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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3

   EP.153

     

   어린 공녀는 늘 좋은 것을 보며 자라왔다.

     

   하트 공작가의 외동딸.

   가지지 않은 것이 없었고 설사 가지고 있지 않은 무엇이 있었다면 말 한마디로 대부분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아빠 저 기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 그럼 좋은 검부터 한 자루 장만해야겠구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무엇이든 이루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한 번 살고 떠나는 삶. 미련 따위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신념이었고 여유가 있고 소망이 있는 그 순간에 저질러 보는 것이 옳은 것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장사도 해 보고 싶은데!」

   「내일 시장에 작은 노점상을 열어 줄 테니 시종 하나와 함께 가서 물건을 팔아 보거라.」

   「친구들도 많았으면 좋겠어!」

   「저런! 아카데미에 가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구나…… 주변에 또래 친구들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마! 가스톤 백작. 혹시 주변에 아는 사람 없소?」

     

   모든 사람이 꿈꾸는 삶.

   하지만 그들의 꿈이 진 하트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진 하트에게 늘 그 사실에 대해 진지한 가르침을 내렸다.

     

   「진, 너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 중 당연한 것은 없단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일에 늘 감사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곡식과 과일을 키우는 농부, 그것을 팔아주는 상인, 그리고 그것을 요리하는 요리사와 그들을 몬스터와 적국으로부터 지켜 주는 군인. 그 외에도 내가 말하지 않은 모든 존재들이 가치 있고 필수불가결한 것이니 늘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녀의 아버지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더할 나위없는 멋진 아버지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존경해 마다않는 둘도 없는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악마와 계약을 하다니!」

     

   악마 따위와 계약을 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늘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물론 부족한 것이 없는 삶이었기에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니 더더욱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문을 떠난 이후로 계속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했다.

   도둑 길드에서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아르테나의 왕에 대해 알아내려 했고 그 결과 늘 마음속 깊은 곳에 하고 있던 의심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아르테나의 왕은 타락했다.

   예상했다시피 상당한 고위급 악마와 계약을 했고 그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왕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공작 또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왕은 욕심을 부렸고 공작은 겸손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결국 욕심을 가진 자의 손에 겸손한 자가 목숨을 빼앗겼다.

     

   그래서 진 하트는 궁금했다.

   그의 아버지가 계약 사실을 깨닫고 죽어야 했던 것을 떠나 왜 그런 욕심이 생겼는지.

     

   단순히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인간의 본능 따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본인의 입으로 들어야 더 의미가 있는 법.

     

   그리고 그녀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고 공작가를 세상에서 지워 버린 아르테나의 현왕을.

     

   ***

     

   “아, 안에 더 이상 자리 없습니까?”

   “피난처이지 않습니까? 안에 분명 넓은 공간이 있을 텐데 이게 말이 됩니까?! 아직 아무도 못 들어간 거 같은데!”

     

   북문의 몬스터 공습 대비 벙커.

   총 3개로 이루어진 벙커 중 하나의 벙커에 배정되어 움직인 피난민들은 이상하게 밖으로 내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 당신 조금 전에 들어가지 않았었나요?”

   “젠장! 기사들이 나더러 밖으로 나가라고 했소!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는데 검을 들이 밀기에……!”

   “피난처가 세 개인데 전부 이곳으로 몰린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제 친우의 가족과 친척들은 지인과 함께 제3피난처로 이동했어요! 그리고 구역 별로 이동해서 이럴 일이 없는데…… 제1피난처만 이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피난처 밖으로 내몰려져 있는 이유.

     

   “사실 조금 전에 왕실의 인장이 그려진 마차에서 사람이 내리는 걸 보긴 했는데……”

   “네? 왕실이요? 그럼 지금 그 왕이 사람들을 전부 쫓아내고 숨었다는 말씀이세요?”

   “미친 거지! 아니 마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이곳의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독차지 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 피난처는 아르테나를 처음 건국한 태조께서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해 백성들의 대피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그랬기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세 벙커는 수도 아르테나의 대부분이 숨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고 그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수도에 종이 울리면 모든 거주지를 버리고 이곳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신들 조금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허억!”

     

   왕실의 인장이 그려진 기사 하나가 대피소에서 철문을 열고나오며 조금 전에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미친 건 네놈들인 것 같군. 감히 왕실을 능멸해?”

     

   그가 초라한 벙커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검을 뽑아 든다.

   진심으로 화가 난 듯한 눈빛. 아니, 흐릿하지만 분노보다는 광적인 믿음을 가진 자의 몽롱한 눈빛에 더 가까운 듯싶다.

     

   “자네 이름이 뭔가? 사는 곳은?”

     

   기사의 눈빛이 독차지를 운운한 허름한 복장의 남자에게 꽂혔다.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 버릴 것만 같은 뱀의 눈빛.

