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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0

   EP.150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자네 그 이야기 아는가? 성의 외곽에서 사람의 운명을 알려 준다는 그 점성술사 말일세.”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항상 소문의 점성술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고민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의 말을 듣기도 전에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맞추는 자.

   귀신같은 재주와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 화려한 언변에 신분의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점성술사를 만나고 싶어 했다.

     

   “자네도 혹시 가 봤나? 사실 나는 그런 점을 잘 믿지 않네만 그 사람은 좀 다른 것 같더라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

   “뭐라고 했더라? 비타민? 그게 많이 든 음식을 먹이라더군. 상추, 당근 같은 녹황색 채소나 과일들 말이야.”

     

   심지어 그 해결 방안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해줬다.

   뭔가 신비롭고 붕 뜨는 이야기를 할 것만 같았던 양반이 인간적인 솔루션을 툭툭 던지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친근하고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화의 끝은 그들이 처음 생각했던 점성술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국가의 멸망에 대한 무시무시한 예언.

   다소 현실성이 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무시하기에는 굉장히 찝찝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예언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이곳에는 그들이 일궈놓은 모든 것들이 있었고 때문에 사람들은 점성술사의 말에 나오는 찬란한 별을 기다렸다.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 이 위기를 알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예언에 관한 소식은 유령들을 통해 왕실의 귀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

     

   ***

     

   아르테나 왕실의 어전회의.

     

   왕실 기사단장, 궁정 마법사를 포함한 국가의 모든 중신들이 함께 모여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것이지?”

     

   낮게 깔린 왕의 한마디에 신하들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트 공작가가 역적으로 몰려 멸족 당하던 그 해.

   왕의 행보를 의심했던 모든 신하들이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그들은 운이 좋아 그 운명을 피해 갔기에 불안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수십의 사람이 모였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기나긴 침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 좌중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그 시선이 재무 장관에게 머물렀을 때, 다시 한 번 왕의 입이 열렸다.

     

   “가스톤 백작. 그대가 말해 보라.”

     

   안 그래도 간이 작은 재무 장관 가스톤의 눈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크게 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치 하나로 이곳까지 올라온 그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후, 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반문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트리는 주범에 대해 아는 바를 물었다.”

     

   왕은 이미 아르테나의 모든 지역에서 활동 중인 유령들에게 보고를 받아 타락한 별과 새롭게 찾아올 찬란한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소문의 근원지가 성의 외곽 지역에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한 점성술사라는 사실도 말이다.

     

   “저, 정확한 정황은 알지 못하오나 소문을 퍼트리는 무리가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소문을 퍼트리는 무리?”

   “예, 성벽 근처에 한 번씩 나타나 백성들에게 운명에 대해 말해주며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재무 장관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왕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가 유령들에게 받았던 보고와 너무나도 일치하는 내용이었던 것.

     

   “백작.”

   “……예?”

   “그대는 왜 그것을 그리도 자세히 알고 있는가?”

   “……”

     

   왕의 말에 가스톤 백작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긴장한 탓에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긴 했지만 돌아보니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고 있던 행위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든 것이다.

     

   “기사단장.”

   “예.”

   “저놈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죽기 전까지 물 한 모금도 주지 말라.”

     

   왕의 명령에 기사단장이 군말 없이 칼을 뽑아 들었다.

   만약에 반항이라도 한다면 당장이라도 목을 벨 것 같은 기세.

     

   “와, 왕이시여!”

   “네놈은 분명 그자를 만나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나에게 바로 고하기는커녕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저는 그저……!”

     

   재무 장관이 눈에 억울함을 가득 머금은 채 미친 듯이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그의 위기에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귀족은 이 자리에 없었다.

   과거의 악몽이 재현되려고 하는데 어느 누가 미쳤다고 그 자리에 동참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반역이다.”

   “……”

   “……”

   “반역을 꾀하는 자를 고발하지 않는 자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순간 미쳐가는 왕을 보게 된 이 자리의 모든 신하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점성술사가 말한 찬란한 별.

     

   솔직히 말해 왕이 악마와 계약을 했든 말든 그딴 것은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중신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마냥 가볍게 여기는 이 미치광이를 계속 그들의 머리 위에 둘 수가 없을 뿐.

     

   이미 타락해 버린 거대한 별을 밀어내고 모든 어둠을 물리쳐줄 그 예언이 터무니없는 거짓일지라도 많은 이가 그 터무니없는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댕……

   댕……

     

   익숙해서는 안 되지만 최근 들어 익숙해져 버린 종소리가 회의장에 얕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최대한 빠르게 알아보라.”“예! 알겠습니다!”

