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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5

   EP.175

     

   내가 연금술사의 도시를 찾아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곳에 봉인되었다는 성좌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함,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필요에 따라서 성좌를 구출할지 제거할지 결정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탐색은 시작도 못했는데 최종 보스라고 생각하고 있던 엔리코가 내 앞에 나타날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팔이 아프군요. 인사 안 받아주실 겁니까?”

     

   게다가 그런 적장이 현재 나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신청하고 있다.

     

   내가 성좌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애초에 내가 이 세계에서 특정한 임무를 받고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

     

   그리고 헤라클레스라는 병기를 통해 나를 관찰한 이후라면 나의 전력도 어느 정도는 가늠이 되었을 텐데 이런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감했다.

     

   ‘혹시 가짜인가?’

     

   그랬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만약에 내가 성좌를 배신한 화신이었고 다른 세상의 성좌가 침입을 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오히려 깊게 숨어 버렸을 테니까.

     

   “나를 알고 있나 보네. 그것도 아주 잘.”

     

   나의 말에 엔리카와 똑 닮은 보랏빛 눈이 초승달을 그리며 미소를 짓는다.

     

   마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상대가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알 수 없으니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했다.

     

   여기에서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수는 두 가지였다.

   내가 보여줬던 무위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또는 내가 이 상황에서 본인을 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예상이 전자라면 녀석은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지만 만약 후자라면 엔리코라는 화신은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나는 녀석의 손을 맞잡았다.

     

   어차피 저질러 진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이 진짜든 가짜든 뽑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뽑아내는 게 더 중요했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이 세상의 연금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니까요. 저희에게는 ‘천공의 눈’이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범죄나 다양한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영상 장치죠.”

     

   나는 그의 말에 마력을 펼쳐 주변에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을 탐지했다.

     

   광장을 싸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작은 마력을 제외하면 응축된 느낌의 마력 덩어리가 곳곳에 배치된 것이 미세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CCTV가 있었군.’

     

   천공의 눈이라 불린 그것은 작은 짐승의 형상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고양이, 하늘을 배회하며 전체적인 전망을 기록하는 새 등. 자연스럽기도 하고 각 개체가 대부분 작은 사이즈를 가지다 보니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 그리고 지금 당신 눈앞에 있는 ‘저’는 사실 마력으로 만든 가짜입니다. 그럴싸하죠? 물론 이것도 마력이 연결된 상태에서 파괴된다면 속앓이를 좀 하겠지만 성좌를 만나는데 그 정도는 감내해야죠.”

     

   역시 가짜였다. 이런 유능한 놈이 적 일지도 모를 성좌 앞에 떡하니 본체를 끌고 올 이유가 없긴 하지.

     

   하지만 이쯤 되니 녀석이 나에게 너무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공의 눈’이라든가, 지금 나를 찾아온 몸이 가짜라는 사실은 솔직히 말해서 본인의 패를 먼저 까버리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으니까.

     

   “그걸 말하는 이유는?”

   “당신이 저를 먼저 신뢰하기를 바라니까요.”

   “꽤 당당하네? 그래도 자신을 거둬준 성좌를 배신하고 봉인한 녀석 치고는 너무 뻔뻔하다는 느낌도 들어.”

   “아, 그렇습니까? 아쉽습니다. 그건 사실이라 어쩔 수 없는데…… 점수가 깎였군요.”

     

   놈은 내 생각보다 훨씬 당당했다. 생명의 은인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마력을 쪽쪽 뽑아먹는 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말투.

     

   게다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고 있으니 웬 사이코패스를 상대하는 기분이라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쾌하다.

     

   하지만 놈의 말에서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왜 신뢰가 필요한 거지? 너 정도로 유능한 인간이라면 나와 네가 적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말이야.”

     

   나는 다음 층으로 가는 포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성좌의 도움을 받거나 그를 죽여야 한다.

     

   물론 녀석이 싸움 자체를 싫어하는 존재라면 나와의 전쟁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몰랐다.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피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 하지만 그런 녀석이라면 애초에 성좌를 배신하지도 않았을 것이니 그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하하.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임무를 받은 상태지요? 제 말이 맞습니까?”

     

   녀석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말이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되었군요. 당신의 목적은 탑을 오르는 것, 그리고 저의 목적은 이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니 충분히 거래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혹시 탑의 다음 층으로 가는 방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12층에 올라오기 직전에 장막 뒤의 감시자와 나눴던 대화를 상기했다.

     

   임무를 클리어 한다.

   성좌를 죽인다.

