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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EP.163

     

   황제도 감히 들어올 수 없는 비고(秘庫)라기에 철통 보안은 기본이고 문은 단단한 강철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데?”

     

   하지만 웬걸. 악명이 자자하던 비고는 조금 문이 뻑뻑하기는 했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지금 너무 간단하게 열리고 있었다.

     

   드드득. 끼이익…

     

   ‘안에 누가 있나?’

     

   나 외에도 비고를 방문한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밖에서 문을 잠그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력을 펼쳐 비고 안에 인기척을 찾아보았으나 사람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했다.

     

   터벅.

     

   비고가 이렇게까지 허술하다는 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비추고 있었다.

     

   방금 전에 내가 뚫고 들어온 진법을 돌파한 사람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거나, 사실은 이 비고에는 정작 밝히지 못할 은밀한 비밀 따위가 보관되어있지 않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곳을 지키던 그 장기 중독 보초병이 두 명이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괴물들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그건 여지를 주기도 웃긴 경우긴 했다.

     

   ‘그럼 도대체 왜?’

     

   지금 나의 눈에 펼쳐진 공간은 밖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장엄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기둥도 없이 이런 건물을 세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건물의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수천 권의 책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으니 그런 구조적인 부분은 이미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다.

     

   그야말로 대도서관 그 자체. 뭔지는 몰라도 이런 곳에 비밀이 없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이제 보니 10층짜리 건물인 줄 알았던 이곳은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높은 층고를 가지고 있었다.

     

   주위로 빽빽하게 채워진 책들과 평평한 천장. 그리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나선형 계단이 도서관의 정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터벅. 터벅.

     

   조금 걸어보니 이 비고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문이 열리며 들어온 외부의 온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나마라면 관리를 하는 사람 정도일까?’

     

   손이 닿기 어려운 높이에 배치된 야명주나 벽에 빽빽하게 나열된 책들에는 약간의 손때가 묻은 흔적이 있었지만 나무로 된 바닥만큼은 정말이지 깨끗했다.

     

   “근데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사람이 들어왔건 말건 지금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지금 이곳에 ‘량’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이었으니.

     

   나는 곧장 주변을 탐색하며 책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이런 곳에서도 량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사소한 것 하나도 웬만해서는 놓치지 않기 위해 심열을 기울였다.

     

   하지만.

     

   [무공의 철학]

   [화산파의 매화검수에 대하여]

   [병장기 관리 방법]

   [검과 도]

     

   “흐음……”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니 마땅히 이렇다 할 비밀스러운 내용을 담은 책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까지 보관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사소한 서적들이 손때가 가득 묻은 채,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칼, 무인, 그리고 꽃]

     

   “이건 소설인가?”

     

   펼쳐서 내용을 간단히 읽어보니 삽화가 그려진 소설들도 간간이 꽂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서적은 단연코 무공서였다.

     

   [무공의 기초]

   [쾌검의 이해]

   [절정이 되는 일곱 가지 방법]

     

   “별의별 무공이 다 있……”

     

   하지만 그럴싸한 이름의 모든 책이 모두 무공서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절정 어쩌고 하기에 당연히 무의 경지를 의미하는 줄 알았던 책.

     

   그 첫 장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단조로운 살색의 조화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곧장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크흠!”

     

   이제 보니 그 책 옆으로 이상한 제목의 책들도 나열되어 있다.

     

   [천마와 색마의 사생활]

   [맹주님의 그녀]

     

   어린이는 봐서는 안 될 금서.

     

   충분히 비급서(秘笈書)라고 불릴 만한 책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비고에 있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나는 주변을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주변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主 천하백대고수 초풍쾌검 청태평]

     

   그러다 보니 책장 상단에서 발견하게 된 누군가의 이름.

     

   “따로 주인이 있는 책장이었나?”

     

   나는 1층을 빠르게 돌며 책장의 상부를 일일이 살폈다.

     

   그 위에 적힌 다양한 이름들이 나의 눈에 들어온다. 그 이름들 앞에는 모두 별호와 함께 ‘천하백대고수’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허, 도서관인 줄 알았는데 무덤이었네.”

     

   이제 보니 여기 있는 책들은 수백 년 전, 량이라는 무림 공적과 싸웠던 영웅들의 물건들이었다.

