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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EP.162

     

   11층에서 받은 메인 임무.

     

   『‘량’에게 호의를 베푸십시오. 그가 당신에게 감사를 느낀다면 임무는 완수될 것입니다.』

     

   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장막 뒤의 감시자가 가지고 있는 임무의 반절이 너무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유로 수백 년 전에 무림을 초토화 시킬 뻔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말인가.

     

   심지어 천하의 악당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라 정보를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름을 언급하는 것부터 불편해 하는데 눈치가 있지 어떻게 그런 걸 물어보겠는가.

     

   ‘역사에 기록된 무림의 공적이라……’

     

   자칫하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일. 이건 조심하는 게 임무의 완수를 위해 이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손님은 어디 산 깊은 곳에서 은둔 생활을 하셨나 봐요. 보통 이 이야기는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인…… 아, 나쁜 의도는 아니에요.”

     

   점소이가 나를 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충분히 납득이 되는 질문이다. 나 같아도 한국에 사는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국에 전쟁이 있었어?’ 라고 물었다면 미친놈 취급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점소이가 던진 말은 나를 변호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겉옷이었다.

     

   “맞아. 내가 자란 곳이 꽤 외진 곳이었거든. 사실 사람을 이렇게 많이 보는 것도 처음이야.”

   “오오, 그러셨군요! 어쩐지 분위기가 여기 사람들이랑 많이 다르다 싶었어요! 그런데 손님도 혹시 무공을 하실 줄 아세요?”

   “조금.”

   “와! 멋져요! 사실 제가 일을 하는 이유도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 돈을 모으는 거였거든요.”

     

   점소이는 언제부턴가 일을 하지 않고 내 앞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모두 순해서 그런 것인지 업무를 하지 않고 땡땡이를 치고 있는 아이를 구박하거나 데려가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흐뭇하게 아이를 응원하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상적이군……’

     

   아이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떠들고 있으니 주변에 있던 손님들은 오히려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먹은 그릇을 정리해 주방으로 가져간다.

     

   사람들의 배려를 보니 어릴 적 고아로 태어나 상당히 씁쓸한 삶을 살았던 입장에서 나도 이 아이의 꿈을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무공 한 번 배워볼래?”

   “……네?”

   “나도 스승이랑 한 약속이 있어서 자세히는 가르쳐 줄 수 없어. 하지만 검이라면…… 기초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것 같구나.”

     

   나의 말에 안 그래도 환하던 아이의 얼굴이 훨씬 더 밝아졌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이 어린 나이에 꿈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것에서 이 아이는 이미 합격이었다.

     

   “감사합니다!”

     

   띠링.

     

   [화향루 꼬마 직원, ‘아명’에게 선행을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아이를 돕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내 코가 석 자라 나도 알아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대신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네네! 말씀만 하세요! 제가 아는 거라면 다 알려드릴게요!”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말을 하고 나서인지 점소이, 아명의 목소리는 한층 격양되어 있었다.

     

   “혹시 역사에 관한 기록을 읽어볼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아니면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을 소개해 줘도 좋아.”

   “엥? 그건 왜요?”

   “그렇게 중대한 사건을 모르고 있다는 게 민망해서. 예로부터 뭔가를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모르는 걸 공부하지 않으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니까.”

   “오오……”

     

   아이가 쟁반을 양손으로 꽉 쥐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역사를 공부하려면 서고를 찾아가 보는 게 좋아요. 화향루에서 광장 반대 방향으로 좀 걷다 보면 4층 정도 되는 큰 건물이 나오거든요? 거기에 가면 웬만한 책은 다 찾아볼 수 있어요!”

     

   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은 내가 찾고 싶은 기록이 그저 전대의 고수들이 천하의 대마두를 해치웠다 따위의 영웅담이 아닌 ‘량’에 대한 자세한 정보라는 사실이었다.

     

   “혹시 서고 말고도 자세한 기록을 알 수 있는 장소가 또 있을까?”

   “서고 말고요? 음, 아마도 없을 거예요. 그나마라면 도산검림에 귀속된 비고(秘庫)가 있긴 한데 거긴 아무도 못 들어가요.”

   “도산검림에 귀속된 비고?”

   “저도 화향루에 찾아온 손님한테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에요. 거기에는 과거에 영웅들이 사용했던 명검이나 비급들이 보관되어 있데요. 그 대마두랑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곳이 도산검림이니까 아마도 상세한 기록들도 남아 있지 않을까요?”

     

   과거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은 조직. 이 세계의 새로운 시작이며 현재를 정립한 그곳에는 ‘량’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맙다. 그럼 서고 말고는 마땅히 기록을 읽을 곳은 없겠네.”

   “헤헷. 고맙긴요! 무공을 가르쳐 주는 스승님이 될 분인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거죠!”

     

   나는 앞으로 화향루에 묵을 예정이니 일이 끝나고 검을 조금씩 가르쳐 주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했다.

     

   잡다한 책을 판매하는 서고와 기밀 정보들을 관리하는 비고.

     

   내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앞으로 며칠은 굉장히 바빠질 예정이었다.

     

   ***

     

   「첫 째, 비고는 도산검림에게 귀속되어 있으며 허가가 없다면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다.」

   「둘 째, 허가 없이 비고에 침입한 자는 그 누구든 즉결 처분이 가능하다.」

     

   도산검림에 속한 최상위 간부가 아니라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비밀스런 장소.

