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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EP.181

     

   “당신은 전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엔리코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탑을 오르며 정말 무수한 싸움을 했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한 싸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싸움.

     

   하지만 내가 지금 떠올린 싸움과 엔리코가 말한 전쟁이라는 것의 결이 다르다는 것은 눈치가 있는 이상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두 집단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무력으로 충돌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란을 야기하지요.”

     

   엔리코가 무언가를 회상하듯 고개를 들어 허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고뇌, 비애,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그의 얼굴을 스쳐 갔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그의 얼굴에서 ‘긍정적’임을 암시하는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저는 단 두 번의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정확히는 한 번의 학살과 두 번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겠군요.”

   “학살?”

   “혹시 당신은 성좌들이 탑을 오르며 받는 임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엔리코의 말에 나의 고개가 비스듬하게 돌아갔다.

     

   내가 탑을 오르며 받았던 임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튜토리얼을 하며 각성을 하고 탑을 오르며 정신적, 신체적인 성장을 이룬다.

     

   성좌가 되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은 이후 6층부터 10층까지 성좌가 가져야 할 특정한 성질을 차곡차곡 익혀가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나마라면 11층이 좀 특이하긴 했지.’

     

   량이라는 살아있지도 않은 과거의 무인을 추모하는 일.

     

   그것은 ‘장막 뒤의 감시자’라는 이명을 가진 ‘영’이 나에게 내렸던 임무였고 잠시 들렀던 13층에서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내렸던 임무도 특이하긴 마찬가지였었다.

     

   “그곳을 지배하는 성좌가 올라오는 도전자를 맞이하는 구조 아닌가?”

   “음…… 애매한 답변이군요. 이번에도 반만 맞았습니다.”

   “설명해 봐.”

     

   엔리코가 반쯤 죽어 있던 눈으로 나의 눈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무미건조한 미소를 살며시 띠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전자를 맞이하는 건 보통 성좌가 맞습니다. 하지만 도전자가 가야 할 층을 결정하는 것도 탑이고 마땅한 임무를 내리는 것도 보통 탑이 합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는데.”

   “하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은 성좌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싸움을 기꺼워하는 성좌의 경우에는 전투와 관련된 층을, 선한 성향이 강한 성좌의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임무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의 말에 나의 머릿속에 최근에 지나왔던 11층을 떠올렸다.

     

   친절을 베풀고 아이들을 돕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왜곡된 과거의 영웅을 추모하는 일. 하지만 나는 그 임무를 통해 내가 가진 성향이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없었다.

     

   “저는 당신이 어떤 층을 지나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따랐던 성좌 ‘이세계의 대부’는 반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전쟁이 익숙한 성좌였다는 사실입니다.”

     

   엔리코가 말한 ‘이세계의 대부’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피아였다.

     

   중소 규모의 전쟁과 암살. 피를 보는 일이 잦고 사람들을 이끌고 세력을 넓혀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상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부는 전쟁을 즐겼습니다. 인재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고 그 이유 또한 전쟁에 써먹기 좋은 전투원이라는 이유였죠.”

   “그래서 11층에서부터 전투와 관련된 임무를 받았던 거군.”

     

   엔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대부는 11층의 성좌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하라는 임무를 받았었죠. 하지만 성좌가 되고 처음으로 오르게 된 층답게 그곳의 전투 병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빈약했습니다.”

   대부는 11층에 오르자마자 해당 층을 관리하던 성좌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화신들을 죽이고 해당 층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죽이고 말 그대로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전쟁은 저희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를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화신은 많지 않았습니다.”

   “뭐, 네가 학살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이유가 있겠지.”

   “그겁니다. 그들은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는 저항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성좌가 있는 장소까지 군대를 밀고 가는 동안 막는 자가 거의 없었던 겁니다.”

     

   엔리코의 얼굴이 다시금 침울해진다. 용서받을 수가 없는 죄를 지은 자. 그는 대부를 말리지 않은 자신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적들인 우리에게까지 친절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 말했고 실제로 우리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등 다양한 친절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습격을 감행한 화신들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싸움을 걸면 반격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그런 저항이 없었기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곧장 12층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우리는 말 그대로 전쟁 밖에 모르는 광인들이 거주하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12층에 오른 첫날에 수천에 달하는 화신이 죽었다는 말을 나에게 전했다.

     

   “다음 날, 그나마 살아남았던 절반이 죽었습니다. 칼과 칼을 맞대고 마법이 충돌한 싸움이 아니라 누군가가 저희가 먹을 음식에 독을 풀었던 탓이었죠.”

     

   전쟁에 미쳐 버린 사람들이 사는 곳. 그들은 친절을 베푸는 척 음식에 독을 넣은 아낙네들을 만났다.

     

   피부에 마법진을 그린 채 자폭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부모를 잃어 눈물을 흘리던 아이가 주머니에 있던 소도(小刀)를 꺼내 동료의 목을 찌르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저의 누님이 사망했습니다. 몬스터에게 납치당한 척 연기를 하던 아이들의 낭도(囊刀)에 목이 관통 당했죠.”

