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6

   EP.186

     

   탑의 14층.

     

   13층 무의 정원을 관리하는 탈람바르는 살아 있는 무공서가 거주하는 상층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었다.

     

   「반갑네. 나 왔어.」

     

   탈람바르의 물음에 천월(天月)이 새겨진 무복을 입은 여인이 내려치던 목검을 유지하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또 오셨군요.」

   「반응이 시큰둥하군. 자네는 내가 오는 게 반갑지 않나?」

     

   다소 냉소하다 여겨질 정도로 쌀쌀맞은 여인의 반응에 탈람바르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운을 띄운다.

     

   탈람바르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동작으로 무공 수련에 몰두하는 이 여인이 썩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성적인 호감이 아닌 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점이 그러했지만 화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반갑지 않습니다. 어떻게 귀신 같이 제가 수련하는 시간에만 찾아오시는 겁니까?」

   「그건 어쩔 수 없네. 이 시간이 층간 경계가 가장 크게 허물어지는 시간이거든. 지금이 아니면 층을 뚫는데 품이 너무 많이 든단 말이지.」

   「그럼 안 오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순 없지. 여기 오면 얻어갈 게 많거든.」

     

   탈람바르는 화영이 자신의 수련 시간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살아 있는 무공서라는 이명을 가질 정도로 무공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좌인데 그것을 모른다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

     

   하지만 그걸 알고서도 꼬박꼬박 14층을 찾아오는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했다.

     

   「오늘은 중검(重劍)인가?」

   「남의 수련 훔쳐보지 마십시오.」

   「안 훔쳐봤네. 나는 아주 당당해.」

     

   화영은 이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무공을 알고 있었다.

     

   탈람바르가 그저 압도적인 힘과 마력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스타일이라면 화영은 상대마다 파훼법을 찾아 철저히 약점을 무너뜨리는 스타일.

     

   중검, 환검, 쾌검 등 다양한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그녀의 수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탈람바르는 자신이 조금씩 성장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쳇.」

   「응? 왜 멈추나? 계속해.」

   「강호에서 상대의 무공 수련을 훔쳐보는 게 얼마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인지 아십니까?」

   「그런 거 모르네. 그리고 여긴 강호가 아닌데?」

   「시끄럽습니다. 궁금하면 직접 배움을 청하시던가.」

     

   화영의 까칠한 답변에 탈람바르가 미간을 찌푸린다.

     

   「싸워야 할 상대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바보도 있나? 내 역량을 다 들키면 어쩌려고.」

   「양심이 뒤지신……」

     

   순간 짜증이 솟구친 화영이 화를 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 성좌를 볼 때마다 이성이 조금씩 무너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거니와 그의 말에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쯧… 됐습니다. 그나저나 그 성좌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 성좌? 누구를 말하는 거지?」

     

   편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고작 탑의 5층에서 성좌의 격을 얻은 플레이어.

   그녀의 화신도 아니었지만 그녀를 따르는 화신들보다 괜히 소중하게 여겨지는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에 관한 안부였다.

     

   화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장난을 치는 그를 돌아본다.

     

   물론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다른 도전자들을 잘 살펴보지 않는 그녀였기에 그나마 찾아와주는 탈람바르가 없었다면 소식을 구할 방법도 없었으니까.

     

   「김시인을 말하는 거라면 꽤 많이 올라왔다고 볼 수 있지. 최근에 12층에 오른 것 같더군.」

   「빠르긴 빠르군요…… 지금까지 탑을 오르는 속도만 따지고 보면 단연코 손에 꼽을 수준 아닙니까.」

     

   김시인의 성장세는 비정상적으로 빠르긴 했다.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았고 어떤 인생을 거쳐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오기와 천재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특별한 점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절실함.

     

   「그는 여전합니까?」

   「여전하지. 근데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긴 해.」

     

   탈람바르의 말에 화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한데 달라졌다…… 말이 이상하다.

     

   「뭐가 달라졌습니까.」

   「뭐랄까…… 이건 설명하기가 힘들군. 그의 검을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걸세.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김시인 그자가 더 이상 풋내기는 아니라는 것이지.」

     

   김시인은 무언가를 계기로 크게 달라질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더 이상 손대기 힘들 정도의 신념을 정립한 그였기에 변화를 가진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 더욱 그랬다.

     

   「기대가 되는군요.」

   「조만간 13층에 도달할 것 같으니 심심하면 구경이라도 해. 나는 그대처럼 쩨쩨한 성좌가 아니라서 수련하는 걸 봐도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

     

   탈람바르의 비꼼에 화영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숨길만한 게 없는 거 아닙니까? 무공이랄 것도 없이 힘으로 싸우는 검을 선호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의 말투에 짜증도 내고 툴툴거리기도 하는 그녀였지만 탈람바르의 전투방식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다.

