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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EP.109

     

   탑 5층의 주무대인 마왕성은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이 특별히 고전하게 되는 구간이다.

     

   첫 번째 이유로는 함께 마왕성에 입장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적용되는 환각 마법 때문.

   그들은 저주가 실행되는 동시에 마왕성의 로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흑기사로 보이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가려진 시야, 당황한 사이에 나타난 위압감을 풀풀 풍기는 흑기사들.

   으슥한 분위기에 그런 괴물들이 튀어나오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플레이어는 마왕성까지 오며 수많은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은 상황.

   그 말인 즉,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플레이어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적’을 보며 당장에라도 검을 휘두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몇몇 플레이어들은 그 상황에서 충분히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함께 온 동료와 같은 머릿수를 보이는 흑기사.

   겉모습은 위협적이나 곧장 공격을 가하지는 않는 적들.

   함께 하며 눈에 익었던 그들의 습관이 눈앞의 상황이 환상임을 인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첫 번째 시험 ‘환각을 꿰뚫어 보는 마음’을 통과하셨습니다.]

     

   애초에 그곳에 흑기사라는 이름의 적은 없었다.

   마음이 상대를 적이라 인식하면 그들이 적일 수도 있듯이, 그들이 함께 마왕성을 찾은 동료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모든 환상은 사라진다.

     

   하지만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도 새로운 난관이 그들을 맞이했다.

     

   두 번째는 바로 마법으로 만들어진 도플갱어.

   플레이어들은 자신과 똑같은 외형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로 승리를 쟁취해야 했다.

     

   성좌들은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 했다.

   자기 자신을 이겨 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돌파하는 것. 그것이 계속해서 성장하며 신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성좌들의 화신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관문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좌절했다.

   전투 중의 컨디션 난조로 패배하기도 했고 자신과 비슷한 성격이면 대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채, 허무하게 목이 달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이겨 내면 그들은 마지막 관문에 들어서게 된다.

     

   “이런 미친……”

     

   그것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친 마왕군’을 마주하는 일.

   그리고 그 군단의 중심에 웅크리고 있는 마왕을 처단하는 일이었다.

     

   띠링.

     

   [마지막 시험을 시작합니다.]

   [마왕을 처단하십시오.]

     

   수백, 수천…… 아니, 애초에 세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몬스터의 파도.

   정면에 보이는 고블린의 뒤로 오크들이 있었고 그들의 뒤로 트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거리가 멀어 그저 언덕 위의 숲이라 생각했던 땅이 이따금씩 움직이자 한가민은 피가 식는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꼈다.

     

   결코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

   심지어 성에서 수성을 하는 개념도 아니고 허허벌판에서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싸움이라니 희망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웅. 우웅.

     

   “……응?”

     

   주변으로 포탈이 속속들이 생성된다.

   익숙한 소리. 그리고 익숙한 형상.

     

   처음으로 한가민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피를 잔뜩 뒤집어쓴 박조철이었다.

     

   ***

     

   “후…하…!”

     

   자신의 도플갱어와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지 온몸에 상처가 남은 박조철.

   그도 한가민과 같이 급하게 포션을 들이키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피로까지 모두 회복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어? 가민이냐?”

     

   한가민의 부름에 뒤를 돌아본 그가 눈을 크게 뜬다.

   도플갱어와 싸운 직후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그였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니 그나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우웅.

     

   그의 옆으로 연달아 남궁천호와 서세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 한 가지는, 그 이후에도 우후죽순 포탈이 생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저기, 저거… 어인 아니에요?”

   “……가민이 말이 맞는 것 같군요. 그 어린 왕은 저기 있네요.”

     

   어인들 외에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다양한 플레이어들.

   저곳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닌 것 같았지만, 말이 통하는 존재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가민의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여긴 또 어디야?”

   “땅을 보아 위험한 장소는 아닌 것 같은…… 맙소사 자네들 저거 보이나?”

   “이런 젠장… 산 넘어 산이라더니, 뭐가 저렇게 많아?”

     

   탑의 3층에서 봤던 사람들이다.

   크리티아스의 어인들, 신성국의 성기사들, 보랏빛 피부를 가진 종족들과 온몸에 털이 잔뜩 난 수인들을 포함해 익숙한 모습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었다.

     

   ‘첫 번째 관문에서 피해가 좀 크긴 했나보네…’

     

   3층에서 만났던 인원에 비하면 거의 이십 퍼센트 이하로 감소한 규모.

   하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있으면 빌려야 할 판국이었기에, 그들의 등장은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예정이었다.

     

   ……물론 그들이 흔쾌히 힘을 합친다는 전제로 말이다.

     

   “저, 저 새끼들 3층에서 물고기 새끼들 아니야?”

   “젠장! 잘 만났다! 그때의 설욕, 여기에서 갚아주지!”

     

   아직 언덕 위의 몬스터 때를 발견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이 눈을 뒤집으며 무기를 뽑아 든다.

   등장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상황. 서로의 눈에 곧장 불꽃이 튀니,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쐐애애액!!!

     

   어디선가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음이 들려왔다.

