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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EP.130

     

   어린아이 같은 말투와 여유로워 보이는 저 표정.

   일단 저것부터 부순다.

     

   피이잉-!

     

   놈의 공격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적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른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지구력이 뛰어났던 건지 지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정석적으로 움직여서는 그 균형을 깨트릴 수 없었다.

   균형을 무너뜨릴 만한 큰 변화가 필요한 상황. 단단한 구조물의 한쪽 기둥을 박살내면 다른 모든 부위에 균열이 생기듯, 놈을 파훼하기 위해서는 저 하체부터 흔들 필요가 있었다.

     

   ‘그럼 우선……’

     

   나는 놈에게 도약해 검을 휘둘렀다.

   가로로 그어지는 평범한 일 검. 당연하게도 그 공격은 놈의 검에 의해 막혔고 놈은 짧게 감탄하며 웃음을 흘렸다.

     

   “빠르네! 근데 벌써 지치면 안 되는 것 아니야?”

     

   하지만 나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층에서 내가 익힌 것은 천월신공이 다가 아니었으니까.

     

   화산 華山

   육합검 六合劍

     

   화산파의 제자로부터 받은 화산의 기초 검법.

   2층에 있을 당시에 받았던 무공서 중, 가장 기초를 깔끔하게 알려 준 검법이었기에 빠르게 익히고 넘어갔던 무공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무공에 익숙해진 이후로는 사용할 일이 없었다.

   천월문의 월광검법이나 그나마 자주 접했던 해남파의 남해삼십육검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거들떠도 볼일이 없는 것이다.

     

   무림인들도 마찬가지로 어지간한 상승무공을 익히고 있는 경우에는 그보다 약한 무공을 잘 사용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

   하지만 무의 정원을 오르며 내가 배운 것은 단순한 기초 무공이 그저 약하지 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카아앙!

     

   “읏?!”

     

   놈이 검을 휘두르려다 말고 빠르게 나의 검이 움직이던 검로로 방향을 틀었다.

   기초에는 웬만해서 연속동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태권도를 배우면 태극 1장 같은 게 존재하듯 화산이든 해남이든 천월이든 기초적인 동작을 모아둔 연속기가 있다는 뜻이다.

     

   카카카카캉!!!

     

   그리고 그것을 신속 정확하게 동작하면 꽤 괜찮은 위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괴수형 몬스터를 상대하거나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상대를 만났는데 칼춤을 추고 있다가는 골로 가기 십상이겠지만.

     

   “이잇! 건방진…!”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속공에 당황했던 놈이 어느 정도 나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만류귀종.

     

   모든 흐름은 하나로 통일된다.

     

   그리고 지금 나와 검을 부딪히던 놈도 기초는 잡힌 놈이었으니 나의 동작이 특정한 스킬이나 무공이 아님은 빠르게 눈치를 챌 수 있었을 것이었다.

     

   나의 동작은 금방 따라잡혔다.

   상단 베기나 하단 베기, 찌르기가 연속으로 들어가는 동작 정도는 이미 그 자리를 알고 있다는 듯 미리 경로를 차단당했고 그 외의 동작들 또한 큰 어려움이 없이 막아 내기 시작한다.

     

   “겨우 이 정도의 실력으로 91층으로 올라왔다고? 운도 지지리도 좋군.”

     

   하지만 중요한 점은 놈이 점점 나의 실력을 내려치기 시작했다는 사실.

     

   ‘슬슬 적응했나 보네.’

     

   놈이 나의 템포를 따라잡았다.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며 흐름을 읽는다. 내가 뒤로 물러나면 따라오고 검을 내지르면 그에 맞춰 가장 적합하다 싶은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바였다.

     

   놈의 얼굴에 긴장이 사라지고 서서히 여유가 드러난다.

   나의 공격권을 강제로 빼앗듯 반격하는 빈도수가 많아졌고 먼저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제는 보였다.

     

   ‘내 검을 이해했다 착각하고 있겠지.’

     

   나의 템포를 찾아 그것을 완벽하게 분석해냈다는 착각.

   그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나의 검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놈의 적응을 유도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추뢰신법 追雷身法

     

   파지지직!!!

     

   마력과 격이 극도로 상승한 나의 신체가 마치 날개를 단 듯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추뢰신법은 하체, 특히 발바닥에 마력을 응축시켜 땅을 밀어내는 무공으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보법 중에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먼 거리를 폭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술.

     

   콰아앙!

     

   나의 신형이 방아쇠가 당겨진 총알처럼 순식간에 전방으로 쏘아진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쫓을 수 없을 만한 상태로 돌입하자 한참 느렸던 나의 검이 낙뢰가 떨어지듯 놈의 몸을 지나쳤다.

     

   후두둑.

     

   나의 등 뒤로 피가 바닥을 적시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를 베어 낸 것이 확실한 손끝의 느낌. 그 선명한 감각에 나는 곧장 뒤로 돌며 다음 초식을 펼쳐 냈다.

     

   월광검법 제삼식 月光劍法 第三式

   일섬 一殲

     

   조금 전의 공격은 추뢰신법으로만 만들어 낸 참격.

   그럴 가능성은 낮았지만 놈이 추뢰신법의 속도에 적응을 했을 경우를 대비해 펼친 무리한 동작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순간.

