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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EP.128

     

   별호. 이지무쌍검 理智無雙劍

   배정 받은 위치는 61층에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의 화신’들 중에서 수 싸움에 특별히 능한 자.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를 따르는 화신은 61층에서 99층 사이에 있는 39명이 전부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 어쩌면 만이 넘을 지도 모르는 그 인원 안에서 그는 손에 꼽는 인재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의 별호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으며 이성을 다스리는데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지혜로운 방식의 전투를 선호하는 쌍검의 무인이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하지만 그의 이지(理智)가 무너지는 상황이 지금 눈앞에서 발생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상대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기분. 그리고 문 너머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보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정체 모를 좌절이 꿈틀거렸다.

     

   저벅. 저벅.

     

   정정당당한 싸움을 권하는 무의 정원의 규칙상, 상대에 대한 정보는 층에 도달하기 전까지 열람이 금지되어 있었다.

     

   싸움을 좋아하다 못해 신성시 하는 성좌가 만든 룰.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그의 방식대로 나름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성좌가 왜 무의 정원을 찾아와?! 이건 아니지!!!”

     

   자신의 성좌가 김시인이라는 플레이어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힘이 없음에도 짐승의 본능을 보는 듯한 전투 센스를 발휘하고 어떤 위험이 있든지 결국에는 살아남아 기적을 보여주는 특이한 남자.

     

   그는 그의 말을 들은 이후로 김시인이라는 플레이어에 대해 조금씩 알아봤다.

   지금까지 무의 정원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대부분의 화신들은 튜토리얼에서부터 그의 관심을 받으며 차곡차곡 성장해온 루키들이었던 경우가 많았으니, 그 또한 그런 절차를 밟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근.

   그의 예상대로 김시인이라는 플레이어는 무의 정원에 발을 들였다.

   전쟁의 성좌가 관심을 가지는 남자.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관심의 정도만 봐도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이곳까지 올라오리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강할 것이라는 것은 절대 예상하지 못한 경우였다.

     

   “……”

     

   척.

     

   이놈, 아니… 아직 새파란 성좌이긴 하지만 김시인이라는 성좌가 자신을 보더니 자연스럽게 포권을 취한다.

     

   어딘가 익숙한 동작. 자신보다 위의 층을 담당하고 있는 화신들 중, 무림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자들이 저런 식의 인사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어어… 반갑소.”

     

   그는 일단 인사를 받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과거에 그가 61층을 처음 담당하게 되었을 때, 만났던 어떤 여자의 모습이 스쳐 갔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인식하기에는 너무 찰나의 기억이었다.

     

   스릉.

     

   그가 자연스럽게 검을 뽑아 든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의 권능으로 이지무쌍검은 무의 정원에서 도전자에게는 결코 목숨을 잃지 않는다.

     

   물론 그 순간에는 죽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이 층을 벗어나면 다시 살아나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자, 잠깐만!”

     

   하지만 문제가 조금 있었다.

     

   “조금만 진정하고 천천히 진행하지. 우리 통성명도 안 했지 않은가?”

     

   이지무쌍검은 김시인이라는 이름의 성좌가 비정상적으로 무서웠던 것.

     

   지금까지 이곳을 찾아온 대부분의 도전자들은 당연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지닌 베테랑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약점이나 빈틈 따위는 있었고 만약 그게 안 보였다 하더라도 그의 동작을 예측해서 미리 공격을 차단해 버리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근데.

     

   ‘왜 약점이 없지?’

     

   기초가 잘 잡혀 있었다.

   아니, 어느 정도 잘 잡혀 있다 수준이 아니라 이 정도면 1층부터 60층을 중단세 찌르기 하나로 통과했다고 믿을 만큼 자세가 올곧고 안정적이었다.

     

   그는 알 수 없었던 사실.

   김시인이 성좌가 되며 격이 상승하고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그 순간부터 60층을 클리어하기 전까지, 그가 자신의 몸의 균형을 신경 쓰며 기초 동작을 시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뭔 짓거릴 한 거지?’

     

   60층을 클리어하고 기초 동작을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한 것.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것은 김시인의 실력에 큰 변화를 가져 왔고 지금까지 막혀 있던 성장에 물꼬를 트는데 큰 기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시인입니다.”

   “……”

   “그쪽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지무쌍…… 아니, 독고명이오.”

     

   그의 앞에서 무쌍(無雙)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부끄러웠다.

   솔직히 까고 말해서 이런 강자가 본인의 이명이 아닌 본명을 당당하게 까 버리는데 쪽팔리게 ‘이성과 지혜를 겸비한 무쌍의 검수’라는 별호 따위를 떠들 자신이 없었다.

     

   “한 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하오.”

     

   그가 예의 바르게 인사한 뒤, 곧장 검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엇, 시부럴.”

