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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EP.126

     

   나와 함께 온천욕을 즐기던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는 31층 이후에 있을 정보들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라면 내가 녀석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점.

   언어가 달랐던 것이 아니었다. 단어는 정확히 이해가 됐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이 조금 더 맞지 않을까 싶었다.

     

   “그대가 기초가 다져진 검사라면 도달할 수 있는 높이가 있다. 하지만 기초에 충실한 검사라면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60층 이후의 관문이다.”

   “……”

   “그대가 연鳶이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와 조鳥가 되었을 때 닿을 거리가 다르다는 말이야. 굴레를 씌우되 억압되지 말아라. 그것이 모든 관문을 통과하는 왕도이니.”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니 마치 자신보다 더 정확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표정으로 그가 어깨를 펼친다.

     

   “더 궁금한 것은 없나?”

   “……없습니다.”

   “역시 이 정도 설명이면 다들 알아듣는군. 물론 대답은 잘해놓고 중간에 죽어버리는 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마 그들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그 자리에서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곁눈질로 슬쩍 구경만 해도 터질 것 같은 근육과 그 위로 펼쳐진 위협적인 문신을 보면 그 누구라도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그 관문을 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1층에서 만났던 것이 고블린, 그리고 30층에서 만난 것이 5개의 대가리에 5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던 히드라였던 것을 감안해야 했다.

   앞으로 올라갈 난이도는 나의 예상 범위를 아득히 벗어날 것이 분명했고 나는 그 모든 것의 공략을 찾아가며 꾸역꾸역 층을 오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1층을 오르기 전부터 계속해서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 연鳶이라는 건 뭡니까?”

     

   탑의 입구에 있던 무수한 기록들.

   병장기가 꽂혀 있던 그곳에 적혀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에 대한 짧은 평가가 나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나의 스승이었던 화영과 쓰레기라고 평가받은 몇몇을 제외한 모두에게 기록되어 있던 연이라는 글자.

   기록의 흐름으로 추측해 보니, 그것은 도전자들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아닐까 싶었고 나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그 무인에 대한 평가다.”

   “하늘에 날리는 그 연을 말하는 겁니까?”

   “오호? 그대의 세상에도 그런 물건이 있던가? 흔하지 않은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하늘에 날리는 장난감이며 과거에는 군사 작전 신호용으로도 사용했던 물건.

   모든 관문을 통과한 화영에게는 새를 의미하는 조가 새겨져 있었으니 한계를 통과한 누군가와 그렇지 못한 누군가를 구별한 표식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 나름대로 무인을 구분하는 방식이지.”

   “그렇다면 조鳥도 같은 개념입니까?”

   “비슷하다.”

     

   연과 새. 둘의 공통점을 굳이 찾아보라면 하늘을 난다는 점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대는 연을 날려본 적이 있나?”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땠나?”

     

   아직 성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던 어린 시절, 강변 어귀에서 누군가가 버린 연을 보고는 그것을 띄워 보려 했던 적이 있었다.

     

   “어렵더군요. 뜨기는커녕 흙바닥에서만 열심히 굴리다가 버렸습니다.”

   “크큭. 그래 보통 요령이 없다면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지.”

     

   연을 띄우는 요령.

   그는 그것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연을 띄우는 데에는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지. 적당히 강한 바람, 부러지지 않은 살, 그리고 그것을 처음 띄우기 위한 속도와 힘까지도.”

     

   전부 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하지만 그대는 그것을 아는가?”

   “뭘 말입니까?”

   “연은 실이 있어.”

   “……네?”

     

   당연한 말이다. 연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없어서 안 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니까.

     

   “혹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이 연을 더 높게 날리고 싶다. 하지만 이 실 때문에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구나.”

     

   그가 양팔을 들어 연을 날리는 듯한 시늉을 하자 왠지 모르게 그 상황에 몰입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뽑을 대로 뽑아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실. 그리고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주인.

     

   “이 실을 끊으면 더 올라갈 수 있겠지. 그리고 그는 가차 없이 그 실을 끊는다.”

     

   그가 손을 가로로 움직였다.

   티딕거리는 짧은 소리와 함께 끊어져 버린 그의 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연을 띄워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하늘로 끊임없이 솟아오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연은 그대로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실이 사라진 순간부터 바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꾸라진 연의 살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박살이 나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

     

   “연은 그렇다. 실이라는 기초가 없다면 날 수 없다. 기초가 없다면 성장할 수 없고 성장을 하더라도 기초를 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은 원점보다 못한 상태가 된다.”

     

   비석처럼 세워진 검.

   그리고 그 아래에 기록된 연鳶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화영의 검에 적혀 있던 조鳥라는 말 또한.

     

   “허나 조鳥는 다르다. 기초를 완전하게 숙지하였기에 실수 따위는 없다. 그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 그리고 한계가 있는 연과는 달리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을 줄 아는 자.”

     

   그가 나를 바라본다.

   눈빛에 담긴 기대가 선명하게 나의 심장을 찌른다.

     

   “그대는 연이냐?”

     

   그가 묻는다.

   탑에 들어오기 이전, 튜토리얼에서부터 나를 지켜보던 성좌가.

     

   “아니면 그대는 새인가?”

     

   그가 물었다.

     

   내가 굴레를 벗어던질 자격이 있는지.

