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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EP.127

     

   기초가 있다면 60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성좌의 말.

   그리고 내가 그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카아앙!

     

   31층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는 인간형의 몬스터였다.

     

   사실 몬스터라고 부르기에는 약간의 하자가 있었다.

     

   표정이 담긴 이목구비 따위는 전혀 없는 목각인형들.

   감정을 읽을 수도 없고 머리를 완전히 박살 내지 못 하는 이상 쓰러뜨릴 방법도 없는 놈들이었기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드드득. 드드득.

   드드득. 드드득.

     

   게다가 문제는 층을 올라갈수록 그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

   31층에서는 검을 들고 있는 3마리의 목각 인형을 상대하는 것으로 관문을 시작했었다.

     

   그 셋을 무난히 상대하고 올라간 다음 지점에서는 검을 들고 있는 놈이 둘에 창을 들고 있던 놈이 둘.

   그리고 33층에 도착했을 때부터는 단검을 투척하거나 화살을 쏴대는 원거리 딜러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레이드를 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5층의 플레이어들이 마왕이라는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쳤던 것처럼 31층 이상의 관문에서는 목각 인형들이 나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었다.

     

   “징그러운 것들.”

     

   그렇게 도착하게 된 60층.

   쇠와 나무가 마찰하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만들었고 그 거슬리는 소리에 나는 미간을 좁히며 놈들의 머릿수를 계산했다.

     

   20마리의 목각 인형이 검, 창, 활 등 다양한 무기를 손에 쥔 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날 법한 광경이었지만 나는 조금 더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기로 했다.

     

   ‘이놈들 아래층보다 기술이 좋아졌어.’

     

   기초가 안정적이게 잡힌 사람들은 그 다음 단계로 ‘응용’을 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응용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테스트 하는 단계가 곧 31층에서부터 60층.

     

   이곳에 나타난 목각 인형들은 나의 검술을 학습하듯 조금씩 적응해 가기 시작했고 결국 60층에 도착해서는 웬만한 잡기술로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상태까지 진화하고 말았다.

     

   “수가 적을 때는 만만했는데 뭉치니까 좀 귀찮네.”

     

   솔직히 처음에는 30층 이전의 난이도 보다 쉬운 게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놈들이 검술을 사용하든 창술을 사용하든, 아니면 그 둘이 동시에 덤비든 큰 문제에 부딪쳤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수가 열이 되고 스물이 되고 마침내 조합도 단단해지자 나의 마음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자그마한 교만은 언제부턴가 수면 아래로 사라져 있었다.

     

   뜨드드득!!!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각인형 스물이 동시에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쏜 건지 공중에서 방향을 자유자재로 뒤트는 화살이 나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었다.

     

   ‘이건 피해야 한다…!’

     

   하지만 화살을 쳐내면 정면에서 대검과 도끼가 나의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달려들 터.

   그것을 알았기에 나는 고개만 돌려 화살을 피한 뒤,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고 하나의 목각 인형을 베어낸 채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우웅!

     

   뒤에서 지팡이를 들어 마법을 펼치고 있던 인형들이 본격적으로 마법을 펼친다.

   땅에 펼쳐진 마법진에서 발을 묶으려는 나무줄기들이 돋아났고 나는 빠르게 보법을 밟으며 놈들을 향해 돌진했다.

     

   ‘마법사가 셋. 궁수가 넷.’

     

   전투를 보조하는 인원을 빠르게 제압해야 남은 전투가 조금 더 순탄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쐐액!!!

     

   하지만 나의 움직임을 가만히 둘 괴물들이 아니었다.

   지난 층에서 내가 놈들의 협공을 파훼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라 그런지 눈치를 챈 놈들이 급하게 나의 앞을 막아서기 시작한다.

     

   활을 쏘며 나를 견제하는 것은 기본이고 급한 마음에 자신의 무기를 나에게 투척하는 놈도 있을 지경.

     

   “이걸 기다렸다.”

     

   하지만 놈들의 손이 비었다는 것은 나에게 공격권이 넘어왔음을 의미했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나의 검에서 날카로운 빛줄기들이 터져 나가며 무기를 들고 있지 않던 주변의 놈들에게 작렬한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상대의 수를 빠르게 읽는 것.

   그것이 내가 앞선 층들을 통과할 수 있었던 나름의 방법이었고 이번에도 그것은 큰 효과를 보며 눈앞의 목각 인형들을 쓰러뜨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콰과과광!

     

   그렇게 내가 파괴할 수 있었던 인원은 총 여덟이었다.

   앞으로 열둘의 인형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균형이 이미 깨져 버린 놈들은 더 이상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빠르게 보법을 밟아 놈들을 빠르게 파괴해 나갔다.

   근접하는 놈들을 지나쳐 궁수들을 잡아냈고, 같은 편이 있든 말든 마법을 쏴대려던 놈들을 이용해 근접 유닛들을 가볍게 견제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목을 날린 것은 작은 완드를 들고 있던 마법사 인형.