     

   힘으로 상대의 모든 기술을 찍어 누르는 방식. 하지만 그녀는 그의 전투방식을 무시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은 그 어떤 기술보다 강하다. 중검이니 쾌검이니 환검이니 떠들어대지만 결국 눈앞에서 태산을 가를 수 있을 법한 기세를 경험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는 게 이상했다.

     

   「후후후……」

   「……왜 웃으십니까?」

   「이번에는 있거든.」

     

   그녀의 말에 탈람바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린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단단한 근육에 문신이 가득한 흰색 장발의 무인의 웃음에는 근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자신감만큼은 넘쳐흘렀다.

     

   하지만.

     

   「……죽이지는 마십시오.」

     

   말을 하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화영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싸움을 좋아하는 성좌. 이명 자체가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인데 그런 자가 웃음을 짓는다면 필시 보통 일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약속하지. 대신 13층에 찾아오지는 말게. 자네가 제자를 아낀다는 건 충분히 알겠지만 나는 나의 싸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제자 아닙니다.」

   「아닌 척하긴.」

     

   화영이 속삭인다 싶을 정도로 작은 소리를 중얼거렸고 그녀를 뒤로한 탈람바르가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보지 말라고 해도 화영은 13층에 올라온 김시인의 싸움을 지켜볼 것이 분명했다.

   자신과 같은 무공을 사용하는 강자의 성취를 대가도 없이 지켜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것을 놓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나도 물러졌군……’

     

   탈람바르는 13층으로 가는 포탈을 열며 김시인을 죽이지 말라던 그녀의 말을 상기했다.

     

   싸움을 너무도 좋아했기에 상대를 늘 존중하던 그였다.

   그렇기에 탈람바르에게 ‘봐준다.’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은 친구고 기대하던 유망주고 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됐다.

     

   ‘이번에는 좀 힘 조절을 해야겠어.’

     

   그렇게 나온 결론.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13층에서 만나게 될 그는 이전의 김시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

     

   “아주 좋구나!!!”

     

   내가 탈람바르와 검을 부딪치는 순간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젠장…! 도대체 힘이 얼마나 센 거야?!’

     

   탈람바르는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존재보다 압도적인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저 마력을 끌어 올리며 신경전을 벌이던 순간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분명 그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있었지만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쿠콰아아아!!!

     

   검이 맞닿은 이후로 검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방심하면 죽는다…!’

     

   한순간이라도 까딱 힘을 뺏다가는 순식간에 목이 달아날 것 같았다.

   실제로 검이 닿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시간은 찰나에 가까웠지만 그걸 상대하는 내가 체감하는 시간은 억겁과도 같았다.

     

   과거의 시간이 떠오른다.

   편의점에서 일을 했던 순간.

   스카이 게임즈에 입사해서 근무를 하고 세상의 멸망을 맞이한 그 순간이……

     

   “미친!!!”

     

   카아아앙!

     

   나는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올려 탈람바르의 검을 밀어냈다.

   순간적이었지만 내가 보았던 그것이 주마등이라는 생각이 스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아끼던 힘이 폭발한 탓이었다.

     

   “크흐…! 시원해서 좋군!”

   “저는 죽을 맛입니다만.”

   “그래? 그대의 죽을 맛은 시원한 맛이렸다!!!”

     

   미친놈이다.

     

   그냥 미친 것도 아닌 검과 싸움에 미친 광인.

     

   “그대!! 나를 더 즐겁게 해다오!!!”

     

   탈람바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달려든다. 처음에는 좀 냉정해 보였던 그의 이성이 나와 검을 맞대는 순간부터 반쯤 날아간 것 같았다.

     

   처억!

     

   ‘하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솔직히 정면으로 그를 상대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성을 목도한 압박감이 느껴질 지경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편법을 쓰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김시인이 아닌 한 명의 무인으로서 나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월광신보 月光神步

     

   나는 땅을 박차고 정면으로 달렸다. 그리고는 단전에 있는 내공을 바닥까지 긁어 전신과 검에 펼쳐 냈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탈람바르는 하나의 거대한 성채였다.

   허나 굳게 닫혀 있는 문도 강하게 두드리면 언젠가는 부서지는 법.

     

   나의 몸에서 뿜어진 마력이 단단하게 응집되며 날카로운 창으로 변모한다.

     

   신검합일 身劍合一

     

   검으로 이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지. 역경에 정면으로 도전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혼신의 일격이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