시려고? 예쁜 아가씨가 안목도 나쁘지 않구먼 그래! 백발에 적안이라… 검과 꽤 잘 어울리니 내가 좀 깎아줌세!”

   “아싸!”

     

   상점에 들어왔을 때, 녀석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

   녀석은 플레이어였고 플레이어는 탑의 주민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불청객이었다.

     

   “이히힛!”

     

   ***

     

   “후우… 고생하셨습니다. 주변에 괴물은 더 없는 것 같으니 여기에서 잠시 쉬죠.”

     

   김시인이 없는 동안 임시 리더가 된 박조철.

     

   처음에는 나름 연장자에 전략 이해도가 높은 남궁천호가 앞장을 설 뻔했으나,

   박조철의 초감각이라는 특성이 현시점에서 생존율을 높여주었기에 만장일치로 그가 앞장을 서게 된 상황이었다.

     

   “이제 마왕성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지난 며칠을 쉬지도 않고 계속 달려왔으니까요.”

     

   박조철과 남궁천호의 대화에 한가민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레이피어에 묻은 피를 닦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응고된 피와 땀이 덕지덕지 묻은 그녀.

   찰랑거리던 금발 머리가 이제는 붉은색에 가까운 빛을 보이기 시작하자 한가민은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한껏 투덜거렸다.

     

   “후우… 진짜 더럽게 많네요. 목적지랑 가까워져서 그런가?”

   “아마도 그런가 봐. 오는 길에 처치한 하수인만 해도 마왕성에 인접할수록 더 강하고 수도 많았잖아.”

   “그나마 마을 상점에서 무기를 새로 장만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맨손으로 싸우고 있을 뻔했네요.”

     

   한가민이 조금 전에 피를 닦아낸 레이피어를 들고 이가 나간 부분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출발하기 전에 구매한 레이피어 한 자루.

   현철과 한철을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들었다는 이 검이 한가민은 꽤나 마음에 든 상태였다.

     

   “저도 가민이처럼 무기를 하나 장만할 걸 그랬나 싶습니다. 선술을 사용하다 보니 육탄전을 할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뒤로 미룬 건데… 쩝. 조금 아쉽군요.”

     

   남궁천호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단검을 이리저리 살피자, 그 모습을 보던 서세영이 이해한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뭐, 값이 싸진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죠. 싸구려 무기 하나가 만 단위는 훌쩍 넘어가 버리니……”

   “맞아요. 남궁 아저씨는 마력에 코인을 투자하는 게 오히려 이득이에요. 저희가 하는 자잘한 칼질로는 잡몹이나 잡지, 오우거 같은 커다란 괴물에는 아저씨가 날리는 화염포가 제격이거든요.”

     

   팀의 서포터 겸, 광역 딜러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남궁천호.

   박조철과 서세영도 한가민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가 나간 검을 보는 남궁천호의 마음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토끼의 어쭙잖은 장난도 잠시.

   나는 상점에서 한철검을 비롯한 물건을 몇 가지 추가로 구매한 뒤, 그곳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싸게 잘 산 것 같네.”

   “그죠? 제가 잘 골라준 덕이라니까요!”

   “……뭐,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상점 주인은 내가 한철검을 일시불로 구매한 이후로, 돈 냄새를 맡고 나에게 다양한 물건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핀의 부리로 만들었다는 활과 식인 식물의 줄기로 만들었다는 가시 채찍 같은 다양한 물건들.

   물론 검 외의 무기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물건을 가져올 때마다 토끼가 했던 행동들이 가관이었다.

     

   「우와! 이거 진짜 멋지네요! 이 활시위는 오우거 힘줄인가요? 강화 마법도 걸린 것 같은데, 이런 거 구하려면 한 30,000 코인은 들었겠어요!」

   「오오! 물건 볼 줄 아는구먼? 하핫! 사실 이거 들여오는데 12,000 코인밖에 안 들었네. 이거 팔던 놈이 행상인인데 오우거 힘줄을 못 알아보지 뭔가?」

   「이야 대박! 이런 변방에 있을 인재가 아니십니다! 다른 건 괜찮은 건 또 없어요? 이참에 다 보고 싶은데!」

     

   자고로 사람이란 자랑거리가 있는 경우 굳이 할 필요 없는 말도 떠들게 되는 법.

   심지어 상대가 외모가 빼어난 이성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상점 주인은 토끼의 화술에 말려 자신이 가진 괜찮은 물건들의 패를 다 까발렸다.

     

   신전에 약간의 기부를 해서 축복을 공짜로 받은 은화살 더미.

   묵철로 만든 갑옷인 줄 알고 사 왔는데 알고 보니 현철(玄鐵)로 만들어진 고급 체인 메일.

   그리고 철검을 단체 주문하며 섞여 들어온 한철검에 대한 비밀까지.

     

   그 물건들을 모조리 구경했을 때, 토끼를 나에게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고 상점 주인은 그제야 자신이 눈앞의 교활한 여인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럼 이 한철검은 철검 값으로 사 왔다는 말이네요?」

     

   물건 값을 후려치는데 도가 튼 녀석.

   나는 녀석 덕분에 그곳에 있는 물건 대부분을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고맙다.”

   “네에에? 잘 안 들리는데 뭐라고 하셨죠?”

   “덕분에 싸게 잘 구한 것 같아서 고맙다고.”

   “히힛.”

     

   다 들렸으면서 굳이 한 번 더 물어 오는 녀석.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생글거리는 녀석을 보니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어 조금 전에 구매한 물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것부터.’

     

   —

   [아공간 주머니]

   종류 : 가방

   랭크 : B

   설명 : 은빛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다. 공간 마법과 경량화 마법이 고정되어 있어 내부에 물건을 보관하기 좋다.

     

   효과

   – [공간 창출 C+]

   – [경량화 B]

   – [보존 C+]

   —

     

   나의 옆구리에 걸린 자그마한 주머니에 물건이 쏙쏙 들어가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지금까지 옷소매나 품 여기저기에 물건들을 보관하고 음식은 필요할 때마다 튜토리얼 상점에서 공수했는데 주머니 하나에 모든 물건이 들어가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검까지 들어가니 좀 당황스럽긴 하네.”

   “마법이니까요!”

     

   옆구리에 검 두 자루를 차고 다니면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것도 무리 없이 해결된 상황.

     

   나는 다음으로 구매했던 포션들의 개수를 체크했다.

   현재 나와 함께 임무를 진행할 플레이어가 없었기에 넉넉한 포션은 필수였다.

     

   —

   [초 회복약] x 20

   종류 : 소모품

   랭크 : B+

   설명 : 33가지 이상의 고급 약초와 성수를 응축한 물약이다. 사용 시, 자잘한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고 실명이나 기절과 같은 상태 이상에도 효과가 좋다. (단, 내상에는 복용이 효과적이고 외상에는 바르는 게 효과적이다.)

     

   효과

   – 상처가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

   – 복용 시, 일정 시간 회복력이 유지된다.

   – 너무 많이 사용할 경우, 중독의 위험이 따른다.

   —

     

   ‘값은 좀 나갔지만 필요했다.’

     

   이제 하급 회복약으로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

   능력치가 너무 오른 탓인지 마셔봐야 일반적인 물과 큰 차이가 없는 액체.

     

   어쩔 수 없이 할인을 받지 못한 소모품들이었지만 이것 하나가 목숨 하나의 가치라고 생각하면 아쉬울 건 하나도 없었다.

     

   “이제 출발하십니까?”

     

   옆에 있던 토끼의 물음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열흘.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5층을 클리어해야 했기에 이제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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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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