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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EP.118

     

   쓰러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마왕과 김시인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콰아아아앙!!!

     

   그 둘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방향에서 공기를 찢어발기는 폭음이 들려왔다.

   마치 폭발물을 대거 터트린 듯한 어마어마한 소음. 하늘에서 드래곤이 떨어졌던 순간보다 고막을 살벌하게 만드는 소리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귀를 막으며 몸을 숙였다.

     

   “뭐, 뭐, 뭐야…!”

   “바, 방금 무슨 소리죠? 뭐가 터진 것 같은데…!?”

     

   하늘이 반파되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날카로운 소리.

   갑작스러운 소음이 천지를 울렸기에 사람들은 몰랐지만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박조철은 소리가 터져 나온 위치가 마왕과 김시인이 싸우던 방향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조용해졌다……’

     

   초감각으로 인해 박조철은 폭음이 터진 이후 일대가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가장 빨리 인식했다.

     

   그 괴물 같은 두 존재의 싸움이 조금 전의 폭발음과 함께 끝났을 것이라는 직감.

   그리고 그 싸움의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플레이어들의 운명이 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갔다.

     

   “크윽……”

   “조철 씨, 아직 일어나시면 안 돼요.”

     

   박조철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니 그 모습을 본 서세영이 그를 만류한다.

   부러진 뼈마디를 치료하고 빠졌던 관절을 붙인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기에 상식적으로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확인해야 합니다. 마왕은 괴물이에요.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시인 씨가 혼자서 싸운다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김시인에 대한 걱정.

   마왕은 이곳에 있는 백 명이 넘는 플레이어를 상대하고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김시인은 강했고 박조철이 봤던 그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테지만 그 마왕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띠링.

     

   [마왕이 사망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하나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시야에 떠올랐다.

     

   “이게 무슨……?”

   “마, 말도 안 돼. 마왕이 죽었다고? 그 마왕이?”

     

   절대자라 여겨졌던,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승리를 확신할 수 없을 것 같던 괴물의 사망 소식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현재의 사태를 믿을 수가 없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하…하하…… 시인 씨?”

   “……인간은 기적을 만드는 존재라더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닌가 보군.

   “어떻게…?”

     

   박조철과 청린, 그리고 랜든의 입에서 허탈감이 가득 담긴 웃음이 흘러나왔다.

   제대로 된 데미지는커녕 작은 생채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들은 지금 보고 있는 이 메시지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장에라도 전투 지역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곧이어 그들이 있던 방향으로 자리를 비웠던 한가민과 은발의 여인이 돌아오고 있었으니까.

     

   ***

     

   “후우……”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선명한 감각.

   주변 환경은 물론이고 나의 신체까지 모두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졌던 신기한 현상에 나는 나도 모르게 검을 들고 있던 오른팔을 쓸어내리며 눈을 찡그렸다.

     

   ‘뭐였지 방금?’

     

   그 튼튼하던 마왕을 베어 내는 데 전혀 걸리는 느낌이나 위화감 따위가 없었다.

   전심전력을 사용해 신체 능력을 극대화 한 것도 아니고 스킬이나 특별한 아이템을 사용해 특수한 상황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라면 한기의 심장을 사용했고 극음의 기운을 사용해 천월문의 무공을 펼쳤다는 점.

     

   ‘소리보다는 빨랐다.’

     

   나의 움직임 뒤로 터져 나온 폭음만 생각해도 내가 그저 달리기 하나로 음속을 돌파했다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다.

     

   두 동강이 나서 이제는 둘이 되어 버린 마왕의 신체가 나의 시야에 담긴다.

   감정의 격양으로 인해 두 눈을 부릅뜬 채 날아간 놈의 몸통. 그리고 놈을 일도양단한 나는 나의 격이 한 층 더 높아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마왕을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5층 임무의 주요 대상이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마왕이 필요합니다.]

   [5층에 있는 대상을 탐색합니다.]

     

   “응?”

     

   마왕을 찾는다는 새로운 메시지.

   지금까지 탑의 층을 클리어하면서 포탈이 나타나기 전에 이런 현상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뭔가 찝찝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개도 그렇고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마왕도 그렇고.

   결국 마왕의 숨통을 끊은 것은 나였지만 솔직히 말해 놈이 흥분하지 않고 회복력을 앞세워 전략적으로 싸웠다면 이렇게 쉽게 승리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마지막에 모습을 바꾸려고 했던 것도 그렇고…’

     

   놈이 변신하는 타이밍에 맞춰 마지막 일격을 날린 것이 승리를 이뤄낸 가장 큰 변수.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저 신체적인 스펙만 놓고 본다면 5층의 마왕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절대자였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4층에서 오류를 일으켜서 다른 사람들의 트라우마에 난입했었다.

   덕분에 4층을 클리어한 보상을 중첩으로 받아 낼 수 있었고 그 결과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격을 쌓아 5층에서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와 비슷하거나 더 우월한 신체를 지닌 괴물이 보스로 있었다?

   이건 밸런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잡다한 가설을 세우고 있던 그때.

     

   띠링.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튜토리얼 때부터 나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던 한 성좌의 메시지와 함께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성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5층 – 마왕의 들판’에 현신합니다.]

