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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3

   EP.173

     

   훗날 마녀라 불릴 그녀가 화신이 되기 이전의 과거.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가 있었다.

     

   「역겨운 곳이군.」

     

   남자는 그녀가 머물고 있던 장소를 보며 짧은 감상을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에 곧바로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 또한 이 시궁창보다 더러운 괴물들의 부락을 당장이라도 탈출하고 싶었으니까.

     

   「너희는 꽤 운이 좋은 녀석들이구나. 들어오기 전에 죽인 고블린 놈들이 밖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데. 내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지금쯤 솥에 삶아지고 있었겠군.」

     

   남자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쌍둥이 동생을 꽉 끌어안았다.

     

   소름이 돋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내. 짧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의 눈이 너무나도 피폐한 탓에 본능적으로 어린 동생을 보호한 것이다.

     

   「쯧. 닮았군.」

     

   그때 짧게 혀를 찬 남자가 말했다.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말. 하지만 남자의 말투에서 묘한 슬픔과 후회가 담긴 느낌이었다.

     

   추측하건데 그녀와 동생이 가진 보랏빛 머리와 눈동자가 익숙하다는 의미보다는 동생을 챙기는 누나의 모습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감옥에 갇혀 있던 둘을 풀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카를로’라고 한다. ‘카를로 인자기’. 자유로운 사냥꾼이라는 의미지.」

     

   남자는 자신을 카를로라 소개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뜻 카를로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몬스터의 부락에 있었던 것은 노예 상인에게 잡혀 가던 도중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니.

     

   「흠. 네가 이 꼬맹이의 누나인가 보구나. 이런 상황에 정체도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

     

   카를로는 그녀의 용기를 칭찬했다. 그리고 그 용기의 선물이라며 약초 냄새가 그득한 포션 한 병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걸 동생에게 먹여라. 지금 보니까 상태가 영 좋지는 못한 것 같구나. 아, 그리고 그걸 다 먹거든 조금만 천천히 나와라. 밖에 있는 광경이 애들 정서에 썩 좋을 것 같지는 않거든.」

     

   그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나무 감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카를로에게 받은 포션을 여러 차례 킁킁거렸다. 물론 냄새를 맡는다고 무슨 약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픈 동생에게 먹여야 하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음.」

     

   하지만 그녀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동생의 입에 남자가 준 포션을 흘려 넣었다.

     

   동생의 체온이 점점 더 올라간 이유도 있었지만 작게 열린 문틈으로 카를로가 고블린들의 시체를 솥에 구겨 넣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손목에 그림이 그려진 남자. 그가 어린 둘을 배려해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주변을 가득 채우던 비릿한 피 냄새가 조금씩 옅어진다. 그리고 시체가 정리되며 불쾌했던 감각이 조금씩 사라질 때쯤, 모든 일을 마친 그가 감옥으로 들어왔다.

     

   끼익.

     

   「이제 나와도 된다. 대충 치웠으니 주변을 너무 꼼꼼히 살피거나 그러진 말고.」

     

   그녀는 동생을 조심스럽게 업고 감옥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

     

   처음 잡혀 왔을 때 여기저기 걸려 있던 사람들의 시체가 사라져 있었다. 바닥에 고블린들의 푸른 피가 말끔히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흙으로 덮은 덕분에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된 고블린 부락. 조금 전에 애들의 정서 어쩌고 하던 말이 그냥 던진 농담은 아닌 모양이었다.

     

   「동생은 좀 어떠냐?」

     

   그가 그녀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음에 그를 봤을 때 느꼈던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극한의 공포에 노출된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실어증이라…… ‘꿰뚫어 보는 눈’이라는 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리하군.」

     

   카를로가 뭔가를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기 힘든 말을 중얼거렸다.

     

   스킬이라거나 임무라거나 화신 찾기라거나. 도통 말아 들을 수 없는 단어뿐이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와 동생을 살려 준 남자에 대한 감사의 말이었다.

     

   「힘들게 말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의 병이니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호전되겠지.」

   「……」

   「그나저나 너 마법사로서 재능이 있구나. 동생은…… 좀 특이한 재능이긴 한데 이걸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군.」

     

   카를로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아온 시간이 그리 긴 것은 아니었지만 도둑질이나 할 줄 알았지 자신에게 마법사의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결정했다. 너를 내 첫 번째 화신으로 받아주마. 물론 네 동생 녀석도 함께.」

     

   카를로가 그녀에게 손을 뻗자 알 수 없는 힘이 흘러들어왔다.

     

   세상에 조금 더 동화되었다는 느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 기운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그날 화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마. 기분 나빠하지 마라. 이름을 지어 주는 건 내가 너희를 아끼겠다는 의미니.」

     

   누나에게 주어진 이름은 엔리카.

   동생에게 주어진 이름은 엔리코.

     

   집과 나라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였다.

     

   ***

     

   카를로 인자기는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남자였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언더 보스라는 위치까지 올라간 인재. 그리고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잠깐만…… 카를로가 여기에서 받아들인 화신이 몇이라고?”

     

   코코아를 홀짝이며 열심히 썰을 풀던 그녀가 손가락을 펴며 차근차근 수를 세기 시작했다.

     

   “아마도 칠천은 넘을 걸? 사실 나도 언제부턴가 세는 건 포기했어.”

