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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EP.123

     

   원래라면 6층으로 이동했어야 했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내가 어떤 싸움을 하게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무지의 상태에서는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오르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이곳은 13층, 무(武)의 경계입니다.]

     

   차근차근은 무슨, 지금까지 내가 꾸역꾸역 올라온 다섯 개의 층을 한순간에 뛰어넘어 버리는 등반을 해 버린 상황.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눈앞에 떠올랐던 모든 메시지가 사라지며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한다.

     

   “윽…!”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밝은 빛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들었다.

     

   따스하다.

   그리고 시원한 기분도 함께 든다.

     

   ‘뭐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감각.

   주변에 흐르는 공기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짙은 마나를 보유한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빛에 적응한 내가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광경은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숲인가?”

     

   높게 솟은 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룬다.

   맑은 공기를 마시니 이것이 만약 환상이라도 상쾌함을 느꼈으니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의 발아래에 그나마 닦여 있는 흙길은 이곳이 완전히 자연으로 버려진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도와주었다.

     

   “꽤 잘해놨네……?”

     

   좀 웃긴 말이지만 디자인이 괜찮았다.

   조경을 위해 일부러 두었나 싶을 정도로 가로수가 길의 좌우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정돈된 길을 눈으로 쭉 따라갔다.

   어둑어둑한 숲으로 연결되어 있는 길. 끝을 알 수는 없었지만 저 길에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5층에서 만났을 당시, 13층의 성좌인 그는 나에게 나름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굳이 13층으로 나를 데려온 다음 뭔가 공격을 가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대받았으면 응당 따라주는 게 예의지.”

     

   나는 기다랗게 늘어진 하나의 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서서히 주변의 풍경이 어두워진다.

     

   어둠 자체가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가 어둠을 극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초인이 되며 다른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게 됐고 이제는 눈을 감고도 어느 정도 검술을 펼칠 자신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예상대로 숲을 지나는 동안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음……”

     

   아니, 문제라면 너무 평화로운 것이 문제였다.

     

   2층에서 무공 수련을 위해 조용한 장소를 찾아가던 그때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조용하다 보니,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숲의 끝자락에 다다르니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내가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탑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비비적.

     

   나는 눈을 슬쩍 비볐다.

   뭔가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은 기분에 이게 진짜가 맞는지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더럽게 크네……”

     

   콜로세움을 연상하게 만드는 탑의 압도적인 위용에 나도 모르게 침음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구조물들을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이 정도로 높이 솟은 건물은 머릿속에 없었다.

     

   구름을 뚫고 치솟은 탑을 보니 거인국에 떨어진 걸리버가 된 기분이다.

   그나마 비슷한 규모라면 튜토리얼 당시에 경복궁에서 봤던 탑의 실물이 있었지만 시력이 좋아진 탓에 지금 이 탑이 더 또렷하고 굉장해 보인다.

     

   “후! 정신 차리자!”

     

   짜악!

     

   나는 양손을 들어 소리가 나도록 나의 뺨을 한 차례 때렸다.

     

   오롯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던 길을 따라 와 도착한 장소.

   나무와 흙길 밖에 없던 그곳을 통과하고 도착한 이곳이 13층의 메인이자 성좌가 거주하고 있을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느낌상 지금부터는 긴장을 해야 할 타이밍.

   나는 조심스럽게 탑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고 돌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묘하네. 꿈을 꾸는 기분이야.”

     

   지금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데스 게임을 하고 있는 처지였지만 나는 나름대로 게임 회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었다.

   이런 판타지풍의 배경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으니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뚜벅. 뚜벅.

     

   한참을 걸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거라 여기긴 했지만 계단에서부터 입구까지의 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었다.

     

   “저건……”

     

   하지만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특이한 풍경이 나의 눈에 담겼다.

     

   “칼?”

     

   바위를 깎아 연결시킨 돌다리의 틈에 칼이 거꾸로 박혀 있었다.

     

   “저기도 있군.”

     

   자세히 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반쯤 날을 잃어버린 부러진 검이나 이가 갈려서 벤다기보다는 찢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 도.

   그 외에 창대 부분이 반토막 난 창이나 갈라진 도끼 따위의 무기가 곳곳에 박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소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름이 돋아났다.

   마치 병장기들의 모습이 죽어 버린 누군가의 시신을 대신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나는 바닥에 박혀 있던 검들 중 그나마 상태가 깔끔해 보이는 검으로 다가갔다.

