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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1

   EP.101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우미 출신인 토끼 녀석을 믿은 것이 실책이었을까?

     

   쿠구구구-!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유인하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곳으로 달려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지금 내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크라아아!!!

   -퀴익! 우! 우!

     

   어느샌가 회색 오크뿐만 아니라 붉은색, 푸른색, 그 외 잡다한 알록달록 오크들이 정모를 시작한 상황.

   저놈들은 나름대로의 규칙이나 법도가 있었던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도 시비가 붙거나 공격을 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젠장.”

     

   나는 나를 사지로 몰아넣은 토끼에 대한 의심은 잠시 제쳐두고 최근 상점에서 구매한 포션을 꺼내 들었다.

     

   [ 초회복약 ]

     

   한 병에 3,000코인이나 했던 포션.

   한 병 한 병을 목숨 하나라 생각하며 구매했던 터라 지쳤다는 이유만으로 상처도 없이 쓰려니, 괜히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시. 더 이상 다른 방법을 궁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벌컥벌컥!

     

   “……!”

   붉은 계통의 물약답게 체리향이 난다.

   씁쓸한 게 감기약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그 효과는 감기약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미안할 정도로 극적이었다.

     

   띠링.

     

   [초회복약을 복용합니다.]

   [체력이 회복됩니다.]

   [상태 이상, ‘탈진’이 회복됩니다.]

     

   마시자마자 빈틈없이 느껴지는 깔끔한 반응.

   부족했던 체력이 급속도로 회복되며 흐르던 땀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몸의 기운이 정상화됐다.

     

   “후우…”

     

   달아올랐던 심장 박동이 가라앉으며 주변을 차분하게 보게 만든다.

   잔잔하던 호수가 놈들의 뜀박질로 요동치고 있었고 그 여파로 몇 년간 그 자리를 지켰을 것 같은 바위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엥? 그걸 왜 벌써 마셔요! 아깝게!”

     

   나의 모습을 본 토끼가 빼액 소리치며 입맛을 다셨다.

     

   “갑자기 뭐가?”

   “아니, 너무 빨리 마셨잖아요! 그렇게 안 급해도 됐는데!”

     

   본인이 만든 위기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어이가 없었지만,

   잠시 후 나는 일렁거리는 호수의 수면을 보며 녀석이 왜 저런 반응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게… 뭐야?”

     

   수면으로부터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

   심장이 서늘했다. 미지에 대한 공포. 빠른 납득을 배운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압도감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했다.

   탑 안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리가 만무했다.

     

   “혹시 그런 이야기 좋아해요? 자연에서 발생한 초월적인 괴물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나의 반응을 예상한 것인지, 토끼가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북유럽에 나오는 크라켄 같은 거?”

   “뭐, 바다에는 크라켄이지만 여긴 호수니까 네시호수의 네시 같은 거라고 보면 더 잘 어울리겠죠?”

     

   부우우우-

     

   이윽고 호수에서 물보라가 일었다. 호수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

   비행기만한…… 아니,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기계공학의 산물보다 압도적인 생명체.

     

   멀리서 나를 보고 헐레벌떡 호수로 달려오던 오크들도 그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슬슬 뜀박질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퀴익! 멈추라! 여기 이상하다!!!

   -우우우…! 위험! 뒤로 빠지라!!!

     

   가장 선두에 있던 회색 오크들이 혼비백산하며 뒤에서 오던 붉은 오크들과 뒤섞인다.

   그리고 잠시 후.

     

   호수 속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나의 시선은 그것을 따라 자연스럽게 다시 하늘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동양의 용과 흡사한 모습.

   수염만 안 달렸지, 뱀 같은 체형에 앞발이 살짝 웅크린 것을 보니, 내가 아는 그 익숙한 용이 맞는 것 같았다.

     

   「■■■■!!!!!」

     

   띠링.

     

   [호수의 지배자를 마주합니다.]

   [격의 차이로 상태 이상에 빠집니다.]

     

   [상태 이상 ‘공포’가 엄습합니다.]

   [상태 이상 ‘혼란’이 찾아옵니다.]

   [상태 이상 ‘위축’이 발생합……

   ……

   [‘빠른 납득(B)’이 발동됩니다.]

     

   놈을 보는 순간 무수하게 솟아오르는 상태 이상들.

   나야 ‘빠른 납득’의 효과로 대부분의 상태 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곳의 현지인들은 그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

   -……

     

   괴물과 눈을 마주치자 할 말을 잃은 채 하얗게 질려 버린 오크들.

   그렇게나 각양각색이었던 오크들이었건만 이제 보니 개성이랄 건 하나도 없는 똑같은 멧돼지들로 보였다.

     

   [초회복약을 복용중입니다. 상태 이상에서 벗어납니다.]

     

   조금 전에 마신 초회복약이 효과를 발휘하자, 호흡이 점점 더 정돈되기 시작했다.

   비로소 보이는 역변된 주변의 풍경. 처음 봤던 위압감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이제야 놈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비늘. 기다란 주둥이와 세로로 찢어진 날카로운 눈동자.

   덩치도 오크보다 한참 거대하긴 했지만, 3층에서 봤던 사막 지주왕 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지, 감당 못 할 괴물까지는 아니었다.

     

   -크…우우……

   -도, 돌아가고…싶…우우…

     

   하지만 오크들은 호랑이 앞의 쥐떼처럼 그 자리에 굳어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었다.

