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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9

   EP.149

     

   어두운 밤 수도 아르테나의 외곽.

   경비대원들의 구역을 멀리 벗어난 장소에 사람들의 인기척이 있었다.

     

   저벅. 저벅.

     

   한두 사람의 발소리가 아닌 소규모의 무리가 한꺼번에 만들어 내는 소음.

   하지만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던 이곳의 누구도 가장 선두에 선 안내자에게 먼저 입을 열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

   “……”

     

   복장을 보아하니 그들은 평범한 일반인은 아닌 듯싶었다.

     

   꽤 수완이 좋은 장사꾼인 것인지 비싸 보이는 천으로 재단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애초에 귀족인 것인지 옆에 하인을 대동한 사람도 있었다.

     

   그 뒤를 따라 용병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 뒤에는 기사 지망생이, 또 그 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복장의 인물이 조용한 걸음을 옮긴다.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그리고 선두를 바짝 따라붙은 여인.

   하이톤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를 살짝 달궜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린 선두의 복면인은 나지막하게 입을 열어 그들이 종착점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이곳입니다.”

     

   그를 따라온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것은 의문뿐.

   주변에 깔린 것은 어둠을 돌아본 사람들의 감각에 잡힌 것은 시야에 들어오는 나무와 귀에 들리는 작은 풀벌레들의 소음 뿐이었다.

     

   “……예?”

   “아무것도 없는……”

     

   그곳은 사람들이 산책 따위로 거닐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저 절벽이라 생각했던 장소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그 뒤로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오며 발견하지 못했을까 싶은 화려한 집 한 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오오…… 여기에 그분이 계시다는 말이오?”

   “들어가게 되신다면 점성술사님께 예를 갖추십시오. 당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분입니다.”

   “크흠흠…! 알겠소.”

     

   사람들이 줄줄이 발을 맞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흐물거리는 어둠 속, 그곳에 숨어 있던 인영들의 모습이 드러나며 얕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데……”

     

   누가 봐도 수상한 검은 복면을 쓴 무리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말로만 중얼거릴 뿐, 그들 중에 진심으로 ‘점성술사의 손님’들을 막으려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대규모 사기극이라니……”

   “목적이 반란인 걸 들키면 우리 전부다 모가지인 건 확실하겠지?”

   “어허! 단장! 이왕이면 혁명이라는 멋진 단어를 쓰십시다!”

     

   도둑 길드의 간부들과 그의 수하들.

   그들이 맡은 일은 다른 길드원들이 홍보를 해서 끌어들인 아르테나 국가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자칭 점성술사’의 앞으로 안내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잖아. 사실 무슨 방법을 쓰는 건지는 몰라도 그분이 사람을 제대로 못 본 적도 없긴 하고 말이야.”

   “그것도 그래. 시인 님이 하시는 말을 들어보면 진짜 뭐에 홀린 것 같다니까.”

     

   생각해보면 그가 점성술을 할 줄 안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는 갑자기 도둑 길드에 찾아와 모든 것을 엎어 버리고 모든 사람의 인생을 멋대로 바꿔 버렸다.

   하지만 웃긴 점은 그렇게 바뀐 스타일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불편해 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

     

   아니, 오히려 삶이 훨씬 윤택해졌다면 윤택해졌지 피해를 본 사람은 단언컨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온 인력을 총동원해도 찾을 수 없었던 길드장과 진 하트를 하루아침에 찾아 버린 것만 생각해도 뭔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묘한 기운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기는 하나?”

   “안 되지. 상식적으로는.”

     

   그들은 김시인이 손님들을 맞이하는 집을 가린 거대한 벽을 조심스럽게 올려다봤다.

     

   지금은 어두워서 육안으로는 구별이 잘 안 갔지만 분명히 푸른빛이 감돌았던 비늘.

   볼록 튀어나온 배와 위엄 넘치던 모습은 그곳에 없었지만 대신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등에서 튀어나온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사방을 가리고 있었다.

     

   “……드래곤의 위엄인가. 이게 말로만 듣던 부분 폴리모프?”

   “시인 님 말로는 와이번이라던데 도대체 이거 어떻게 와이번이야?”

     

   사람으로 변신도 하고 날개만 거대한 본체를 유지할 수 있는 와이번.

   하지만 크레센도의 정체도 정체지만 그들의 정신을 정말 혼미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왜 예쁘고 지랄인데……’

   ‘젠장, 무서워. 근데 귀여워… 근데 무서워.’

     

   김시인을 따르며 격이 오를 대로 오른 크레센도는 이미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키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천생 아웃사이더였던 녀석은 처음 본체로 길드원들의 관심을 받았을 때, 짜릿함을 느낀 상황.

   마음 깊은 심연에 숨어 있던 그의 관종 기질이 드러난 이상 못생긴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히힛.

     

   귀엽다면 귀엽고 아름답다면 아름답다고 할 만한 푸른 여성의 얼굴.

   녀석의 경험상 현재 이 모습이 가장 주목받기가 좋았다.

     

   ***

     

   정보전에서는 상황의 흐름을 가져오는 가장 좋은 방법.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트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으음… 혹시 그쪽이……”

   “예, 소문의 점성술사가 접니다.”

     

   나는 나를 찾아온 손님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최대한 빠르게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나름 감춘다고 감췄지만 볼록 튀어나온 배.

