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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0

   EP.100

     

   전방에서 날아드는 한 자루의 거대한 도끼.

   기교나 속임수 따위는 없는 정직한 공격이었지만, 파괴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쐐애애액!!!

     

   “조심해요!”

     

   내 옆에서 적당히 튈 준비를 하고 있던 토끼가 기함을 토하며 소리친다.

   두 자루의 도끼 중 하나를 내게 던진 회색 오크가 곧장 남은 도끼를 꺼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도끼 하나를 던진 것은 상대의 발을 묶어두려는 의도.

   뭐, 그런 것치고는 저거 한 방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골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체격만 봐도 근접 전투 자체를 즐기는 놈인 것 같았기에 다음 수를 염두에 둔 것 같았다.

     

   ‘이런 놈들이 백 마리라…’

     

   어마어마한 파공음을 터트리며 공중을 회전하는 도끼가 보인다.

     

   저런 것을 정면으로 받았다가는 칼이 부러지든 팔이 부러지든 할 것은 당연지사. 그런 결과로 나는 도끼를 피한 뒤, 반격을 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려고 했다.

     

   하지만.

     

   “쓰읍.”

     

   나는 다시 몸을 세워 무게의 중심을 정면으로 바로잡았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거리와 속도다.

   허나 내 뒤에 있는 인간을 보니 마냥 피했다가는 이 녀석이 비명횡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물러서!”

     

   나는 한철검과 무명검을 동시에 뽑아 들며 검기를 방출했다.

   한 자루로도 못 막을 것은 없었지만 아직 사용해 본 경험이 없는 한철검의 내구도를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부러지기라도 하면 그것이야말로 대참사.

   막아서는 안 됐다. 이것은 흘려야 하는 공격.

     

   그리고 놈의 도끼가 일정 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나는 왼손의 무명검을 비스듬하게 들며 몸을 비틀었다.

     

   카가가가강!!!

     

   철과 철의 마찰이 따가운 불꽃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왼손의 감각. 도끼의 크기가 큰 만큼 마찰이 일어나는 순간이 길었고, 그 때문에 나에게 달려드는 회색 오크가 더 빠르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흐읍!”

     

   하지만 회색 오크는 나를 얕보고 있었다.

   코인을 투자하며 늘 상 최고치의 능력치를 유지하던 나와 근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카아앙!!!

     

   흘려내던 도끼를 쳐냄과 동시에 그 힘을 역이용해 몸을 회전시켰다.

   곧장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코앞까지 다가온 회색 오크의 징그러운 대가리였다.

     

   피이잉!

     

   공기를 스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군더더기 없이 들어간 완벽한 공격. 오른손의 한철검이 그대로 오크의 목을 지나치자, 오크의 머리가 소리도 없이 그저 툭 하고 떨어졌다.

     

   “이거 뭐야…?”

     

   검의 예리함은 한철검을 구매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물론 마력으로 검기를 날카롭게 벼렸던 탓에 더 깔끔하게 목을 친 것도 있겠지만, 이 정도의 결과물은 상상 이상이었다.

     

   “와우?”

     

   뒤에 있던 토끼의 빨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떨어진 오크의 머리통을 살폈다.

   비정상적으로 깔끔한 단면.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점은 단면에서 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 이 회색 오크 절단면, 얼었는데요?”

     

   내가 익힌 월광심법의 음기가 한철검에 닿으며 상승효과를 일으킨 것.

     

   나는 들고 있던 한철검의 검신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가 나가기는커녕 피도 묻어 있지 않은 검을 보니, 이런 검 한 자루가 몇만 코인이나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퀴익? 저 인간. 생각보다 강하라!

   -차가운 검. 위험! 조심하라!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학살을 당하던 키링노움과 달리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격을 가한 적에게 경계와 살의를 보내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주변에 있던 회색 오크들의 머리가 나를 향해 꺾였다.