   그게 아니라면……

     

   ‘성좌의 마력을 사용해 강제로 포탈을 연다……’

     

   이제 보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미치광이는 성좌의 마력을 뽑아다 세상을 가동하는 중이었고 그렇다는 것은 조금 무리를 한다면 다음 층으로 가는 포탈을 열 수도 있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제가 다음 층으로 가는 포탈을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이곳 미스트를 둘러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새끼. 질문 엄청 좋아하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건넨 반문에 대한 저의를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군. 내가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확실히 좋은 곳이야.”

     

   나의 응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제가 가꾼 이 세상이 파괴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포탈을 찾는 중이죠.”

     

   이 세상의 유지비용은 ‘성좌’라는 배터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인 ‘성좌 구출’이 이루어지면 그를 봉인하는데 가담한 모든 화신들이 처벌을 받을 것은 뻔한 일.

     

   만약 내가 성좌를 죽이는 방법을 택한다면 이 세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기술을 빼앗기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을 총동원해 나를 다음 층으로 인도하겠다 말하고 있었다.

     

   성좌는 그대로 마력 추출기로 써 먹으면서.

     

   “당신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주일만 있어 주면 됩니다. 휴식을 취하셔도 좋고 수련을 하셔도 좋습니다. 아,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셨죠? 만약 원한다면 이 세계의 화폐를 원하는 만큼 드릴 테니 식도락이나 쇼핑을 즐기셔도 좋습니다.”

     

   그의 얼굴이 이곳에 나타난 이후, 처음으로 간절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좌만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자신의 세상을 지키려는 자. 그 수단이 어찌 되었든지 간에 무언가를 절실히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는 감히 무시하지 못할 강한 신념 같은 것이 있었다.

     

   “만약 내가 방해를 하겠다면?”

     

   하지만 곧이곧대로 녀석의 말을 믿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이 현상이 유지되고 있는 게 이곳을 찾아온 도전자들의 뒤통수를 후리고 마력을 뽑았기에 가능한 건 아닐지.

     

   나의 말에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주변에서 마력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그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의 신살 병기를 불러오는 듯했다.

     

   “막을 겁니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든 당신을 죽일 겁니다.”

   “쉽지 않을 텐데.”

   “흥.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고작해야 마법사 한 명. 당신의 마법은 이미 다 파악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분명 놀라운 수준이긴 하지만 그 정도의 빙결 마법은 헤라클레스로 충분히 대항할 수 있지요.”

     

   응?

     

   “헤라클레스는 성좌에 대항하기 위해 제가 개발한 회심의 병기입니다. 상대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알맞게 병기를 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

     

   녀석은 나를 마법사로 알고 있었다.

   당시에 물론 검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헤라클레스를 상대했던 방법이 한기의 심장을 활용한 음한지기였으니 충분히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나쁘지 않군.’

     

   상대가 나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메리트였다.

     

   그리고 그는 화신인 탓에 타 성좌들과 달리 나의 성장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에 한 번의 경험으로 나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지레짐작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블러핑이 들어가는 타이밍이었다.

     

   “일주일.”

     

   나의 말에 그가 몸을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며 마력을 거뒀다.

     

   “일주일만 기다리면 된 다는 거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의 표정이 만족스러운 교만으로 가득 찬다. 내가 진심으로 쫄아서 녀석의 의견을 수락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일주일 후에 연금술사의 탑으로 찾아오십시오. 그럼 제가 알아서 마중을 나와 있겠습니다.”

   “퍽이나 친절하시네.”

   “저를 신뢰해 주셨으니 저도 마땅한 보답을 해야죠.”

   “약속을 어기지 않았으면 좋겠군. 만약 그런다면 이 도시를 통째로 빙하기로 만들어줄 테니까.”

     

   나의 위협에 엔리코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만만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내가 마법사라는 의심에 직접 확신을 심어줬으니 여유가 생긴 모양.

     

   “그럼 일주일 후에 연금술사의 탑으로 찾아가도록 하지. 그전까지 수련하고 있을 테니까 나 찾지 말고.”

   “그러십시오.”

     

   그 즉시 나는 몸을 돌려 연금술사의 도시를 벗어났다.

     

   은근슬쩍 나의 뒤를 추적하는 새들과 쥐가 있었지만 한기의 심장을 꺼내 냉기를 흩뿌리는 것으로 그것들을 멈춰 세웠다.

     

   그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제시한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목표는 그 일주일 안에 성좌의 위치를 파악하고 놈의 정확한 의도를 알아내는 것.

     

   저런 영악한 놈이 그저 공익을 위해 성좌를 배신하는 위험을 감수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나의 최종적인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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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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