     

   기사단장의 명령에 옆에 있던 보좌 하나가 후다닥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명령처럼 정말 빠르게 소식을 알아 온 보좌가 되돌아왔고 그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남쪽 성문에 몬스터의 대거 침공. 그리고…… 성벽 위에 소문으로 떠돌던 그 신의 대리자가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기다리고 있던 기적이 운명같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

     

   쿵-! 쿵-! 쿵-!

     

   남문을 향해 달려오는 수천의 몬스터 군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옆에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게 한 붉은 머리의 여자가 있었고 말이다.

     

   “저기…… 감사합니다.”

   “뭐가?”

   “뭐라고 설명은 못 하겠는데 그냥 전부 다요.”

   “어, 그래.”

     

   진 하트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그녀가 하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가문이 멸문하고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성을 벗어나 다른 도시로 향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을 테고 그나마 그녀의 편을 들어 주었던 백작 가문까지 멸문해 버렸으니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녀를 받아 준 곳도 도둑 길드까지 배신.

   겨우겨우 도착한 출발선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내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나저나 몬스터가 이번에도 꽤 많네요.”

   “그러게 머리 한 대 쥐어박았더니만 열일하고 있나 봐.”

   “드래곤을 힘으로 제압해서 부려 먹는 괴물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도둑 길드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대변하듯 길드장인 로그 브리트만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혹시 떨리지는 않으십니까?”

   “왜?”

     

   나의 말에 그가 ‘역시’라는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짓는다.

     

   “저 정도 몬스터면 성 하나를 쓸어버릴 정도의 물량인데 굉장한 용기이십니다. 저는 보기만 해도 심장이 쫄깃해져서 말입니다.”

   “뭐, 그래도 이번에는 레드 드래곤한테 고블린이나 놀 같은 비교적 약한 놈으로 보내라고 했으니까 지난번보다 피해는 전체적으로 훨씬 적을 거야.”

   “하핫! 피해가 있을 턱이 있겠습니까. 귀족들이나 왕족들이 왔을 때, 지난번처럼 싹 쓸어버리면 끝날 텐데요.”

     

   로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길드원들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쓸어버리다니? 그 정도 능력 안 되잖아?”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지난번에 그 기적을 봤는……”

   “왜 내가 저것들이랑 싸울 거라고 생각해?”

   “……”

     

   이제가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한 눈치 빠른 놈들이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내가 몬스터들이 코앞까지 들이닥쳐도 슬그머니 뒷짐을 진 채,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

     

   “애초에 이 싸움이 누구의 싸움이지?”

     

   툭 하고 던진 질문에 모든 길드원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진 하트를 바라봤다.

     

   “진 하트…… 저 여자의 싸움이 아닙니까?”

     

   한 길드원의 말에 사람들이 이목이 한꺼번에 쏠렸다.

     

   “으응? 왜? 뭐, 뭐? 아니야?”

   “이런 눈치 없는 놈과 한솥밥을 먹었다니 아주 실망스럽군……”

   “이런 모지리를 봤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은 그녀가 왕좌를 빼앗아 오기 위해 저지르는 일종의 퍼포먼스였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 아이디어는 현왕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진 하트를 앉히기 위해 모두가 떠올린 하나의 계획이었다.

     

   “이건 진의 싸움이 아니고 우리의 싸움이다.”

   “왜죠? 결국 왕이 되는 건 진 하트가 아닙니까?”

   “야 이 멍청아. 눈앞에 떨어지는 콩고물도 못 주워 먹을 얼간아. 다 까놓고 말해서 진짜 너는 우리가 개인적인 사리사욕도 없이 지금 이 위험천만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냐?”

     

   근본적으로 그들은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던 도둑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짐승도 안 할 의뢰를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인간의 선은 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들은 크게 인생을 역전할 기회가 없었다.

     

   그랬기에 진 하트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 모두가 자신의 야망을 떠올려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고 그때부터 이 싸움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싸움이 된 것이다.

     

   “그, 그래요. 말은 좋습니다! 근데 다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망신을 당한 길드원이 투덜거리며 성벽을 향해 돌진하는 몬스터 무리를 가리켰다.

     

   아무리 봐도 본인들이 감당할 만한 시련이 아닌 규모.

   하지만 나는 슬슬 겁에 질리기 시작한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성벽 안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기 보여?”

     

   길드원들 보다 훨씬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

   지난 전투의 트라우마로 이미 얼굴에 핏기가 다 사라진 병사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점성술사가 말한 찬란한 별이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기대하며 피난소로 가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해내야지 다른 말이 안 나와. 그동안 저질렀던 모든 것들이 지금 이것 하나를 기대하면서 달려왔던 거니까.”

   “……젠장.”

   “물론 다 막으라는 건 아니야. 충분히 이목이 집중될 시간만 채울 수 있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입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길드원들이 투덜거리며 다시 몬스터 군단을 바라보며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손수 하나하나 관리를 하고 지도했던 도둑 길드의 전투원들.

   꼭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반드시 존재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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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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