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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EP.108

     

   한가민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또 다른 자신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과 똑 닮은 몬스터.

   지금까지 만나고 상대해왔던 고블린이나 노움, 오크 따위가 징그럽게 생기기는 했지만, 놈들은 이렇게까지 불쾌한 상대는 아니었다.

     

   “히히힛!”

   “……기분 나쁜 자식.”

     

   쇠를 긁는 듯한 이질적인 웃음.

   놈은 한가민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닮아 있었지만 입을 여는 순간부터는 확실히 놈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눈은 또 왜 저래?”

     

   눈을 자세히 보니, 녀석은 인간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홍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

   눈동자도 없이 그저 검게 물들어 버린 눈을 보고 있으니, 괜히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나는 한가민이었다.

     

   ‘빨리 끝내야겠네.’

     

   더 이상 놈을 보고 있자니, 괜히 역한 기분이 올라와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자신과 똑같이 생긴 레이피어를 드는 괴물. 임무의 제목이 한계 돌파인 것도 그렇고 자신이 복사된 듯한 괴물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능력도 비슷한 놈이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완전히 똑같을지도 모르고.’

     

   한가민은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녀석을 상대할 방법을 떠올렸다.

   놈이 만약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같은 방식의 전투를 선호한다면 필시……

     

   타앗!

     

   선수 필승(先手必勝).

   상대가 전략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시점에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와! 생각하는데 공격하네!”

     

   한가민의 분신이 그녀를 향해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곧장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횡 베기. 한가민이 사용하던 레이피어가 에스톡 같은 날이 없는 무기가 아니었기에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휘익!

     

   “느려 이 새끼야!”

     

   충분히 막고 반격할 수 있음에도 굳이 몸을 웅크려 공격을 피한 이유.

   애초에 이 기술은 한가민이 2층에서 배운 나름의 페이크 동작이었고 그녀는 곧 이어질 공격을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파팟! 채채챙!!!

     

   가짜의 검이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하며 몸을 회전시킨다.

   공격을 막았다면 검의 탄성을 이용해 곧장 반대편의 어깨를 치고 들어왔을 것.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어진 것은 한가민의 반격이었다.

     

   바닥으로 몸을 웅크린 그녀가 자신의 검을 뒤로 가져갔다.

   은밀한 기동과 정밀한 타격, 그리고 거리를 재는 것에 나름의 특출한 재능을 보였던 그녀였기에 익힐 수 있었던 쾌검술.

     

   쐐애액!

     

   무릎을 굽히고 있던 한가민이 용수철마냥 앞으로 몸을 튕기며 검을 내질렀다.

   그녀의 검이 공중에 잠시 채공하고 있던 가짜의 눈을 향해 날아들자 놈도 당황한 듯, 눈을 부릅뜬다.

     

   “하압!”

     

   한가민은 똑똑한 아이였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검술과 사용할 수 없는 검술을 빠르게 파악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가짜가 보인 기술은 기습을 성공하면 치명상을 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역공을 당하기 딱 좋은 양날의 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잇!”

     

   뚜두둑!

     

   가짜가 웃기지도 않은 기합을 터트리며 급격하게 몸을 뒤틀었다.

   사람이라면 돌아가지 않을 방향으로 삐거덕거리는 허리와 목. 그리고 그 순간 한가민은 등골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며 놈을 멍청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검이 적의 예상치 못한 회피 기술에 방향을 잃고 허공을 갈랐다.

   그나마 베어낸 것은 녀석의 뺨.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고작 뺨에 생긴 생채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서걱!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붉은 핏방울이 터진다.

   앞으로 쏠린 관성에 몸을 맡겨 몇 바퀴 바닥을 구른 한가민은 순간 욱신거리는 통증에 어깨를 부여잡았고 자신이 놈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가민이 입고 있던 백색 제복의 왼쪽 어깨가 붉게 물들어간다.

   깊게 베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같은 수준…… 아니, 같은 수준을 지나 완전히 동일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출혈이 발생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하! 지랄 마. 어떻게 인간 몸이 그딴 식으로 움직여!”

     

   한가민은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라 여전히 히죽거리는 가짜에게 진심을 다해 일갈했다.

   몸을 비튼 것은 무리를 한다면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았지만, 목을 비트는 것은 완전 상식 밖의 기교였던 것이다.

     

   “괴물은 괴물이다 이거냐?”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기에 인간을 상대하듯 하려 했던 것이 화근.

   하지만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본 한가민은 오히려 승산을 느꼈다.

     

   자신과는 달리 놈은 몸에 무리가 가는 동작을 서슴없이 행했다.

   완전히 똑같지 않다는 사실. 그것을 알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공략집이 개편되고 있었다.

     

   “너, 상대를 잘못 만났어.”

     

   끈기와 오기로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그녀의 기준으로 이 세상에 없었다.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져도 어떻게든 야금야금 올라와 자신을 지옥으로 보낸 상대의 목을 꺾겠다는 배짱.

     

   그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약점을 계속해서 알아가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어릴 적부터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그녀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재,재밌.다아. 히힛.”

     

   녀석의 도발에 한가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녀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집착을 강하게 만드는 일.

     

   한가민이 자신의 검을 들며 다시 한 번 놈을 겨눴다.

   감히 자신의 껍데기로 주절거리는 입을 반드시 찢겠다는 다짐과 함께.

