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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1

   EP.171

     

   띠링.

     

   [12층에 도착했습니다.]

     

   포탈이 내는 소음 뒤로 익숙한 알림이 나를 반겼다.

     

   “숲?”

     

   가장 먼저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러 잡동사니와 나무를 조합해 지은 작은 오두막. 어둠이 짙게 깔린 장소에 덩그러니 놓인 건물을 보고 있으니 경계심보다는 묘한 호기심이 동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알림이 없군.”

     

   11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임무에 관한 알림이 수신되지 않고 있었다.

   장막 뒤의 감시자가 볼일을 보다가 늦었던 것처럼 이곳의 성좌도 그런 상태일까? 알 수 없었다.

     

   “흐음…”

     

   이곳은 비정상적으로 마력이 짙은 장소였다.

     

   분위기가 으스스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11층에서 ‘량’이 수련을 했었다던 그곳보다 마력의 농도가 짙은 것을 보니 예사 장소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집의 문이라도 두드려볼까 싶었던 그때. 잡동사니 집의 건너편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부스럭.

     

   ‘사람인가?’

     

   나무 그림자 사이로 조그마한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낸다.

     

   빽빽한 수풀을 헤치며 나타난 여자.

     

   짙은 보랏빛을 띤 머리가 인상적인 그녀는 이런 숲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커먼 롱코트 입은 채, 거대한 자루를 낑낑대며 옮기고 있었다.

     

   “음…”

     

   성좌는 아닌 것 같았다. 성좌라고 추측하기에는 그 존재감이 너무 부실했고 자루가 무거워 보이긴 해도 저렇게 힘들어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제는 자루를 반쯤 끌다시피 하고 있던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

   “꺄악!”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그녀. 자루를 들고 오는 것만 전념하다 보니 내가 다가왔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다, 다, 당신 뭐야!”

     

   그녀가 말을 더듬으며 뒤로 후다닥 물러선다. 순식간에 조그마한 나무막대기를 꺼내서 나를 겨누는 것을 보니 확실히 놀라긴 한 모양이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사람을 보니 좀 반가워서요.”

   “……”

     

   그녀가 나를 응시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마력?’

     

   이제 보니 나무막대기의 끝에 푸른 기운이 천천히 응집되고 있었다. 그냥 좀 특이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마법사였던 모양.

     

   나를 향해 곧장 마법을 쏘려는 모습이 썩 탐탁스럽지 않았지만 나는 우선 이 낯선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먼저 그녀와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길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물음에도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말로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 완드를 슬며시 드는 것을 보니 당장이라도 나를 공격할 의사는 다분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공격 마법을 쏘아낼 기세. 내가 끝까지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으니 당장 공격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경계를 푸는 일은 없었다.

     

   “저기…… 어. 저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진짜 길만 물어보고 갈 건데요?”

   “당신 여기가 어딘지 알아?”

   “길을 잃었다니까요.”

   “거짓말! 여긴 내가 결계를 다중으로 쳐 놓은 비밀 공간이야! 길을 잃었으면 숲 반대편으로 빠져나갔겠지 여기로 들어올 수가 없어!”

     

   어쩐지 주변에 마력이 퍼져 있는 것 같더라.

     

   그녀가 마법사라는 정보와 주변에 비정상적으로 짙게 깔린 마력을 생각하니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나 같아도 집에 이중삼중 잠금을 해놨는데 누가 도어락을 뚫고 들어와서 ‘길을 잃었는데요.’라고 하면 프라이팬부터 집어 들지 않을까.

     

   “음.”

   “표정을 보니 역시 침입자였군! 감히 뭘 훔치려고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회하게 해 주지!”

     

   그녀가 쥐고 있던 완드 끝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리더니 순식간에 얼음으로 된 창 서너 개가 공중에 생성된다.

     

   내가 한기의 심장을 사용했을 때 만든 ‘아이스 스피어’와 비슷한 부류의 마법. 내가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저런 걸 맞으면 아플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한숨을 쉬며 검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때.

     

   “……혹시 당신 말고도 이 결계 안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하! 지금 말로 나를 현혹하려나본데 늦었어!”

   “아니 거짓말 아니고 진짜 누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건데.”

     

   나의 감각에 걸리는 수십의 인기척들. 게다가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니었던지 그들은 흉흉한 마력을 풀풀 풍기며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무인의 경공술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내 앞에서 얼음 창에 집중하고 있던 그녀도 그것을 뒤늦게 그 사실을 감지한 것인지 점점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대충 백 명쯤 되겠군요. 진짜 이게 안 느껴지십니까?”

   “젠장! 느껴져, 느껴진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아니, 지금 이럴 게 아니지!”

     

   그녀가 자루를 내팽개치더니 후다닥 잡동사니 집으로 들어갔다. 대충 봐도 굉장히 긴박한 표정에 뭔가 궁금한 건 많았지만 물어볼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콰앙!

     

   문을 박살 낼 기세로 튀어나온 그녀.

     

   “당신 진짜 길 잃은 나그네야?!”

   “그렇습니다만.”

   “그럼 멀뚱히 있지 말고 도망쳐!”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나를 보며 호통을 쳤다. 하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도망을 치기에는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드드드드득!!!

