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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4

   EP.104

     

   -우, 우리 그만하지 않을래?

     

   순간적으로 호수를 울린 낯선 한마디에 나는 전투가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 소리의 출처를 파악했다.

     

   “방금, 네가 말했어?”

   “어…… 저 아닌데요?”

   “그럼?”

     

   우렁찼지만 생각보다 하이톤의 목소리.

   내 뒤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있는 이 백발의 여인이 아니라면 지금 나의 눈에 들어오는 생명체는 단 하나뿐이었다.

     

   -히익!

     

   우리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자 금세 기겁을 하며 몸을 움츠리는 놈.

     

   “……말을 하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끼를 바라봤다.

   하지만 상황 파악이 안 된 것은 녀석 또한 마찬가지였고 녀석이 짓고 있는 표정을 보니, 녀석에게 물어봐야 특별한 정보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 말을 하는 드래곤이라……’

     

   토끼가 지금까지 말했던 바에 따르자면 격이 높아질수록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된다고 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괴물들만 해도, 튜토리얼 더미나 좀비 따위는 오직 본능에만 충실하며 사람을 공격한 반면, 백수원숭이나 지주왕, 오크들은 뭔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도우미와 비슷한 격을 가진 짐승이라면…… 말을 못할 것도 없었다.

     

   스스슷.

     

   “어엇, 왜 마력을 흩어요! 저놈이 공격하면 어쩌려고!”

     

   내가 열화의 호흡으로 끌어올린 마력을 흩으며 염화(炎化) 상태에서 벗어나자, 토끼가 당황하며 나에게 말했다.

   내 성격에 전투가 종결된 것도 아닌데 힘을 거두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모르잖아요!”

   “뭐, 일단 대화나 해 보자고. 그러자고 하잖아?”

     

   내가 적당히 무명검을 착검하며 드래곤을 바라보자, 녀석이 언제부턴가 글썽이던 눈을 빛내며 나를 내려다 봤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동자.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녀석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직 열화의 호흡과 무명검을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 넣지 않은 것, 하지만 대화를 위해서는 놈의 경계를 풀 필요가 있었기에 필요한 조치였다.

     

   -그… 지금 싸움 끝난 거 맞지? 그렇지?

   “네가 더 이상 덤벼들지 않겠다면.”

   -그으…래?

     

   놈의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한다.

   품에 넣었지만 아직 열기를 뿜어내는 열화의 호흡과 여전히 옆구리에 걸려 있는 검 한 자루.

     

   그리고 놈이 뭔가 나를 재단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자, 나는 다시 검에 손을 가져갔다.

     

   “나도 힘을 빼고 싶지는 않은데 네가 계속 덤벼들 거라면 사양하진 않겠다. 너를 죽이면 뭔가 탑에서 반응이 올 것 같기는 하거든.”

   -지, 진정해! 갑자기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해서 힐끗거리는 게 꼴 보기가 싫네.”

   -미친 인간…!

   “뭐?”

   -음, 아, 어.

     

   당황한 듯, 내 눈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녀석.

   나의 단호한 반응에 당황한 녀석이 짜리몽땅한 팔을 휘저으며 머리를 필사적으로 가로젓기 시작하자 나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녀석에게 말을 던졌다.

     

   “일단 이쪽으로 좀 와 봐. 네가 먼저 그만하자고 했으니까 신뢰를 보여줘야지.”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위협이 될 수 있는 말.

   좀 단순한 말로 녀석을 꼬셔보려 했지만, 녀석도 그 정도의 지능은 있었던 모양이다.

     

   -시, 싫어! 갑자기 공격할 줄 어떻게 알고?

   “어? 안 믿어? 싫음 말아. 힘들게 인간 언어로 말하는 것보다 싸우는 게 편하다는데 그렇게 해 줘야지.”

     

   하지만 지금 이 대화에서 손잡이를 쥐고 있는 사람은 저 드래곤이 아니라 나였다.

     

   내가 열화의 호흡을 꺼내자마자 항복했던 녀석.

   시작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몇 수를 주고받은 상태에서 저렇게 행동했다는 것은 놈이 나에게 불이라는 약점을 노출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도 녀석의 꼬리에 맞아서 나가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지금 저놈의 반응을 봐서는 그 공격도 의도해서 나온 공격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안 돼! 그래도 그건 너무 하잖아!

   “싫음 말라니까.”

   -아, 진짜! 아!

     

   겁은 나는데 내가 하자는 대로는 하기 싫은 표정.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반대의 상황에서 놈이 나더러 무기를 버리고 호수로 들어와서 대화를 하자고 했다면 곧장 칼부터 뽑았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말이 짧다?”

   -……응?“

   “그냥. 지금 상황을 보니 네 약점이 불이라는 것도 알겠고 싸움을 잘 못 하는 것도 알겠는데 너무 당당한 걸 보니 썩…… 기분 좋진 않네?”

     

   싸움의 기본은 기세라는 것.

   그리고 그 기세는 자신이 손에 쥔 패와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블러핑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모든 패를 까발려 버린 저 드래곤은 더 이상 기세로 나를 이길 수단이 없었다.

     

   -내, 내가 뭘 하면 되는데?

   “내가?”

   -아, 아니. 제가 뭘 하면 되는데……

   “되는데?”

   “……요.”

   “그렇지.”

     

   확실히 지능이 높긴 한지, 녀석은 금방 고분고분해졌다.

     

   “김시인 씨, 이런 사람이었어요?”

     

   은근슬쩍 옆으로 다가온 토끼가 운을 띄웠다.

