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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EP.111

     

   “혹시나 했는데……”

     

   들판 너머의 몬스터들.

   놈들의 목적은 마왕이 힘을 되찾기를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 목적을 위해서 놈들은 자연스럽게 방어를 선택했다.

     

   그러므로 놈들을 습격해야 하는 것은 플레이어들의 몫.

   공성보다 수성이 쉽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말이었다.

     

   우우우……!

     

   풀과 나무, 고블린들이 만든 것인지 듬성듬성한 목책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적의 습격을 알리는 오크들의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오크들 징그럽게도 생겼네.”

   “……이런 허허벌판에서 습격이라는 게 정말 가능할까요?”

     

   한가민의 혼잣말에 그녀의 옆에서 금빛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있던 신성국의 성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식적으로 이런 장소에서 습격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늘을 날아 공습(空襲)을 감행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저 괴물 무리를 뚫고 곧장 마왕의 옆에 도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저는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아, 어인 꼬마.”

   “저랑 키도 비슷하신데 꼬마라는 말, 조금 불편하군요.”

     

   대화에 끼어든 금린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린다.

   금린의 표정은 단호했고 성녀의 표정은 굳어 있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

     

   “3층에서 그분의 능력을 보셨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해요…”

   “우리의 사람들의 힘을 의심하지 맙시다. 저는 청린이 해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가민 플레이어?”

     

   금린의 말에 한가민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미소를 짓고 있다. 3층에서는 불안했던 어인은 이제 온데간데없었고 그녀의 앞에는 어엿한 어인의 지도자만이 곧 있을 전투를 기다리며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천호 아저씨 능력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공습은 불가능했다.

   적진에도 와이번이나 하피 같은 날개가 달린 몬스터들이 있어 위험하기도 했고, 애초에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극소수 였으니 화력 자체도 부족한 탓이었다.

     

   하지만.

     

   “아까 보니까 거의 뭐 두더지던데.”

   “저도 놀라긴 했습니다. 랜든 경께서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 건, 저도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요.”

     

   플레이어들이 계획한 것은 작전명 ‘강철 지렁이’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조철의 머리에서 나온 마왕군 침투 계획이었다.

     

   “땅을 파서 마왕까지 직선으로 파고들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그걸 실행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금린의 말에 성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무리하다고 생각되지만 확신에 찬 박조철과 남궁천호의 반응에 진행된 작전.

     

   우선 남궁천호가 그의 스킬을 사용해 마왕군의 중심까지 땅굴을 판다.

   그리고 마왕이 있는 위치는 초감각으로 다져진 인간 레이더 박조철이 귀로 듣고 느끼며 확인한다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 둘을 따른 사람은 각 좌표에서 가장 강한 정예 병력.

   그중에는 크리티아스의 청린이 있었고 신성국의 랜든이 있었다.

     

   “그나저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지구 좌표의 플레이어분들이 어떤 성좌와 계약을 하신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갑작스런 성녀의 물음에 대화에 관심이 생긴 금린이 문뜩 귀를 쫑긋거린다.

     

   보통 성좌와 계약을 하는 경우, 그 성좌의 가호를 받거나 능력을 물려받는 경우가 대다수.

   하지만 지금까지 성녀가 만났던 플레이어 중, 박조철이나 남궁천호가 보여준 특이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둘이 처음이었다.

     

   “지구 좌표의 다른 분들께 여쭤보니 대부분이 익숙한 이름의 성좌들과 계약을 맺었더군요.”

     

   튜토리얼 때부터 자주 등장했던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 라거나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 [장막 뒤의 감시자] 같은 네임드 성좌들.

     

   코인이 많은 건지, 그 셋의 능력 자체가 뛰어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른 좌표에서도 나름 이름이 있는 성좌들이었기에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아는 성좌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 저희 넷 말하는 거죠?”

     

   금린과 성녀가 궁금해 하는 것은 뭔가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 네 사람의 성좌.

   지금까지 4명이 보여 준 능력과 활약들을 떠올리면 우리가 같은 성좌와 계약을 했다는 것에 의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정신계열 성좌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신체계열이나 마법계열이라 하기에는 뭔가 애매하고 말이죠.”

   “일단은 비밀이에요. 성좌 계약을 하면서 입을 닫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음……”

     

   하지만 한가민은 일단 토끼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비밀리에 두기로 했다.

   다른 성좌들이 견제를 할지도 모를 일이고 애초에 우리에게 약점이 될 만한 사실을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닐 이유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뭐 비밀이라면 어쩔 수는 없는 거겠죠…… 시간이 다 되어가니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는 걸로 하겠습니다.”

     

   금린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호기심이 풀렸기 때문이 아닌, 남궁천호가 파낸 땅굴에서 습격의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남은 인원들은 들어 주세요!”