     

   내가 아직 지키려고 하는 것이 억압인지 자유인지.

     

   내가 갈망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제 막 성좌가 된 네가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대가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란다.”

     

   지금 보다 더 성장해 자신을 만족시켜 달라는 그의 말.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된 그의 말에 나는 오히려 반문했다.

     

   “왭니까?”

     

   처음 내가 추측했던 그의 의도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 스스로 강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더 자세히 보게 된 결과, 나의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강자.’

     

   그는 이미 한계를 초월했다.

   13층 언저리를 지배하는 성좌가 이런 강함을 지니고 있다면 감히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만인의 지탄을 받을 정도로 무모한 행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나의 물음에 그는 생각보다 굉장히 근본적이면서도 동시에 틀을 벗어나는 답변을 내놓았다.

     

   “재밌으니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는 이명이 썩 어울리는 단순하고도 깔끔한 답변이었다.

     

   그가 나의 물음에 답하며 어울리지 않게 생글생글한 웃음을 짓는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기도하고 수증기가 올라오는 온천을 손으로 휘휘 저어 보기도하고.

   마치 어린아이가 어느 날 꿨던 즐거운 꿈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그는 잠시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대.”

   “예.”

     

   그가 나에게 물었고 나는 답변했다.

     

   “만약 그대가 원한다면 무武를 가르쳐 주지.”

   “……?”

     

   눈앞의 초월자가 나에게 가르침을 내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은 곧바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치를 담고 있었다.

     

   “나에게 배움을 얻는다면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어떤 상상을 하든지 그것보다 강해질 수 있을 테지. 그렇게 된다면 탑을 오르며 만나게 될 웬만한 쭉정이들은 너의 발아래의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곧장 답변하지 않으며 잠자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올려다보기도 벅찬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주변으로 풍기는 위압감만 보더라도 그가 규격 외의 강자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단,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럼 저는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나의 물음에 그가 물끄러미 나의 눈을 바라본다.

   붉은 눈동자. 세월을 알 수 없는 길게 늘어진 백발과 우락부락한 구릿빛 근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떤 깊이가 그의 눈동자를 통해 비쳐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들려온 그의 답변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잠재력.”

   “……”

   “미래, 더 성장하고자 하는 열의를 잃게 되겠지.”

     

   그의 말은 앞서 말한 요소를 자신에게 바치라는 말 따위가 아니었다.

   자연적으로 잃게 될 것이라는 말. 그리고 그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한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계가 생길 거라는 말이군요.”

   “이해가 빠르군.”

   “그것도 당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래.”

     

   듣기에 따라서 오만방자할 수도 있는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허나 검을 부딪쳐 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의 말이 그저 말뿐인 허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몇 번 느낀 거긴 하지만 그대는 눈빛이 좋군.”

     

   그의 말에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특별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저 지난날의 기억이 한 줌 떠올랐기에 지어진 감정의 표현.

     

   “그렇다면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이미 그런 경험을 한 번 해봤거든요.”

     

   청출어람.

     

   천월문의 후계이자 나의 스승이었던 2층의 화영을 꺾은 기억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녀는 강했다. 2층에 처음 올라왔을 당시에도 느꼈고 그녀와 비무를 펼치게 되어 검을 나누는 그 순간까지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허나 결국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물론 무공 그 자체가 아닌 능력치의 활용과 내가 가진 스킬의 힘을 빌린 것이기는 했지만 그것 또한 나의 능력이었고 그렇게 얻은 승리도 승리였다.

     

   “하지만 당장은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지는 않겠습니다.”

     

   허나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장은 받지 않겠다? 말이 이상하군.”

   “제 추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이곳의 마지막 층은 100층이죠. 그리고 당신은 그곳에서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1층부터 99층을 차근차근 올라온 도전자를요. 맞죠?”

   “그러하다.”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은 표정은 여전했고 나는 그런 그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 100층을 도전했던 기록을 1층에서 봤습니다. 화영이라는 무인의 이름이었죠.”

   “기억한다.”

   “그녀가 제 스승입니다.”

   “……”

     

   그의 두 눈이 서서히 초승달을 그리며 휘어지기 시작한다.

     

   “크하하핫!!!”

     

   서서히 격양되는 목소리. 이윽고 그는 한껏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참으며 마력을 이용해 귀를 보호했다.

     

   “그래 기억나는군. 그대의 2층은 화영이 있던 무림이었지! 그 스승에 그 제자라…! 좋다! 그럼 다시 한 번 정식으로 물어보도록 하지! 나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그대에게 가르침을 주기를 원한다!”

   “100층에 도달했을 때, 그때 한 수 청하겠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그가 더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다.

   왠지 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존재. 너무 그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에 더 감각이 무뎌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존재.

     

   “좋다. 그대는 반드시 정상에 올라오라. 그대가 연鳶일지, 아니면 그대의 스승과 같은 조鳥일지 판별해주지.”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난 근육질의 남자.

     

   성좌로서 나의 첫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에 대한 핑계이기는 하지만 감기에 걸려서 집필이 어려웠습니다…
오늘은 많이 괜찮아 졌지만 어제 저녁에 열이 41도까지 올라가서 와,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타이레놀 많이 먹고 9시간 넘게 자고 지금은 살아났습니다. 내일도 연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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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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