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4

   EP.114

     

   저벅……

     

   고작 한 걸음이었다.

     

   “윽…!”

     

   고작 한 걸음에 거칠어진 숨을 고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호흡을 멈췄다.

   하지만 정적이 일어난 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몸은 각자에게 다양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과도한 긴장에 식은땀이 흐르고, 심박수가 빨라지며 동공이 확장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포에 혈관이 수축되어 혈색이 파리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하여 검을 꼬아 쥔 양손과 땅을 지지한 다리에 피가 쏠리는 사람도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나타난 생존 방식.

     

   하지만 그중 가장 강한 압박을 느끼고 있던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마왕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던 박조철이었다.

     

   “이런…씹………”

     

   침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치 호랑이를 앞에 둔 쥐새끼마냥 사지가 벌벌 떨리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지랄하지 마!”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놈에게 죽어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허무하게 죽을지라도 유효한 한 방.

   그것으로 다음에 마왕과 맞서야 할 동료들이 아주 미세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움직여, 움직여어!!’

     

   박조철은 떨리는 다리에게 명령을 내리며 허리춤에 있는 자신의 단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오.

     

   그리고 들려오는 마왕의 감탄사.

     

   -네놈은 쓸 만하구나.

     

   놈의 한마디에 박조철은 순간 온몸의 장기가 사라진 듯한 허무를 느꼈다.

     

   ‘제기랄, 이게 어딜 봐서 약화가 된 상태라는 거야…!’

     

   분명히 시스템의 메시지로 특정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아 마왕이 약화된 채로 부화한다는 말이 떠올랐었다.

     

   5층을 클리어하기 위해 마왕성 밖에서부터 몬스터란 몬스터는 죄다 사냥하면서 최대한 빨리 달려왔고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같은 생각을 했기에 그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한 가지.

     

   놈이 이미 수백 년간 탑에 거주하며 살인을 통해 압도적인 격을 갖춘 괴물이라는 사실이었다.

     

   -너희들을 모두 죽이면 그 싸움광 놈이 찾아올 테지. 음……

     

   놈은 플레이어들이 듣든 말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무표정 속에 숨겨진 비릿한 비웃음.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초월자가 가질 수 있는 오만과 거만함이 말 한마디마다 응축되어 있었다.

     

   – 나름 재밌는 삶이긴 했지만 말이야. 더 높은 목표를 위해서는 이런 소소한 재미 정도는 포기하는 게 맞지 않겠나? 어떻게 생각하나?

     

   마왕이 박조철을 보며 물었다.

   눈빛을 보니 대답을 듣기 위해 물음을 던진 것은 아닌 모양.

     

   놈은 그저 무감정한 단어를 나열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개미나 지렁이 따위에게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을 걸어보는 것처럼……

     

   하지만.

     

   박조철은 개미가 아니었다.

     

   “……야.”

     

   그가 답하자 마왕의 붉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그래 말을 해 봐라. 흥미롭군. 최근 들어 나의 물음에 대답을 한 것은 네가 처음이구나.

     

   거대한 벽을 마주한 듯한 압박감이 박조철의 전신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런 무형의 기운에 굴복하기에는 박조철이 버텨 온 시간이 너무나도 두터웠다.

     

   “이제부터 내가……”

     

   화악!

     

   “재미없게 해줄게…!!”

     

   허리춤에 있던 박조철의 손이 놈의 미간으로 뻗어지자, 마력이 담긴 단검 두 자루가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눈을 노리고 던진 회심의 투척술.

   마왕이라는 저 괴물에게 닿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공격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선공을 가져갔다는 그 사실 자체에 있었다.

     

   -오오! 대답에 이어서 공격까지! 굉장하구나!

     

   마왕이 박조철을 향해 진심 어린 감탄을 보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행동이 큰 작용을 했던 것인지 박조철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띠링!

     

   [업적 달성! ‘위대한 자의 대적자’가 되셨습니다.]

   [격의 차이에 대한 페널티가 감소합니다.]

   [격이 상승합니다.]

     

   박조철은 순간, 그의 팔다리를 구속하고 있던 무형의 기운이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불편한 이질감은 존재했지만 움직임에 있어서 제약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예상 밖의 큰 기회를 제공했다.

     

   “다 정신 차려!!!”

     

   박조철의 일갈에 사지를 떨며 눈을 내리깔고 있던 사람들이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똑같다.

     

   그들과 똑같이 몸을 떨고 있었고 그들과 똑같이 온몸에 비 오듯 땀을 쏟아 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박조철의 다른 점 한 가지는.

     

   -너,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드는 구나.

     

   절대 죽음에 굴하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를 담은 불타오르는 눈.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다물었던 입에서 미세하게 피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에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자신의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던 것 같았다.

     

   -네놈처럼 의지가 강한 놈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씨발.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 진심이다.

     

   마왕은 진심으로 박조철의 정신력에 감탄을 보내고 있었다.

     

   강자를 존중하는 것.

     

   놈이 지금까지 만났던 존재들을 떠올리면 대부분이 격의 차이의 의해 저항도 하지 못하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죽음의 공포에 이르게 삶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미물.

   박조철은 삶을 포기하지도, 무릎을 꿇지도 않았고 심지어 격의 차이가 압도적인 자신을 보고도 끝까지 맞서기 위해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내기까지 했다.

     

   -네놈의 그 의지를 존중하마.