     

   성녀의 외침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된다.

   정예로 꾸려진 병력이 땅굴로 내려간 이상, 모두의 생존율을 올릴 수 있는 인물은 이곳에서 성녀가 유일했으니까.

     

   “앞으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질 겁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원들을 캐스팅을 준비하시고 근접전이 익숙한 분들은 원거리 공격수를 노리고 오는 괴물들을 막는 겁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화려하게 공격하고 뒤로 빠지는 겁니다!”

     

   그녀가 금빛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위로 치켜들자, 따뜻한 오라가 주변을 감싸며 그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공포를 잠재웠다.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건 전우들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성녀의 말에 이곳에 남은 신성국의 기사들이 조용하게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대충 들어 보니 신성국의 기사들의 승전가 같은 기도인 듯했다.

     

   “후우……”

     

   한가민은 짧게 심호흡하며 괴물이 뭉친 지역을 눈으로 훑었다.

   괴물들의 외곽을 깎으며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일. 작전을 세운 박조철이 알려 준 작전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쿠웅……

   쿵……

     

   “…뭔가 느껴지십니까?”

   “……이동하고 있군요.”

     

   신성국의 붉은 기사, 랜든의 물음에 박조철이 벽에 손을 짚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

   몬스터의 규모가 크다고 예상은 했으나, 막상 놈들의 중심까지 땅굴을 뚫어보니 그 수가 가늠이 안 될 지경.

     

   박조철을 믿지 못했지만 다른 수가 없어 그를 따라온 몇몇 플레이어들은 언제 땅굴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노심초사하며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뿐.

   애초에 잠입과 침투라는 개념이 없던 플레이어들에게 땅굴을 이용한 습격은 쉽지 않은 기다림이었고 그것은 특히나 전투를 즐기는 보랏빛 피부의 이종족에게는 더욱 고역으로 작용했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냐?”

   “이 답답한 땅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힘을 회복하지도 못한 마왕만 찢어발기면 되는 건데 너무 겁먹은 것 아니냐?”

     

   3층의 경쟁전에서부터 타 좌표와 가장 충돌이 많았던 그들.

   호전적인 성격답게 그들은 빨리 몬스터들과 싸움을 하고 싶었고 박조철은 그들을 데려온 것이 실수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전투력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베기도 힘든 육체, 육탄전에서 검뿐만이 아니라 할퀴기나 발길질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전투 센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조금만 참으세요. 대신 마왕은 당신들에게 양보할 테니까요.”

   “오?”

   “그거 사실이냐? 만약 거짓이라면 그 입부터 찢어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이들이 전투 자체에 대한 거리낌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는 단순 무식한 놈들이라는 사실.

   박조철은 업적이나 격의 상승을 떠나 가장 위험한 부분은 여기 있는 보라돌이들에게 맡기기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쿵…

   …쿵…

     

   땅을 울리던 소음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습격조로 모인 백 명에 가까운 플레이어들도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했던지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쿵…

     

   “지금! 천호 씨, 저희 머리 위에 있는 흙을 모조리 걷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박조철의 신호에 수인을 맺은 남궁천호가 곧장 머리 위의 흙을 후려쳤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파이는 흙더미. 하지만 그것은 당연하게 작용하는 중력을 거스르며 서서히 위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푸와아아악!!!

     

   “가자! 헬리온의 전사들아!”

   “오오오!!”

     

   땅이 솟아오르며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조철의 예상대로 보라돌이들이 빠르게 구덩이 밖으로 몸을 날렸고 남궁천호는 다시 수인을 맺어 그들이 밟고 있던 땅을 끌어올렸다.

     

   쿠구궁…!!

     

   “우리의 목적이 마왕의 퇴치인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몽땅 개죽음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박조철의 진두지휘에 청린과 랜든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등에 있던 창을 뽑아 마력을 발산하는 청린과 검을 가슴 앞으로 세우고 마력을 갈무리하는 랜든.

     

   그리고 그들이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툭.

     

   땅굴로 떨어진 무언가에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게 무슨?”

     

   박조철은 그의 발치를 구르는 누군가의 팔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보랏빛의 이종족의 팔. 검으로 베어내기도 까다로운 오른팔이 악력으로 뽑힌 듯 잔인하게 찢어져 있었다.

     

   그렇게 올라오게 된 지상.

   그곳에는 곧 부화를 앞둔 듯, 꿈틀거리는 거대한 알과 함께 그 주변을 지키고 있던 네 명의 괴물이 플레이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감에 걸렸습니다… 머리가 너무 안 돌아가서 글 쓰는데 한참 걸렸네요.
환절기인데 감기 조심하세요. 이번 독감은 상당히 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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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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