     

   순식간에 튀어나온 육두문자. 의도적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보통의 강자는 허세가 가득한 경우가 많아서 자신보다 하수를 만나면 선수를 양보하거나 삼 초를 먼저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김시인은 이지무쌍검이 검을 드는 순간 공격을 가해왔고 당연하게도 예상치 못한 공격을 대비하고 있지 않았던 그는 단 한 합 만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

     

   “응?”

     

   툭.

     

   뭔가 검이 살점을 가르는 느낌이 나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당연히 그가 어떤 환상을 통해 몸을 감춘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주변을 경계했지만, 웃기게도 나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의 날카로운 공격이 아니라 전투가 끝났다는 한 줄의 메시지였다.

     

   [무의 정원 61층을 통과했습니다.]

     

   고작 한 수였다.

   이지무쌍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에 엄청난 수 싸움을 하게 될까 싶어, 공격이 막히거나 빗나간 이후의 모든 수를 상정하고 있었는데 그런 게 다 소용이 없어졌다.

     

   “그 이지(理智)가 아니라 설마 이지(Easy)였나…?”

     

   충분히 생각할 만한 합리적인 의심.

   물론 30층보다 31층이 쉬웠던 것을 생각하면 60층보다 61층이 쉬울 수는 있었지만 이건 밸런스가 조금 망가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뭐 다음에 보면 알겠지.”

     

   혹시 모른다.

   이번 상대 이름이 이지무쌍검이었으니 다음은 노말무쌍검, 하드무쌍검 같은 놈들이 나올지도.

     

   게다가 목을 치는 순간 사라진 것을 보니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준비해 둔, AI식 전투 봇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도 무슨 보스 몹 설정 대사 같은 게 더 그럴싸한 것 같지 않은가.

     

   “일단 조금만 쉬자.”

     

   딱히 뭔가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바닥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혹시 몰랐다. 상대가 독 따위를 써서 층을 멋모르고 올라갔다가 다음 층에서 고역을 겪게 되는 스테이지 같은 것일지.

   정말 만에 하나의 경우였지만 나중에 후회하게 될 바에야, 귀찮더라도 지금 안전하게 점검을 하고 진행하는 게 옳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몰랐던 사실.

   상대가 약한 것도 아니었고, 어떤 비겁한 함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내가 센 거였다.

     

   “음…… 문제는 없는 것 같네.”

     

   나는 몸을 일으켜 다음 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62층의 상대가 어떤 자가 나올지는 몰랐지만 딱 지금 정도의 긴장감이 유지될 때,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무적거월부.

   혼백무의 주인.

   헬무라드의 기사단장.

     

   층을 넘을 때마다 나는 새로운 유형의 상대들을 만났다.

   끝끝내 하드무쌍검이 나타나지 않은 걸로 봐서 이지무쌍검은 쉽다는 의미의 별호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긴 했지만, 이미 지나간 상대의 이름을 가지고 신경을 쓸 정도로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도끼를 수준급으로 다루는 강자를 만났다.

   아무런 무기를 들지 않고 주먹질을 하는데 검이 부러질 뻔한 상대도 만났고 덩치가 내 3배는 되는데 눈으로 쫓기도 힘든 수준의 스피드를 내는 상대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다 이겼다는 것.

     

   모든 전투에 최선을 다 했다.

   상대의 무기가 거슬렸다면 그것을 파괴하거나 날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상대의 육체 자체가 사기적으로 느껴졌다면 월광검법의 초식을 이용해 상대의 정신을 쏙 빼놓는 방법을 사용했다.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되, 그 응용을 결코 놓치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렇게 뚫은 층수가 어언 30개의 층이 될 무렵. 나는 91층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이야, 반가워. 역대급 속도로 방을 클리어하는 도전자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너였구나?”

     

   대충 봐도 나보다는 어려 보이는 20대 초반의 외모.

   철로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튼튼해 보이는 가죽 갑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은 중세 귀족을 보듯 뭔가 보를 귀티와 고고함을 풍기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허허, 신참 너는 그래도 예의를 아는 놈이구나?”

     

   하지만 내가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유. 그것은 그가 나를 ‘신참’이라 불렀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 즉, 그가 나를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를 따르는 화신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그가 성좌라는 의미.

     

   “당신도 성좌이십니까?”

     

   나의 물음에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에게 답했다.

     

   “오,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성좌들은 생각보다 가벼운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다.

   물론 그 실력은 결코 가볍다는 느낌이 아니었지만 그 가벼움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비례하는 나름대로의 여유가 아닐까 싶었다.

     

   “재밌는 친구네.”

     

   그가 나를 보며 웃는다. 정말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한 눈빛.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자신의 검을 가슴 앞으로 슬쩍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인의 인사는 아무래도 검이지?”

     

   검으로 올리는 짧은 경례.

   나는 짧게 포권을 취한 뒤, 나의 검을 들었다.

     

   처음으로 겪는 성좌와의 싸움.

     

   도대체 왜 성좌의 놀이터에 다른 성좌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검이 곧장 날아들었다는 사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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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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