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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6

   EP.156

     

   지구는 무슨 색인가?

     

   처음 이 질문을 받게 된다면 열에 아홉은 대부분 “푸른색”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지구에는 다양한 색상이 존재한다.

     

   물론 바다가 지구의 절반 이상이기에 파란색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북극 남극은 백색, 사막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숲을 보게 된다면 녹색이라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를 표현할 때, 항상 푸르다고 말하는 이유.

     

   그것은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이 지구를 보며 “푸르렀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닐까?

     

   잘 생각해 보라.

   만약 그가 우주에 처음 나갔을 때 지구를 보며 “지구는 알록달록했다.”라고 했다면 “푸른 별 지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의 뇌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

     

   뭐가 되었든 그럴싸하게 선빵을 친다면 그건 사람들의 머릿속에 ‘정답’이 될 수 있기에 나는 피투성이가 된 왕을 붙잡은 채, 유유히 벙커를 빠져나왔다.

     

   “저, 저게 뭐야?”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럼 대피소에서 나왔다는 건……”

     

   웅성웅성-

     

   대피소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쑥덕거리며 나와 왕을 돌아봤다.

   힘으로 제압한 탓에 은과 금으로 번쩍이던 보석이 빛을 잃고 순백색으로 빛나던 옷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리고 그런 왕을 발견한 사람들 중에는 입구에서 피난민들을 통제하던 아르테나의 기사단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와, 왕이시여!!!”

     

   그가 나에게로 달려든다.

   하지만 나는 가볍게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눈빛을 보냈고 나의 의중을 파악한 로그 브리트만이 기사단장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네놈들이 진정 죽고 싶은 게로구나! 감히 이 나라의 왕을 저렇게……!”

     

   그의 말이 이어지자 진 하트와 로그 브리트만을 포함한 모든 길드원들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도 왕위를 빼앗을 수는 있지만 왕을 힘으로 제압하게 된다면 그 그림이 썩 보기 좋지가 않다.

   말로 타이르거나 스스로 왕위를 넘기게 압박을 가해야지 무력 진압은 그야말로 반란이라 봐도 무방한 엔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단순한 것도 생각을 못할 머저리는 아니었다.

     

   “흐으읍…!”

     

   나는 호흡을 크게 들이쉬며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주모오오오옥!!!”

     

   “으윽!!”

   “꺄악!!!”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몬스터의 침공이 끝났다는 소식에 귀가하려던 사람들, 그리고 그냥 현재 이곳의 상황이 궁금해서 서성거리던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내가 서 있던 한곳으로 집중됐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나의 손에 잡혀 있던 아르테나의 왕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다들 이 얼굴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곳에 오기 전에 내가 얼마나 패놨는지 얼굴이 아주 피범벅이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몰골, 하지만 나는 제대로 그의 모습을 확인 시켜 주기 위해 주변에 서성이던 길드원들에게 손짓했다.

     

   “거기 셋. 어디든 가서 물 좀 가져와.”

   “예, 옛!!”

     

   길드원 셋이 후다닥 사라지더니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물이 든 가죽 주머니를 가져왔다.

   그리고 허리를 완전히 접어 인사를 한 길드원 셋은 뒷걸음으로 자리를 슬쩍 피해줬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왕의 얼굴에 물을 냅다 들이부었다.

     

   골골골……

     

   흡사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느낌이라 썩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

     

   “쿨럭!”

   “이익! 저, 저…!”

   “으음……”

     

   왕이 기침을 하자 기사단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분노로 휩싸인다.

   주변에서 상황을 보던 시민들도 몸을 조금씩 움찔거렸지만 나는 굳이 그들의 감정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진실은 곧 밝혀지는 것.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왕의 얼굴이 씻기며 맨 얼굴을 드러낼수록 그들의 당황과 분노는 의문이라는 감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어?”

   “사, 상처가 없네?”

   “도대체 이게 무슨……?”

     

   왕의 얼굴은 피가 흐른 흔적에 비해 이렇다 할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붓기 조금.

   그런데 그 붓기가 원래 왕이 뚱뚱한 체형이라 얼굴이 부은 건지 아니면 그냥 어제저녁에 혼자 라면이라도 먹고 자서 부은 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어떻습니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나 가까이서 상태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얼굴에 남아 있는 자잘한 상처와 붓기마저도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흉내 낼 수 없는 이질적인 힘이라는 것도 말이다.

     

   “이 나라의 왕은 악마의 계약자입니다. 지금 보시는 불사에 가까운 회복력은 악마가 내려줄 수 있는 고유한 권능이죠.”

     

   나의 말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난 며칠을 계속해서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던 이유가 바로 이것.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한 번 믿게 된 사실은 쉽게 떨쳐 낼 수 없었으니 그것이 곧 우리의 전략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진 하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자신의 아버지가 악마의 계약자로 몰렸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그녀의 눈시울이 천천히 붉어진다.

     

   “으으……읍!”

     

   나는 말을 하려는 왕의 목 부근에 마력으로 압박을 가해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왕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게.

   다른 사람들이 왕의 말을 들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도록.

     

   그녀의 아버지인 하트 공작도 비슷한 방식으로 왕에게 당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악마의 계약자로 낙인이 찍히고 인류의 배반자가 되어 불명예스럽게 처형당했다.

