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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Ep.113

     

   마왕 魔王

     

   과거에 그가 탄생한 장소는 그늘지고 축축한 늪지대의 어느 한 어귀였다.

     

   「……」

     

   그는 과묵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그리고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당연하게도 그것을 알려줄 존재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넌 무엇이냐…」

     

   크르륵!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머리가 2개가 달린 거대한 늑대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더러운 4개의 송곳니였을 뿐……

   마왕은 그렇게 첫 피를 자신의 손에 묻히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그를 찾는 괴물들은 많았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말을 하지 못 하는 괴물.

   다리가 8개에 눈이 수십 개가 달린 거대한 괴물.

   덩치는 열 배 이상 거대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괴물까지.

     

   놈들이 마력에 이끌린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이유가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오는 그 어떤 도전도 피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다양한 별명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규격 외의 존재.

   종말의 파도.

   인류의 대적자.

   균형의 축.

     

   그를 표현하는 다양한 칭호들이 있어왔으나, 그는 마(魔)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장 좋아했다.

     

   어느 한 분야의 정점을 상징하는 이름.

   그는 마왕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마왕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삶의 이유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표가 없는 정점의 삶은 너무나도 따분했다.

     

   자신보다 더 이상 강한 존재가 없다는 허무함.

   자신에게 도전하는 존재가 더 이상 없었기에 그는 더 이상 성장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왕과 외견이 똑같은 존재들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 마왕이다!」

   「저놈 죽여!」

     

   놈들은 다짜고짜 마왕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놈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더욱이 이렇게 허약한 존재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 조잡한 공격을 하며 달려드는 것이 가소로웠기 때문이다.

     

   놈들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까지 상대했던 괴물들과는 달리 화려하고 재밌는 기술을 많이 구사했지만 그 위력이 너무나도 빈약했다.

     

   「으윽…… 분하다…!」

     

   하지만 가장 재밌었던 점은.

     

   「남은 동료들이 분명히 복수를 해 줄 것이라 나는 믿는다…!」

     

   놈들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상대보다 집요하고 비겁했다.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일 대 다수로 덤벼드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다양한 무기와 마법을 바꿔가며 점점 더 강한 존재들이 등장했고 그런 놈들을 죽일 때마다 다음에는 더 새롭고 더 많은 놈들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라……」

     

   싸움에 딱히 이유가 없다는 것.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것도 아니고 영역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정말 순수하게 자신을 죽이려는 목적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에 마왕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재밌군.」

     

   강자와의 싸움에 대한 즐거움.

   과거, 자신에게 도전하는 수백 수천의 괴물들을 몰살 시키며 느꼈던 그 희열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그는 자신의 삶의 목적을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다.

     

   「감사함에 대한 보답은 해야겠지.」

     

   그들의 목적은 자신을 죽이는 것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다면 그들은 과거의 자신처럼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는 더 강한 자와 겨뤄보기 위해, 그리고 자신에게 즐거움을 선물한 인간들에게 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전투를 익혔다.

     

   마왕은 강해졌다. 인간을 죽이고, 때로는 살려서 보내며 그들의 목적의식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하지만 뭐든지 영원한 것은 없는 법.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의 마력을 따르기 시작한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한 인간의 손에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그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은 인간.

   아니, 인간인지조차 모르겠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상식 밖의 존재에 마왕은 진심 어린 자신의 속마음을 전했다.

     

   「……더 싸워 보지 못해 아쉽군.」

   「성좌들의 손에 의해 탑에서 탄생한 오류가 최후에 담은 말 치고는 썩 괜찮구나.」

   「……당신의 이름을 듣고 싶다.」

   「나? 뭐, 본명은 잊은 지 좀 됐고……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고 하더군.」

   「크큭. 그런 유치한 이름이라니 나의 첫 패배가 조금 부끄러워지는군.」

     

   그는 자신을 ‘성좌’라 소개했다.

   마왕이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냐 물으니, ‘아마 그렇지 않을까?’ 라는 애매한 답변을 받았지만, 시원하게 싸웠으니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하지만.

     

   「어? 나 방금 좋은 생각이 난 것 같은데.」

     

   자신을 성좌라 소개한 인간은 하늘을 보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중얼거렸다.

     

   예상하지 못한 탄생과 방치, 오류로 격을 초월할 뻔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관리를 할 테니 마왕을 써먹어 보자는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었다.

     

   「너 살고 싶냐?」

   「……」

   「너, 내가 평생 네가 원하는 싸움을 하며 살아가게 해 주마. 대신 내가 시키는 걸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때?」

     

   그는 마왕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그리고 마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주기까지 한다는데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거래였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시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성좌는 당황스럽게도 자신의 목을 단칼에 벴다.

     

   하지만 그의 약속은 틀리지 않았다.

   죽었으나 다시 살아난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정신을 차린 마왕의 눈앞에는 각종 병장기로 무장한 강한 인간들이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필사의 눈빛.

   언제든 자신을 베어 넘길 수 있는 검기와 그 뒤로 넘실거리는 마력 덩어리들을 보니 등줄기에서부터 묘한 소름이 돋아났다.

     

   인간들의 손에 죽으면 다시 눈을 떴을 때, 또 다른 인간들이 있었다.

   만약 인간들을 모두 죽이면 성좌가 나타나 자신을 죽이고 재탄생시켰다.

