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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EP.119

     

   사천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몬스터의 공세.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돌리던 플레이어들 모두가 무기를 꺼내 들며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마왕이 깨어난 이후로 조용하던 괴물들이 갑자기 왜…!”

     

   울리는 땅과 몬스터들의 돌진으로 만들어진 소음에 사람들이 혼비백산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들린 남궁천호의 외침에 서세영이 고함을 치며 의문을 표했다.

     

   마왕의 등장 이후로 모든 몬스터가 잠잠해졌었다.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마왕이 있던 방향으로 몸을 낮춘 것을 보니 몬스터들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던 모양.

     

   하지만 문제라면 이곳의 플레이어들이 암묵적으로 모든 괴물들의 목숨을 끊는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는 사실이었다.

     

   “저희가 너무 안일했어요!”

   “쓰읍! 놈들이 멈췄을 때 숨통을 끊어놨어야 했는데!”

     

   애초에 플레이어들에게 내려진 임무는 5층의 최종 보스인 마왕을 제거하는 것.

   가만히 있던 괴물들은 플레이어들이 굳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반격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들을 건드릴 기미가 보이면 처음 보다 훨씬 크게 발악하며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었기에 그들을 무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일단 유적지로 돌아갑시다! 처음에 계획했던 방식으로 저희가 방어를 하는 게 유리할 테니까요!”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삼백 남짓.

   달려드는 괴물의 수가 사천에 근접했기에 놈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미친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미친 짓을 해야 피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나저나 가민이는 어디 있습니까?”

   “가민이라면 아까 여기에…… 응?”

     

   전방에서 은발의 여인과 대화를 하고 있었던 여자 아이.

   한가민이 토끼와 자리를 비운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부상자를 보살피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아니지……?”

     

   서세영과 남궁천호의 시선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시력과 청력이 뛰어난 박조철 만큼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김시인이 전투를 치른 그곳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마왕이 사망한 이후 성좌가 현신하는 일은 한가민과 토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전개일 수밖에 없었다.

     

   “우욱…!”

   “어우…… 머리 띵해.”

     

   오랜 기간 도우미로 시간을 보내고 한가민을 포함한 플레이어 몇 사람을 화신으로 둔 토끼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라면 아직 압도적인 업적을 얻지 못한 한가민이 이곳에 있었다는 점.

     

   포탈을 통해 근육질의 백발 남성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한가민은 소매로 입을 가린 채, 바닥에 엎어져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였다.

     

   “쯧. 성좌라는 것들은 배려가 없어요. 배려가…”

     

   토끼가 공포로 굳어 있던 손을 천천히 움직여 한가민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녀석의 손에서 서서히 새어 나오기 시작하는 작은 빛무리. 그리고 그것이 한가민의 머리에 닿는 순간, 그녀의 주변으로 반짝하고 작은 광채가 터졌다.

     

   [‘큐어(A)’를 발동합니다.]

   [‘리커버리(B+)’를 발동합니다.]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주문과 상처를 치료하는 치료 주문이 거의 동시에 발동됐다.

     

   “하아… 하아…”

     

   계속해서 구역질을 하던 한가민의 호흡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잘 알지도 못 하는 여자에게 도움을 받은 한가민은 마음속에 가득한 의구심을 가지고 그녀를 돌아봤다.

     

   “감사합니다…… 근데 도대체 누구세요?”

     

   지금까지 회복과 관련된 스킬을 사용하는 사람은 성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스킬로 치료를 받아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고 이런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플레이어가…

   심지어 이렇게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왜 이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는지가 의문이었다.

     

   “아니, 나 알잖아요? 진짜 모르겠어요?”

     

   하지만 은발 여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본인을 알지 않느냐는 말이 한가민의 귓가를 맴돈다.

     

   아름다운 외모와는 상반되는 가벼운 언행.

   분명 공손한 것 같지만 왠지 모르게 입에서 툭툭 던져질 때마다 열받는 말투와 간질간질한 이 목소리까지.

     

   “……”

   “흠, 이제야 알아봤나보넹.”

     

   한가민의 얼굴이 의문에서 질겁과 경악으로 변화하는 것은 한순간.

   하지만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기에는 현재의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그리고 그것을 다 읽을 때쯤, 그들은 멀지 않은 장소에서부터 진동하는 땅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진짜 그 많은 걸 다 잡으라고?”

   “씁! 성좌라는 것들은 진짜 배려가 없어요! 배려가!”

     

   들판에 남은 모든 몬스터가 마왕의 자리를 놓고 자신이 가진 힘을 뽐내야 하는 상황.

   탑의 5층이 리셋되기 전, 가장 강한 개체를 찾기 위한 성좌의 계획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아쉽지만 5층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던 플레이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토끼…… 맞죠? 일단 제가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부르고 싶은 대로! 도우미가 되면서 이름은 잊어버렸거든요!”

   “일단 우리 안전한……”

     

   한가민의 말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투콰아앙!

     

   “꺄악!”

   “어우씨! 죽을 뻔했네!”

     

   어디선가 날아온 사람만 한 돌덩이가 한가민과 토끼의 사이에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때려 박혔다.

     

   멀리서 보이는 사이클롭스 한 마리.

   검푸른 근육질의 몸을 가진 그 괴물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을 부라리며 다시 한 번 그녀들을 향해 투척할 바위를 신중하게 엄선하고 있었다.

