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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0

   EP.140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성좌와 계약하지 않은 자들을 위한 6층을 관리하는 성좌.

   종자를 판별하는 자는 김시인을 만난 이후로 이따금씩 깊은 고뇌에 빠질 때가 있었다.

     

   “진짜 가즈아아아아!!!”

   “끼얏호우!!!”

   “우! 우! 우! 우!”

     

   반쯤 미쳐서 날뛰는 도둑 길드의 병력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발을 힘차게 굴리고 고대 원시인마냥 알 수 없는 함성을 내지르는 길드원들.

     

   철저히 득과 실을 따지던 계산적인 도둑들은 어디로 가고 이곳에는 출신 모를 괴물을 따르는 광신도 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힛, 히히힛!”

     

   본인도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김시인의 측근이라며 길드원들이 자신을 떠받들고 인정해주는 것이 너무나도 살갑고 간질간질하다.

     

   ‘이런 젠장.’

     

   휙휙!

     

   오랜만에 느끼는 정이라는 감정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다.

   탑을 오르고 동료들이 죽고 6층의 성좌가 된 지 수십 년.

   종자를 판별하는 자는 고개를 강하게 털어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탑을 오르는 자를 막는다. 그것이 나의 사명. 탑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어쩌다 보니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긴 했지만 결국에는 김시인을 죽이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배신자가 발견되었다는 장소인 수도 아르테나는 운이 좋게도 그가 거주하던 마왕성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건 기회다……!’

     

   자신의 성으로 그를 끌어들여야 했다.

   본신의 힘을 다 사용할 수 있는 그의 공간으로.

     

   “우와아아아!!!”

   “시끄러우니까 출발이나 해!”

     

   일단 이놈들이랑 같이 배신자 잡기까지는 좀 즐기고 말이다.

     

   ***

     

   허나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다.

     

   “이런 젠장! 우리가 범법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마법진이 저기에 있는데 사용할 수가 없다니!”

   “아니! 그 전에 비싸서 엄두가 안 나!”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애초에 배신자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훔치던 것부터 불법행위였고 쫄딱 망해가던 길드에 이동 마법진을 사용할 만한 비용이 남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동전이라도 모을까?”

   “그 입 닥쳐! 더 비참해지기 전에!”

   “으음…… 어쩌지?”

     

   그나마 두세 사람 정도를 아르테나로 보낼 비용은 댈 수 있었다.

   하지만 간부 셋은 이미 이름과 얼굴이 싹 팔려서 마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잡혀갈 게 뻔했고 신참을 보내자니 최고 간부였던 그를 잡을 마땅한 능력이 없었다.

     

   배신자가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그가 도둑 길드의 동선을 읽으며 마음먹고 잠적한다면 그를 찾을 가능성은 사라지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윽.

     

   길드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도둑 길드의 최고 간부고 자시고 그냥 눈빛만으로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게다가 진 하트가 절대 알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나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한다는 의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묵살됐다.

     

   “지금까지 주신 도움이 얼만데 이런 부탁까지 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습니다.”

   “게다가 시인 씨께서는 진 하트 그놈 얼굴을 모르실 테니……”

     

   이놈의 도둑들이 언제부턴가 나를 VIP 취급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꿰뚫어 보는 눈’을 모든 사람에게 사용해볼 수 있기는 했다.

   지금까지 받았던 정보를 토대로 추적을 하다 보면 배신자를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몰랐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화신 후보를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이놈들이 나를 신뢰한다면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존재했다.

     

   “오오오…! 역시!”

   “무슨, 무슨 방법입니까?”

     

   나는 나를 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수십 명의 도둑놈들을 바라보며, 따라오라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피리를 부는 사나이처럼 도둑들을 이끌고 성문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정정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할 수는 없으니 도둑 길드에서 파둔 개구멍을 사용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성을 빠져나온 이후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그렇게 한참을 걷자 애꾸눈 간부가 입을 열었고 모든 길드원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여기 근처면 되겠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성을 빠져나온 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어느 인적이 드문 숲속.

