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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9

   EP.159

     

   띠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11층에 도착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풍경을 잠시 감상하고 있으니 나의 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11층부터는 해당 좌표를 지키는 성좌가 있습니다.]

   [성좌가 주는 임무를 완수하고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으십시오.]

     

   앞서 올라온 층들과 달리 눈앞에 곧바로 임무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성좌에게 임무를 받아 그것을 통과하라는 내용.

   잠깐이었지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의 13층에 도착했을 때처럼 성좌가 층의 모든 내용을 주관하는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저기요? 누구 없어요?”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에게 임무를 내려야 할 성좌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먼저 성좌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일이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위를 탐색하는 것밖에 없었다.

     

   타앗.

     

   나는 일단 방향을 잡기 위해 나무 위로 도약했다.

     

   처음에는 가까이 있는 나무로, 그다음에는 조금 더 높은 나무로.

     

   그렇게 몇 차례 도약하며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소환된 장소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울창한 숲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산에 더 가깝겠네.’

     

   등산을 많이 안 해 봐서 비교하기는 애매하지만 탑에 들어오기 전에 올랐던 그 어떤 산보다 웅장한 느낌이 있었다.

     

   깎아내린 듯한 절벽과 끊임없이 강풍이 불어닥치는 거대한 협곡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산맥에도 끝은 있었던지 바위산 꼭대기에 올랐을 무렵, 나는 구름 아래로 흐릿하게 보이는 도시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흐읍… 하아!”

     

   바위산 꼭대기에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상쾌했다.

   능력치가 오르고 성좌가 되며 가벼운 움직임에는 땀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지만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는 것은 꽤 가슴 벅찬 일이 아닌가 싶었다.

     

   “한 번씩 기분 전환 삼아서 올라도 괜찮을 것 같네.”

     

   당시에는 회사 사람들에게 끌려가다시피 똑같은 산을 정기적으로 올라서 짜증만 났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썩 나쁘지 않은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정상에 오르고 잠깐 구름 아래로 펼쳐진 세상을 감상하던 순간이었다.

     

   “후우! 안녕한가?!”

     

   등 뒤에서 들린 갑작스런 목소리에 나는 급하게 검을 뽑으며 뒤를 돌았다.

     

   차앙!

     

   “반갑네! 후우! 11층에 온 성좌가 자네, 으흠! 자네지?”

     

   신선(神仙)이나 입을 것 같은 흰 도복에 금빛 장삼.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은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적의를 가지고 기습을 감행했다면 꼼짝없이 큰 한 방을 먹었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숨을 몰아쉬는 남자를 보니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반갑네! 후우! 나는 이 좌표를 담당하고 있는 으흠! 성좌라네! 후우우-!”

   “……숨 좀 돌리고 나서 이야기하지.”

   “그럴까?! 후! 고맙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버리는 성좌.

   나를 경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신뢰하고 있는 느낌이 더 든다고 해야 할까?

     

   그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고 가만히 눈을 감은 그는 잠시 햇살을 만끽하며 숨을 골랐다.

     

   그렇게 잠시 후.

     

   “이만하면 다 쉬었다네! 미안허이! 내가 원래 바로 왔어야 했는데 급똥이 와서 말이야! 똥 싸다가 늦었네!”

   “……안 물어봤어.”

   “아핫! 그런가? 하지만 늦었다면 늦은 이유를 설명해야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지 않겠는가?!”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11층의 성좌인가?’

     

   사람을 면전에 두고 더러운 이야기를 자질구레하게 늘어놓는 모습을 보니 이게 정녕 우리를 괴롭히던 그 성좌가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든다.

     

   ‘가짜가 아닐까? 환상이라거나 함정이라거나.’

     

   모든 성좌가 무게감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천박한 건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띠링.

     

   [당신은 11층의 성좌를 대면했습니다.]

   [그에게 임무를 받으십시오.]

     

   “……”

   “하핫! 자네 무슨 생각하나?”

     

   탑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니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뭐, 애초에 성좌들도 각자의 세상에서 시련을 겪고 탑을 오르게 된 존재들이니 이런 놈이 있을 수도 있겠거니 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탑이 너한테 임무를 받으라는데?”

   “알고 있네! 그것 때문에 미친 듯이 뛰어왔으니까!”

     

   그가 웃었고 나는 멀뚱히 그를 바라봤다.

     

   “아, 맞다. 임무 줘야 되는 구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이런 반푼이가 성좌?

     

   도저히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10층에서 11층으로 넘어오는 사이에 이질감 넘치는 들판에서 그 신을 만난 것부터가 그랬다.

     

   게다가 경계심이 더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남자가 접근했다는 사실을 내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주 컸다.

     

   스윽.

     

   그가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장삼 안쪽을 뒤적거린다.

   아직도 이상하리만치 느껴지지 않는 존재감. 그리고 그가 손을 꺼내는 순간, 나는 서늘하게 번뜩이는 날붙이를 보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이게 무슨 짓인가?”

     

   그가 자신의 목에 닿은 흑색 칼날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반쯤 빠져나온 물건. 힐끗 보니 살수가 쓸 만한 단검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경계심이 많아서 말이야.”

   “이게 뭔 줄 알고?”

   “무기.”

     

   나의 말에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강한 성좌와의 싸움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맺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꿀꺽.

     

   나의 머릿속에 수십 갈래의 수 싸움이 펼쳐졌다.

   인기척이 거의 없는 상대. 날아오는 암기의 방향을 알기가 어려우니 기회를 잡은 이 순간 끝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크큭! 지금 실수한 거야.”

     

   그가 입을 열었다.