     

   그렇게 사망한 엔리카. 하지만 그녀의 사망은 그저 수많은 화신들 중 한 사람이 죽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선사했다.

     

   “화신들은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의 첫 번째 화신이자 모든 화신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누님의 사망 소식은 모두를 분노하게 만들기 부족함이 없었죠.”

     

   화신들은 그날부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끝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전쟁이 수개월의 혈투 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대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엔리카의 죽음이 이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면 엔리카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의 두 번째 화신인 저는 그의 항상 그의 옆을 지켰기에 그가 하는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죠.”

     

   「이 포탈의 마력을 일부 활용해서 엔리카를 되살리겠다.」

     

   탑이 제공한 격을 초월한 마력. ‘이세계의 대부’는 포탈에서 흘러나오는 격과 자신의 마력을 합쳐 지금의 엔리카를 만들었다.

     

   “부활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신도 아닌 성좌가 행한 것은 그저 모습이 비슷한 새로운 여자를 만든 것일 뿐. 당연하게도 만들어진 ‘엔리카’는 과거의 누님과 똑같은 성격과 얼굴을 지니고 있었지만 기억에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성좌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녀에게는 추억이랄 게 없었다.

     

   화신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그들을 보살피던 어머니와 같은 존재는 사라지고 그저 성좌에게 충성을 하는 엔리카와 똑같은 인형이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성좌는 그날 포탈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거의 생명 창조와 흡사한 기적을 행했기에 포탈의 마력과 성좌의 마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예. 저는 그날 성좌를 봉인했습니다.”

     

   엔리코의 눈동자에 보통 사람이라면 가질 수 없는 굳은 결심이 드러났다.

     

   “성좌에게 충성을 하던 화신들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즐기던 자, 그에게 목숨을 빚진 자,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미쳐있던 자들이 반역을 소리치며 저에게 검을 겨눴습니다.”

     

   하지만 엔리코에게 반발하는 화신들만큼 엔리코를 따르고자 하는 화신들 또한 많은 수를 차지했다.

     

   “그것이 학살과 전쟁에 이은 두 번째 전쟁. 한 성좌에게 가르침을 받은 두 화신 무리의 전쟁이었습니다.”

     

   화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서로의 목을 노리고 전쟁을 치렀다.

     

   그들을 중재할 수 있는 성좌도, 정신적 지주도 없었다. 그저 한 세력이 멸망하지 않으면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

     

   그리고 그 싸움의 승기는 결국 ‘엔리코’가 이끌던 혁명군이 거머쥐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12층에서 화신이 되어 성좌에게 과한 충성이나 불만이 없던 자들. 그나마 평화를 원했던 그들은 뒤에서 저희를 보조하는 역할이었기에 그나마 목숨을 부지했던 겁니다.”

     

   승리를 거머쥔 그들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없고 평화가 가득한 세상. 봉인된 성좌에게 뽑아낸 마력이 있었기에 발전 또한 가공할 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는 성좌가 만들어 낸 엔리카였다.

     

   “그 존재 자체가 저희에게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성좌와 포탈의 힘으로 탄생한 그녀는 언제든 성좌를 깨울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으니까요.”

     

   그저 내버려둘 수는 없는 존재…… 하지만.

     

   “저희는 도저히 누님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너무, 너무 똑같았습니다. 얼굴도 성격도… 기억에는 오류가 있었지만 그저 기억 상실에 걸린 누님이라 생각하니 도저히……”

     

   헤라클레스를 뒤집어쓰고 봤던 엔리카의 얼굴이 완전히 달랐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화신이 그녀를 ‘엔리카’가 아닌 ‘마녀’라 불렀던 이유도.

     

   “누님은 본능적으로 성좌의 봉인을 풀고자 했습니다. 마치 뭔가가 정신에 입력된 것처럼 항상 성좌의 봉인을 푸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쫓았군.”

   “그렇습니다. 누님의 기억은 어차피 반란 이후로의 기억뿐. 멀리 내쫓은 이후, 누님과의 추억이 없는 화신들을 시켜 누님을…… 젠장……”

     

   엔리코의 인상이 와락 구겨진다.

     

   엔리카는 성좌의 봉인을 푸는 열쇠. 하지만 그 사실 하나로 엔리카의 면전에서 그녀의 목숨을 거둬갈 수 있는 자가 그들 중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시작된 숨바꼭질.

     

   죽여야 하지만 죽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손에 그녀의 피를 묻히고 싶지 않은 자들의 폭탄 돌리기였다.

     

   “처음 제가 당신을 찾아갔을 때, 말씀드린 저의 목적을 기억하십니까?”

   “이 세상을 유지하는 거라고 했던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지요. 하지만 그때는 설명 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나의 응답에 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내 나의 눈을 응시하며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유지를 넘어선 보호. 꾸준히 축적한 성좌의 마력과 탑의 마력을 사용해 이 세상을 탑의 개입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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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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