   실망한 듯한 어조와 함께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보니, 이 녀석도 저 드래곤의 겁 많은 성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뭐, 네가 오기 싫으면 내가 갈까?”

   -아, 아뇨! 제가 갈게요! 제가 가고 싶어요!

     

   내가 품에서 열화의 호흡을 꺼내며 말하자 녀석이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걸음을 뗐다.

   날갯짓이나 수영은 좀 했어도 걷는 건 오랜만인지 과하게 뒤뚱거리는 녀석. 이렇게 보니 왜 그렇게까지 호수 밖을 싫어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왔는데요…… 진짜 공격 안 하실 거죠?

   “네가 먼저 공격하는 것만 아니면 안 한다니까.”

     

   하체 비만이 확실한 녀석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 몸이 슬쩍 뒤로 기운 것이, 내가 뭔가 위협이 되겠다 싶으면 곧바로 물로 뛰어들 심산인 것 같았다.

     

   “흠.”

   -……

   “흐으음……!”

     

   하지만 나는 곧장 말을 잇지 않고 잠시 녀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확실히 위압감이 넘치는 거대한 몸집과 단단한 비늘. 대충 봐도 마력이 흘러넘칠 것 같은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싸웠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지 않았을 것 같았다.

     

   ‘물론 이 녀석이 나한테 겁을 먹지 않았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예측.

   그리고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녀석은 겁 많은 성격답게 나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흠흠…! 혹시 뭔가 불편한 거라도…?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가까이서 보니까 덩치가 꽤 크다 싶어서 말이지.”

     

   나의 말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말 그대로 처음 봤던 것보다 덩치가 꽤 큰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을 뿐. 하지만 녀석은 내 말의 의도를 확대해석했고 덕분에 나와 토끼는 두 번은 못 할 신기한 구경을 할 수 있게 됐다.

     

   -마, 말씀을 하시지! 올려다보기 힘드시죠?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는 눈을 감는 녀석.

   그리고 한순간 마력이 드래곤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것을 인식하자, 나는 곧장 긴장하며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우웅. 우웅.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곧 터질 것이라 예상됐던 마력은 금방 갈무리됐고 그 이후 놈의 몸에서 빛이 나며 몸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오?”

     

   옆에서 드래곤의 변화를 지켜보던 토끼가 감탄을 터트리며 눈을 빛낸다.

   거대한 건축물에 가까웠던 빛 덩어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옆의 언덕보다 낮게, 그리고 숲의 나무보다 작게.

     

   “크기를 줄이는 마법이라니. 마법도 할 줄 알았군요.”

   “사실 나는 저 녀석이 육탄전으로 치고받기만 하는 게 더 이상하기는 했어. 드래곤하면 마법의 종족, 뭐 그런 개념이 있으니까.”

   “응? 지구에도 드래곤이 있었어요? 그런 건 없는 걸로 아는데?”

   “실제로는 없어. 근데 있어.”

   “그게 뭔 소리래.”

     

   나는 토끼와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가만히 녀석의 변화를 지켜봤다.

   하지만 웬걸. 녀석의 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줄어들었고 이윽고 나의 눈높이까지 떨어졌을 때, 서서히 변화를 멈추기 시작했다.

     

   “……뭐야?”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점은 따로 있었다.

     

   -크와아아앙.

     

   녀석이 기지개를 켜며 조용하게 그르렁거린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극적인 차이를 하나 꼽자면, 그 형상이 조금 전에 나와 혈투를 벌이던 도마뱀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이건 예상 못 했는데요.”

   “나도 그래.”

     

   토끼의 의문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인간’으로 변형된 드래곤을 바라봤다.

     

   바다가 연상되는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신비스런 미형의 외모.

   기다랗게 늘어진 푸른 원피스를 입은 녀석이 천천히 눈을 뜨니 그 속에 잠들어 있던 푸른 눈동자가 잠시나마 반짝인다.

     

   -…짜잔?

     

   녀석이 양손을 어색하게 들며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인다.

   뾰족뾰족한 송곳니가 주르륵 나열된 치열과 세로로 주욱 갈라진 날카로운 눈동자.

   그런 외모로 자신의 무해함을 최선을 다해 어필하는 녀석을 보니, 싸울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때.

   나의 눈앞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탑의 숨겨진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평소에 떠오르던 업적 메시지와는 미묘하게 표현이 다른 메시지.

   그리고 이어진 설명은 지금까지 겪은 적이 없던 변화를 불러왔다.

     

   [유일. ‘스스로 격을 초월한 피조물’을 대면했습니다.]

   [‘소환의 반지’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탑의 임무가 도착합니다.]

     

   —

   『주어진 기회 – 크레센도』

     

   주제 : 테이밍

   난이도 : ?

     

   설명 : 5층에서 태어나고 스스로 자란 블루 와이번. 성좌들은 탑에 발생한 오류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탑의 주인은 모든 권속을 어여삐 여겼고 그 이유로 크레센도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임무 : 크레센도와의 친밀도를 70% 이상으로 유지하십시오. [현재 : -13%]

   제한 : 5일 [마왕의 침공이 닷새 미루어집니다.]

     

   보상 : ‘크레센도’가 당신을 따릅니다. / ‘소환의 반지’ 강화

   실패 페널티 : 크레센도가 격을 잃습니다. / 모든 용족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

     

   갑작스러운 임무. 나를 보며 싱글거리는 푸르고 아름다운 외모가 눈에 들어온다.

     

   ‘이거 좀 위험했을지도.’

     

   친밀도 [-13%]라는 현실.

   속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저지른 짓이 있기에 납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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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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