   비릿한 미소와 낮게 깔린 목소리.

   하지만 이런 기 싸움에서도 져서는 안 된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언제 저 서슬 퍼런 칼날이 내 목을 노릴지 모르는 일이니 항상 집중을……

     

   “아니 내가 실수한 거라고.”

     

   ……해야? 응? 실수?

     

   “잘못 꺼냈네. 이거 아니야. 이것 좀 치워주게.”

   “……”

   “나 진짜 무서워서 그래.”

     

   찡그려진 인상에 비해 한없이 비굴하게 떨어진 놈의 입꼬리.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놈은 싸움을 잘 못했다.

     

   ***

     

   “어휴. 물건 하나 잘못 꺼냈다가 삼도천 건널 뻔했네! 똥 싸고 왔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남자가 나를 보며 투덜거린다.

   아직도 의심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이쯤 되니 이 천함이 타고난 것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임무는 언제 줄 건데?”

   “이런 미친놈……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후원을 그렇게 해댔는지 모르겠군.”

   “후원?”

   “그래 후원 임마!”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원이라고 하면 탑을 오르며 성좌들에게 받았던 코인이나 물건들을 의미하는 것.

   그 말인 즉,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성좌가 나를 지켜보며 코인을 뿌리던 놈들 중 하나라는 의미였다.

     

   “당신 이름이 뭔데?”

   “젠장! 안 가르쳐 줄 테다! 알아보든지 말든지!”

     

   그는 끝까지 자신의 성좌 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뭐……

     

   “일단 임무는 줘야 하니까……”

     

   띠링.

     

   [11층의 성좌로부터 임무를 받았습니다.]

     

   [‘장막 뒤의 감시자’의 임무입니다.]

   [해당 임무를 완수하고 그를 찾아가십시오.]

     

   그는 생각보다 일차원적이었다.

     

   —

   『11층 – 착하게 살자』

     

   성좌 : 장막 뒤의 감시자

   주제 : 탐색

   난이도 : A

     

   설명 : 무공과 의협이 넘치던 이곳 무림! 과거 평화로웠던 이 땅에 피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네. 정파와 사파, 마교의 악인들과 세외의 세력들이 서로의 땅과 무공을 빼앗기 위해 싸웠고 그 전쟁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그들은 한 사건에 의해 전쟁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고 더 이상 타인의 고통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지 않겠다고 서로와 약조했으니까. 그래서 당신도 무림에 선향 영향을 보여주길 바라네. 특히……

     

   임무 : ‘량’에게 호의를 베푸십시오. 그가 당신에게 감사를 느낀다면 임무는 완수될 것입니다.

   제한 :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보상 : 12층으로 가는 포탈 / 성좌가 준비한 추가 보상

   실패 페널티 : 추가 보상은 없네. 아주 좋은 건데 말이야.

   (단, 이유 없는 폭력을 사용하면 실패로 간주됩니다.)

   —

     

   “장막 뒤의 감시자가 너였어?”

   “허업…… 그, 그걸 어떻게?”

     

   없는 인기척만큼이나 이름값을 하는 녀석.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새롭게 받은 임무를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량’이라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 호의를 베푼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감사함을 느끼면 그것으로 임무는 완료였다.

     

   “그런데 이게 다야?”

   “그럼 뭐가 더 필요한가?”

   “아니, 량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이게 문제였다. 잠깐이지만 이곳을 탐색해 본 결과, 이곳도 내가 맡게 된 아우트라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무림이라면 결국 중국 대륙.

     

   물론 같은 세계가 아니라 땅덩어리는 다를 수 있었지만,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기본적인 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후후, 그럼 날로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소?”

   “그건 아니지만…… 젠장.”

     

   그가 나를 보며 조금 전에 지었던 그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의 의미를 이제는 약간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거 줘.”

   “호오? 뭘 말인가?”

   “조금 전에 꺼내려고 했던 그거 말이야.”

   “으음…… 조금 전? 뭔지 잘 모르겠는 걸?”

     

   그가 나를 보며 이죽거린다. 대충 봐도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눈치.

     

   “……뭘 원해?”

     

   내가 칼을 들이밀어서 꺼내려다가 그만둔 뭔가가 이 임무의 핵심일 것이 분명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름만 가지고 이 넓은 땅을 다 뒤져 보라는 건 12층을 가지 말라는 의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말을 들은 그가 슬그머니 품 안에 손을 넣었고 나는 그가 무엇을 요구할지 몰라 한껏 긴장한 상태에서 그의 움직임을 살폈다.

     

   척.

     

   “응?”

     

   그가 내민 것은 종이와 붓 한 자루.

     

   “서명.”

   “……”

   “내가 괜히 자네한테 후원을 했겠나?”

     

   마치 연예인을 직접 대면한 팬이 싸인을 부탁하는 듯한 모습.

   눈과 귀가 의심됐지만 그의 반응을 보니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진짜 싸인만 하면 돼?”

   “그래, 여기 서명해주게 그리고 여기 밑에는 ‘후원 감사합니다.’라고 적고 가능하면 후원 리액션도 해 줘. 그래, 그 뭐시냐. 제로투? 자네 세상에 그런 춤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게 좋겠……”

   “꺼져.”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마을이 있는 장소로 몸을 날렸다.

   차라리 크레센도랑 화신들을 다 풀어서 동네방네 있는 ‘량’을 다 찾고 말지.

     

   “자, 잠깐만! 미안하네! 돌아와!”

     

   그렇게 달리기를 한참.

     

   뒤에서 춤은 안 춰도 된다는 녀석의 외침이 나올 때까지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며 그를 따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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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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