   진형이 붕괴된 놈들은 나에게 완패했고 나는 그렇게 60층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

     

   “흠……”

     

   60층을 클리어한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왜 더 쉬워진 것 같지?”

     

   어느 순간부터 목각 인형들을 상대하는 것이 수월해졌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놈들은 성장했다.

   나의 공격을 파악하고 나의 전술을 이해하며 점점 더 강해졌다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늘어난 것은 실력만이 아닌 인원까지 포함되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고작 셋이었던 인형이 어느 순간부터 스물을 육박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승리까지의 시간은 더 단축되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기초라는 건가?”

     

   기초가 준비되어 있는 자는 어렵지 않게 이겨 낼 수 있을 거라는 관문.

   그리고 그것을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성좌의 말.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승리가 정말 나 자신이 단단했기에 얻을 수 있는 영광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저 운이 좋았기에, 아니면 특정한 스킬의 덕을 보거나 눈치가 빨라서 꾸역꾸역 버텨 낸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저벅.

   저벅.

     

   나는 61층으로 향할 문으로부터 두 발자국 물러났다.

   지금부터 만나게 될 적들은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그런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스릉.

     

   검을 뽑았다. 그리고 중단세를 취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당시의 세상이 드라마나 영화 따위라면 나의 역할은 그저 지나가는 행인1이나 회사원20 따위로 엔딩크래딧에 올라올 정도의 비중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튜토리얼을 겪고 탑을 오르기 시작하며 확실한 변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2층의 무림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살아남기 위해 스승을 찾았다. 2층에서 능력을 얻지 못하면 그 이후에 있을 임무를 통과하지 못해 죽을 것이 선명했기에 더욱 악착같았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욕심은 있었지.’

     

   어정쩡한 C급 무공은 배우지 않겠다는 생각.

   그 이상의 검을 배워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그 본능에 충실해 화영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따라했다.

   그렇게 검을 배웠고 그렇게 무공과 기술이라는 것이 수련을 통해서 익힐 수 있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천월문의 검을 빛내주어 감사합니다.」

     

   나의 스승에게 들었던 한마디.

     

   스윽.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을 내리그어 허공을 벴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나의 검은 반복됐다.

   당시의 기억을 상기하듯, 그리고 잊었던 기억들과 검의 근본을 다시 찾듯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그렇게 이어진 일천 번의 내려치기.

     

   나는 하단세를 취했다.

   그렇게 찌르기도 일천 번, 올려치기도 일천 번, 그 이후로 있을 내가 화영에게 배웠던 모든 동작들을 일천 번 반복할 때까지 나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알 것도 같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기초가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

   그리고 그 기초를 통달했을 때 서서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 이유까지도.

     

   “후우…… 후우……”

     

   목각 인형 스물을 제압하면서도 거칠어지지 않았던 숨이 가빠온다.

   하지만 숨이 거칠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탁해져 있던 정신은 서서히 맑은 상태를 되찾고 있었다.

     

   ***

     

   성좌인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를 따르는 화신들은 다른 화신들에 비해 그 수가 적은 편이었다.

     

   애초에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플레이어를 고르는 눈 자체가 까다로운 탓도 있었고 ‘무武’ 자체를 숭상하다시피 하는 미치광이들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떠한 목적이 있기에 힘을 기른다.

     

   복수를 위해서나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

   그것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지킨다는 명목이나 그 외에 다양한 이유로 전투를 익히고 무를 갈고닦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순전히 싸움이 좋아서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강해지는 것이 좋은 존재들, 강한 자와 목숨을 건 결투를 하는 것 그 자체를 즐기는 싸움광들.

     

   그리고 무의 정원 61층 부터는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를 따르는 화신들이 각 층 마다 순위를 매겨 순서대로 안배되어 있었다.

     

   “도전자가 늦는군.”

     

   도전자들의 목표는 그들을 쓰러뜨리며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도전자는 61층의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의 진행을 하지 못했다.

     

   “설마 이미 죽었나? 그럼 재미없는데……”

     

   그의 화신은 강했다.

   애초에 전투 자체를 즐기는 존재들 중에서도 재능이 있는 존재들을 긁어모은 상태다 보니, 그의 위치가 61층이라 하더라도 5층의 마왕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쌍검을 툭툭 부딪치며 문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끼익……

     

   “왔구나!”

     

   그가 그토록 바라던 도전자가 문을 열며 61층에 등장했다.

     

   “그동안 올라오던 놈들이 다 죽어서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아나?! 당장 덤비거……”

     

   반갑게 도전자를 맞이하려던 화신.

   하지만 그 반가움은 그리 오래갈 수가 없었다.

     

   도전자에게서 풍겨 오는 묘한 아우라.

     

   “……이런 미친.”

     

   자신의 주인인 성좌와 흡사한 격을 가진 존재의 등장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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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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