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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EP.129

     

   처음 검을 잡았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생각보다 더 차갑다’ 정도였던 것 같다.

     

   「시인 씨, 이전에 검을 사용해 본 적이 있습니까? 누구한테 배웠다거나.」

     

   튜토리얼 더미를 쓰러뜨린 후, 박조철이 나에게 물었었다.

   하지만 한평생 칼질은 요리를 할 때, 식칼을 제외하고는 해본 적이 없던 터라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군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봤냐고요? 흠, 그냥 뭐랄까요.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고 해야 하나?」

     

   박조철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당시 검술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조악한 나의 칼질을 보며 그런 평을 내렸다.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공격.

   상대의 목숨을 취하기 위한 목적 외에는 그 어떤 의중 따위도 없는 순수한 휘두름.

     

   사실 당시에는 그의 말을 가볍게 흘려들었다.

   굳이 내가 아니었더라도 그런 위기의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사람들이 내가 했던 것처럼 망설임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저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했다.

   휘둘러야 할 때, 휘두르지 않으면 피해를 입는 것은 나였고, 찔러야 할 때, 찌르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것도 나였으니까.

     

   하지만 1층에서 사람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2층의 무림에서 제대로 검술을 배우기 시작하자 나는 그것이 나름대로 나의 재능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인 소협. 과거에 무공을 배워 본 적이 있나요?」

     

   비슷한 질문을 들었다.

   당시 나에게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고 그녀는 나의 성의 없는 답변에 질문을 툭 하고 던졌다.

     

   「소협에게 검이란 무엇이죠?」

     

   그녀에게 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

   처음에 나는 검술을 지도해 주는 그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솔직한 답변이 필요했고 나는 그녀의 물음에 ‘상대를 해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답했다.

     

   「역시……」

     

   그녀는 나의 말에 수긍하며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 소협의 검은 한없이 날카로워요.」

     

   목적이 명확한 검.

     

   「하지만 그것이 소협의 검을 무디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어요.」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었다.

     

   「시인 소협은 혹시 발이나 다리를 다쳐본 적이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앞선 말에 비하자면 훨씬 직설적이고 확실한 물음이었기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별 이유 없이 발을 헛디뎌 넘어진 적도 있었고 성인이 되고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며 흘러내린 건축 자재를 피하다 무릎을 찧은 적도 있었다.

     

   「그때 어떻게 하셨죠?」

     

   어떻게 했더라?

     

   잊고 지냈던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고아로 태어나 이렇다 할 절친한 친구도 없이 흘려보냈던 학창 시절. 아프다고 울어봐야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성인이 되고서는 나를 돌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 했기에 자잘한 상처 따위를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다시 말해.

     

   「모두 참으셨죠?」

     

   그녀의 말에 나는 복잡한 감정이 피어났다.

     

   앞만 보고 달렸었다.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나에게 뒤라는 선택지는 없었고 만약 뒤를 돌아서는 순간, 그것은 패배를 의미할 뿐 결코 쉬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월광검법 수련은 여기까지만 하죠. 이리 와서 앉으세요.」

     

   그녀는 나를 공터의 중심에 앉힌 다음, 나의 맞은편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예요.」

     

   당황스러웠다.

   일분일초가 빠듯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하지만 화영은 단호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누구에게는 찰나였지만 나에게는 억겁과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찌르르……

     

   어디선가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로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개들의 하울링이 들리기도 했고 아직 잠들지 않은 정무학관의 관도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주변에 들개가 있나 보군요.

     

   내가 화영에게 말했다.

   그리고 화영은 나의 말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던졌고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들개 울음소리는 두 시진 전부터 들렸어요.」

     

   4시간 전부터 들렸다는 들개의 소리.

     

   「귀뚜라미는 한 시진 전부터, 그리고 지금 동이 틀 시간이 다 되어가서 이제는 관도들도 깨어나는 모양이네요.」

     

   사람은 한 가지 일에 몰입을 하게 된다면 다른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고는 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은 그런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자신의 성장을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인 소협의 검은 날카로워요.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망설임이 없어서 훨씬 위협적이죠. 하지만 검은 날을 날카롭게 가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베어낼 수는 없어요.」

     

   날카로운 검은 목표물을 보다 예리하게 베어낼 수 있다.

   하지만 목표물이 단단하다면 그것을 베어내는 것은 얼마나 검을 날카롭게 갈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단련했느냐가 그 성공을 좌우했다.

     

   「저도 다리를 다쳐본 적이 있어요. 수련을 하던 도중 기력을 다해서 언덕에서 꽤 크게 굴렀었죠.」

     

   그녀의 말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어요. 아직 수련해야 할 것도 산더미에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있었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죠.」

     

   그녀가 당시를 회상하듯 인상을 찌푸리며 바지의 아랫단을 살짝 접어 아직도 흉터가 흐릿하게 남아 있는 발목을 드러내 보였다.

     

   얼마나 크게 다쳤었는지 복사뼈 근처부터 종아리까지 갈라진 흔적이 보인다.

   이쯤 되면 절단이 되었던 것을 다시 붙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상처.