   평민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모노클 따위를 끼고 손가락에는 반지를 4개 정도 끼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꽤 잘 사는 사람인가 보네. 그럼 어디……’

     

   [‘꿰뚫어 보는 눈(EX)’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이름 : 그랜트 발드

   나이 : 47세

   능력치 : [근력 Lv.6], [민첩 Lv.4], [체력 Lv.7], [마력 Lv.1]

   스킬 : [고급 입담(B+)] [상술商術(A)], [동전 투척(E+)], [안목(A-)]

   특성 : [튼튼한 정신(C)], [빠른 눈치(A)], [매력(D)], [뛰어난 상인(B+)], [행운(B)]

     

   현재 상태 : 의심, 긴장, 실망

     

   종합 평가

   – 상인 조합의 대주주인 남자로 장사를 하는 꾀가 뛰어나다.

   – 의심이 많지만 그만큼 신뢰를 주게 되면 간도 쓸개도 다 내놓을 성격이다.

   – 올해 성인이 된 하나뿐인 아들이 기사가 되고 싶다고 속을 썩여 후계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그랜트 발드 씨 맞으시죠?”

     

   나의 예상대로 상인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자.

   내가 대놓고 그의 이름을 불러버리자 나의 호갱님은 눈을 크게 뜨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내 이름을 어떻게?”

   “오늘 당신의 별을 봤거든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구라였다.

   별을 보기는커녕 까고 말해서 나는 하늘의 별자리 하나도 제대로 볼 줄 아는 게 없는 천체 문외한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별자리는 볼 줄 몰라도 사람의 정보는 볼 줄 알았다.

   그 정보를 토대로 그럴싸한 말을 지어낼 방법도 회사 생활을 통해 터득했으니 이제는 입을 터는 일만 남은 것이다.

     

   “고민이 있으신 얼굴이군요.”

     

   일단 시작은 가볍게.

     

   “……그러니까 이곳에 왔겠지 않겠소.”

     

   역시 의심이 많은 성격이다. 하지만 이어질 나의 설명에도 그 실망과 허탈이 가득한 포커페이스가 유지될 수는 없었다.

     

   “작은 별이 보입니다.”

   “……”

   “그리고 그 작은 별이 큰 별의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군요.”

   “계속해보시게.”

     

   나는 적당히 그의 눈을 보며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줬다.

   사람은 상대방의 미소를 보면 두 가지의 신체 반응을 일으킨다.

     

   마음이 풀리거나 반대로 의심이 배가 되거나.

   하지만 나와 그의 격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고 그런 격을 가진 자가 미소를 보였다면 그 결과는 하나로 연결됐다.

     

   [‘꿰뚫어 보는 눈(EX)’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

   현재 상태 : 편안함, 의문, 혼란

   …

   —

     

   “자식이 하나 있으시군요. 아들, 아들이라…… 과연. 갓 성인이 된 자식이라면 충분히 어버이의 행동을 의심하며 자만에 빠질 시기긴 합니다.”

   “……도대체 그런 가정사는 누가 알려주신 거요?”

   “별이 알려준 것이랍니다.”

     

   구라에서 시작해 구라로 끝나는 구라의 향연.

   물론 미소는 절대 빼먹지 않았다.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사자도 최선을 다하는 법.

     

   사실 그 사자도 계속된 사냥 실패에 배를 쫄쫄 굶다가 이젠 진짜 죽겠다 싶어서 목숨을 건 것 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토끼는 사자의 앞발 펀치 한 방이면 황천길은 하이패스라는 것이다.

     

   “아드님에게 선물을 하십시오. 아마도…… 음, 아마도 검이 좋겠군요. 화려하고 멋진 검. 그 아이가 가려는 길을 막지는 마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드님은 돌아올 테니까요.”

   “왜죠?”

     

   나의 의견에 상인이 반문했다.

   까고 말해서 그냥 ‘네 아들이면 기사에는 재능이 없다.’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솔직한 심정을 털었다가는 반발심이 생길 우려가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로 했다.

     

   “아비를 닮은 작은 별은 스스로를 돌아볼 안목이 뛰어날 테니까요.”

     

   상대를 높여주며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

   그리고 그는 상인으로서 협상의 테이블에서 원하는 것을 얻은 대가로 나에게 보상을 제시했다.

     

   “감사하오. 혹시 복채로는 무엇을……?”

   “후훗. 저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세상을 여행하는 한낮 여행자입니다. 돈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 그런……!”

   “대신.”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내가 이런 생쇼를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

     

   “조만간 이 땅에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화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도 가장 거대해야 할 별이 검게 물들어 저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

   “하늘이 더 이상 저의 말을 허락하지 않기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상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가장 거대한 별이라 하면 누가 들어도 왕을 의미하는 것.

   물론 다른 식의 해석이 가미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결국 종착점은 왕의 타락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저는 날 때부터 쭉 이곳이 고향이라 단 한순간도 아르테나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거대한 별에서 떨어져 스스로 성장한 찬란한 별을 따르십시오. 그리고 이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려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그 어둠은 빛에 지워질 것입니다.”

     

   상인은 나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

     

   그렇게 나는 사기적인 스킬 하나만 들고 아르테나의 대가리 절반 이상을 적당히 구워삶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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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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