     

   ‘이건 무슨…?’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갑옷을 입고 있던 그 성좌가 아니었다.

     

   “크아아아!!!”

     

   나의 공격이 닿은 부위는 놈의 왼쪽 손목.

   정확히 허리를 반으로 가를 생각으로 내지른 일격이었건만 어떻게 반응을 한 것인지 피를 철철 흘리는 왼쪽 손목을 제외하고는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한 모습이었다.

     

   채애앵!

     

   나의 무명검이 놈의 화려한 검과 맞부딪히며 청량한 소리를 만들었다.

     

   “큭!”

   “하아…!”

     

   놈이 덜렁거리는 왼손은 가만히 늘어뜨린 채, 오른손의 힘만으로 나의 일섬을 받아 냈다.

     

   고작 한 손으로 나의 두 팔을 버티는 괴력. 갑작스러운 변화에 위협을 느낀 나는 몸을 뒤로 날려 최대한 놈과 멀어졌다.

     

   ‘힘을 숨기고 있었나?’

     

   그런 생각이 미치자 나는 놈을 유심히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붉게 충혈되어 있는 눈. 꿈틀거리는 팔다리의 근육과 출혈이 점점 더 심해지는 왼쪽 손목이 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나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힘을 뺐던 것처럼 만약을 대비한 수를 숨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젠장, 너! 이러려고 힘을 조절하고 있었구나?!”

     

   저 모습을 보니 본인이 의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도 수를 숨기고 있었군요.”

   “하아… 젠장…… 이러면 재미없는데……”

     

   그의 숨이 거칠어진다.

   지쳐 거칠어지는 호흡이 아닌, 뭔가에 홀린 듯 흐려지는 그런 숨.

     

   ‘위험하다.’

     

   허나 아까도 빈틈이 없어 보였지만 숨이 거칠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지금은 훨씬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엄습해 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 그리고 그 순간 나와 대치하고 있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신참, 너 이름이 뭐냐?”

   “김시인입니다.”

     

   그의 물음에 나는 열심히 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나의 이름을 밝혔다.

   대화를 하며 약간의 시간이 생긴 틈을 타 최대한 놈의 약점을 찾아볼 심산.

     

   “아니, 그거 말고 성좌 명 말이야. 이명이 뭐냐고. 그리고 이 치밀한 새끼야. 그 와중에 싸울 생각을 해? 낭만이 없구만 낭만이. 몇 초 후면 시원하게 싸울 테니까 이름이나 밝혀.”

     

   내 의도를 파악한 놈이 툴툴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정신을 가다듬기 위함인지 자신의 검을 처음 나와 격돌하기 전처럼 가슴 앞으로 가져갔고 그 모습을 본 내가 말을 이었다.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입니다.”

   “어감이 멋지군. 나는 [피와 광폭의 기사]다. 왜 그런 이명이 주어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이게 참 마음에 든단 말이야.”

     

   광폭의 기사.

     

   “참고로 말하지만 내가 [광폭화]가 발동되고 패배한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이성도 반쯤 날아가고…… 왜 그런 걸 알려주냐는 표정인데. 딱히 내가 너에게 질 것 같지 않아서 미리 언질해주는 거야. 너무 빨리 죽지 말라고.”

     

   그가 나를 보여 진득한 웃음을 지었다.

   비웃음과 즐거움 등의 비정상적인 쾌락을 섞어 만들어 낸 듯한 표정을 보니 그가 가지고 있던 침착함을 완전히 버린 것만 같았다.

     

   “히힛! 일정량 이상의 피를 흘리면, 힛! 이렇게 된다. 고유 스킬이거든! 너는 나를 잘못 건드렸어. 그냥 적당히 싸우다가 포기했으면 목숨은 살려 줬을……”

     

   서서히 미쳐가는 듯한 놈의 모습에 나는 뭔가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부담스럽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말투나 행동은 사람과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뚝.

     

   “……”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말을 잃었다.

   스멀스멀 풍겨 오는 붉은 오라. 혈향을 가득 머금은 그 기운은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며 주변을 잠식해간다.

     

   [‘한기의 심장(S)’을 사용합니다.]

     

   나는 품에 손을 넣어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놈의 말을 종합해 본 결과로 광폭화의 효과는 신체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데 있는 것 같았다.

     

   스윽.

     

   놈이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다.

   부릅뜬 눈은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그 순간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를 처음 접했을 때의 서늘함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검을 치며 들었다.

     

   ‘온다…!’

     

   놈의 신형이 움직였다.

   하지만 내가 반박자 빠르게 놈에게 극음의 내공을 담은 초식을 펼쳤다.

     

   해남삼십육검 제일식

   격랑수검 激浪水劍

     

   푸른 냉기가 놈에게 쏘아지자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다.

   놈이 이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면 정면으로 달려들 것이 분명한 상황.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놈은 격랑수검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친…!”

     

   챙그랑!!!

     

   한기의 심장을 발동시킨 이후로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완전히 처음이었다.

   완벽하게 결빙된 마력의 장막을 그저 힘만으로 뚫어 버리는 괴물 같은 신체.

     

   그 어떤 괴물도, 심지어 마왕마저 얼려 버렸던 나의 검이 짐승이 되어 버린 초인에게 완벽하게 파괴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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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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