     

   메시지나 떠오른 순간부터 속이 메스꺼워지며 두통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과거에 느껴본 적 있는 익숙하고도 불쾌한 감각. 하지만 그런 감각을 감상하고 있을 만큼 나의 현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성좌가 내려와…?’

     

   너무 갑작스러웠다.

   언젠가는 성좌를 만나 대화하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놈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하지만 그 일이 지금 나의 눈앞에서 벌어졌고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그리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우우웅……

     

   성좌는 생각보다 익숙한 방식으로 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허공에 열리는 포탈.

   물론 그 위치가 땅에서 1미터는 떨어진 공중이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마력의 문을 통해 나오는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스윽.

     

   포탈의 옆면을 슬쩍 잡으며 나타난 거친 손이 보인다.

   ‘전쟁과 싸움’이라는 이름과 걸맞는 구릿빛 피부와 손등과 반쯤 걷어 올린 다리에 드러난 깊고 얕은 자잘한 상처들.

     

   상의를 입지 않았기에 상처 위로 그려진 다양한 붉은 문양들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안녕한가?]

     

   근육질의 남성이 고개를 들자 산발이 되어 있던 백발이 좌우로 밀려나며 가려져 있던 황금빛 눈동자 모습을 드러냈다.

     

   “으윽…!”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버틸 만한 정도였다. 과거 튜토리얼 시절 때, 성좌들이 토끼를 통해 몇 다리를 건너 나를 훑어봤던 압박감과 흡사했지만 그때와 비교하기에는 내가 너무 강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내 앞에 나타난 이 성좌도 느꼈던 모양이었다.

     

   [오? 이걸 버티다니 굉장하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격을 쌓아올리더니 마왕을 죽이고 더 성장한 모양이야.]

     

   성좌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애초에 나에게 적의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기에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볼 심산이었다.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한가보군.]

     

   끄덕.

     

   [뭐 별건 아니고. 조금 전에 네가 죽인 그 마왕 놈이 5층의 시련을 조금 꼬아놔서 확인 차 왔다. 어쩌다 보니 5층은 내 담당이 되었었거든.]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마왕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두 동강난 몸에 슬쩍 손을 올리고는 중얼거렸다.

     

   [으음…… 그랬군. 욕심이 있는 놈이기는 했는데 이 정도였을 줄이야.]

     

   그가 중얼거릴 때마다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집중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모를 중요한 정보… 탑의 비밀이나 성좌들에 대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고 나의 노력은 다행히도 작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쯧. 미물 따위가 성좌의 격을 얻었을 줄이야. 그러니까 내 권능이 발동이 안 됐지…]

     

   임무의 클리어 이후에 플레이어들을 다음 층으로 보내고 다시 마왕이 부활하는 게 5층의 기본적인 틀.

   하지만 그 주연 배우였던 마왕은 틀을 벗어나 있었다.

     

   마왕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살해하며 그들이 탑을 오르며 쌓았던 격을 야금야금 빼앗았다.

   그렇게 어느 순간 성좌에 오를 수 있을 만한 격을 얻었고 그 때문에 이 성좌가 말한 ‘특정 조건에서는 사망하지 않는’ 어떠한 권능이 사라지게 된 것 같았다.

     

   [어이가 없군.]

     

   힘을 얻었기에 잃어버린 축복 같은 저주.

   마왕이 강해지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죽을 일도 없었기에 바보 같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같은 삶을 반복하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자의 발악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너도 참 굉장한 놈이군. 아직 누군가의 화신이 된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격을 지니다니…… 마왕을 죽인 덕분에 이렇게 된 건가? 성좌의 자격만 없지 비슷하잖아?]

     

   그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을 방향을 바라보며 슬쩍 혀를 찬다.

     

   [다른 놈들도 이렇게 근성 있게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이지… 뭐 상관없나? 결국 쭉정이들은 다 걸러질 테니까.]

     

   마왕에게서 떨어진 그가 천천히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정면으로 다가오니 더욱 거대해 보이는 성좌의 몸. 2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근육질의 거구를 보고 있자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제부터 네 도움이 조금 필요할 것 같구나. 네가 죽여 버린 5층의 새로운 마왕을 뽑아야 할 것 같은데 힘 좀 보태 봐라. 보상은 짜지 않게 주도록 하지.]

     

   띠링!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당신에게 개인 임무를 내립니다.]

     

   —

   『마왕 선별』

     

   주제 : 토벌

   난이도 : 후원 [A]

   내용 : 당신은 5층의 마왕을 토벌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플레이어입니다. 하지만 마왕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영면에 들었고 그 때문에 새로운 마왕을 찾을 필요가 생겼습니다. 마왕성의 모든 몬스터를 토벌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가 차세대 마왕이 될 것입니다.

     

   성공 조건 : 마왕의 들판에 있는 모든 몬스터 토벌 (3841/5000)

     

   보상 : 권능

   실패 페널티 : 없음

   —

     

   이곳에 있는 모든 괴물을 퇴치하라는 임무.

     

   [재밌겠지?]

     

   쿵! 쿵! 쿵!

   쿵! 쿵! 쿵!

     

   임무가 떠오른 순간부터 울리기 시작하는 땅.

   고개를 들어 들판을 바라보니 이미 몸을 일으킨 수천 마리의 괴물들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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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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