     

   조각품, 서적, 목검, 편지 등.

     

   이 사람들이 사용했던 무기는 보관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그들의 역사를 떠올릴 만한 기록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량’에 관한 기록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무림 공적인 그가 남긴 기록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이 백 명 중 하나는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1층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혹시나 도산검림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을 만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그보다 한층 더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과거의 전쟁.

   수많은 무인들의 죽음.

     

   그로 인해 발생한 기근과 시체들이 쌓아 올린 탑에 의해 발생한 역병의 기록들.

     

   피와 비명으로 점철된 이야기들이 나의 눈앞에 펼쳐졌고 나는 기록들을 읽으며 무림의 과거가 감히 ‘그런 일이 있었다.’ 따위로 넘어가기에는 부족해도 한참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화향루의 점소이…… 아명이 웃으며 이야기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군.’

     

   그 아이는 몰랐던 것이다. 지금 내가 읽은 편지의 주인과 직전에 읽었던 일지의 주인이 서로 목숨을 건 생사결을 펼친 사이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 맞은 편의 무인과 우측의 무인이 배반으로 인해 문파가 갈라지고 피의 전쟁을 펼쳤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1층의 기록을 어느 정도 확인한 직후, 곧장 나선형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2층은 1층보다 조금 더 좁고 어두운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2층의 기록도 1층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천하백대고수’라는 글자가 ‘육검룡’이나 ‘천하십대검수’ 따위의 디테일로 나뉘어졌다는 사실 정도.

     

   허나 더 높은 경지를 이룩한 자들의 기록은 보다 상세했고 큰 세력을 다스리고 있던 무인들의 이야기는 1층 무인들의 기록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전혀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다.

     

   “적나라하군. 이 정도면 불쾌할 지경인데.”

     

   인간들의 탐욕이 불러 온 혼돈은 나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무인이란 족속들은 약육강식을 기본으로 깔고 있기에 그 정도가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나는 2층을 둘러본 이후 3층으로 향했다.

     

   [主 검왕 남궁진]

   [主 창천 광백]

   [主 궁신 이하제]

     

   이름은 모르겠지만 별호 하나만큼은 한 분야의 정점에 이르렀던 자들의 기록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수준의 무인들의 책장에는 소설책이나 조각품 같은 인간미가 없었다. 그저 싸움과 성장만이 그들의 모든 것이었고 그것은 책장을 훑어보는 정도로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스윽.

     

   나는 그곳에 있는 그들의 일지를 읽었다.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

   누구와 싸웠고 그를 죽였다.

   문파를 흡수했고 세력을 키웠다.

     

   물론 남궁이나 제갈처럼 세가에 속해 있던 무인들은 자녀에 대한 기록이나 후인에 대한 안배를 조금씩 남긴 것 같았지만 홀로 살아왔던 고수들에게는 그런 기록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뭔가……”

     

   허무했다.

     

   1층부터 3층으로 올라오며 백 명이 남긴 기록을 꼬박꼬박 읽었다. 하지만 그들의 치열한 삶을 봤음에도 내가 느낀 감정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흥분이 아닌 작은 공허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계단.

     

   높이를 봐서는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계단이 벽면 구석에 초라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위로 올라갈수록 살벌하고 암울해지는 분위기에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며 다음을 다잡았다.

     

   “……”

     

   하지만 4층은 나의 예상과는 달리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평범한 방의 천장에는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알 수 없을 발광체가 야명주 대신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이곳에는 책장이 없었다.

     

   정확히는 나무로 만든 자그마한 보관함이 있기는 했지만 ‘책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크기의 수납공간이었다.

     

   터벅. 터벅.

     

   나는 천천히 그 앞까지 다가가 그곳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도산검림(刀山劍林)이라 적힌 낡은 책과 함께 놓인 두루마리 하나. 두루마리에는 1층에서부터 올라오며 봤던 모든 고수들의 이름이 혈서와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이건……”

     

   나는 책을 펼쳐 가장 앞에 기록된 첫 번째 문장을 읽었다.

     

   [현 무림은 썩어가고 있다.]

     

   앞서 읽었던 모든 기록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만한 내용.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 기록을 읽기 전에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이 현자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내가 본 것은 또다시 그 이름이었다.

     

   主 천하제일인.

     

   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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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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