     

   마왕은 그런 박조철이라면 충분히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미물이라 생각했다.

     

   -하여, 너에게 기회를 주지. 나의 권속으로 들어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의 목숨을 살려주고 너에게 힘을 나눠주도록 하지.

     

   성좌들만이 할 수 있는 화신 계약.

   놈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 달콤했지만, 박조철은 그 말의 의중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런 하찮은 놈들은 신경 쓰지 말거라. 내가 목표를 이룬 기념으로 너에게만 주는 아주 특별한 자리이니 말이다. 그나마 특별한 미물들이 있긴 하다만……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군. 한 놈은 역겨운 기운이나 풍기고 있고 말이야.

     

   그런 말을 한 마왕이 청린과 랜든에게 잠시 눈길을 스쳤다.

   하지만 그뿐. 놈의 시선은 다시 자연스럽게 박조철에게 향했다.

     

   “……”

     

   박조철은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그를 보는 플레이어들은 말이 없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이내 그의 입이 열렸을 때,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다. 나에게 힘을 줘.”

     

   -크흐흐…! 재밌군! 역시 인간이란!!

     

   박조철은 그의 몸을 압박하던 무형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짐을 느꼈다.

   그가 마왕에게로 한걸음 다가간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플레이어들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그를 욕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신자 새끼야!”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씨발! 이딴 작전을 따라오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그들 중,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존재했으니.

     

   ‘신이시여…’

   ‘젠장.’

     

   랜든과 청린, 그리고 남궁천호였다.

     

   남궁천호의 시선에 지금 박조철의 목적은 오로지 이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전부였다.

     

   조금 전부터 그가 보였던 행보…

   그는 지금까지 계속 괴물이든, 하수인이든,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을 치우려 애쓸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4층을 통과한 이후의 박조철은 마왕성으로 오는 동안 과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동료 중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면 자신이 적의 공격을 그대로 허용하는 일이 있어도 동료를 구했다.

     

   몸을 날려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화살이 날아오는 위치에 정면으로 서서 화살을 대신 맞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보니 더 마음에 드는 구나.

     

   마왕의 앞에 선 박조철의 눈빛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내가 재미없게 해준다고 했지?”

     

   초감각.

     

   남궁천호가 본 박조철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비정상적으로 전투 센스가 뛰어나고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은밀하고 영악하기까지 한 그였기에 그 감각은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푸욱!

     

   -읍.

     

   마왕의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으리라는 사실은 남궁천호에게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크크큭…… 크하하핫!!!

     

   하지만 상대는 5층의 최종 보스.

   놈의 웃음이 들판을 넘어 한가민과 서세영이 있을 유적지까지 울려 퍼진다.

     

   박조철의 기습과 마왕의 웃음에 플레이어들의 만감이 교차했다.

   눈으로 쫓지 못할 가공할 속도의 기습. 하지만 지금 그 회심의 일격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것은 앞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것임을 의미했다.

     

   쩌어엉!!!

     

   마왕이 팔을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폭음이 터져 나오며 박조철의 신형이 튕겨졌다.

   나름대로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저 그걸 막은 단검과 양팔이 부러졌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거지! 이게 싸움이라는 것이다!!!

     

   마왕은 즐거워했다.

     

   -무슨 수를 쓰든 상관없다! 모두 나에게 덤벼라! 나 또한 이 마지막 만찬을 즐겁게 받아주마!

     

   튕겨진 박조철에게 달려드는 놈의 괴성.

   그리고 시작된 싸움에 뿌려진 것은 피는 대부분이 플레이어들의 것이었다.

     

   ***

     

   “…으응?”

   “가, 갑자기 이놈들 왜 이래?”

     

   한가민과 서세영, 그리고 금린과 성녀가 이끌고 있던 유적지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몬스터들의 이상 행동에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잘 모르겠군요. 그래도 저희에게는 나쁠 것이 없군요. 몬스터들이 움직임을 멈추다니.”

     

   마왕의 알이 있던 장소에서 잠시 역겨운 기운이 느껴진 이후로 몬스터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그 방향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유인을 하다가 전투가 시작된 플레이어들로서는 너무나도 반가운 반응.

   그저 고개를 숙인 놈들의 목을 치기만 하면 되니 한 차례 숨을 돌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불결한…… 읍!”

     

   습격조가 향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성녀가 잠시 구역질이 올라오는지 입을 틀어막았다.

   신성력을 주로 사용하는 그녀였으니 마왕의 기운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

     

   “언니 저 뭔가 불안해요. 조금 전부터 땅도 흔들리는 것 같고…… 특히 저기 하늘 보이세요?”

   “하늘? 무슨…… 어?”

     

   한가민의 말에 고개를 든 서세영이 신음했다.

     

   마치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현상.

   언제부턴가 하늘에는 거대한 균열이 나타나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균열이 점차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저게 도대체……”

     

   쩌저저적!!!

     

   이윽고 굉음이 일어나며 균열이 생겼던 하늘이 완전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세상의 멸망.

     

   채애애애앵!!!

     

   하늘이 무너졌고.

     

   “어?”

   “저 파란 괴물은 또 뭐야?!”

     

   그 균열을 깨트리고 나타난 것은 날개가 달린 한 마리의 드래곤과

     

   “근데 저건…?”

   “저건 사람 아니야?”

     

   그 괴물의 등에 탑승하고 있는 두 명의 인간이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