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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EP.115

     

   하늘이 무너졌다.

   정확히는 반쯤 갈라졌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천지가 개벽한다는데 그런 사소한 표현이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다.

     

   “하아…… 밸런스 개같네 진짜……”

     

   조용히 자신의 현 상태를 점검하던 박조철이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에게 팔다리가 부러진 것은 한참 전.

   랜든과 청린이 협공을 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자신만의 궁극기를 연발했지만 저놈의 마왕은 어찌 된 영문인지 별다른 생채기 하나 늘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달려온 다른 층들에 비해서 터무니없는 난이도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절망에 빠져 신음하던 그때였다.

     

   쩌저적……!

     

   그들의 귓가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마왕과의 전투에 집중한 탓에 듣지 못했다기에는 너무나도 큰 소리.

     

   그리고 그들이 뭔가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플레이어들을 학살하던 마왕이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덕분이었다.

     

   마왕이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보자 호기심이 동했던 몇몇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저게 뭐야……?”

   “하늘… 하늘이……!”

   “오, 신이시여……”

     

   그리고 나온 반응은 하나같이 경악 그 자체.

   다른 감정 따위는 거의 없었다. 간혹 압도적인 절망감과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감정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하늘을 본 박조철의 반응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용?”

     

   하늘에서 푸른 비늘을 가진 괴물이 갈라진 하늘의 구멍에서부터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격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는 괴물.

   마왕이 긴장을 한 것이 저 존재 때문인 것 같았다.

     

   흔히 판타지 세계관의 최강자라 불리는 드래곤의 등장에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긴장과 동시에 묘한 기대감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마왕과 드래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저 드래곤에게서 느껴지는 격 또한 마왕에 뒤지지 않을 수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지금 마왕의 모습을 보니 놈도 저 드래곤을 보며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래, 이 난이도가 말이 안 됐어.”

     

   탑은 플레이어들에게 그들의 수준에 맞는 임무를 제시한다.

   탑의 목적을 온전하게 꿰뚫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플레이어들이 보아온 결과, 탑은 그들의 성장을 바라는 것 같았으니까.

     

   임무를 수행하며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냈고 이렇게까지 버텨 냈다면 충분히 조력자를 보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드래곤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마왕이 긴장을 한 이유가 드래곤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쐐애애액!!!

     

   “우와아악!! 잠깐, 잠깐마아아안!!! 멈춰어어!!!”

     

   크레센도의 등에 탄 채, 인상을 잔뜩 구긴 토끼가 크레센도의 등을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치며 웃기지도 않을 명령을 내렸다.

     

   크레센도를 타고 마왕성에 진입한 우리들.

   아쉽게도 처음에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다.

     

   “완전히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게 한계였나?”

   “미쳤, 미쳤어요?! 아니 이걸 기어코 성공시키네! 꺄아악!! 토끼 죽는다아아!!!

   “음……”

     

   토끼의 발악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넓디넓은 들판과 푸르른 창공. 그리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괴물들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아쉽군.’

     

   나는 마왕성의 구멍을 뚫는 정도가 아닌 완전한 파괴를 원했다.

   5층의 임무 자체를 날로 먹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가능하다면 5층의 임무를 차근차근 준비했던 성좌들에게 빅엿을 선사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성좌들이 당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왕성을 처음 칠 때는 모든 성좌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성좌와 플레이어의 격의 차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순수한 뻘짓이었고 실제로 첫 타격에는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수차례…

   수십 차례, 수백 차례 같은 타점을 무식하고 집요하게 공격한 결과 나는 생각보다 전력을 다하면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미친 짓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왕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이후로 수많은 성좌가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발악했다.

   특히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는 성좌가 답지 않게 흥분을 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이윽고 성채에 구멍을 뚫어 이곳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됐고. 여기가 어디야?!”

   “하늘이죠!!!”

     

   나의 물음에 토끼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비명을 지른다.

     

   “헛소리 말고!”

   “마, 마왕이 있는 마왕성 꼭대기예요! 아니! 이딴 식으로 진입하는 게 어딨어!!”

     

   어쩐지.

     

   바로 아래에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강한 기운이 하나 느껴지고 있었다.

     

   성좌들과 비슷하면서도 더욱 흉흉한 기운.

   그리고 내 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놈은 지금 크레센도…… 정확히는 크레센도의 등에 올라타 지상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크레센도! 저기 저 시커먼 기운 느껴져?”

