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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4

   EP.154

     

   왕을 끌고 나오라는 진 하트의 명령.

   왕실 기사단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이미 한 번 가로막혔던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자, 잠시만!”

     

   하지만 그에게는 처음 평민들을 처단하겠다고 당당히 나서던 기백 따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비켜. 부탁 들어줘야 되니까.”

     

   나는 녀석을 지그시 바라봤다.

   얼마나 사치와 향락에 빠진 삶을 살았는지 눈에 훤할 정도로 그의 모습은 형편이 없었다.

     

   [‘꿰뚫어 보는 눈(EX)’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이름 : 켈리 백 라스에라

   나이 : 51세

   능력치 : [근력 Lv.34(42)], [민첩 Lv.38(51)], [체력 Lv.25(57)], [마력 Lv.22(38)]

   스킬 : [아스트라스 쾌검술(B+)] [폭발적인 움직임(봉인)], [호신강기(봉인)], [검기(B+)]

   특성 : [외골수(B)], [철의 사자(A)], [잘못된 충성(D)]

     

   현재 상태 : 긴장, 혼란, 짜증, 두통, 억제, 봉인, 타락

     

   종합 평가

   – 아르테나의 자작 위를 가진 기사.

   – 과거 아르테나의 존경 받던 기사이자 많은 기사들의 우상이었던 사람이다.

   – 악마와 계약을 한 왕에 의해 조금씩 타락했고 현재 자신이 가진 힘을 조금씩 왕에게 빼앗기고 있다.

   —

     

   강철로 만들어졌어야 할 검과 갑옷은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얼마나 오래 쉬었던 것인지 기사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손의 굳은살조차 흐릿하게 사라져 간다.

     

   그나마 봐줄 만했던 것은 놈의 자세였다.

   머슬 메모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수련을 게을리 했다고 하더라도 검을 아주 손에 놓은 것은 아니었던지 놈의 몸은 그가 배운 검술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저벅. 저벅.

     

   나는 그냥 놈을 무시한 채, 벙커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말해서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그도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한 불쌍한 사람이니 뭐니 그럴싸한 과거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기에는 세상을 살아가며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믿었고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이놈은 과거를 운운하기에는 상당히 거슬리는 언행을 많이 행했으니까.

     

   “이 근본도 없는 놈이 감히 기사단장인 나를 무시해?!”

     

   쐐애액!

     

   나의 등 뒤로 누가 들어도 검을 휘두른다 싶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란 마음에 터져 나온 구경꾼들의 비명도 말이다.

     

   “꺼져. 눈치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근성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놈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뚝.

     

   그리고 그 순간 날아오던 검이 물리법칙을 위배하듯 공중에서 그대로 정지했고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린 기사를 잠시 바라봤다.

     

   “……”

     

   공격과 함께 기사의 호흡이 멈췄다.

   눈이 붉게 충혈되고 그의 몸이 거대한 포식자 앞의 먹잇감처럼 딱딱하게 굳어진다.

     

   공포.

     

   그는 내가 탑을 오르기 전 성좌들의 시선을 통해 느꼈던 압도적인 공포를 실시간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숨을 쉬는 순간 죽을 것이라는 착각.

   감히 몸을 움직였다가는 저 거대한 존재가 나를 짓누를 것 같다는 기분.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든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명령을 거스르는 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넌 그대로 숨만 쉬고 있어. 여기 사람들 중에 하나라도 건드리면 지금 떠오른 감각을 지겹도록 느끼게 해 줄 테니까.”

     

   나는 몸을 돌려 그대로 벙커로 들어갔다.

   몬스터의 공습을 대비해 만들어진 대피소.

   그 내부는 허름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세련된 느낌의 복도를 보는 것만 같았다.

     

   ***

     

   “입구는 은근히 좁았는데 내부는 신기할 정도로 넓네.”

     

   아공간 마법이 벙커 내부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 모양이었다.

     

   마법이라는 것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뚝딱 해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치 인간의 손에서 펼쳐지는 신의 장난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은 아닐지도 모르겠네.”

     

   성좌들이 지구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고 공간을 뒤틀어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뭔가에 가로막힌 듯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그냥 다른 차원으로 사람들을 이동시킨 듯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 우리를 떨어뜨렸다.

     

   애초에 이 탑도 생긴 거랑 다르게 다양한 세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땅굴 사이즈 좀 늘리는 마법이 그리 신기한 느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는 서서히 넓어지는 복도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복도 끝에 있는 문이 나를 반기고 있었고 나는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의 기사 둘을 마주할 수 있었다.

     

   “거기 정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느냐?!”

     

   다짜고짜 창부터 들이미는 두 병사.

