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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EP.125

     

   21층을 클리어한 이후,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차분히 적의 속성에 대응해가며 전투를 이어 나갔다.

     

   이어진 22층의 몬스터는 온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골렘.

   검의 무덤에서 봤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22층에서 좌절한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았다.

     

   「빠른 쾌검은 충분히 좋은 검술. 하지만 때로는 한 걸음 떨어져서 멀리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그대는 조금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었다. [연鳶]」

     

   「유능제강. 이열치열. 그대에게 강함을 이겨 낼 부드러움이 없다면 상대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 했다. [연鳶]」

     

   나는 검을 집어넣은 뒤, 곧바로 육탄전으로 돌입했다.

   온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만큼 잘라 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 분명한 괴물. 나는 놈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 생각했고 그 계산은 거의 정확했다.

     

   -위이잉.

     

   맞으면 골로 갈 것이 분명한 묵직한 공격이었지만 그것도 닿아야 의미가 있는 것.

   무게가 많이 실린 만큼 느려진 공격을 좌측으로 비스듬히 피한 나는, 그대로 놈의 팔을 붙잡아 바닥에 내려찍어 버렸다.

     

   콰아앙!

     

   놈의 강철 팔이 순간적으로 바닥에 고정된다.

   물론 들썩이는 돌바닥을 보니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그 전에 끝장을 볼 생각이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흐으읍!!!”

     

   쩌어어엉!!!

     

   압축된 마력을 두른 주먹을 놈의 대가리에 꽂아 버리자 강철판 같은 머리가 찌그러지며 굉음을 터트린다.

     

   [22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적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 메시지.

   나는 체력을 보충하고 마력을 갈무리한 뒤, 다음 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음 기사.

   나를 바라보며 푸른 안광을 내뿜는 괴물을 열화의 호흡으로 녹여 버렸다.

     

   독을 뿜어내는 거대한 지네, 그림자에 숨어 상대의 목을 물어뜯는 검은 짐승.

   그 밖에 풀을 조종하는 허수아비나 전기를 뿜는 벌 따위가 나타났지만 나는 차분하게 놈들을 공략하며 한 단계씩 전진해 나갔다.

     

   [23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24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25층을 클리어하셨…

   …

   …

   [30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21층에서 불도마뱀에게 한 번 죽을 뻔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층을 무리 없이 통과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진행했기 때문에 층을 오르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지만 중요한 것은 쓰러지지 않고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는 사실이었다.

     

   “음……”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무의 정원이라는 장소가 나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있다는 그런 묘한 느낌.

     

   2층에서 화영에게 천월신공을 배웠지만 이제야 제대로 전투를 익혔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를 파악하는 법을 배우고 괴물들을 잡아낼 때마다 알게 모르게 검의 이치에 대해 깨달아가는 기분이랄까.

     

   “착각이 아닐지도 모르겠네.”

     

   지금까지 내가 봐 왔던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는 강한 상대를 갈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상한 놈이 맞지만 그런 타입들이 있지 않은가. 성장에 벽을 느껴 자신과 비슷한 상대에게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런 천재들이.

     

   무의 정원 입구에 있던 기록들은 그런 도전자들을 위한 성좌의 안배가 아니었나 싶었다.

     

   나는 마력이 회복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전투를 끝마칠 때마다 웬만해서는 안전하게 회복을 해 두는 편.

   게다가 지금까지 겪어본 경험상으로 10층을 넘어갈 때마다 괴물들의 컨셉이 바뀌었으니, 다음 전투에서는 과하게 힘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끼익…

     

   나는 문을 열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두운 방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시력이 강화된 상태에서도 바로 잡히지 않는 시야. 사실 직진으로 문을 계속 통과하는데도 층이 올라가지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일종의 포탈이 아닐까 싶긴 하다.

     

   스스슷.

     

   그렇게 도착한 다음 단계.

   하지만 나를 당황하게 했던 점은 나의 눈앞에 떠오른 층에 대한 정보가 31층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도전자의 쉼터에 도착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서서히 밝아져 오는 시야에 나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지금까지 내가 봐 왔던 장소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이곳은 마치.

     

   “온천이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탕이 나의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상황이었다.

     

   척.

     

   허나 나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검을 바로잡았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상대한 괴물들만 생각해도 이런 장소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탓이었다.

     

   뭘까. 이번에는 어떤 괴물이 나타나려고 이러는 걸까.

