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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EP.110

     

   쿠르릉…!

     

   먼 장소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날 법한 소음에 저마다 장비를 정비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슬슬 도착하는 것 같군.”

   “최대한 많이 살아서 오셔야 할 텐데요.”

     

   청린과 서세영의 대화.

   조금 전에 땅에서 들린 소리는 도플갱어와의 전투에서 큰 기술을 쓰고 승리를 거머쥔 플레이어가 나타날 때, 간혹 만들어지는 전투의 여파였다.

     

   “그래도 이런 장소가 있어서 다행이군.”

   “그러니까 말이에요.”

     

   플레이어들이 자리를 잡은 장소는 마왕군과 약간의 거리가 떨어진 무너진 유적지.

   주위를 둘러보던 서세영은 플레이어들이 이런 이질적인 장소를 익숙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다행이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들이 처음에 들어섰던 마왕성은 이런 광활한 들판과 유적지를 담고 있을 정도로 넉넉한 장소가 아니었다.

     

   마왕성은 거대했고 그 로비는 넓었지만, 그것도 나름 건물 내부라는 범위는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

   하지만 탑 안에 마을도 있고 다른 세상도 수두룩한데, 마왕성에 들판과 유적지가 있는 걸 이상하다고 여긴다면 조금 반응이 늦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괴물들이 먼저 공격을 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네요.”

     

   한가민의 말에 때마침 부상자의 치료를 마친 성녀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렇게 많은 괴물을 지친 상태에서 상대해야 했다면 승산이 없었을 테니까요.”

     

   성녀의 말에 이곳의 모두가 공감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애초에 이곳의 대부분이 마왕이라는 존재만 염두에 두며 여기까지 왔다.

   임무의 제한 시간을 초과하지만 않는다면 다른 괴물들을 상대하지 않고 마왕을 처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마왕성에 도착해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웬걸.

     

   “마왕이 침공을 시작한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그들에게 떠오른 새로운 임무.

   마왕성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임무를 읽으며 5층의 난이도가 이전 임무들에 비해 한참이나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5층 – 처단』

     

   주제 : 보스

   난이도 : S

     

   설명 : 마왕성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온 용사들은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마왕이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마왕의 차원은 성좌들이 만든 5층의 모든 공간과 구별되지 않았기에 5층의 모든 용사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마왕이 부활하기 전에 그를 처단하십시오.

     

   임무 : 마왕 처치

   제한 : 마왕이 힘을 되찾을 시, 마왕이 모든 군대를 이끌고 세계를 침공합니다.

     

   보상 : 6층으로 진입

   실패 페널티 : 마왕을 처치하지 못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

     

   [다수의 성좌가 웃음을 짓습니다.]

   [다수의 성좌가 자신에게 속한 화신들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마왕성 밖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성좌들의 시선과 메시지.

     

   플레이어들의 시야에 왕을 호위하듯 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괴물들이 들어온다.

   침공이 있었으면 밖에서 각자가 감당했어야 할 괴물들. 임무가 떠올랐을 당시의 사람들은 밖에서 각자 저것들을 만나지 않을 것을 다행이라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지만 한가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침공이 시작되지 않았기에 모든 마왕의 하수인들이 마왕의 곁을 지키고 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싸울 수 있기에 용기가 생겼고 그들의 전투력을 알았기에 조금이나마 승산이 보이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허나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지구 좌표의 압도적인 전력 하나가 있었다.

   그를 떠올릴 때면, 차라리 마왕의 군단이 각 세계로 흩어지는 것이 공략 자체에는 더 효율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한 명…… 김시인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왕을 처단해 줄 거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한가민에게는 있었으니까.

     

   “아저씨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한가민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자신의 단검을 닦고 있던 박조철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심한 표정, 하지만 김시인이라는 이름 석 자에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박조철은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성좌 계약을 하지 않은 남자.

   그 때문에 그는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혼자서 5층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고 화신이 된 플레이어들에 비해 부족한 격을 가지고 공략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마 지금쯤 마왕성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혼자라고 하지만 시인 씨는 항상 규격 외의 사람이었으니까.”

   “으음……”

     

   늘 예상 밖의 활약을 보였던 남자였다.

   전투력에 대해서도, 공략에 대해서도…… 그 외에도 투지나 정신력 등 모든 방면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 한 층 더 뛰어난 결과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성좌와 계약을 하지 않은 김시인이 혼자서 모든 위기를 헤치고 마왕성으로 올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소수였다.

     

   “그는 오지 못할 거다.”

   “……네?”