   이놈들은 무슨 돈 없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갑옷부터 창까지 보석 세공이 잔뜩 들어간 비효율적인 황금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문 열어.”

     

   나의 말에 두 병사의 눈이 뒤집어진다.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어딜 감히 근본도 없는 놈이 왕의 병사를 무시…”

     

   짜아악!!!

     

   나는 최대한 힘을 빼고 나에게 창을 겨누던 놈의 뺨을 후려 갈겼다.

     

   저만치 날아가며 벽에 처박히는 황금 병사 하나.

   짜릿하고도 경쾌한 소리가 마법 벙커의 복도를 메아리치자 그것을 본 병사가 토끼 눈을 뜨며 나를 돌아봤다.

     

   “내가 여기에 누굴 뚫고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아.”

     

   내가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허리춤에 손바닥을 슥슥 닦자 벽에 처박힌 동료를 본 병사가 뒤를 돌아 굳게 닫혀 있던 벙커의 문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 힘으로 문짝을 뜯으려면 충분히 뜯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안에 있는 귀족들의 입장에서 나는 그저 반란군 정도의 모습일 테니 나름대로 조심한 것이다.

     

   드드드득…!

     

   철문이 바닥에 살짝 끌리며 육중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문을 열리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되니 도대체 왕이 무슨 생각으로 사람들을 쫓아낸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 이 넓은 곳을 고작 열댓 명에서 사용하시겠다고?”

     

   문을 통과하니 마치 대도시의 광장을 떠올리게 하는 넓은 공터가 나왔다.

   그 구석구석에는 식료품을 저장하려고 지은 창고나 거주 공간의 분리를 위해 만든 학교처럼 생긴 건물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가히 수천 명, 정말 빡빡 쑤셔 넣는다면 만 명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 나오자 나는 나도 모르게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의 침공에 대비한 공간이라……”

     

   도둑 길드에서 모아온 정보에 따르자면 이곳은 사람들이 다른 도시의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 모두가 숨어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왕은 그 십만 명이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공간을 고작 열 명 남짓으로 차지하겠다 말한 것이고.

     

   “그나저나……”

     

   나는 나보다 먼저 벙커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찼다.

   사치스럽다 못해 저러면 무겁지 않나 싶을 정도로 보석을 줄줄이 차고 있는 귀족들이 보인다.

     

   반지를 열 손가락에 다 착용한 채, 보석이 큼지막하게 박힌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마법사.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릴 때마다 도대체 뭘 박은 건지 이가 누렇게 번쩍거리는 귀족.

     

   멋쟁이 기사단장은 입구에 동상처럼 세워두고 와서 이곳에 없었지만 다양하게 꾸몄고 화려하게 미친 사람들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넌 무엇이냐? 앞에 있던 병사들은 무얼 했기에 너를 그냥 들여보낸 거지?”

     

   중심에 왕이 나를 보며 턱짓하자 옆에 있던 늙은 마법사가 질문을 던져온다.

   대놓고 지팡이를 들이미는 것을 보니 정체만 듣고 대충 죽이겠다는 심보인 것 같았다.

     

   “금방 알 수 있을걸? 그나저나 당신 마법사야?”

   “네가 무엇이냐 물었다.”

   “내가 질문할 차례인데 예의가 없네. 당신 친구 없지?”

     

   나는 지금까지 마법사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뭐…… 드래곤도 칼 한 자루 들고 내 편으로 만들었는데 마법사라고 별 게 있을까 싶었다.

     

   “무례하고 천한 것! 그냥 죽어라!”

   “예의가 없는데 멍청하기까지 하네.”

     

   놈의 지팡이에서 뜨끈뜨끈한 불길이 치솟았다.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밀폐된 공간에서 불을 뿜는 놈을 보니 어이가 없어진다.

     

   하지만 그뿐.

   나는 날아드는 불을 보법으로 슬쩍 피한 다음, 순식간에 놈들에게 접근해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짜아아악!!!

     

   “언제 이렇게 가까이…!”

   “히익…!”

     

   나와 눈을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굳히는 놈들.

     

   “너희들도 다 똑같아.”

     

   짜아아악!!!

   짜아아아악!!!

     

   따귀 한 방에 사람 하나가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 뒤로 차례를 기다리며 사색이 되어가는 귀족들.

     

   나는 나의 앞에 보이는 귀족들의 뺨을 정확하게 한 방씩 시원하게 갈겼다.

     

   “쓰레기들이.”

     

   나는 꿰뚫어 보는 눈을 사용해 그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폈다.

     

   “모두 다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알게 된 정보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이곳에 있는 모든 귀족들이 왕이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시원한 메아리가 넓은 벙커의 내부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그칠 때쯤, 나는 가장 끝에 앉아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던 왕의 멱살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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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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