     

   그저 먼저 말할 기회를 빼앗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나마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장단에 맞춰 자신의 수하와 딸을 살리는 것이 최선이었고 그 결과가 여기까지 이어졌다.

     

   “한 국가를 다스린다는 자가 인간을 멸망으로 이끈다는 악마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내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를 뚫고 왕의 얼굴을 살피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노한 얼굴로 주먹을 꽉 말아 쥐는 기사와 병사들도 있었고 소문에 이끌려 왕에게 큰 반감을 가지고 있던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명분은 만들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

     

   나는 나에게 다가온 진 하트에게 왕을 인계했고 그녀는 자신의 공녀 신분을 밝히며 순식간에 벌어진 혁명의 끝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

     

   진 하트는 귀족은 물론이고 그들을 따르는 병사와 시녀 등 모든 사용인들을 모조리 조사했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극소수.

   귀족들이 욕심 때문인지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 불쾌한 마력을 느낄 수가 없었고 덕분에 소수를 처벌하는 것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많은 귀족들이 현왕의 행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트 공작의 사망 이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모든 귀족들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최근 국가의 재정이나 치안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황.

   그리고 그런 시기에 등장한 하트 공작의 외동딸은 왕족으로서 반기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허허, 별말씀을 하트 공작님께서 계셨다면 참 기뻐하셨을 일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악마와 손을 잡다니…… 아르테나에 부끄러운 역사가 기록되겠군요.”

     

   그녀는 다음 왕으로 추대됐다.

   물론 곧장 왕좌에 앉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고 갑자기 국가의 왕이 바뀐다면 정세가 이상하다 여긴 적국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이해할 명분이라는 것이 필요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명분이라…… 네 알겠습니다.”

     

   악마와 계약을 해서 처형당한 왕이 아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그럴싸한 이유.

   그리고 아직 어린 여왕을 그들의 왕좌에 앉히게 된 적법한 이유가 필요했다.

     

   길드원들은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불만을 표출했다.

   솔직히 나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달리 불안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 준 나나 그녀를 따르는 길드원들이 있기에 귀족들은 반발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길드원들은 격이 조금씩 상승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생긴 건 쌩양아치 같아도 분위기만큼은 여느 귀족 못지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임무도 곧 끝나겠군.’

     

   그녀를 화신으로 들인다.

     

   한 나라의 왕이자 개인의 능력도 뛰어난 그녀라면 충분히 화신으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 6층을 클리어할 충분한 점수를 획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 앞으로 다가왔다.

     

   ***

     

   왕궁에서 귀중한 손님을 모실 때 사용하는 귀빈실.

     

   똑똑.

     

   -계세요?

     

   자연스러운 노크와 그 너머에서 들린 진 하트의 목소리에 나는 적당히 응답했다.

     

   “어, 들어와.”

     

   문이 열리며 화려한 궁중 예복을 차려입은 진 하트와 그의 뒤를 따라 백색 무복을 입은 로그 브리트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안 어울리네.”

   “좀 그렇죠?”

     

   나의 말에 진 하트가 가볍게 웃으며 치맛단을 툭툭 친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복장. 지금까지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동네방네를 뛰어다니던 두 길드원을 생각하니 확실히 어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복장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나에게 꽤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만족해?”

   “하핫! 솔직히 말해서 저는 만족 정도가 아닙니다. 인생이 이렇게 편해도 될까 싶은 생각도 들고 아직도 악몽을 꾸면 반쯤 무너진 길드 하우스에서 눈을 뜨는 꿈을 꾸니까요.”

     

   나의 물음에 로그 브리트만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로그 브리트만의 임무는 그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그를 보호하는 것.

   그의 대답으로 나는 ‘로그 브리트만’을 화신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 하트 너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어린아이의 표정.

     

   그리고 그녀의 입이 열리기 전에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로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띠링.

     

   [‘숙명 그리고 복수 – 진 하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진 하트’가 당신의 화신이 됩니다.]

     

   [‘끈질긴 생명력 – 로그 브리트만’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로그 브리트만’이 당신의 화신이 됩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임무를 완수했다.

   사실 이 이후에 내가 6층을 통과하면 이 관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은 없었다.

     

   계속해서 그들이 나의 화신으로 남아 무언가를 하게 될지, 아니면 내가 6층을 떠나는 그 순간 이 관계가 깨져 버릴지 모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진 하트’의 격은 57입니다.]

   [임무 목표 : 57% 달성!]

     

   [‘로그 브리트만’의 격은 48입니다.]

   [임무 목표 : 105% 달성!]

     

   [‘6층 – 성좌로의 첫걸음’의 화신의 격이 맞춰집니다.]

   [‘6층 – 성좌로의 첫걸음’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응?

     

   내가 나의 아래에 둘 수 있는 화신의 수는 총 5명이었다.

   그래서 임무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능력이 좋은 사람을 화신으로 두려고 했던 것이고 그렇게 찾은 사람이 앞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임무가 끝나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안색이 조금……”

   “뭐 잘못 드셨습니까?”

     

   두 사람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으니.

     

   띠링!

     

   [‘7층 – 계속해서 나아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8층 – 부와 명예’를 클리어하셨습니다.]

   [‘9층 – 군단’을 클리어하셨습니다.]

   [‘10층 – 성좌의 자질’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눈앞으로 줄줄이 띄워진 기다란 메시지는 차분하던 나의 동공에 대지진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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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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