   각성을 통해 청각이 발달된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소음의 근원지를 향했고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창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게 뭐… 미친!”

   “피해!”

     

   콰아아앙!!!

     

   평평하던 흙바닥에 그대로 틀어박히며 고정된 거대한 창.

   그 무게가 얼마나 육중한지 창대의 두께만 해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두꺼웠고, 그 길이만 봐도 5미터는 족히 넘는 것이 웬만한 중형 이상 몬스터의 공격인 것 같았다.

     

   “……”“……”

     

   플레이어들은 침묵했다.

   이제야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된 것.

     

   그들의 시야에 이제까지 숲인 줄 알았던 언덕 너머의 몬스터 무리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청린과 금린은 곧장 자신에게 속한 어인들을 소집했다.

     

   “금린을 보호하라!”

   “어인들은 이곳으로 모이세요! 우선 방어진을 구축하겠습니다!”

     

   어인들의 소집 이후로 각자의 좌표를 찾아 뭉치기 시작하는 플레이어들.

   멀리서 날아온 창 때문인지 덕분인지 그들 간의 기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한가민은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어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혹시 나 기억해요?”

     

   어인들이 한가민을 필두로 인간 서너 명이 다가오자 무기를 들며 그들을 경계한다.

   하지만 네 사람과 3층에서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던 청린과 금린이 그들을 알아봤고 덕분에 한가민은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들 무기를 거두세요.”

   “……그대들이군.”

     

   어인들이 뒤로 슬쩍 물러나며 금린이 앞으로 한 걸음 나온다.

   처음 만났던 것과는 달리 조금 더 리더의 모습을 보이는 녀석. 4층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떻게 트라우마를 이겨 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 더 의젓해진 것 같았다.

     

   “여기서 만나니까 반갑네요.”

     

   한가민의 말에 청린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금린을 바라봤다.

   동감하다는 듯한 리더의 반응. 3층에서 가장 강한 좌표로 인정받은 그들과 만났다는 것은 이런 위험한 상황에 있어서 아주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지구좌표 여러분 저도 반갑습니다. 언덕을 보면서 이렇게 다 죽는 건가 싶었는데 당신들이 있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군요.”

   “그나저나 그는 어디에 있나?”

     

   청린이 언급한 그.

   한가민과 어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두가 청린이 말한 ‘그’가 김시인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없어요.”

   “……응?”

   “아직 시인 아저씨는 마왕성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왜지? 같은 성좌를 선택하지 않았나? 아니면 설마…… 죽었나?”

     

   청린의 말에 그들은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지 애매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같은 성좌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맞다. 그들은 도우미였던 토끼와 임시로 성좌을 맺은 상태였고 김시인은 그조차도 피하고 성좌 계약 자체를 진행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같은 성좌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인 씨가 죽었을 리가 없습니다.”

     

   한가민의 옆으로 다가온 박조철의 단호한 말에 금린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잇는다.

     

   “저도 그분이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되지 않는군요. 하지만 지금 이곳에 없는 것도 사실이니 우선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옳은 줄로 말씀드립니다.”

     

   수를 알 수 없는 무수한 괴물의 군대.

   그리고 그들 틈에 숨어서 웅크리고 있을 마왕을 처단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

     

   김시인이 있든 말든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좋아요. 그럼 우선 작전을 세워야 할 것 같은……”

   “혹시 우리도 대화에 끼어도 괜찮나?”

     

   한가민의 말을 슬쩍 끊으며 들어온 중저음.

   철컥거리는 갑옷의 마찰소리 뒤로 들린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그곳에는 3층에서 만났던 신성국의 랜든이 다가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함께 하지…!”

   “우, 우리도……!”

     

   그 뒤로 줄줄이 따라오는 다른 플레이어들.

   마왕군을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맹은 그렇게 마왕 처단을 위한 일보 후퇴를 결정했다.

     

   ***

     

   크레센도를 타고 하늘에서 바라본 마왕성은 나의 생각보다 더욱 거대했다.

     

   “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하는 의심이 든다.

   성좌 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머물다 가는 5층의 공간. 그리고 그곳의 최종 목적지인 마왕성을 부순다는 계획은 어쩌면 단순한 나의 객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하지만.

     

   “실패해도 손해는 없으니까.”

     

   어차피 마왕을 죽여야 한다.

   마왕성의 내부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알 수 없었고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큼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지, 진심이세요? 진짜 하려고요?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농담인 줄 알았어?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한기의 심장과 열화의 호흡을 꺼내 들었고 충돌하는 음양의 기운을 느끼며 그 기운을 양손에서 심장으로 서서히 옮겨 갔다.

     

   [한기의 심장(S)을 사용합니다.]

   [열화의 호흡(S)을 사용합니다.]

     

   몸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마력 폭풍.

   그리고 두 가지의 보물을 품에 잘 챙겨 넣은 나는 양손에 검을 뽑아 들었고 곧장 크레센도의 등을 박차, 마왕성을 향해 돌진했다.

     

   쐐애애애액!!!

     

   들어 올려진 무명검과 한철검.

   그리고 두 검은 이윽고 성의 꼭대기에 떨어지며 마력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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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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