   꾸준히 사용하고 있던 무명검이나 한철검이 나의 손에 익기는 했지만 이런 곳에서 우연히 굉장한 명검을 얻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쳇.”

     

   이곳에 멀쩡한 무기 따위는 없었다.

     

   [띠링!]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에게 귀속된 물건입니다.]

     

   휘이잉……

     

   내가 검에 손을 가져다 대자,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날리듯 무기가 흩날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날아갔던 바람이 되돌아오기라도 한 듯, 무기가 금방 재생됐다.

     

   그리고 무기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순간, 나는 정말 우연찮게도 검이 관통한 바닥에 새겨진 하나의 문구를 읽을 수 있었다.

     

   「데 하일란 [28층]」

     

   나의 추측이 정확한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적힌 기록을 봐서는 나의 머릿속을 스쳐 간 그것이 아주 빗나간 것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신성력을 사용하던 자. 그는 강직하고 굳센 검술을 구사했다. 패인은 자신의 방어력을 너무 믿었던 것. 자신의 검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검을 사용했다면 좋았을 것을. 멍청한 인간. [연鳶]」

     

   나의 시선이 이곳에 박혀 있던 모든 병장기들을 향했다.

   박혀 있는 무기들만 눈대중으로 봐도 수천 개는 넘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숫자.

     

   “악취미군.”

     

   아마도 이곳에 꽂혀 있는 모든 무기들은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만든 탑을 정복하지 못한 채, 어느 위치에서 패배한 자의 묘비가 아닐까 싶었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 마검사. 번개가 꽤 짜릿했다. 패인은 상대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불에 장기가 다 타올라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놈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았겠지. [연鳶]」

     

   「곡예를 하던 놈. 검을 들고 다니기에 주무기라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패인, 쇠사슬은 쓰레기다. 그냥 툭치면 부러지는 장난감을. 젠장. [▒▒] [쓰레기]」

     

   연鳶과 연이라 쓴 글자를 짓밟아 지운 흔적.

   나는 무기를 만지며 그들에게 적힌 기록을 일일이 읽어나갔다.

     

   「키아라 프랑 [35층]」

   「알렌산드로 플로라 [41층]」

   「프라이즈 세드 [44층]」

   ……

   ……

     

   수백 수천 명의 전투.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와 전투방식, 그리고 그들이 패배한 이유와 그 층을 분석하며 나는 시간을 사용했다.

     

   ‘어차피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정보는 곧 힘.

     

   이곳에 대한 정보와 내가 싸워야 할 상대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취합하여 내가 이 13층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내가 나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의미지?”

     

   검의 묘비에 기록된 것 중에 유일하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연鳶]

     

   가끔씩 낮은 층에 이름이 기록되거나 평가가 박한 기록 중에서 연이 아닌 쓰레기라 적힌 것을 보니 어떤 등급이나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말고 다른 평가가 없었으니 ‘연鳶’이 가지는 정확한 의미를 도무지 추측할 수가 없었다.

     

   “일단 여기는 거의 다 본 것 같네.”

     

   그렇게 나는 꼬박 하루를 무덤의 기록을 읽는 것에만 집중했다.

     

   추가적인 정보라면 지금까지 내가 본 기록으로 저 탑을 끝까지 클리어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놀랍게도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저 기록을 남긴 누군가의 훈수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문과 가장 가깝게 꽂혀 있는 검 한 자루.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라하다.’

     

   상태가 심히 좋지 못한 검의 형태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전투를 치른 것인지 이미 이가 다 빠져 버린 칼날.

   기존에는 화려한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지만 어떤 형상만이 흐릿하게 검신에 남아 투박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근데 뭔가 달라.’

     

   예기 銳氣

     

   검이 가지고 있는 기세는 누군가가 그 검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스윽.

     

   나는 그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지금까지 만졌던 그 어떤 검도 이런 신비로운 감각을 주지 못했다.

     

   척.

     

   검을 잡자 지금까지의 모든 무기들이 그랬듯 그 형태가 자연스럽게 흐트러진다.

     

   “……”

     

   그렇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기록.

   이 검의 주인인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완벽했다. [조鳥]」

     

   더 이상의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짧디짧은 찬사.

   그리고 나의 시선이 찬사가 가리키는 주인공의 이름을 향했을 때.

     

   「화영 [完]」

     

   나는 반가운 이름 두 글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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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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