   그리고 그 공포에 뇌가 얼어 버린 남자는 사지를 벌벌 떨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뭐가 아니라는 거지? 나는 그저 그대의 이름을 물었을 뿐이네만?”

     

   왕을 보필하는 왕실의 기사가 일반 백성의 이름을 물었다는 것.

   보통 그런 경우 이름을 불리는 사람의 운명은 두 가지로 정해진다.

     

   하나는 왕의 이름을 받들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친인척이 역적으로 몰려 이 나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것을 의미했다.

     

   “살려주십시오!”

     

   남자가 급하게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자 옷에 붙어 있던 자잘한 톱밥이 흩어지며 공기를 더럽혔다.

     

   손에 있는 거친 굳은살과 거추장스럽지 않게 정리한 짧은 머리로 보아 그는 아르테나의 건축 자제를 생산하던 목수이리라.

     

   “이름.”

   “제, 제발……”

     

   하지만 기사는 그런 목수에게 자비를 허락하지 않았다.

   감히 왕실을 능멸한 죄…… 따위의 이유가 아닌, 악마와 계약을 한 왕에게서 흘러나온 더러운 마력에 의한 정신감응 때문이었다.

     

   “단장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너는 또 뭐지?”

   “북문의 경비대장입니다.”

     

   피난민들을 안내하다가 소란을 느끼고 찾아온 경비대장이 조심스럽게 그들을 제지했다.

   말리지 않으면 당장 피를 보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직감이 그의 전신을 구속한다.

     

   “감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전시 상황이라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모든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으니 한 번만 눈감아 주시지요.”

     

   경비대장의 말에 기사의 눈빛이 일순간에 돌변했다.

   뒤에 나오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들렸던 것은 그가 ‘경비대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던 말.

     

   자신이 누구인데 감히 일개 문지기 대장 따위가 딴지를 걸 수는 없는 것이었다.

     

   “너는 이름이 뭐지? 아니, 어디 가문 소속인가?”

     

   왕실 기사단장은 옆구리에 있던 검에 손을 올렸다.

   가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 자의 목을 베어 버리고 그 이름을 쓰는 모든 자를 왕의 이름으로 죽여야 했기에 한 시가 급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옆으로 들려오는 얇은 미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진 하트.”

   “재수가 없으려니 별의별 미친년이 내 앞길을 가로막으려 하는구나!”

     

   그가 발검했다.

   악마의 마력에 정신이 오염되었다고 하나 그의 본질은 왕의 옆을 수호하던 왕실 기사단장이었다.

     

   그의 검이 빠르게 갑자기 나타난 여인을 향해 날아든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을 노리며 검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기사단장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즉결 처분이다!”

     

   채채채채챙!!!

     

   그의 외침 뒤로 따라오는 날카로운 소음. 기사단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검이 목표물을 놓치고 도중에 막혔다는 사실도 중요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니 잊고 살았던 과거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카아아앙!

     

   그의 검로를 가로막았던 수십 개의 검이 그의 검을 강하게 밀어내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갑자기 진 하트의 주변으로 나타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기사단장인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임이 분명한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앞으로 나오며 주변에 길을 만들었다.

     

   “흑영 길드 전체 차렷!”

   “……개 쪽팔리네. 우리 이거 진짜 합니까?”

   “그래도 우리 주인이 될 사람인데 첫 등장은 좀 간지가 나야지.”

   “로그, 헛소리 마십쇼. 그냥 쪽팔립니다. 아니면 단체복이라도 맞추든가……”

   “닥치고, 경례!”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사내 하나가 기사를 흉내 내듯 어정쩡한 자세로 가슴에 검을 가져다 댄다.

     

   “충!”

   “……충.”

   “추우우웅!!!”

   “츄츄츙! 삐융삐융!”

   “마지막 누구냐?”

     

   박자나 순서 따위는 없었다.

   귀찮은 말투, 잔뜩 긴장한 목소리, 심지어 장난기마저 가득하다.

     

   누가 봐도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뒷골목의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야망만큼은 왕실의 그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으니 그 열정만큼은 인정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만든 길을 통해 진 하트가 피난소로 걸었다.

   물론 본인도 뭔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영애의 사소한 감정 변화를 캐치할 수 있는 도둑 길드의 남정네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을 걷는 남자.

     

   “어어…? 저 사람?”

   “그 점성술사 아닌가?”

   “와, 와아아!!”

     

   나를 알아본 사람들.

   그들의 외침에 예언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진 하트를 돌아봤다.

     

   “끌고 나올까? 아니면 네가 들어갈래?”

   “끌고 나와 주세요.”

     

   악마와 계약을 해서 자신의 억울하게 아버지를 죽인 왕에게 자비 따위는 없었다.

   아르테나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진실을 밝힌다.

     

   물론 악마와 계약한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알 길이 없었다.

   마력을 터트려 주변에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계약한 악마 그 자체가 이 자리에 강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은 절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아니, 인간은 맞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반신이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으니 두려울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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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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