     

   저 물속에서 액체 괴물이라도 나타나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열기를 힘으로 사용하는 증기 괴물?

     

   나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도는 긴장이 온갖 상상으로 나를 자극하며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벅. 저벅.

     

   반대편에서 나타난 누군가의 발소리에 나는 몸에 마력을 퍼트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오호라… 호신강기인가? 너.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인가 보군.”

     

   앞에 나타난 누군가의 강렬한 목소리가 좁은 방을 울려 퍼지며 나의 귀를 강타한다.

   목소리에도 마력이 실린 것인지,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내려앉는 착각을 일으키는 존재.

     

   “당신이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나의 물음에 불청객이 나를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다.

     

   칼로 찔러도 칼날이 부러질 것 같은 강인한 몸을 가진 근육질의 남자.

   허름한 바지를 입은 채, 온몸이 문신으로 도배된 그는 5층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었던 성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였다.

     

   “무척이나 반갑구나.”

   “나는 딱히 반갑지는 않군.”

     

   여전히 웃음을 흘리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에 나는 순간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살기를 뿜어대는 것도 아닌데 그저 걸어오는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괴물이네 저거.’

     

   어쩌면 문신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몸의 상처들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수천…… 혹은 수만 번의 전투를 치른 듯한 몸의 흔적.

   숱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가 가지게 되는 여유는 감히 흉내 낼 수가 없는 것이었고,

   몇 차례의 목숨을 건 싸움을 경험해 본 나는, 그 흔적에서 숨길 수 없는 놈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너를 해치려 온 것이 아니니.”

     

   그렇게 말을 남긴 놈이 천천히 온천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다.

     

   “후으으…! 시원하군!!!”

     

   마치 목욕탕의 열탕에 몸을 누인 노인이 시원한 한숨을 내뱉는 것만 같은 친근함.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놈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에게 물었다.

     

   “거기에서 뭐 하나? 안 들어오고?”

   “어처구니가 없군. 너 같으면 들어가겠어?”

     

   놈은 나의 적이다.

   애초에 6층으로 가야 할 상황에서 13층으로 끌려온 것도 놈이 무슨 수를 썼기에 가능했던 것.

     

   물론 내가 강자로 느껴지는 상대를 보며 긴장을 푸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경계심은 훨씬 깊어지는 게 당연했지만 가장 핵심은 바로……

     

   “무슨 꿍꿍이야?”

     

   놈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너무나도 지금의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뭐?”

   “의도가 뭐냐고. 너는 나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적?”

     

   나의 말에 녀석이 멍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윽고 놈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큭, 크하하핫!!!”

   “윽!”

   “적이라…! 물론 적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나에게 그런 사소한 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놈이 명백히 비웃음에 가까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어린아이가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을 보는 듯한 눈빛.

   하지만 이어진 놈의 목소리는 왠지 무언가 벅차오르는 듯, 한껏 들뜬 감정을 가득 싣고 있었다.

     

   “아아, 웃은 건 미안하구나! 지난 수십 년간 나를 보며 적의를 드러낸 인간이 처음이라 말이다. 반가워서 그랬다.”

     

   놈이 손바닥을 들어 자신의 맞은편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일단 앉지. 솔직히 말해서 자네도 알지 않나? 지금으로서는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대신 나도 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내가 이곳에서 자네에게 공격을 가한다면 성좌의 자리를 내려놓고 자결하겠다. 이럼 어떤가?”

     

   그 누구라도 가볍게 담을 수는 없을 것 같은 발언.

   게다가 이런 강자가 하는 말이다 보니 신뢰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눈빛에 거짓이라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절대 꺾이지 않을 굳건한 모습.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요새와 같은 존재를 앞에 두고서 조심스럽게 따뜻한 탕 안으로 발을 들였다.

     

   띠링.

     

   [생명의 샘에 들어왔습니다.]

   [체력과 마력이 빠르게 회복됩니다.]

     

   “……?”

   “당황한 표정이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즐기시게. 그간 나를 즐겁게 해준 상이라고 생각해.”

   탕에 몸을 담그자 몸의 피로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5층에서 구매한 초회복약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빠른 회복 속도에 당황하고 있을 때쯤.

     

   “내 이야기를 조금 들어 보겠나? 어차피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도 꽤 걸릴 텐데 말이야.”

     

   놈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다음 관문들에 대한 힌트를 조금 주도록 하지.”

   “무슨……?”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놈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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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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