     

   빽빽하게 깔려 있던 나무가 연달아 쓰러지는 육중한 굉음이 나의 귀를 때렸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낯선 기계음에 나는 고개를 들어 소음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나무를 모조리 박살 내며 등장하는 무언가.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당황이었다.

     

   “중갑옷?”

     

   그곳에 나타난 것은 얼굴을 포함해 전신에 철판을 몇 겹이나 덧댄 풀 플레이트 갑옷를 입은 기사였다.

     

   아니, 정확히 그를 기사라고 부르기에는 하자가 있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릴 때 들린 소리가 둔탁한 ‘철그럭.’이 아닌 ‘위잉-’ 따위였고 그의 손에는 기사라면 응당 소지해야 할 검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여기는 블랙. 마녀를 발견했다. 좌표를 송신하겠다.

     

   중갑옷을 입은 사람이 말을 했다고 하기에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 어색한 목소리 따위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끝난 직후 주변에 퍼져 있던 수십의 기척이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스 스피어!”

     

   중갑옷 기사에게 마녀라 불렸던 여자가 급하게 마법을 펼치더니 그 기사를 향해 마력의 창을 발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소소한 발악이었을 뿐. 중갑옷의 기사가 손을 뻗자 주변의 마력이 모여들며 방패 모양으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투우웅!

     

   허무하게 막혀 버린 그녀의 일격.

     

   -반항하지 말고 목을 내놓아라 마녀.

     

   얼음 창을 막아 낸 기사가 손을 들자 거대한 빛의 검이 그의 손에 생성된다.

     

   날카로움 따위는 없는 마력 덩어리라지만 상당히 위협적인 농도. 자칫하면 옆에 있는 나도 휘말릴 수 있는 공격이었으나 아무리 봐도 그런 고민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저 여자는 위협만 했지 진짜 공격하진 않았는데 말이야.”

     

   중갑옷의 기사가 빛을 검을 휘둘렀다. 내가 있건 말건 그냥 둘 다 죽으라는 게 뻔한 공격. 그리고 그의 의도를 확실하게 깨달은 나는 곧장 검을 들었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내가 펼친 초식이 날아드는 빛의 검을 빠르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빛이 빛을 잡아먹는 기이한 광경에 중갑옷의 기사가 순간적으로 짧은 탄식을 터트렸지만 나는 거기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스윽.

     

   이빨을 드러낸 자에게 자비는 사치다.

   혹여나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라도 보였다면 나 또한 그에 기꺼이 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나에게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 내가 어디의 누구이든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곳에 있든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린자.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의 몫이다.”

     

   스릉.

     

   나는 한철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공간 주머니 안에 함께 보관해놨던 푸른 보석을 꺼내 오랜만에 서늘한 냉기를 몸 안까지 마음껏 받아들였다.

     

   띠링.

     

   [한기의 심장(S)을 사용합니다.]

     

   “쓰읍, 후우……”

     

   [마력이 많습니다.]

   [칠링 실드(B)가 항시 적용됩니다.]

     

   입가에서 흘러나온 서리에 숲에 그득하던 마력과 공기가 그 자리에 얼어붙으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풀, 꽃, 나뭇잎, 벌레 등. 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자연들은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녀 옆에 신원 불명의 남자가 있다. 마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 즉결 처형을 허가한다.

     

   잠시 후 앞선 중갑옷과 똑같은 디자인의 갑옷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윽고 숲의 주변을 빽빽하게 채웠다.

     

   마력을 사용해 빛의 무기를 생성하는 그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보며 했던 행동은 그저 앞으로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채애애앵!!!

     

   걸음을 때는 순간, 멈춰있던 모든 것들이 한 줌의 유리 조각이 되어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풀도, 꽃도, 흙도, 주변에 자욱하던 수증기까지도.

     

   “당신. 마녀라고 부르면 되나?”

   “……”

   “당신이 진짜 악당이었으면 나한테 굳이 도망치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명백히 나에게 적의를 드러낸 자와 그렇지 않은 자. 12층의 임무를 정확히 알기 전의 상황이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도와줄까?”

     

   그녀가 멍하니 공기 중에 떠오른 얼음 결정을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

     

   스윽.

     

   나는 검을 가로로 그었다.

     

   동시에 중갑옷의 기사들도 빛의 덩어리들을 휘둘렀지만 나의 마력에 압살된 빛의 덩어리들은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산화할 수밖에 없었다.

     

   -괴, 괴물…!

   -오류! 오류! 모두 후퇴하라!

     

   그들의 마력이 소멸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기사들이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계획이었을 뿐. 이미 얼어붙은 갑옷은 그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된 상태였다.

     

   텅! 터어엉!!

     

   바닥으로 떨어진 갑옷들이 굉음을 발생 시키며 바닥을 구른다.

   단 일격에 정리된 중갑옷의 기사 무리. 하지만 나는 그 이후 굉장히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삐걱. 삐걱.

     

   나의 한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받아 낸 기사가 나무 위에서 비틀거리더니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얼어붙었는지 표면에 서리가 잔뜩 낀 갑옷. 그리고 잠시 후, 그것이 바닥에 닿는 순간.

     

   쨍그랑!

     

   머리부터 발끝까지 산산조각 나버린 중갑옷의 기사.

   허나 분명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던 갑옷은 사람은커녕 사람의 그림자조차 들어 있지 않은 빈껍데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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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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