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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EP.131

     

   광전사라는 개념은 소설이든 게임이든 판타지스러운 대부분의 매체에 등장하는 꽤 흔한 개념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피를 흘릴수록 오히려 전투에 몰입하고 전투가 길어질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존재.

   그리고 그 광전사의 돌진에…

     

   콰아아앙!!!

     

   아무리 급하게 날렸다지만 응축시킨 마력으로 펼친 초식이 그저 몸통 박치기 한 방으로 파훼가 될 줄은 몰랐다.

     

   “크하하하핫!”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호리호리한 몸에서 나온 기상천외한 괴력.

   그리고 그 괴물의 검이 나에게 날아들자 나는 검을 앞으로 내세우며 몸을 뒤로 던졌다.

     

   투콰아아앙!

   “커억!”

     

   육중한 굉음과 함께 나의 속 깊은 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검으로 벤다는 느낌이 아니라 거대한 쇠몽둥이에 얻어맞은 느낌. 5층에서 크레센도의 꼬리에 정통으로 얻어맞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에 정신이 순간적으로 혼미해진다.

     

   나는 뒤로 튕겨져 가는 와중에 억지로 고개를 들어 놈을 바라봤다.

   혹시나 이 상황에서 공격이 연계가 된다면 위험한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피와 광폭의 기사’라는 저 성좌의 성격상, 나를 내버려둘 이유가 없었다.

     

   꾸욱.

     

   놈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무릎을 굽히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조만간 귀에 걸릴 것 같은 잔뜩 솟아오른 입꼬리. 그리고 놈의 신형이 사라진 것을 본 나는 검을 사용해 정면으로 마력을 쏘아 보냈다.

     

   “이거나 먹어!”

     

   반쯤 뒤집어진 놈의 눈동자를 봤을 때, 놈은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것 같았다.

   처음 상대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듯한 기분. 계산적이고 치밀하며 섬세하던 기사는 어디 가고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괴물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들소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의 마력이 발사되는 순간.

   나의 예상대로 놈은 나를 향해 달려들다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력을 보고는 급하게 몸을 틀었다.

     

   ‘빠르다…!’

     

   이렇게 강한 무력을 지닌 상태에서도 고작 감으로 선수를 치는 것이 전부인 상황.

   만약 내가 무의 정원에 처음 입장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이 전투에 임했다면 이미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나는 기술적인 면으로나 신체적인 면에서 1층에서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내가 목숨을 걸고 치렀던 무수한 전투 경험들은 지금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나를 이끌고 있었다.

     

   [‘빠른 납득(B+)’이 발동됩니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적.

   조금 전의 반격으로 흔들린 균형.

   마력을 아끼지 않고 터트리는 전투 스타일.

     

   나는 검을 사선으로 들었다.

     

   무당파 武當派

   유운팔괘검 流雲八卦劍

   건 乾

     

   상대가 불과 같다면 물을 뿌린다.

   강한 힘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그것을 맞받아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앞으로 달려든다면 살짝 방향만 틀어주면 되는 것.

   힘이라는 것에는 방향이 함께하니 그 축을 살짝만 건드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툭.

     

   흐릿한 잔상만 남은 놈의 신형이 옆을 스쳐가며 내가 들고 있던 검을 거칠게 긁었다.

   완벽에 가까운 수비. 그렇게 한 합을 버텨낸 나는 곧장 몸을 회전시키며 놈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열화의 호흡(S)’을 사용합니다.]

     

   냉기로는 놈을 다스릴 수 없었다.

   애초에 흐르는 물은 얼어붙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고 놈의 몸은 빠른 혈류로 인해 계속해서 달궈지고 있었으니,

   나의 음한지기가 오히려 놈의 몸을 식히는 데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화르륵!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몸에서부터 시작된 뜨거운 열기가 나의 검을 통해 밖으로 방출됐다.

   달의 형상이 아닌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보는 듯한 착각. 그리고 그 광경을 직접 목도한 성좌는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화아아악!

     

   놈의 일 검으로 만들어진 마력의 풍압에 나의 초식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제야 극명하게 느껴지는 힘의 차이. 극한의 음한지기를 힘으로 박살 내고 달려들었던 놈인 만큼, 열양지기를 상대할 때도 힘으로 나의 마력을 찍어 누르려 하고 있었다.

     

   ‘이것도 밀리면 답이 없다.’

     

   양극의 기운을 사용한 두 번의 기습을 실패할 정도의 차이라면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없었다.

   내가 승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라면 놈의 치명적인 약점을 빠르게 파악하거나 놈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 약점을 만드는 경우.

     

   그리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나는, 점점 더 달아오르는 놈을 노려보며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을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전심전력(B+)’을 사용합니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스킬 랭크에 변화가 있었다.

   3층에서 분명 B 랭크였던 전심전력이라든가 같은 C+ 랭크였던 빠른 납득이 B+가 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어느 정도 납득은 됐다.

   성좌가 된 이후로 따로 코인을 사용하지 않아도 능력치가 오르고 있었으니, 이 스킬들 또한 누군가로부터 힘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능력이 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전심전력(B+)’이 적용될 능력치를 선택하십시오.]

     

   ‘민첩을 선택하겠다.’