     

   도저히 손으로는 다 셀 수 없는 압도적인 숫자. 나는 손가락을 펴면 단위가 ‘일’이었는데 카를로라는 마피아 출신의 성좌는 그 단위가 ‘천’이었다.

     

   “그 인원이 다 배신을 한 거야?”

   “그건 아니야. 나처럼 쫓기는 신세가 된 화신들도 있으니까.”

     

   나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화신들이 자신의 힘이 되어 주는 성좌를 배신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런 성좌를 ‘봉인’까지 했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왜? 화신들이 성좌를 봉인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는 말인가.

     

   “권력 때문인가?”

     

   물론 그 결은 조금 다르겠지만 진 하트가 했던 왕위쟁탈 따위를 생각하면 아주 불가능한 영역은 아닌 것 같았다.

     

   성좌의 자리라는 것은 한 세상에서의 정점을 의미하는 것. 화신이 점점 많아지고 그 영향력을 느끼기 시작한 자들이 많아졌다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엔리카의 답변과 함께 보기 좋게 빗나갔다.

     

   “권력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아, 아까 싸웠던 ‘그것’들 기억나?”

     

   그녀가 말하는 그것. 중갑옷으로 무장된 마법 병기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골렘 같은 병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웠던 움직임. 심지어 마법을 쓰고 경공을 쓰던 그것들은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위대한 발명품인 것 같았다.

     

   “그게 어떻게 움직였다고 생각해?”

   “마법으로 움직였겠지.”

   “……빙결 마법 말고 연금술 영역은 잘 모르는 모양이네.”

     

   연금술. 과거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연구하던 학문이었다.

     

   “스승님과 같은 세상에서 왔다고 하니 모를 수 있겠지만 이 세상은 연금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이 되어 있어.”

   “예를 들면?”

     

   그녀는 자신이 속한 세상의 구조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먹는 것만으로 모든 병이 낫는 만병통치약, 아까 봤던 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무기 헤라클레스.”

     

   아침에 상대했던 그 중갑옷의 이름이 헤라클레스인 모양. 이 세상에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이 또 있을지도 모를 일이긴 했지만 내 생각에 그걸 작명한 건 카를로라는 그 성좌가 아닐까 싶었다.

     

   “너의 스승이라는 사람이 연금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모양이지?”

     

   꺼지지 않는 불은 밤에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의 역할을 했다.

   만병통치약은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했고 헤라클레스는 몬스터의 습격으로부터 인간들을 자유롭게 하는데 큰 이바지를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그것은 성좌가 만든 작품이 아니었다.

     

   “아니, 내 스승님은 연금술이랑은 크게 연관이 없었어. 연금술의 능력이 있던 건 ‘엔리코’지.”

     

   엔리코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동생이자 카를로가 임명한 두 번째 화신. 그리고 동생의 이름을 읊으며 낯빛이 어두워졌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가 죽었거나.

     

   아니면.

     

   “설마 네 동생이 배신을 한 건가?”

     

   나의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나의 눈을 응시한다.

     

   “눈치가 빠르네…… 맞아 내 쌍둥이 동생 엔리코를 중심으로 배신자 연합이 만들어졌어.”

     

   그녀의 설명에 놀랍다는 감정보다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의 경우에 빗대어 보자면 내가 왕위에 앉히고 목숨을 살려 준 진 하트와 로그 브리트만이 나를 배신했다는 것과 같았으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래 대충 들어도 어이가 없겠지. 힘의 근원이 되는 성좌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봉인까지 했으니 말이야…… 근데 그거 알아?”

     

   그녀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잠시 떨군다. 시선이 향한 곳은 코코아 파우더가 담긴 나무상자. 잠시 후 힘 빠진 그녀의 목소리가 이 작은 공간을 울렸다.

     

   “성좌가 봉인 되면 사망한 게 아니라 그 힘은 유지가 돼.”

   “……”

   “그리고 내 동생 엔리코는 그걸 알고 있었지.”

     

   세기의 천재. 인간의 영역을 넘어 신에게 도전한 연금술사.

     

   “바보 같은 말이지만 내 동생은 무한한 마력을 만들고 싶어 했어. 그리고 천재들은 보통은 이해하기 힘든 광기를 가지고 있고 내 동생은 천재였지.”

     

   엔리코는 기술의 발전에 광적인 집착을 보였다.

     

   허나 웃긴 점은 그의 집착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 큰 유익을 가져왔다는 점이었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녀석은 무한한 마력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어. 그리고 결국 그걸 만들어 낼 단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지.”

   “……그게 뭐였는데?”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된 줄 알아? 그리고 가로등의 불꽃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이유도.”

     

   텅 빈 갑옷에서 뿜어지던 마력. 숲속에서 나를 응시하던 중갑옷들.

     

   그리고 엔리카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말했다.

     

   “내 스승님은 봉인 당한 상태로 마력을 추출당하고 있어.”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12층의 성좌가 아닌 탑이 부여한 임무입니다.]

     

   화신에게 당한 성좌를 구한다.

     

   그리고 그 성좌의 힘을 뽑아 쓰는 미치광이를 때려잡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12층의 임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감기에 잘 안 걸리던 몸인데 이번 감기는 힘이 좀 센가 봅니다.
환절기인데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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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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