     

   “허허, 저 미친 괴물이 한 번 던지고 말 걸 정성스럽게도 고르네.”

     

   토끼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물수제비를 하기 전에 돌을 고르듯 바닥을 훑는 괴물이 보인다.

   게다가 그런 괴물을 제외하고라도 이곳으로 달려오는 괴물들이 한두 마리가 아닌 상황.

     

   “다른 무리랑 합류해야 할 것 같죠?”

   “동감! 그럼 어디로 갈까요?”

     

   토끼의 대답에 한가민은 고개를 들어 반대가 되는 두 방향을 빠르게 둘러봤다.

   한쪽은 박조철 외, 지구 좌표의 인원들과 나머지 어인과 성기사 등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장소.

   하지만 지금 그녀들이 생각했을 때, 이 마왕성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그곳이 아니었다.

     

   “저기!”

   “그것도 동감!”

     

   한가민의 손가락이 근육질의 성좌와 대치를 하고 있는 김시인을 향했다.

   저기 있는 성좌가 김시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가장 견고한 장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정답이었다.

     

   “음, 그래도……”

   “빨리 꺼졌으면 좋겠당.”

     

   하지만 김시인과 합류하는 것은 일단 성좌가 떠난 후가 맞을 것 같았다.

     

   ***

     

   [그럼 열심히 해 봐. 정리가 되면 다시 돌아오도록 하지. 내가 여기 있으면 애들이 힘을 못 쓰거든.]

     

   그가 손짓하자 공중에 불꽃이 일며 익숙한 포탈이 생성된다.

   더 이상 볼일은 없다는 듯, 본인이 할 말만 남기고 떠나는 성좌.

     

   [죽지 마라. 내가 너의 성장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고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포탈 밖으로 사라지자, 나는 알게 모르게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묘한 압박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후우…… 괴물이네 저거. 이게 토끼가 말한 격이라는 건가?”

     

   격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그 감각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격을 인식하지 못 하는 게 아니라 저런 괴물을 아직 만난 적이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일단 저것들부터 처리해야겠지?”

     

   성좌로부터 받은 새로운 임무.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초회복약’을 한 병 꺼내 들었다.

     

   마왕과의 싸움에서 내상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놈과 나의 격의 차이는 비슷했다고 하더라도 신체적인 우위를 점한 것은 마왕이었기에 무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꿀꺽.

     

   [‘초회복약’을 사용합니다.]

   [상태 이상 ‘탈진’이 회복됩니다.]

     

   마지막 초식을 펼치며 쏟아 냈던 체력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급 포션이 그냥 맛없는 물과 다를 바 없어진 것과 비슷하게 초회복약의 효과도 나의 격이 올라감에 따라 조금 떨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나는 숨을 한 차례 고른 뒤, 검을 꺼내 들었다.

   남아 있는 괴물들을 최대한 빠르게 다 처리하는 것이 나의 목표. 그 과정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최대한 사망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투 준비를 마쳤을 때.

     

   “아저씨!”

   “여어! 김시인 플레이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타아앙!

     

   그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 사람을 향해 내달렸다.

   구름을 가로지르며 날아드는 돌덩이 하나, 그리고 나무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건지 투박하기 그지없는 거대한 창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도저히 맨손으로 던졌다고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투척물들.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두 덩어리를 향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검에서 뻗어진 한 줄기의 빛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덩어리들을 순식간에 꿰뚫는다.

   반으로 갈라져서 힘을 잃은 나무창과 신월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완파되는 바윗덩어리.

     

   콰과과광!!!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온 소리는 한가민과 토끼의 목소리였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키야! 역시 여기가 제일 안전하네요! 저쪽으로 갔으면 돌 맞아 죽었겠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살벌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토끼.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기에 나는 곧장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뒤로 빠져 있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괴물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당연히 고양이 손이라도 있다면 빌려야 할 판국이긴 했지만 저 전장에 두 사람과 함께 가자니 오히려 보호해야 하는 사람만 들어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우와아아악!

     

   작은 언덕 너머로 들리는 함성소리.

     

   “김시인 씨! 도우러 왔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왔습니다!”

   “오기 싫었는데 끌려왔다!”

     

   박조철을 선두로 어인들과 신성국의 기사들, 그리고 보랏빛 피부를 가진 이종족들까지.

   5층의 모든 플레이어가 대거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저씨 뜬금없지만 저도 이제 싸움 좀 늘었거든요? 방해는 안 되도록 해볼게요.”

   “헷, 저는 버프나 걸어드리겠습니다! 마왕이 죽어서 그런지 스킬 사용 페널티가 거의 다 사라진 것 같거든요!”

     

   나의 옆으로 다가와 검을 뽑아 드는 한가민과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토끼의 모습이 보인다.

     

   나름 감동을 느낄만한 장면.

   하지만 언덕 너머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냉정한 것이었다.

     

   “조철 씨! 나이스!”

     

   플레이어들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머릿수를 예측할 수 없는 괴물 군단이 보인다.

     

   놈들과 싸우게 된다면 난전은 불가피했던 상황.

   만약 그런 방식으로 싸우게 됐다면 누구 하나가 갑자기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열화의 호흡(S)’을 사용합니다.]

     

   그들이 의도를 한 것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몰이사냥에 나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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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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