     

   나는 성좌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나의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름 : 김시인

   이명 :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

   능력치 : [근력 Lv.88], [민첩 Lv.95], [체력 Lv.92], [마력 Lv.99]

   스킬 : [빠른 납득(B+)], [전심전력(B+)], [천월신공(A)], [투지(A)], [성좌(EX)]

   특성 : [업데이트]

     

   잔여 코인 : 15,800 C

   —

     

   처음 각성을 했을 때의 능력치는 기억도 나지 않을 압도적인 수치.

   게다가 최근에 마력의 운용을 많이 했던 탓인지 마력 하나는 세 자릿수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민첩 Lv.95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전심전력을 사용했다는 사실.

   시간제한에 극명한 페널티까지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기에 제대로 놈을 쓰러뜨려야 했다.

     

   띠링.

     

   [보유한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근력 Lv.88]

   [체력 Lv.92]

   [마력 Lv.99]

     

   [경험치 합의 결과 값을 계산합니다…]

     

   [민첩 Lv.95 -> 민첩 Lv.■■]

   [현재의 상태가 2분간 지속됩니다.]

     

   [마력 Lv.99의 영향으로 효과가 증폭됩니다.]

     

   [민첩 Lv.■■ -> 민첩 Lv.■■]

   [현재의 상태가 4분간 지속됩니다.]

     

   스킬이 발동되자 피가 끓는 듯한 낯선 고양감이 나의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뜨거워진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며 모든 신경이 각자의 자아를 가진 것처럼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강하게 느껴졌던 감정은.

     

   “……이거 조심해야겠는데?”

     

   자신이 없었다.

     

   저 얼굴만 시뻘겋게 달아오른 성좌 놈에게 질 자신이.

     

   스릉.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평소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고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진심으로 초식을 펼치면 검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나의 능력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갔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예상치 못한 오류를 일으킨 것을 보면 지금 내 상태가 평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타아앙!!!

     

   공격이 빗나갔던 놈이 몸을 틀어 나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저 거칠게 휘둘러진 검이 아닌, 정확히 나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이어지는 검로.

     

   놈은 빨랐다.

   처음 광폭화가 진행되며 눈이 충혈되었을 때보다 두세 단계는 더 빨라진 듯한 가공할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놈을 보며 천천히 검을 뻗었다.

     

   검으로 직접 놈을 치면 승리는 할 수 있을지언정 팔도 타격을 입고 검도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내가 한 선택은.

     

   스윽.

     

   정확한 찌르기.

     

   흐릿한 잔상 밖에 보이지 않았었던 놈의 움직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훤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의 검이 움직이는 길에 놓인 공기의 흐름까지도.

     

   나와 놈의 싸움에 휘몰아치던 공기가 다시 한 번 더 깊게 찢어진다.

   나는 바람보다 빨랐고 소리보다 빨랐다.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피와 광폭의 기사보다는 월등히 빨랐다.

     

   화아아아악!!!

     

   그리고 뒤늦게 불어닥친 돌풍이 나의 뒤를 따르며 나의 전방 다섯 보의 거리를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놈의 검이 나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앞으로 뻗어진 나의 검, 그 끝에 놈의 칼날이 걸리며 놈의 검은 그 결을 따라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서걱.

     

   검이 깨진 소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깔끔한 절단 소리.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나에게 검이 잘려 급하게 몸을 비틀던 놈은 자신의 검 파편에 목을 베이며 차가운 바닥을 굴렀다.

     

   ***

     

   “아무리 봐도 굉장하군. 그대는 필멸자가 그사이에 이렇게까지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아래층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마법 거울 앞.

   1층에서부터 김시인의 행보를 모조리 지켜본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환희에 가득한 눈빛을 한 채, 옆에 있던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놀랍군요.”

   “그치? ‘살아 있는 무공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네! 역시 무의 정원을 완등한 도전자다워!”

     

   살아 있는 무공서라 불린 여인.

   그녀는 옆에서 우락부락한 근육 문신남이 뭐라고 떠들든 신경 쓰지 않으며 가만히 가부좌를 트는 거울 속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가웠다.

     

   어쩌면 탑에 있는 그 누구보다 그의 등천(登天)을 기다리던 사람이 그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김시인이라는 플레이어가 반가웠다.

     

   “자네가 저 남자의 스승이었지 아마?”

   “반은 맞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2층의 그건 제가 아닙니다.”

   “반만 맞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그럼 정식 제자가 아니니 무의 정원에서 내 마음대로 요리해 봐도 괜찮겠나?”

   “……”

   “크큭.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네. 자네 성격에 수련 시간도 빼먹고 본인 층을 이렇게 내팽개쳐두고 왔다는 거에서 이미 반박이 불가해.”

     

   근육 성좌의 말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천월(天月)이라 새겨진 무복을 입고 있는 그녀.

   성좌가 되기 전에는 ‘화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녀에게 김시인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제자 아닌 제자였다.

     

   “위치.”

     

   그리고 그녀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그래도 각자의 위치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음?”

   “탑의 주민과 플레이어… 그리고 성좌와 성좌로서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군. 성좌 대 성좌라면 나도 마찬가진데?”

     

   그의 대답에 그녀가 그를 바라본다.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의 제자이니까요.”

   “허허, 말 바꾸네.”

     

   상황이 어떻든 대가 끊긴 천월문 제자의 성장을 쭉 지켜보게 된 그녀.

   12층의 주인인 화영은 김시인이 2층을 통과하던 그 순간부터 그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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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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