     

   그 입구를 지키는 도산검림의 무사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짭짤한 봉급을 받아먹는 달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자네 혹시 오늘도 가져왔나?”

   “크흠흠… 자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우리가 하는 일은 없다지만 엄연히 보초를 서는 입장이란 말이야.”

   “그래서 가져왔냐 물었네. 그리고 어차피 아무도 안 오는데 알게 뭔가? 남자라면 이럴 때 뚝심을 가지고 직진을 할 줄도 알아야 해.”

   “그래도……”

     

   마른 체형의 무사가 걱정이 되는지 뜸을 들이자 민머리의 무사가 그를 다그치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어차피 비고에는 진법이 쫘아악! 깔려 있어서 이 입구를 통하지 않으면 접근조차 불가능하다는 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만약 담장을 넘으면 곧바로 방향 감각을 잃어서 아사(餓死)하게 될 것이야.”

   “으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러니까 빨리 꺼내게. 현기증 난단 말이네.”

     

   그의 말에 마른 체형의 무사가 주변을 살피더니 풀숲에서 네모난 목재 탁자 하나를 슬그머니 꺼낸다. 무언가를 셋팅하는 듯한 모습.

     

   “오늘도 품질이 아주 좋군.”

   “꽤 오래된 녀석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책상에 마주 앉아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는 두 사람. 그리고.

     

   탕!

     

   “그럼 한 판 두지!”

   “오늘도 한 수 부탁하네!”

     

   마른 무사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장기말이었다.

     

   ‘허허, 여기 사람들은 참 순수해서 좋군.’

     

   그리고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최고의 일탈이 장기 한 판인 것에 감탄을 금치 않으며 비고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꽤 크네.’

     

   비고(秘庫)는 비밀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물론 한국의 거대한 빌딩들에 비해서는 한없이 작은 건물이었지만 이곳 기준으로 10층에 근접한 건물이라면 충분히 큰 건물이 맞았다.

     

   멀리서 보니 안개가 낀 듯, 흐릿한 감이 있었다. 아마도 비고에 설치되어 있는 특별한 진법들 때문인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큰 걸림돌이 될 문제는 아니었다.

     

   스슷.

     

   나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비고의 담장을 넘었다.

     

   띠링.

     

   [상태 이상 ‘혼란(C+)’에 빠집니다.]

   [상태 이상 ‘감각 상실(B)’에 빠집니다.]

   [상태 이상 ‘시야 차단(B)’에 빠집……

     

   순식간에 줄줄 이어져 나오는 상태 이상들.

     

   보초병들의 말마따나 원래라면 진법이 펼쳐진 공간에 이런 식의 접근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나는 좀 달랐다.

     

   띠링.

     

   [스킬 ‘빠른 납득(B+)’이 발동됩니다.]

     

   튜토리얼에서 획득하고 언젠가 여기까지 성장한 스킬.

     

   —

   [빠른 납득]

   랭크 : B+

   분류 : 패시브

   설명 : 당신은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이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침착해집니다.

   – 판단이 빨라집니다.

   – 약한 정신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 강한 정신 공격에 저항합니다.

     

   ※ 해당 스킬은 잠재력이 각성한 스킬입니다. 성장의 여지가 있습니다.

   —

     

   [상태 이상 ‘혼란(C+)’이 사라집니다.]

   [상태 이상 ‘감각 상실(B)’이 사라집니다.]

   [상태 이상 ‘시야 차단(B)이 사라집……

     

   오랜만에 발동된 빠른 납득에 랭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 이상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튜토리얼 초기에 이 스킬을 얻은 건 굉장한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아직 불편한 느낌이 있네.”

     

   준비된 진법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탓인지 속이 더부룩한 수준의 상태가 유지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비고까지 가는 길은 또렷하게 시야에 잡힌다는 사실.

     

   “후우…… 가 볼까?”

     

   정석대로 차근차근 선행을 베풀어서 장막 뒤의 감시자에게 임무의 반절을 돌려받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호기심 수치가 한계를 뚫어 버린 이상, 도산검림의 비고는 반드시 방문해야 할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뚜벅. 뚜벅.

     

   나는 최대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진법이라는 것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방향 감각을 잃고 정신을 꼬이게 만드는 방식이라 괜히 급하게 움직였다가는 기분이 더러워질 것 같아서였다.

     

   터벅. 터벅.

   스스슷.

     

   [상태 이상 ‘감각 상실’이 강해집니다.]

   [상태 이상 ‘시야 차단’이 강해집니다.]

   [상태 이상 ‘청각 차단’이 강해집니다.]

     

   비고에 가까워질수록 상태 이상이 몰아치고 나의 스킬이 그 뒤를 따랐다.

     

   ‘11층은 11층이라 이건가?’

     

   솔직히 말해 성좌가 되고 탑을 오르며 무인으로서의 나는 어느 정도 수준급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1층의 세뇌들에 비해 11층의 수준은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뚫지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안개가 짙어지고 감각이 더 둔해졌지만 상태 이상이 강해질수록 목적지도 가까워졌다.

     

   그렇게 몇 걸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비고의 낡은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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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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