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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EP.160

     

   “오오! 이게 성좌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플레이어의 서명인가!? 글씨 한 번 못 생겼군!”

     

   세상 좋은 표정으로 악담을 툭툭 던지는 성좌를 보고 있자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별것도 아닌 것을 주고 정보를 취했으면 응당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뭐랄까…… 악질 사생팬한테 실수로 사인을 해준 연예인의 기분이 이런 건가?

     

   “이름 적어줬으니까. 이제 그쪽도 약속 지켜야지.”

   “아아! 그렇군! 내가 결례를 범할 뻔했어!”

     

   짝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친 그는 장삼 안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상당히 손때가 많이 탄 듯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이게 맞나 확인을 좀 해야 돼.”

     

   그가 두루마리를 슬금슬금 펼쳐 안에 적힌 내용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가 하나 있었으니.

     

   “음음! 이거 맞군!”

     

   찌이익!

     

   두루마리가 그의 손에 의해 반으로 찢어졌다.

     

   너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기에 의심을 해보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이후에는 이미 찢어진 두루마리의 반쪽은 그의 장삼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여기 있네.”

     

   찢어진 두루마리의 반절을 건네는 그의 손.

     

   “……장난해? 나머지는?”

   “자네도 반만 줬잖나.”

     

   속았다.

     

   아무리 단순하고 멍청해 보여도 놈은 11층에 도달한 성좌인데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힘으로 뺏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나머지 반쪽도 좋은 말로 할 때 줬으면 좋겠는데?”

   “후후후, 협박이 좋은 말이라니 어불성설이군. 앞뒤가 맞지 않아. 모순이야. 창과 방패야.”

     

   나의 말에 녀석은 뭐가 그리 자신만만한지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웃음을 흘렸다.

     

   “사실 지금 자네가 나를 때리고 이걸 빼앗아도 막을 생각은 없네. 11층에서 수백 년 썩는 것도 지겨운데 이참에 여기 무너뜨리고 같이 죽지 뭐. 삼도천이 꽤 멀다는데 말벗이 자네라니 나쁘지 않군!”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평범한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농담이라고 받아들였겠지만 지금 이놈 눈빛을 보니 이런 걸로 블러핑을 칠 놈이 아닌 것 같았다.

     

   “팔 떨어지겠네. 빨리 반절이라도 받게.”

   “진짜 팔 떨어지게 해 줘?”

   “그럼 강 건널 때, 노는 자네가 저어야겠군.”

   “젠장……”

     

   나는 놈이 건넨 두루마리 반절을 받아들었다.

     

   섬유 따위로 만든 듯한 거칠거칠한 촉감.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안에 있던 내용이었다.

     

   —

   무공과 의협이 넘치던 이곳 무림! 과거 평화로웠던 이 땅에 피바람이 불었던 적이…(생략)…전쟁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고 더 이상 타인의 고통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지 않겠다고 서로와 약조했으니까. 그래서 당신도 무림에 선향 영향을 보여주길 바라네. 특히……

   —

     

   “이 새끼가!”

     

   놈이 나에게 띄워줬던 임무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심지어 끊어 먹는 타이밍도 한 치의 오차범위 없이 정확히 똑같은.

     

   “워워! 그 칼 멈춰!”

   “가증스러운 손바닥 치워! 외팔이 되기 싫으면!”

   “어? 자네 지금 온 세상 외팔이들을 비하한 건가?”

   “내가 언제!”

   “방금 외팔이들이 가증스럽다고……”

     

   웃고 있는 놈의 면상을 보니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대화 몇 마디가 정신에 상당한 데미지를 준 건지 빠른 납득이 발동될 지경.

     

   “쓰읍…… 하아……”

     

   나는 심호흡했다.

     

   어차피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놈인 게 확실한 상황. 나머지 종이 반절에 ‘량’이라는 사람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그 정보를 받는 것. 물론 이젠 자존심이 상해서 춤은 도저히 출 생각이 안 들었다.

     

   “뭘 원해?”

   “후후, 물론 아직도 춤이 보고 싶긴 하지만 그건 자네가 절대 하지 않을 테니 다른 방법을 제시해야겠지?”

   “잘 아네.”

   “그럼 이렇게 하세.”

     

   그가 손가락을 들어서 내가 처음 발견했던 도시를 가리켰다.

     

   “가서 선행을 베풀게.”

   “선행?”

   “그래. 그냥 11층의 사람이라면 상관없고 음…… 횟수는 총 10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감사합니다.’ 내지 ‘고맙습니다.’ 따위의 인사를 10번 이상 들으면 내가 나머지 반절을 주지.”

   “……진짜냐?”“물론이야. 성좌 ‘장막 뒤의 감시자’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뭣하면 다른 것도 추가로 걸어도 좋고.”

     

   지금까지의 행동들을 생각하면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용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장소도 명확하니 오히려 너무 쉽지 않나 싶어서 의심이 깊어졌다.

     

   “저기 사람 사는 거 맞지? 아니면 딱 9명만 살고 있는 유령 도시라거나.”

   “자네 나를 뭘로 보는 건가? 인구만 따지면 오만 명이 넘게 살고 있네. 나는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는 좀생이가 아니야.”

     

   그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드린다. 허나 일을 하려면 확실한 것이 좋은 것.

     

   “그럼 임무로 만들고 보상으로 반절 걸어.”

   “오, 그게 제일 확실하겠군. 역시 똑똑해. 잠시만 기다리게.”

     

   뒤적뒤적.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임무는 원래 성좌가 수기로 쓰는 거냐?”