   내 뒤로 줄줄이 보이는 길드원들을 잠시 물러가라고 손짓한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잊고 있던 물건을 하나 꺼내 들었다.

     

   —

   [소환의 반지 – 크레센도]

     

   종류 : 보물

   랭크 : A+

     

   설명 : 크레센도를 소환할 수 있다. 한때는 소환물과 관련된 매개체가 필요한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마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소환이 가능해졌다. 마력을 불어넣으며 마음속으로 크레센도를 ‘소환’하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소환된다.

     

   효과

   – 변종 블루 와이번 크레센도 소환가능

   – 크레센도가 사망하면 반지도 파괴된다.

   – 귀속된 물건이기에 타인에게 양도는 불가능하다.

   —

     

   “나 믿어?”

   “……예?”

   “갑자기 불안하게 그런 말씀을……”

     

   푸른빛의 마력이 반지에서 흘러나오며 주변을 서서히 물들인다.

     

   안개가 끼듯 주변을 덮는 흐릿한 빛.

   그것을 본 몇몇 길드원들이 당황했지만 빛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으며 서서히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 갔다.

     

   “……저건?”

   “에이… 설마.”

     

   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육중한 몸집.

   앞으로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머리부터 발끝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비늘.

     

   펄럭!

     

   그리고 그 비늘로 뒤덮여 있던 거대한 날개까지!

     

   “……드래곤?”

   “꾸, 꿈인가?”

   “씨바… 이거 진짜야?”

     

   잠시 후 완전하게 소환을 마친 블루 와이번 크레센도가 사람들을 보며 울부짖었다.

     

   -크롸아아아!

     

   갑작스럽게 맞이한 비현실적인 현실에 길드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처음으로 마주만 거대한 몬스터. 게다가 크레센도가 존재감을 전혀 숨기지 않고 있었기에 격의 차이에 의한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쓰읍!”

     

   하지만 나한테는 그다지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이 많다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녀석을 보니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지경.

     

   “시끄러우니까 그만 울어. 힘도 센 놈이 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

     

   -아…… 딸꾹.

     

   녀석이 울음을 그치는 걸 확인한 나는 고개를 돌렸다.

   크레센도가 살기를 완전히 거뒀음에도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사람들.

     

   이렇게 겁을 먹어서야 날기는커녕 등에 오르지도 못할 것 같았지만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배신자 진 하트를 추적하는 일이지 그들의 사정이 아니었다.

     

   덥썩.

     

   “살려주세요!”

   “으, 으아아악!!!”

     

   나는 곧장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두 놈을 들어 크레센도 위로 던졌다.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떨어지는 둘을 받아 내는 크레센도와 종판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은 지켜보고 있었지만 저 둘을 믿고 빠르게 진행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자! 다들 올라타면 비늘 꽉 잡으시고!”

     

   휙! 휙! 휙!

     

   나는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모든 길드원들을 집어던졌다.

   내가 앞에 서는 순간부터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녀석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일일이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저, 저기! 잠시만요!”

   “왜? 할 말 있어?”

     

   그리고 나의 손에 잡힌 그레이스 펠튼.

   길드장의 비서로 일을 하다가 최근 나에게 조언을 듣고 정보 수집 쪽으로 노선을 튼 그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앞에 타게 해주십쇼!”

   “응? 왜?”

   “어릴 적 꿈이 드래곤 라이더였습니다! 방향은 제가 안내할 테니 제발요!”

   “……어, 그래.”

   “히히힛!”

     

   첫 인상과는 많이 달라진 듯한 현 인상.

   나는 마지막으로 녀석과 함께 크레센도에 올랐고 50명의 길드원과 2명의 성좌는 드래곤 흉내를 내는 와이번을 타고 아르테나로 비행했다.