     

   나의 물음에 크레센도가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어……음, 저기 아로 아래쪽에 저거 말……인가요?

   “그래 그거!”

     

   원래 힘이란 것은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타고 있는 크레센도라는 생물은 어마어마한 질량을 가지고 있었고 그 가속도는 까마득한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기에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었다.

     

   “들이박아!”

   “당신 미쳤어?!!”

     

   나를 향해 발악하는 토끼.

     

   -아플 텐데…!

   “너도 미쳤어어어어?!?!”

     

   그리고 생각보다 무덤덤한 크레센도를 뒤로한 채, 나는 소환의 반지를 보여 주며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얘가 안 아프게 해 줄 거야! 본인도 죽고 싶진 않을 거 거든!”

   -아아. 넴.

   “끼야아아악!!!”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끼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크레센도와 함께 오크를 사냥하며 가끔씩 사용했던 주문.

     

   5층의 도전을 포기했던 토끼가 이곳의 몬스터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저 방어를 위한 주문을 펼치는 것은 속이 조금 상할 뿐, 목숨이 걸린 수준의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다는 다는 사실을 수많은 접전 끝에 학습할 수 있었다.

     

   “언젠간 복수할 거야아아!!!”

     

   [‘내추럴 실드(A)’가 발동됩니다.]

     

   “나도 간다!”

     

   [‘한기의 심장(S)’을 사용합니다.]

   [‘칠링실드(B)’가 발동됩니다.]

     

   크레센도를 겹겹이 싸기 시작하는 다양한 보호막.

   그리고 이윽고 우리는 피가 낭자한 들판의 특정한 위치를 향해 거침없이 와이번 폭격을 떨어뜨렸다.

     

   폴짝.

     

   물론 나는 토끼를 안고 하늘로 도약했지만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

     

   그들이 있던 전쟁터에 마치 운석이 충돌한 듯, 땅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며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일어났다.

   바람에 밀려 날아가는 몇몇 사람들. 그리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남궁천호와 박조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이 정도면 뭔가 피해가…’

     

   박조철은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마왕이 있었을, 그러니까 하늘에서 드래곤이 그대로 내리박은 장소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이…… 저급한 와이번 따위가……!

     

   놀랍게도 바닥에서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던 마왕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드래곤을 붙잡아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미친!”

     

   드래곤의 거대한 몸체가 서서히 기울어진다.

   점차 빨라지는 속도. 그리고 그 몸이 이윽고 바닥을 향했을 때,

     

   “피, 피해!”

   “으아악!”

     

   그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혼비백산하게 도망치며 이내 또 다른 폭발이 땅에서 일어났다.

     

   콰아앙!!!

     

   -쿠엑!!!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드래곤이 앓는 소리를 내며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마왕이 언제부턴가 손끝으로 마력을 서서히 끌어모아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젠장…!”

     

   박조철은 드래곤을 도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왕과 비슷한 존재.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으로 보아 저 드래곤은 탑의 5층의 밸런스를 위해 마련된 일종의 장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방진 것, 이만 죽어라.

     

   하지만 박조철에게는 마왕의 공격을 막을 충분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온전히 힘이 남아 있었더라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인 공격.

     

   마왕의 손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흉흉한 마력이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한 드래곤에게 달려든다.

     

   박조철은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드래곤을 지킬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이것이 기회라면 무방비 상태로 보이는 마왕에게라도 피해를 입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하지만 그 순간.

     

   츠츠츳!

     

   어디선가부터 들려온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3층에서 들었었던 익숙한 소리. 그리고 뒤이어 마왕의 마력이 드래곤에게 닿았고 그 폭발 끝에서 오직 박조철만이 드래곤의 앞을 막아선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인 씨?”

     

   몬스터들의 유인을 맡았던 플레이어들이 전투를 멈춘 몬스터들을 뒤로한 채, 이곳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수백의 지원군.

   하지만 박조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아닌, 하늘에서 용과 함께 강림한 단 한 명의 플레이어였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완전한 백색의 복장에 그에 반대되는 흑색 검을 들고 마왕의 마력을 잘라 낸 남자.

     

   “적당히 잘 오셨습니다. 죽진 않았거든요.”

   “다행이네요. 잠깐만 쉬고 계십시오.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그의 미소를 끝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박조철은 편안히 의식을 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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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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