     

   「그렇게 한참을 쉬었어요. 저는 쉬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발만 움직여도 절뚝거리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녀가 웃는다.

     

   「사람이 늘 하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면 그제야 정말 해야 하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천월문의 부흥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허나 그녀가 그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지금까지 봐온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니까 제가 어느 부분이 부족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보법을 밟기에 부족한 내공이나 외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몇 달 간 막혀 있던 진도를 생각을 정리하면서 뚫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제가 왜 그 보법을 익히려 했던 것인지 다시 떠올릴 수 있었죠.」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할 수 있기에 사람인 것.

     

   목적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고 열심히 쌓아올린 집이 흔들린 균형 하나로 폭삭 내려앉을 수도 있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우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차근차근 해 나가는 것.

     

   내가 화영에게 배운 것은 선택과 집중이었고 그날 이후 나의 검은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

     

   카아아앙!!!

     

   성좌와의 격돌.

   첫 수에서 밀린 것은 놀랍게도 먼저 선공을 가져갔던 상대 성좌였다.

     

   “으읏!”

     

   격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능력치를 최근에 확인한 적은 없었지만 5층부터 쌓아왔던 모든 경험들이 업적이 되어 능력치로 변환되었었기에 그것에서도 큰 격차가 벌어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살아온 세월이나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나의 시간보다 그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쐐애액!

   파파파팟!

     

   그의 검이 나의 사지를 노리며 동시에 달려들었다.

   한 자루의 장검을 사용하는 검수였지만 저층에서 만났던 쌍검의 검수들보다 훨씬 빠르고 변화난측한 공격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수십 가지의 허초 사이에 숨겨진 살초.

     

   땅을 딛고 있던 좌측 허벅지를 노리며 깊게 들어오는 찌르기와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한 수가 나의 시선에 포착됐다.

     

   단순한 베기가 아닌 깊숙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수차례의 공격에 나는 상체를 비틀며 하단의 공격을 빠르게 쳐 냈다.

     

   카캉!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점은 그 공격을 내가 너무 쉽게 뿌리쳤다는 것.

   등골이 서늘했다. 만약 조금 전의 공격으로 나에게 치명상을 입힐 의도였다면 이렇게 쉽게 튕겨져서는 안 됐다.

     

   ‘뒤로…!’

     

   나는 목에 힘을 줘서 최대한 머리를 뒤로 뺐다.

     

   그리고 스쳐 가는 서늘한 기운.

     

   놈이 내가 쳐낸 검의 힘을 역이용했다.

   아니, 애초부터 이런 상황을 노렸다는 듯 놈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나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가벼운 공격.

   하지만 공격을 피하고 쳐 내느라 한껏 불안정해진 자세로 눈을 노리며 날아드는 공격을 회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핏.

     

   “와, 이걸 피해? 굉장한데?”

     

   나의 콧등에 그어진 칼자국에서 피가 흘렀다.

   그나마 뼈가 상한 건 아니었던지 따끔한 정도에 그쳤지만 조금만 더 늦었다면 베인 것은 콧등이 아니라 눈이었을 터였다.

     

   “……놀랍군요. 그게 블러핑이었다니.”

   “블러핑? 아아, 허초를 말하는 건가?”

     

   나의 말에 그가 씨익 웃으며 짧은 탄성을 내뱉는다.

     

   “뭐, 조금 연기를 하기는 했지.”

     

   처음에 힘과 속도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다.

   폭발적인 힘과 가공할 속도. 물론 나도 음속을 돌파하고 별의별 신기한 짓을 다 해봤지만 조금 전의 공격은 어지간히 노련하지 않았다면 시도도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그나저나 너 이름이 뭐냐? 지금까지 여기를 올라온 화신은 많았는데 성좌는 네가 처음이거든. 아니, 그 전에 성좌는 맞아? 그렇게 센 것 같지는 않은데?”

     

   그가 자신의 어깨에 검을 슬쩍 걸치며 물었다.

   나 정도의 상대에게는 그렇게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무언의 표현. 상대를 흔들기 위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티 나니까.”

     

   하지만 나는 그의 심중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건들거리는 행동과 함께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원래 겁이 많은 개가 더 크게 짖는 법. 그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나의 집중력을 건드는 것이었다.

     

   움찔.

     

   나의 말에 그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꿈틀거린다.

   자신의 생각을 들켰다는 것과 동시에 어느 정도 자존심도 상한 모양.

     

   “흠, 건방진 신입이네. 방금 공격 한 번 피했다고 너무 기고만장하지는 마라. 아직 몸도 안 풀었으니까.”

     

   놈의 검에 둘러진 마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참에 제대로 보여주마. 전쟁 성좌를 잡으려고 만들어 낸 비장의 기술을.”

     

   성격이 유치한 건지 뭔지 은은하게 오글거리는 놈의 말에 나는 검을 들었다.

   비장의 기술이고 나발이고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놈을 몰랐듯 놈도 나의 능력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투지(A)가 발동됩니다.]

   [‘빠른 납득(B+)’이 발동됩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 두뇌.

     

   먼저 방심하는 놈이 큰 후회를 하게 될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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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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