     

   그렇게 반복된 시간.

   하지만 마왕은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언젠가 모든 인간들의 기술을 배운 그날이 곧, 수차례 자신의 목을 베고 기회를 준 성좌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날이었기에.

     

   그렇게 오늘도.

     

   마왕은 어김없이 눈을 떴다.

     

   ***

     

   “……젠장.”

   “아직 시간 남았잖아! 근데 왜 벌써 깨어난 건데?”

     

   마왕을 감싸고 있던 알이 깨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뒤이어 나온 메시지에 나름의 위로를 받았다는 것.

     

   [이른 부화로 하수인들의 희생제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마왕의 힘이 약화됩니다.]

     

   하지만 약화가 되었다고 해도 결코 방심할 수는 없었다.

   지금 플레이어들이 상대하고 있는 하수인만 해도 말이 안 나오는 괴물들인데 그놈들의 수장이라는 괴물은 얼마나 강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압!”

     

   그런 결과로 마왕에서 먼저 달려드는 용감한 플레이어들이 이곳에 있었다.

   어쩌면 영악하다 불러도 좋을 그런 부류.

     

   그들은 알이 깨진 이후로 아직 마왕이 눈을 아직 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기술을 펼쳤고 남은 사람들은 그런 마왕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드는 하수인들을 견제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들의 기대를 부흥하지 못 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희망을 철저한 나락의 구렁텅이로 집어던졌다.

     

   핏.

     

   용감했던 플레이어의 검이 마왕의 어깨를 스쳤다.

     

   툭.

     

   하지만 그뿐. 공격을 가했던 플레이어의 목은 곧장 바닥을 나뒹굴었고 그 모습을 본 남궁천호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스윽.

     

   “우욱…!”

     

   마왕이 눈을 뜨자마자 남궁천호는 쏠리는 구역질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속을 게워냈다.

     

   압도적인 존재감.

   처음으로 느껴본 살의와 격의 차이에 무력감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고 그것은 주변에서 검을 들고 있던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느낌이군.

     

   입을 연 마왕.

     

   “……말을 해?”

   “저딴 괴물을 어떻게 잡아……”

     

   놈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마치 성좌를 마주한 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목소리를 떨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

   그나마 이곳에서 놈의 격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업적을 많이 쌓아 격의 편차를 줄이는데 성공한 청린과 랜든, 그리고 조금 전에 하수인 한 놈을 제압하는데 성공한 박조철 뿐이었다.

     

   “천호 씨 괜찮습니까?”

   “아, 예… 조철 씨는…… 아무렇지 않습니까?”

   “후우…… 저도 좀 울렁거리기는 하는데, 버틸 만합니다.”

     

   박조철은 주변을 살피며 현재 이곳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4층까지 임무를 완료하며 겪은 바로 지금 5층의 난이도는 비정상적으로 높다.

   앞선 괴물들의 5층의 몬스터들은 어려워도 어떻게 상대할 만했는데 지금 눈앞의 저 마왕이라는 존재는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무슨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박조철이 가만히 주변을 살피고 있자 그것을 본 남궁천호가 의문을 표했다.빨리 다른 사람들을 도와 하수인이라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뭔가 이상해서요.”

   “무엇이…”

   “저놈 움직이고 있지 않잖아요.”

     

   조금 전에 자신에게 달려든 플레이어를 순식간에 양단해 버린 괴물.

   그런 강한 존재가 눈을 뜬 이후, 자신의 하수인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가만히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이 알에서 나오는 데에는 뭔가 조건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무슨……?”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긴 하겠죠. 조금 억측일 수도 있기는 한데 부하의 싸움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 뭐 그런 것 말입니다.”

     

   박조철의 말에 남궁천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의견을 납득한 것이 아닌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수인들을 제거하기 전에 저놈을 먼저 자극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조철 씨… 무리한 부탁일 수는 있겠지만 저놈이 움직인다면 먼저 나서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 있는 인원 중에서 저놈의 속도를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 조철 씨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남궁천호가 수인을 맺어 사람들의 발아래에 작은 빛의 꽃을 피웠다.

     

   탑의 3층에서 간간이 사용했던 명화(明花).

   소리를 쳐서 마왕을 자극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데에는 이것만큼 좋은 기술이 또 없을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꽃?”

     

   그리고 그의 생각은 다행히도 적중했다.

   바닥을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꽃에서 떠나며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이는 몇몇 플레이어들에게로 향했다.

     

   지금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

   그리고 자신들이 제시간에 마왕을 제압하지 못하면 몬스터들의 미끼를 자처한 사람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이런 씨발! 쪽팔리게 쫄기나 해가지고!”

   “몰라 뒤져도 싸우다가 뒤져!”

     

   보랏빛 피부를 가진 헬리온의 전사들이 먼저 선두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뒤로 성기사들이, 어인들이, 그리고 그 외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검을 뽑았고 그들은 더 이상 뒤가 없음을 깨닫고 하수인에게 달려들었다.

     

   싸움은 치열했다.

   하지만 결국 하수인과 플레이어들의 싸움은 플레이어의 승리로 돌아갔고.

     

   모든 하수인들의 사지가 분리되고 목숨을 잃는 그 순간.

     

   마왕은 첫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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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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