     

   ***

     

   마왕의 침공이 있기 하루 전.

   임무에서 주어진 모든 시간을 꼬박꼬박 보내며 격을 쌓아온 나는, 하루를 남기고서 토끼와 크레센도를 이끌고 마왕성에 도달했다.

     

   “……지금까지 탑을 오른 별의별 도전자들이 다 있었겠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네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토끼가 높게 솟아오른 마왕성의 입구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조금 전에 설명한 게 정말 가능해요? 부탁하니 도와주기는 하겠는데 너무 무리인 것 같은……

   “걱정하지 마. 오히려 나는 네가 걱정이야. 하늘을 날 수는 있는 거 맞지?”

   -저를 뭘로 보는 거예요. 이렇게 보여도 와이번은 창공의 제왕이라고 불린다고요.“뭐 그럼 됐다.”

     

   5층을 클리어하기 위해 새롭게 장만한 나만의 전략.

   사실 방법을 찾아보자면 이것보다 효과적이고 단순한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왕성의 입구를 통해 당당히 입장해 나타나는 몬스터나 임무들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마왕을 잡는 방식 같은 정석적인 루트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도 많이 들뿐더러 내 기준으로 그리 효율적인 공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건 좀…… 나름 임무라는 건 정석이 있는 게 아닐까요? 1층 공략도 솔직히 말해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클리어되는 일이었는데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든 거였잖아요.”

     

   토끼의 말에 잠시 뜨끔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나의 목적은 그저 탑을 오르는 것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격을 쌓아 올리는 것.

     

   성좌들의 격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성장할 수 있을 때 성장하는 것이 맞았다.

     

   “한 번 클리어하면 되돌아갈 수도 없는 거잖아. 뭐든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맞지.”

   “그래도…… 마왕성을 통째로 박살내겠다니,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뭐 실패해도 상관없어.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니까.”

     

   내가 하려는 일은 크레센도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마왕성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

     

   “굳이 왜요? 힘을 퍼부은 다음에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쩌려고요?”

   “뭐 그때는 네가 치료해 줘야지. 어차피 너는 싸울 수도 없다며.”

     

   토끼는 이미 5층에 한 번 도전했던 플레이어. 모종의 이유로 이미 5층의 공략에 실패해 버린 녀석은 임무에 개입할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신성력 사용하는 건 괜찮은 줄 알아요? 그것도 힘들어!”

   “그래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보다는 괜찮잖아.”

     

   내가 오크를 상대하며 녀석이 딱 한 번 직접 오크를 타격한 적이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녀석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오크 한 마리의 숨통을 끊었던 그때. 녀석은 전투가 끝난 직후, 발작하며 거품을 물고 거의 반나절 가량을 기절해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나에게 A랭크의 큐어 마법을 썼을 때는 잠시 각혈을 한 정도로 페널티가 끝났었다.

     

   “이렇게라도 좀 도와. 이게 양심이 있어 없어? 나만 싸우고 응? 피 토하고 응? 팔다리 부러지면서 회복약 중독될 때까지 마시고 으응?!”

   “아, 아! 알겠어요! 도와주면 될 거 아니에요. 도와주면!”

     

   녀석이 그나마 고분고분해지자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발로 흙을 파며 놀고 있던 크레센도를 바라봤다.

     

   “슬슬 시작하자.”

   -넴.

     

   군말 없이 곧장 본모습으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녀석.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나는 무명검과 한철검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마왕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마왕이 침공을 시작한다는 알림이 울린 직후.

   가장 강해진 녀석을 처단하고 내가 쌓아올릴 수 있는 격을 최대한 끌어올릴 예정이었다.

     

   ***

     

   띠링.

     

   한가민은 자신의 귓가를 울리는 알림에 지친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들었다.

     

   [두 번째 시험 ‘한계 돌파’를 통과하셨습니다.]

     

   이미 턱 끝까지 차올라 헐떡이는 숨과 멈출 줄 모르며 난리 치는 심장.

   그 외의 오장육부가 고된 싸움으로 온통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은 자잘한 검상이 남은 팔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벌컥벌컥!

     

   “푸하…!”

     

   마을에서 구매한 상급 회복 포션 덕분에 그나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전투를 겪어왔지만 이렇게까지 치열한 전투는 처음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 있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긴 했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

   그리고 이후에 떠오른 알림이 마지막 임무 하나만이 남았다는 것은 충분히 감격적일 수 있었다.

     

   띠링.

     

   [마지막 시험 ‘마왕 대면’이 시작됩니다.]

     

   그녀의 앞에 알림과 함께 다시 한 번 어둠이 깔린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경우와 달랐던 점이라면 다시 밝아진 시야가 생각보다 너무 찬란했다는 점이었다.

     

   “으윽. 눈부셔.”

     

   마왕이라는 글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명.

   한가민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며 슬며시 눈을 떴다.

     

   “……응?”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

     

   꽃이 있었다.

   싱그러운 풀이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언덕 위로 나무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여긴 도대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

   하지만 곧장 이어진 소리는 그녀의 감정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발소리다.

   한둘도 아니고 작은 무리도 아니고 마치 전쟁을 연상케 하는 함성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크롸아아아!!!

   -우! 우! 우!

   -켈켈켈!!!

     

   와이번, 오크, 고블린… 그리고 그 외의 수십 종류의 다양한 몬스터들.

   그렇게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도전자를 기다리던 마왕의 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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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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