     

   전투는커녕 움직일 의지조차 상실한 듯한 놈들의 모습.

   게다가 추가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오크들의 발 구름에 놈은 단잠에서 깨어난 건지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쩌…저적.

     

   “응? 방금, 저 녀석 피부가…”

     

   괴물이 꿈틀거리자 매끈해 보였던 놈의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날개가 펼쳐지는 과정. 세로로 기다랬던 몸집이 가로로 불어나기 시작하자, 오크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우… 저거 날개도 있었네요? 내가 5층 오를 때만 해도 저런 건 없었던 거 같은데.”

     

   그것을 본 토끼의 말.

   나는 녀석을 돌아보며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그땐 어떻게 잡았는데?”

   “잡긴 뭘 잡아요. 도망갔지. 저게 저렇게 보여도 엄청 쎄요. 격도 거의 도우미랑 동급이거나 그 이상쯤?”

     

   놈이 등장하고 오크들이 위축되는 것을 봤을 때는 나름대로 돌파구가 생긴 게 아닌가 생각했다.

   어차피 마왕성에는 최대한 빨리 왔어야 했고 이 기회에 몬스터를 쓸어 버리며 마왕을 잡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결말도 없었을 테니깐 말이다.

     

   「크롸아아악!!!」

     

   펄럭!!!

     

   근데 또 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 굴로 들어온 게 아닐까 싶었다.

   나 또한 저 오크들을 포함해, 괴물의 보금자리를 침범한 침입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타닥. 탁. 타다다닥.

     

   괴물이 날개를 펼치는 순간, 놈의 몸에서 나온 무언가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비가 오듯 쏟아지는 크고 작은 무언가. 하지만 이내 나는 그것이 호수 속에 있던 수많은 식량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조개에 게에 가재에…… 이건 다슬긴가?”

     

   내가 사흘을 살아본 결과, 5층의 생명체들은 몬스터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자신의 구역을 지키고 남의 구역을 빼앗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모두가 마왕성을 중심에 두고 움직일 수 있는 행동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특수한 환경.

   삶의 터전을 지키지 못하면 식량의 공급이 줄어드니 개체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개체가 줄어들면 경쟁력이 떨어져 그 종 자체가 멸망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 고로……

     

   -쿠,쿠워어어억!!!

   -음식…! 음식이라!!!!!

     

   놈들의 눈에 지금 저 호수의 지배자라 불린 드래곤이 오크의 모든 식량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크들 중에서 그나마 빠르게 정신을 차린 한 놈이 포효했다.

   그 포효를 듣고 깨어난 오크가 다시 고함을 치고, 그것에 눈이 돌아간 다른 놈이 또 괴성을 지른다.

     

   -우! 우! 우!

   -쳐라아아아!!!

     

   그렇게 시작된 대규모 전투.

   이제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회색 오크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놈을 필두로 모든 오크들이 병장기를 집어 들었다.

     

   “거, 거, 거 봐요! 제 예상대로 됐죠?! 어쨌든 마왕성에만 도착하면 된다니까! 하핫!”

   “……어휴.”

     

   그 와중에도 얻어걸린 것으로 생색을 내려는 토끼.

   나는 짧게 한숨을 쉰 뒤, 길을 뚫기 위해 검을 꺼내 들었다.

     

   ***

     

   오크들의 호수 드래곤 레이드.

   수백의 우락부락한 오크들이 한꺼번에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장관이었다.

     

   -식량! 크워어억!

     

   쩌어억!!!

     

   -오크! 존속! 미래!

     

   빠아악!!!

     

   꼬리에 맞아 나가떨어지고 날개에 맞아 튕겨져 나가는 오크들.

   기세등등하게 달려든 것치고는 오크들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들의 인해전술만큼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인 전술이 또 없긴 했던지,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은 지쳐갔다.

     

   그나마 똑똑한 놈들이 무기를 던지기 시작하자,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어나는 호수 괴물. 처음 가졌던 예상과는 달리, 괴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보였다.

     

   “물량에는 장사 없네요.”

   “이건 조금 이른데……”

     

   언제부턴가 물에는 허리까지만 담근 채 투창을 하는 오크들을 보자,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저 드래곤이 당하게 된다면 이곳은 모두 오크의 땅이 되어 버릴 상황.

   나의 목적이 마왕성에 입장에 마왕을 잡는 것이라고는 하나, 환경이 완전히 격변할 정도의 변화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 모른다. 저놈들 중에 마왕 비슷한 게 나타날지.’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면 격이 급속도로 상승한다.

   만약 저놈들 중에 한 놈이 괴물 사냥에 성공해, 높은 격을 얻게 된다면? 마지막 일격을 날린 한 놈이 오크들의 식량난을 해결해서 불확실하던 미래를 밝힌다면?

     

   자고로 인간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만 해도 성장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게다가 저놈들은 다른 종족도 아니고 전사 종족인 오크.

   아주 잘 먹고 안전하게 잘 자고 먹은 만큼 잘 싸게 만들어 줄 단 한 놈이 격을 뛰어넘는 괴물로 성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벅.

     

   “엥? 김시인 씨 어디 가요? 마왕성은 그쪽이 아닌데요?”

     

   나는 오크들이 레이드를 벌이는 호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오크들의 개체 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놓는 것.

     

   그리고 물에서의 격한 전투는 나에게 있어 나름 최근에 겪어본 익숙한 전투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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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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