   “5층의 몬스터들을 상대해 봤으니 너도 잘 알겠지…… 너는 마왕성 근처의 오크나 트롤 같은 괴물들이 상대하기 수월하던가?”

     

   무덤덤하게 들려온 랜든의 말에 한가민이 인상을 구기며 대꾸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끊은 것은 다름 아닌 성녀였다.

     

   “한가민 아가씨라고 했나요…? 저도 성녀로서 원칙적으로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지만 이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

   “5층의 괴물들은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저희 신성국의 기사 절반이 마왕성까지 오는 길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그중 절반이 치명상을, 그리고 또 그 절반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돌아보니 신성국의 성기사들의 수가 3층에서 보았을 때에 비해 많이 줄어 있었다.

   마왕성까지 오는 길에 사망한 인원, 마왕성의 1층에서 저주에 걸려 서로를 죽인 그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을 받으며 자신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신성국에는 꽤 많은 머릿수를 차지했기에 다소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그가 오는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우리 어인들도 호수에서 회복을 하며 최대한 안전하게 행동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거든.”

     

   청린이 신성국의 말에 동의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

   신성국과 어인의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랜든 경 말이 맞아, 어떻게 혼자서 그 많은 괴물을 뚫고 오겠어…”

   “게다가 그 사람은 성좌 계약도 안 했다며? 아무리 3층에서 강했다고 해도 힘을 빌릴 경로도, 격을 올릴 방법도 없는데 이건 무리지.”

     

   웅성웅성.

     

   모두가 김시인의 리타이어를 확신하는 듯한 분위기에 한가민은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는 강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 한 편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녀 또한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때.

     

   “성녀님. 당신이 신성국의 리더시죠?”

   “아, 그대는 김시인 플레이어의 옆에 있던 참모…”

   “당신은 안면도 없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까?”

   “……네? 그게 무슨…”

     

   어느 순간 그들 틈에 등장한 남궁천호의 말에 성녀가 당황한 눈초리로 그에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신성국의 기사들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 따위 얼마든지……”

   “아뇨. 그 말이 아닙니다. 만약 지금 저곳의 모든 괴물이 이곳으로 달려든다면… 저곳에 있는 보랏빛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나 수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지 물은 것입니다.”

   “……”

     

   남궁천호의 말에 성녀가 입을 다물었다.

   김시인이 해냈던 수많은 업적. 그리고 그중에는 튜토리얼부터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살려온 지구 좌표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저는 김시인 씨를 튜토리얼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봤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뭣하지만 정말 미친 사람이에요.”

     

   듣기에 따라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남궁천호의 눈에 서린 단호함에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는 못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죠.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굳어 버렸을 때, 앞장서서 길을 뚫었고 모두가 방향을 잃어 길을 헤매고 있을 때, 시인 씨만이 유일한 정답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남궁천호가 말하는 김시인의 활약. 성녀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성품이 뛰어나다는 것은 3층에서 그를 보았기에 알 수 있었고 그가 다른 일반 플레이어들은 가지지 못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성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지금 이곳은 마왕의 부활을 저지하는 최초의 방어선.

   이곳에는 그가 없었고 만약에 온다고 하더라도 그는 성좌와의 계약도 하지 않은 상대적 약자에 불과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남궁천호는 그녀에게…… 아니,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는 마왕성의 모든 화신들에게 말했다.

     

   “시인 씨는 올 겁니다. 이번에도 저희가 상상하지 못한 무언가 맹활약을 하면서 짠하고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침묵한다.

   하지만 남궁천호의 확신에 찬 일장 연설에 그들의 심장이 묘하게 고무되는 것을 그곳의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띠링.

     

   [24시간 후, 마왕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마왕이 깨어나기 전에 알을 깨트리거나 잠에서 깨어난 마왕을 처단하십시오.]

     

   그들의 눈앞에 떠오른 새로운 알람.

     

   “이제 갑시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마왕을 토벌하는 것.

     

   “출정이다.”

   “진군한다.”

     

   각 좌표의 대표들이 앞으로 나와 플레이어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곧 있을 마왕군과의 전투…… 하지만 마음이 한껏 고양된 그들은 눈치재지 못했다.

     

   쿵! 쿵! 쿵!

   우우우……

     

   언제부턴가 몬스터들의 발소리와는 전혀 다른 진동이 하늘과 땅을 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

     

   “오오!!! 금간다!”

   -와… 이게 되네…

     

   마왕성의 꼭대기.

     

   “한 번 더 간다! 크레센도 더 높이 날아!”

     

   굳건할 줄만 알았던 흑색 거성이 고작 두 자루의 검에 의해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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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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