   광기가 가득한 검은 눈동자. 그리고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놈들이 동료의 죽음을 보았음에도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웃음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와! 우와! 김시인 플레이어, 이거 진짜 잘못 건드린 거 같은데요!”

   “이런 미친… 저 새끼들 왜 웃는 거야?”

   “원래 오크 종족이 좀 많이 호전적이라 그래요! 계속 키링노움만 죽이다가 위험한 적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짜릿한 거겠죠!”

   “변태들이네 아주.”

     

   한둘도 아니고 이제는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오크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느껴지는 투박하고 무거운 위압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조금 전에 내가 한 합에 한 놈을 베어 버렸다는 사실에 놈들도 신중해졌다는 것이었다.

     

   ‘뒤돌아서 뛰면 곧장 쫓아오겠지.’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물론 결국 이곳을 벗어나긴 해야겠지만 약간이라도 박자가 어긋나면 수백 자루의 도끼가 날아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근데 나 궁금한 거 생겼는데요!”

     

   그런 와중에 나에게 질문을 하는 토끼.

   좀 뜬금없는 타이밍이긴 했지만, 나름 도우미 녀석의 말이기에 나는 순순히 녀석의 물음에 답했다.

     

   “뭔데? 빨리 말해, 시간 별로 없는 거 같으니까.”

   “아까 왜 안 피했어요?”

   “……뭐?”

     

   뜬금없는 질문.

   하지만 녀석의 얼굴을 보니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오히려 답을 하지 않고 반문했다.

     

   “알고 물어보는 거냐? 아니면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냐?”

   “알고 물어보는데요?”

     

   놈이 나를 보며 씨익 웃음을 짓는다.

   아무리 봐도 겁을 집어 먹었다거나 긴장을 한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습에 나도 괜히 긴장이 풀린다.

     

   “……”

   “헤헷, 들은 셈 칠게요! 이거이거… 플레이어가 목숨 걸고 지켜 주는 도우미는 나밖에 없을 거야!”

   “후우…”

     

   키링노움을 보며 매사에 장난이 어쩌고 떠들던 녀석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심각한 상황에 진지함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모습. 하지만 녀석 덕분에 머리가 정리된 것도 사실이었다.

     

   ‘움직이는 놈이 있군.’

     

   이제 보니 전방에 있는 놈들만 가만히 나를 주시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놈들은 각자의 병장기에 슬며시 손을 올리고 있었으니, 얼마 안 가 전투가 시작될 것 같았다.

     

   “내가 셋을 셀 테니까 뒤로 뛰어.”

   “오, 셋인가요? 박조철 플레이어랑 남궁천호 플레이어 보니까 그런 거 별로 효과 없던데!”

   “하나.”

     

   꿈틀.

     

   한 마리 한 마리가 바위 같은 놈들이 움직이니 숲 전체가 요동친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치 상황. 나는 도주로를 흘깃한 뒤, 다시 수를 셌다.

     

   “둘.”

     

   어떤 낌새를 느낀 듯, 놈들 중 일부가 반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 수를 떨어뜨리며 나는 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초식을 터트렸다.

     

   “셋! 뛰어!”

   “오케이!”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한철검으로 펼쳐 낸 월광검법의 두 번째 초식.

     

   나의 검 끝으로 무수한 검기가 응축되며 이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탑의 2층과 3층에서 사용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화려한 검무.

     

   한철검의 효과로 음기가 보강되니 그저 빛을 발하던 수십 갈래의 칼날들이 서늘한 한기를 쏘아내기 시작했다.

     

   -막으라! 퀴익!

   -인간 놈들 도망친다! 잡으라!

     

   차아아앙!!!

   카카캉!!

     

   그나마 근접했던 몇 놈들이 도끼와 거대한 창을 던져댔지만 대부분이 빛무리에 가로막히거나 튕겨질 뿐,

   뒤를 돌아 달아나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닿는 무기는 없었다.

     

   -포위하라! 퀴익!