   “아, 이건 그냥 개인 취향이네. 내가 누구와는 달리 명필이라 쓰는 재미도 있고 말이야.”

     

   은근슬쩍 내 필체를 디스한 그가 장삼에서 꺼낸 새 두루마리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

   『11층 – 착하게 살자(연계)』

     

   성좌 : 장막 뒤의 감시자

   주제 : 선행

   난이도 : A+

     

   설명 :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게. 딱 10명. 그 10명이 자네에게 감사를 느낀다면 임무의 찢어진 반절을 주도록 하지.

     

   임무 : 11층에 거주하는 10명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제한 :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 위기를 조작해서는 안 됩니다.

     

   보상 : 조금 전에 찢은 두루마리의 나머지

   실패 페널티 : 실패하면 나머지 반절은 반의반절이 될 것이네.

   (단, 이유 없는 폭력을 사용하면 실패로 간주됩니다. 위기를 조작하면 실패로 간주됩니다.)

   —

     

   나는 새롭게 받은 임무에 혹시나 교묘한 함정이나 거짓말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딱히 의심이 가는 건 없는 내용은 없었고 나는 끝내 그가 보냈던 임무를 수락했다.

     

   “잘 생각했네. 임무를 완수하는 즉시 반쪽을 보내주지.”

   “약속 지켜. 착한 일 10번 하면 끝나는 거야.”

   “자네는 예전부터 봐 왔지만 사람이 너무 급해. 시간제한은 일부러 두지 않았으니까 이참에 여유를 가지고 여행이나 좀 다녀보게. 참으로 훌륭한 장소이지 않나?”

     

   여전히 능글맞은 표정으로 팔을 펼치는 녀석. 나는 그가 뭐라고 하든 말든 적당히 무시하며 도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친구, 이따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군.”

     

   마지막으로 남긴 녀석의 말은 듣지 못한 채.

     

   ***

     

   도시는 평화로웠다.

     

   호객 행위를 하는 장사꾼들과 옹기종기 모여 길거리의 노점을 구경 다니는 아이들.

   인프라가 잘 구축된 것인지 사람들의 복장이나 시설에 불편함은 없어 보였고 그렇기 때문인지

   이렇다 할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아무리 시민들의 행복도가 높아도 그 와중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있다.

     

   게다가 이곳은 무공이 있고 칼부림이 일상인 무림. 잘 찾아보면 강도질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는 범죄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주변에 심어진 가로수에 슬쩍 등을 기대어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청각에 집중하자 장사꾼들의 외침과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간의 망치가 모루를 때리는 소음이 간간이 들려오고 그 옆의 객잔에서는 기름에 음식을 볶는 불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마력을 퍼트리니 주변의 풍경이 더 상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 나를 향해 다가오는 낯선 발걸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덩치가 큰 성인 남자 하나…… 좀도둑인가?’

     

   무공을 배운 것인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조용하고도 조심스러운 발걸음. 나는 그가 지척까지 다가올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기다렸고 그가 내 앞에 당도했을 때, 솔직히 말해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딸랑.

     

   “……”

     

   내 코앞에 동전 몇 푼을 내려놓고 간 남자.

   자세히 보니 언제 썼는지 당최 추측도 할 수 없는 조그마한 편지 한 장이 동전 아래에 살포시 깔려 있었다.

     

   —

   젊은 청년. 자네를 보니 힘들었던 과거가 생각나서 실례를 무릅쓰고 몇 푼 놓고 가네. 이거로 요기라도 하시게나. 객잔에 가면 만두 한 접시는 사 먹을 수 있을 게야.

   —

     

   눈을 뜨니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력을 퍼트려 그를 찾으려 해도 발견이 안 된 것을 보니 경공을 펼쳐 자리를 벗어난 모양이었다.

     

   “뭐야 이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기증 받은 동전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 혹시 냄새라도 나나?”

     

   혹시나 내 행색에 문제라도 있을까 싶어서 온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한 착한 아저씨의 선행 정도로 생각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어이쿠야…! 그거 이리 주시게…!

     

   어디선가 노인의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타타탓!

     

   나는 곧장 소리가 난 방향으로 내달렸다. 소리를 들어 보니 노인이 어떤 물건을 빼앗긴 모양.

   빠르게 이동한 나는 멀지 않은 위치에서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노인과 양아치 셋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선행 하나 적립이…… 응?”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크큭, 할아범 이 보따리에 뭔가 소중한 게 들었나 보군!”

   “꽤 묵직한 게 값이 좀 나가겠어.”

   “들고 가려면 고생 깨나할 텐데 우리가 좀 덜어 주지!”

     

   뭐랄까…… 그냥 이상했다.

     

   “크큭, 귀중품은 조심해서 다뤄야지! 이건 내가 들고 가도록 하지! 앞장서!”

   “여기에서 집까지 얼마 안 멀다니까 그러네…… 그냥 이리 달라니까.”

   “영감이 무거운 걸 들다가 다치면 우리 마음이 찢어질 거 아니야! 우리를 후레자식으로 만들 거야?”

   “어휴… 이런 착한 청년들을 봤나.”

   “봉사하게 해 주다니 오히려 영광이라고!”

     

   그들의 말투는 누가 들어도 불량배에 근접했다. 하지만 내용이 따뜻해도 너무 따뜻했다.

     

   ‘……이런 미친 동네.’

     

   기부천사와 선량배들이 판치는 곳.

     

   선행 한 번을 하기 위해서는 오만 명의 경쟁자가 줄을 서는 이곳은 ‘장막 뒤의 감시자’가 관리하는 ‘도산검림(刀山劍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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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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