     

   ***

     

   수도 아르테나의 시장 길목.

     

   “으흠흠-”

     

   짤랑!

     

   한껏 기분이 좋아진 누군가의 콧노래와 그 박자에 맞춰 금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름 괜찮은 화음을 만들어 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붉은 단발머리에 가죽 갑옷 아래로 드러나는 잘록한 허리라인.

   누가 봐도 미인이라 불릴 만한 여인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나름 짭짤하긴 했는데 보수는 좀 많이 짜네!”

     

   최근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배신자.

   도둑 길드 ‘흑영’의 간부였던 ‘진 하트’는 한껏 묵직해진 돈주머니를 구경하며 자신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한 도둑 길드의 정보를 털어 꽤 큰돈을 장만한 상태였다.

   물론 귀족들이 취급할 만한 고급 정보를 넘기며 받은 돈 치고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수입이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오랜만에 고기나 사갈까? 기름칠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한다.

     

   도둑 길드에서의 시간은 정말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물론 모든 길드원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그곳에서 일을 하는 몇 년간 자신을 괴롭게 했던 길드장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지는 기분이었다.

     

   “보수도 나쁘지 않았고 웬만하면 계속 일 했겠는데 그 인간은 진짜……”

     

   길드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시도 때도 없이 고백 공격을 해왔던 남자.

   개차반 같은 성격에 교만하기까지 했던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참 개 같은 인간이었다.

     

   “뭐 이젠 상관없지! 그놈을 만날 일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그녀는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짐을 집 앞에 툴툴 털어 버리고 드디어 도착한 보금자리의 문고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

   평범한 나무로 지어진 집이 그녀를 맞이했고 그녀는 그 순간 머리털이 쭈뼛거리는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문을 슬쩍 잡은 그녀가 느낀 것은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 대한 추억도 고향에 대한 향수도 아니었다.

     

   굳건히 잠겨있는 문. 인기척이 없는 너무나도 고요한 집 내부.

   그 누구도 침입한 흔적이 없는 아주 평범한 상태였지만 그녀는 한 가지 낯선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온도가……’

     

   문고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온도가 느껴졌다.

     

   차가웠다. 하지만 왠지 따뜻했다.

     

   그녀가 도둑 길드의 간부 출신이 아니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미묘한 차이.

   어설프게 흔적이 남았다면 긴장하지 않았겠지만 알아챌 것이 없을 정도로 너무 철저했기에 그녀는 오히려 경계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가장 확정적으로.

     

   ‘냄새나…’

     

   개차반 길드장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채취가 정말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아 맞다. 기름 사오는 걸 깜빡했네.”

     

   그녀는 자연스럽게 혼잣말을 하며 그녀의 집을 벗어났다.

   도둑 길드에서 배신은 다른 조직에서 다루는 것보다 훨씬 큰 죄로 다스리는 걸 감안하면 그녀가 받게 될 처벌은 당연히 죽음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정말 신중에 신중을 가하고 수개월을 계획한 일이었기에 꼬리가 밟힐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상대는 프로였고 그 결과는 도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그때.

     

   댕! 댕! 댕-!

     

   “뭐, 뭐야?”

     

   수도의 중심에 있던 종탑에서 울려 퍼진 소리.

   수도의 위기가 닥쳤을 때만 울리는 종소리가 정확히 세 번 그녀의 귀에 때려 박혔다.

     

   갑작스런 종소리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무기를 들고 어딘가로 급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그리고 상황이 점점 급박해지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길에 보이는 젊은 병사 한 명을 붙잡고 큰 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어어…! 그, 그!”

     

   완전히 패닉에 빠진 듯 말을 더듬거리는 젊은 병사.

   하지만 그녀는 이내 이 사태가 일어난 이유를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블루 드래곤이 나타났습니다!”

   “……네?”

     

   드래곤의 수도 습격.

     

   드래곤 라이딩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방향을 잘못 알려 준 한 길드원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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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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