     

   대장으로 보이던 한 놈의 외침에 오크들이 산개하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놈이 뿔피리까지 부는 걸 보니, 다른 구역의 놈들을 시켜 우리가 가려는 길목을 미리 막아두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하지만 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감히 멧돼지 대가리 괴물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인간의 보법이었다.

     

   추뢰신법 追雷身法

     

   파지지직!

   타아앙!!!

     

   나는 나보다 앞서 달려갔던 토끼를 단 몇 걸음 만에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때쯤, 내가 자신을 따라왔다는 것을 인식한 토끼가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와! 빠른 줄은 알았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빠르네요? 나 나름 토낀데, 나보다 빠르면 자존심 상하죠!”

   “그게 중요해 지금? 조깅하는 것도 아니고 잡담은 여길 벗어난 다음에 해!”

   “에잉, 정 없긴…… 아, 지금 보다 더 빨리 벗어날 수도 있긴 한데! 조금만 도와줄래요?”

     

   토끼의 말에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녀석이 말한 빠른 방법이란……

     

   폭.

     

   “…너 뭐 해?”

   “뭐긴 뭐예요! 이게 제일 빠르지!”

   “미쳤어?”

     

   순식간에 나의 등에 업혀 목을 감싸는 녀석.

   한 번씩 급할 때, 한가민을 안고 달린 적은 있었지만 누가 이렇게 뒤에 먼저 매달려서 달리는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근데 이게 더 편하긴 하네.’

     

   팔과 다리에 자유가 있다는 것.

   애초에 사람 하나 업는다고 근력이 부족할 일 따위는 없었으니, 토끼의 말마따나 빨라지는 방법이긴 했다.

     

   “이번 한 번 만이다.”

   “오예-! 쿠엑!”

     

   녀석이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다가 순간 혀를 씹은 듯, 옅은 비명을 터트렸다.

   뒤돌아보니 눈물이 찔끔 맺힌 녀석. 하지만 녀석은 초반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도우미답게 네비게이션의 역할로 1인분을 충분히 해냈다.

     

   “저쪽으로 갑시다!”

   “후우! 안 돼. 그쪽은 오른쪽으로 돌아간 놈들한테 따라잡힐 수도 있어.”

   “에이! 나 믿고 가 봐요! 나 토끼! 귀 밝음! 오케이?”

     

   녀석의 말마따나 내가 움직이는 길목에서는 오크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나마 한 둘쯤이 멀리서 보이기는 했지만, 애초에 우리를 발견하지는 못한 것 같아 거리는 조금씩 더 벌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뿌우우-

   뿌우우-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 계속해서 이곳저곳에서 울려대는 뿔피리.

   이제 보니 회색 오크뿐만 아니라 별의별 해괴하게 생긴 색깔의 오크도 하나둘 추가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수가 얼마나 많은 거야?’

     

   토끼의 말을 들어 보니, 오크들이 계속해서 증원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무리를 이끌고 도시로 돌아가면 경비고 나발이고 작살이 날 것은 분명한 상황. 그리고 그걸 토끼도 알아챘던지, 등 뒤에서 녀석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김시인! 우리 몰이사냥, 일망타진 고?”

   “허억! 허억…! 어떻게?”

   “저어어기! 저쪽으로 가요!”

     

   토끼의 말에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어차피 체력과 마력도 아슬아슬한 상황. 더 이상 도망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았기에 녀석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처억.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두컴컴한 숲의 한가운데.

   정확히는 웅장한 건물 하나가 바로 옆으로 보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거대 호수였다.

     

   “허억… 야… 여기 뭐야.”

   “뭐긴 뭐예요! 호수지!”

   “그 말이 아니잖아!!!”

     

   그렇게 녀석의 말에 따라 한참을 움직인 결과.

     

   나는 며칠은 꼬박 걸려야 도착했을 마왕성을 단 한 시간 만에 주파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느 덧 100화에 접어들었네요.
전작을 95화에 완결을 쳤던 터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Ilham Senjaya님 100화까지 함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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